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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Have a nice trip!

by 수성





[08:00 am]


“구름아! 땅이 젖어서 지금 못나가.. 어제 비 많이 온거 알지?”


문을 열며 구름이에게 말했다.



(읭?? 뭥미?)



눈을 비비고 다시봐도 비는 언제 내렸냐는 듯, 바닥은 말끔하게 말라 있었다.










문 밖을 한번 보고, 다시 나를 쳐다보는 구름이. 어처구니 없어할 때, 날 쳐다보는 지 애미를 똑 닮아따..


문 열린 밖을 바라보며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는데, 손에 짚이는 무언가.


나탈리의 다이어리다!!

나탈리는 종종 일기를 쓰며 생각을 정리하는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다. 내가 먼저 잠든 사이 무언갈 쓴게 분명하다. 급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침대로 고개를 돌렸다. 나탈리는 여전히 꿈나라다.


(몰래 훔쳐보는 일기가 꿀맛이짘ㅋㅋㅋㅋㅋㅋ)


다이어리를 조심히 펼쳤다.




ㅇㅇ랑 갔던 서늘한 날씨의 샌프란시스코. 도시의 분위기, 날씨, 맛있는 커피, 그리고 음식까지.. 그때의 기억이 너무 좋다. 오빠가 미국 얘기를 처음 꺼냈을 때, 마치 그때 샌프란시스코의 느낌이 손끝에 닿는 것만 같았다.


(중간생략..)


회사에서 일이 많아, 오빠가 보낸 여행 일정을 제대로 볼 시간이 없었다. '일단 알겠어' 라고 별 뜻없이 보낸 문자 하나가 예약확정 이메일로 되돌아 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생략..)


내가 상상한 미국 서부 여행은 여유로운 LA에서의 브런치와 샌디에고에서 바닷가 산책 정도였다...




다이어리를 조용히 닫고, 침대에 누워있는 나탈리를 돌아봤다. LA의 브런치와 샌디에고의 바닷가를 상상했던 도시녀자를 내가 초원으로 끌고 온 셈.


이불 밖으로 삐져 나와있는 나탈리의 발이 왠지 불쌍해 보였다.


미안함을 더 열심히 케어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전환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름아.. 나가자..”





[09:00 am]


나는 미국에 와서 지금까지 한번도 소형견을 본 적이 없다. 미국인들과 함께 다니는 아이들은 전부 중형 혹은 대형견들이었고, 그런 이유에서인지 요 며칠 구름이를 보고 기엽다고 한 미국인들은 이런 쪼꼬미를 볼 기회가 없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캠프를 산책하다 만나게 된 골든리트리버.


대형견을 만난 쫄보탱이 구름이는 다가가지도 못할꺼면서 지 혼자 신났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지만 묵묵히 쳐다만 보는 점잖은 골든이.




“Good morning~~!!”


백인 아저씨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환하게 인사를 받아주는 인상 좋은 아저씨.


“Good morning!!”


나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Rain yesterday?”

(어제 비가 내리지 않았나요?)


“Yeah!! a lot overnight!”

(밤새 내렸어요!)


“How did it dry up so completely?”

(어떻게 이렇게 싹 말랐을까요?)


:

:




백인 아저씨와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멋진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흐뭇해하는데, 허공을 뚫고 들려오는 버터 바른 목소리.


“Good morning!!”


백인 아저씨가 나에게 인사를 건넨 것이다.


“아.... 군몰닝~!”


나는 소심하게 인사를 하며 구름이 목줄을 당겼다.


(가자가자!! 말 더 걸면 무섭다고... 이 색ㅎㅑ!!)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촐싹대는 쫄보탱이1과 시선은 아저씨와 골든이 중간 어디쯤을 향한채 애먼 구름이 목줄만 당기는 쫄보탱이2, 반면 흐뭇하게 쳐다보는 백인 아저씨와 묵묵한 골든이.


(강아지는 견주를 따라간다던데.... 큼큼..)



줄을 너무 꽉 잡고 땡겼나? 전완근이 아프다.


그러고보니 구름이 목도 아팠겠다. 캠핑카 앞으로 돌아와 목줄을 풀어주고, 숨을 돌리는데, 구름이는 그새 냄새를 맡으며 바위 언덕을 총총총 잘도 올라간다.


