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에서도 엄마추억이
봉숭아 (송선화) 손톱에 물들이다.
아침을 알리는 새들의 합창과 햇빛이 창을 두드린다.
감사하다. 오늘 아침도.
침대에서 일어나면 창문을 열고 곧장 베란다 정원으로 간다. 나 좀 봐주세요. 식물들이 내게 인사를(눈짓을) 건넨다. 나는 눈짓으로 각각의 이름을 부른다. 수국, 채송화. 봉숭아(봉선화). 송엽국(松葉菊), 제라늄 같은 꽃나무들의 향기 나는 이름과 다육이, 천리향, 목마가렛, 분꽃, 홍콩 야자나무, 테이블야자, 인도고무나무 같은 푸르른 이름을 부르면 어제와 다름없이 싱싱해진다. 내게 이들은 단순한 식물이 아니다. 글이고, 벗이며 행복한 일상이다. 외출에서 돌아올 때도 베란다 정원으로 먼저 간다. 정원은 언제나 햇살로 반짝인다. 식물들은 한낮의 햇살을 듬뿍 모았다가 외출에서 돌아온 내게 후~하고, 향을 불어준다. 따스하고 포근하다.
5월의 끝자락이라 송엽국(松葉菊)이 만발한다. 어찌나 귀엽게 깔깔거리는지 내 발목을 붙잡는다. 덩달아 활짝 핀 제라늄꽃, 오늘따라 유독 향을 진하게 내 코끝을 자극한다. 내 눈길이 송엽국(松葉菊)에 시선을 가는 거 눈치라도 채듯이 질투를 하는듯하다. 제라늄꽃은 집들이 선물로도 인기다. 행복, 건강, 우정, 기쁨, 긍정적인 상징을 뜻하는 꽃이란다. 그러고 보니 제라늄 모두를 보살피고 있었던 것일까? 오늘따라 정원이 든든하다.
수국은 또 어떤가. 수국의 색은 변화무쌍하다. 처음엔 핑크였는데 연보라였다가, 점차 푸른색으로 변한다. 카멜레온처럼 색을 바꾸다니 볼수록 신비롭다. 안아보고 싶을 만큼 탐스럽기도 하다. 한 가지만, 고집하는 하얀 수국도 있다. 작은 베란다에서도 올망졸망 각각의 개성을 뽐내고 있다니 이 시간만큼은 행복에 젖어 가슴이 부푼다. 내 눈길을 달라고 칭얼대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그깟 내 눈길만으로도 이토록 커다란 웃음과 행복을 준다니 감사하다. 마치 씨앗 한 알이 풍성해지는 것처럼.
여름이 오면 손톱에 물을 들이겠다고 봉숭아(봉선화)에 일러둔다. 엄마가 기억나느냐고, 엄마 손톱과 내 손톱이 똑같이 생긴 것을 알고 있냐고 물어본다. 아마도 봉숭아는 알고 있을 것이다. 꽃잎을 백반하고 섞어 절구에 으깨어 손톱에 붙이고 실로 꽁꽁 묶으면 손톱이 붉게 물든다. 서투른 나 때문에 엄마 손톱은 얼룩덜룩했지만, 내 손톱은 알뜰히 물들어 첫눈이 올 때까지 봉숭아(송선화)가 남아 있길 바랐다. 어린 나에게도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낭설을 믿었다.
베란다 정원에 엄마를 그리며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있다. 베란다의 하늘은 비스듬하다. 저녁이 뉘엿뉘엿 창살아래 미끄러져 들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