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 ‘휘도’ 보정하기 #2
[출퇴근 시간 버스 luminance +2]
하루에 수백 명이 타고 내리는 공간. 모든 탑승객이 앞을 보고 있고 같은 방향을 향해 가는 듯하지만 각자 목적지에 따라 자유롭게 타고 내리는 곳. 지구상 어느 공간보다도 우연한 만남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 버스일 거다. 창밖을 보고 갈 수 있어서 전철보다 숨통이 좀 트인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로가 막히면 꼼짝없이 갇혀버려 불안하다는 사람도 있다.
버스를 좋아하는 사람도 "그 말 당장 취소!"라고 외치며 말을 번복하고 싶게 하는 시간대가 있다. 바로 출퇴근 시간대 버스다. 만원 버스에 몸을 실어본 적이 있는가? 앞문으로 탈 수 조차 없어 뒷문으로 재빨리 달려가야 한다. 타기 전에 한숨을 한번 푹 쉬어 몸의 부피를 최대한 줄인 다음 몸을 겨우 집어넣기도 하고, 이미 뚱뚱해져 터져 버릴 것만 같은 버스가 왔을 땐 그냥 포기하고 다음 버스를 기다리기도 한다. 버스에 몸을 실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더라도 또 다음 문제가 날 기다리고 있다. 잡을 손잡이가 없는 것이다. 그럴 땐 마치 인간 샌드위치처럼 중간에 끼인 채 '중심 잡기 게임'을 시작한다. 중심을 잘 못 잡았다가는 맨 앞 버스 기사님 자리까지 굴러갈 수 있기 때문에 이건 생존이 걸린 문제다. 아침마다 이 전쟁을 치르고 나면 '이렇게 사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대학교 3학년, 왕복 4시간 거리를 버스로 통학했다.주변에서 시간을 땅에 갖다 버린다는 잔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난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심지어 과외가 있는 날엔 왕복 2시간 버스를 또 타야 했기에 하루에 총 6시간을 버스 안에서 보낸 셈이다. 노트북이 든 무거운 가방을 앞으로 메고 꾸벅꾸벅 졸면서 등교했고, 귀갓길에는 눈을 감았다 뜨면 집에 도착하는 상상을 몇 번이고 했다.
버스에서 보낸 수백 시간의 시간은 대부분 스치듯 지나가 기억나지도 않지만, ‘휘도’를 보정하듯 마음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나는 순간이 가끔 있다. 팍팍한 출퇴근 버스에서 지친 마음에 온기가 깃들게 한 순간이다.
여느 때와 같이 가방을 앞으로 메고 서서 무기력하게 창밖으로 보고 있었던 날이었다. 유독 그 날 가방이 무거워 아마 얼굴에 짜증이 가득한 모습이었을 거다. 그때 갑자기 내 가방이 누군가에 의해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주무시다가 깨셨는지 비몽사몽하게 눈을 뜨신 아주머니께서 내 가방을 가져가 마치 쿠션처럼 껴안으시더니 다시 주무시는게 아닌가. "학생 가방 무겁지? 들어줄게." 하는 말도, 들어주겠다는 가벼운 눈짓 조차도 없었다. 이렇게 쿨하고 시크한 선행은 처음이었다. 혹시 아주머니께서 날 지인이라고 착각한 것은 아닐까라는 조금 웃긴 걱정이 들 정도였다.
버스에서 내릴 때가 되어 가방을 돌려받아야 하는데 계속 졸고 계셔서 "가방 들고 갈게요. 감사합니다"라고 속삭이듯 인사한 뒤 조심스레 아주머니의 품에서 가방을 빼냈다. 다른 사람이 보면 내가 아주머니의 가방을 몰래 들고 간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지루하기 그지없는 버스 안 일상이었지만, 이렇게 피식 웃음이 나올 만한 순간들이 가끔 틈틈이 끼어들곤 한다.
어느 날은 학교가 끝나고 출사를 가기로 맘먹은지라 가방에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평소처럼 창밖 풍경을 멍하니 구경하며 가는데, 문득 버스의 열린 창문과 빨간 버튼이 새롭게 다가왔다. 누군가 내린다는 소식을 반갑게 전하는 듯한 반짝이는 'STOP' 버튼과 봄을 맞이한 연녹색 나무들이 혼자 보기 아쉬울 정도로 눈부시게 빛났다. 매일 그냥 지나치는 평범한 버스 창문 프레임이지만, 창밖은 매번 다른 풍경을 담은 눈부신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놓칠 뻔했고 미처 몰랐던 아름다움이었다. 버스 안 그 순간이 빛을 받았을 때, 창문 사이로 기분 좋은 봄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평범한 일상들의 ‘휘도’를 보정하는 일은 우리에게 때론 코미디같은, 때론 동화같은 순간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