한참을 오르더니 걸음을 멈추고 바람을 맞으며 앉아 먼 산을 바라보는데...


(쟨 머 사람이여 머여? 먼 생각을 하는겨..??)



(오늘은 빗질도 안햇으면 조켓고, 치카치카도 안햇으면 조켓고, 음.. 간식도 마니마니 아주 마니 먹엇으면 조켓슴니당..)




그때, 뒤통수를 관통하며 들려오는 나탈리의 외침!!


“구름아, 뭐해? 거기 왜 올라갔어? 내려와!”


옴마를 쳐다는 보지만 내려오진 않는다.

내가 다시 불렀다.


“구름아! 내려와!”


쳐다도 보지 않는다...









(아오!! 저걸 그냥.... )


하지만 내 비장의 무기.

뽀시락뽀시락...


후다닥 내려온 구름이를 잡아 올리자, 붉은 사암에 물든 발을 보고 깜짝 놀란 도시녀자가 소리쳤다.


“너 발 봐, 발! 이거 뭐야? 이거 어떻게 할꺼야? 어? 너? 여기봐! 이거봐!! 이게 머야??”


(왜.. 나를 혼내는.. 거 같을..까...... )



“거봐! 아빠ㄱㅏ 올라가지 말라고 했.. 자나....!!”


(콜록콜록..)








페이지(Page) – 그랜드 캐년(Grand Canyon)


135 miles (217km) / 예상소요시간 : 3시간 20분






[10:20 am]


이동 중 먹을 점심을 사기 위해, 인근 서브웨이에 들렀다. 하루에 한끼는 꼭 챙겨먹는 서브웨이 샌드위치!


로드트립을 하는 동안 우리에게 아주 편리하고 유용한 한끼 식사가 되주었다.


며칠동안 별 생각이 없던 나는 먼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란 놈은 일주일내내 김치찌개만 먹어도 살 수 있는 놈이지만, 나탈리에겐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점심 저녁 메뉴마저 달라야 하는 아주 치밀한 여자인데, 그런 여자가 매일 똑같은 음식을 먹는다??


미안한 마음이 다시 올라왔다. 도시녀자가 초원에 온 것도 모자라 먹는 것까지도 참고 견디고 있었다니...


“나탈리! 미안해..”

“응? 머가??”

“서브웨이 맨날 먹는거 물리지 않아?”

“맨날 다른 거 시켜서 갠차나!”



(아...... 연예인 걱정, 구름이 걱정, 나탈리 걱정은 하는게 아니다....)








[11:20 am]


89번 도로를 타고 가다 어떤 언덕을 넘어가자 시야가 확 트인 끝내주는 전망을 만났다.





[Antelope pass vista]


“나탈리! 우리 여기서 점심먹자!”

“캠핑카가 이런게 좋네!”

“이제 알겠지?!”


나탈리 입가의 미소가 대답을 대신했다.


포장해 온 샌드위치와 신선한 오렌지주스 그리고 구름이 간식. 문을 활짝 열어놓고는 우린 테이블에 둘러 앉았다.


“아놔.. 이 오빠.....”

“왜??"

“아니.. 미국이 오렌지 생산국인데, 왠 한국 오렌지주스??”


그렇다.

나는 라스베가스 한인마트에서 한국산 오렌지주스를 산 것이다. 나탈리가 미리 알았다면 미국 마트에 가서 ‘메이드인USA'를 샀겠지..


미국에 와서, 미국산 오렌지로 만든, 한국브랜드 오렌지주스를,, 미국에서 샀다..


(이런.. 뷰우우웅 ㅅㅣ ..........) ㄴ



적막한 공기에 괜히 한마디 꺼내본다.


“이야~~~~ 여기 뷰 진짜 장관이다. 장관이야!!”

“난 콜드브루 마실래! 오빠!!”


“어... ㅇㅓ.. 그래! 콜드브루 맛있더라!!”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한끼 식사를 입으로, 눈으로 즐길 수 있었다.


“오빠! 꼭꼭 씹어 먹어! 주스랑 그냥 넘기지 말고!”

“응웅!!”


나를 걱정해주는 고마운 와이푸.



“미국에서 먹는 한국 오렌지주스 맛은 어때?”


(풉~~~)


뿜어져나온 나의 메이드인코리아 얼인지쥬쑤..


이동하는 내내 앉아만 있어야 하는 이유로 샌드위치를 꼭꼭 씹어 먹고는 테이블을 정리하고 차에서 내렸다.


“오빠! 혹시 모르니까 이거 좀 호주머니에 챙겨죠!”






(엄마가 챙기라는 니 똥봉투 챙겨따... 맘껏 싸라...)



좌판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인디언들.


물건들은 모두 수작업으로 만든 것들이었다. 어느 곳, 어느 자리에 앉아 한땀한땀 만들었을 그들의 땀과 시간을 생각해보니, 사랑과 정성이 물건에 오롯이 베어있는 것이 느껴졌다.


과거 대자연의 신성함을 받들며 살았던 인디언들.


역사는 그들을 자본주의 체제로 끌어들여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렇게 오랜 세월 깊이 박힌 아픔 같은 것은 그들의 눈빛과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사는 모습을 보며, 평소 한국에서의 내 일상을 반성하게 되었다.






[12:50 pm]


윌로 스프링스(Willow Springs)라는 마을을 지나칠 때부터 서행하며 막히는 차량들.


양방향 차선이 두 개뿐인 도로에서, 차선 하나를 막고 공사중인 것이다.


교통 정리를 하는 공사 관계자의 수신호에 따라 차들이 줄지어 기다리는데, 쉬지 않고 달려온 나에겐 꿀맛 같은 휴식이었다.


“아~ 쉬엄쉬엄 좋으네!!”

“왠일이래? 길막히는거 싫어하면서?!”

“그게 또 상황에 따라 다르지..”

“마자! 상황에 따라 달랐지!”

“읭? 그건 또 무슨 소리래?”

“진짜 몰라서 그럼?”

“먼데??”






[한국에서... 어느 날..]


낮에 공사중인 도로를 지나게 됐다.


“아니.. 먼 공사를.. 사람들 이렇게 다 바쁜 시간에.. 이런 건 쫌 밤에 해야하는거 아냐?? 답답하다.. 진짜!”



밤에 공사중인 도로를 지나게 된 어느 날,


“아놔.. 지금 장난하나.. 낮엔 빈둥빈둥 머하고.. 오밤중에 이 난리야.. 하아... 참.. 증말!!”






“기억나?”

“어.... 어..”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니었구나.. 그냥 나만 생각하는 것이었던 거시엇구나...


(나란 놈,, 언제쯤 철들고 사람될까나... )

(불철주야 고생하시는 도로공사 관계자분들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알려죠서 고마와 나탈리..”

“내가 얼마나 오빠를 생각하는지 알게찌?!”

“그럼 알지알지..”



(나 근데,, 왜 혼나는거 같냐....!?)







[01:20 pm]


64번 도로로 갈아타기 직전의 마지막 마을인 캐머런(Cameron)이라는 곳에 닿았다.


64번 도로는 그랜드 캐년으로 직행하는 도로라 주유소가 없을 경우를 대비해 기름을 미리 채워야 했다.


캐머런의 한 주유소!


계산대로 들어가려는데 창문에 붙어있는 [CLOSED]


그렇다고 그냥 갈 수는 없다. 하는 수 없이 카드 복제기가 설치되있는지 구석구석 기계를 확인하고서야 카드를 넣고 주유를 마쳤다.






“읭??? 오빠! 왜 1불만 긁혔지?”


1불만 결제되었다는 결제 금액과 내역이 나탈리 핸드폰 문자로 온 것이다.


(여행자카드 명의가 나탈리다.. 여행자카드에는 그때그때 쓸 만큼의 돈만 이체하면 되니, 혹시 털리더라도 큰 손해를 줄일 수 있다)


“먼일인진 모르겠지만, 158불 주유하고 1불 긁혔으면 돈 번거 아니야?ㅋㅋㅋㅋ 먼 걱정이래ㅋㅋㅋㅋ”

“이상하자나.....”

“걱정을 사서 한다는 말은 이럴 때 하는 말이구만.. 신경쓰지마러! 어떠케 되것지!! 그치 구름아? 옴마는 참 걱정도 팔자다잉~”








[01:50 pm]


[Welcome to Grand Canyon]






사우스림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도착했다.


개인적으론 사우스림을 와본 적이 있어, 안가본 웨스트림을 가보고 싶었지만, 동선이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사우스림으로 와야했다.


“원래 웨스트림으로 가려고 했는데, 당신이랑 구름이는 그랜드 캐년이 처음이라 일부러 여기로 잡은거야! 여기가 볼게 많거든!”

“고마워. 오빠!! ‘고맙습니다 아빠’ 해야지 구름아!”


막 던진건데, 얻어 걸렸다!!


(ㅋㅋㅋㅋㅋ킄킄크ㅋㅋㅋ크ㅋㅋㅋ)



메인이 있는 캠프까지 들어가는 길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하늘과의 거리는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느껴졌고, 비가 내렸다 해가 떴다 분초를 다투며 바뀌는 이곳 날씨를 가늠할 수 없었지만, 그게 무어라도 다 좋았다. 이런 곳이라면 3시간을 운전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았고, 이 순간을 즐기고 싶어 차를 더 천천히 몰았다.


<데저트 뷰 포인트> 라는 표지판이 나타나자 나탈리는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말했다.

“오빠! 우리 저기 들러서 구경하고 가자!”

“좋아!!”


해발 2,500미터가 넘는 고지대지만, 차로 이동한 덕분인지 숨이 차거나 힘들지는 않다.


주차장에서 뷰포인트까지의 거리는 불과 2~300미터 남짓. 길을 따라 걷자, 가까워지는 눈앞의 풍경은 하늘이 뚫려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우와!!!!!!!!”


나탈리의 깊은 탄성..








자이언 캐년이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거대함이라면, 홀스슈밴드와 그랜드 캐년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웅장함이다.


이곳에서 산다면, 지금 느끼는 감흥을 매번 느낄 수 있을까? 아마 그럴 순 없겠지!?


이 시간이 소중한 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아니 다시 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금'을 더 소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대자연은 어둡고 코딱지만한 내 마음 한켠에 들어와 한줄기 빛이 되어 말했다.


'지금'을 값지게 살라고...



도시녀자는 이 자연을 보며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먼가 깊은 생각을 하는 듯한 나탈리의 뒷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랜드 캐년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장소가 아닌 것이다. 온몸으로 느끼고, 마음에 새기는 곳이었다.


그 순간, 옴마 발 옆에서 한판 뽑으시는 갬동 파괴자..


“오빠!!”


날 부르는 나탈리!


“왜??”


구름이 x 을 가르키는 나탈리의 손가락..


(저요?? 왜 가까운 니가 안치우고요??)



“오빠!! 호주머니!!”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먼가 잡힌다.


Aㅏ ..........

똥봉투가 내 호주머니에 이꾸나....


(아까 점심때 넣어둔 그 똥봉투..... 나탈리의 머리는 어디까지 계산되어 있을까....?? 대단한 나탈리다...)



워치타워를 구경하기 위해 걸음을 옮긴 우리. 워치타워는 우리나라의 경주에 있는 첨성대와 비슷한 모습이었고, 원형의 외관이 고풍스러웠다.


안을 둘러보고는 2층으로 올라가려는데, 유료라는 말에 돌아서려는 찰나 계단 옆 코너 테이블에 마련된 기념 스탬프를 발견했다.


나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구름이 여권을 꺼내, 마치 입국 심사관처럼 도장을 찍으며 구름이에게 말했다.


“Have a nice trip!!”










{5일 전}


- LAX International Airport



“Have a nice trip!!”


Thank you, sir



입국 심사관의 말과 함께 내 여권에 도장이 찍혔다.


(나도 모르게 sir! 거수경례까지 할뻔....)



‘야호~~!!! 드디어 이제 나간다~~~~~~’






{5일 + 1시간 전}


WELCOME TO THE USA


- 입국심사대


컴퓨터 화면을 보며 자판을 두들기던 심사관은 뒤에 서있던 안전요원과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그에게 여권을 넘기며 나에게 말했다.


“Follow him!!”



- LAX International Airport 보안구역









사고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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