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따뜻함’ 보정하기 #3
[피부가 안 좋은 warmth +3]
피부가 안 좋은 나는 매번 거울을 볼 때마다 우울하다. 사람들은 뾰루지 하나만 얼굴에 나도 하루 종일 거울을 들여다보지만 나는 그 조차도 부럽게 느껴진다. 뾰루지 하나는 무슨 사춘기 때부터 줄곧 트러블 피부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피부가 깨끗한 사람을 단정한 이미지로 보기에 내 피부는 늘 감추고 싶은 나의 치명적 단점이었다. 사람들과 흔히 얼굴을 마주하며 "안녕"하고 인사하지만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난 내 피부로 향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고스란히 느끼며 홀로 안녕하지 못했다.
어느 날은 이런 적이 있다. 코로나가 한참 유행이었을 때 마스크를 쓰고 친구와 카페에서 대화 중이었다. 친구가 카페만 간다고 해서 화장을 안 하고 갔었는데 친구가 갑자기 밥을 먹자고 하는 것이다. 밥을 먹으려면 마스크를 벗고 오랫동안 친구가 내 얼굴을 봐야 할 텐데 그때 하필 내 피부는 정말 엉망이었다. 나는 그래서 급하게 친구에게 화장실을 간다고 거짓말한 다음 가까운 화장품 가게에 가서 작은 컨실러를 하나 사서 화장실에서 트러블들을 서둘러 가렸다. 정말 친한 친구였는데도 그랬다.
20대 초반 한창 꾸미고 예뻐 보이고 싶을 때 피부가 안 좋다는 건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더라도 스스로에게 상처다. 단순히 피부 괜찮냐고 걱정해 주는 말이라도 하루 종일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진짜 내 피부가 별로구나' 생각이 들어서. 피부과에 백만 원 넘게 써본 건 기본이고, 유명한 피부 관련 유튜버의 영상을 모두 정주행 했으며, 좋다는 스킨케어와 약들은 대부분 써 봤다. 그렇게 유난스럽게 정성을 다하면 피부는 정말 잠깐 좋아져 내게 희망을 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비웃듯이 다시 트러블 피부로 변한다. '너 피부는 원래 이럴 수밖에 없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영국 여행을 갔을 때 피부도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여행에서 예쁘게 다니고 싶은 마음에 여행 전 팩도 하고 피부 관리에 유난을 떨었지만 귀신같이 여행 첫날에 올라오는 트러블에 그냥 헛웃음이 나왔다. 지긋지긋했다는 표현이 맞을 거 같다.
런던에서는 에어비앤비를 구해 호스트와 함께 지냈는데 문밖을 나갈 때마다 거실에서 호스트분을 마주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내성적인 성격과 영어 공포증으로 주인분과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나갈 때마다 가족분들을 마주했고 매일 10분 스피킹 시험을 보는 기분이었다. 초면인 분들이기에 화장을 안 한 얼굴로 마주하는 것도 무척 신경이 쓰이더라. '한국 애들은 원래 저렇게 피부가 안 좋나?' '얼굴을 잘 안 씻나?'라고 생각하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또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얼굴을 늘 손으로 가리며 대화했고 그렇게 일주일을 그 숙소에 머물렀다.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 호스트 분과 대문에서 인사를 나눴다. 형식적인 인사말이 오가던 중, 호스트 분이 뜻밖의 말을 건넸다. "너희들 미소가 너무 맘에 들어." 우리의 미소가 예쁘다고 전한 것이다. 그동안 내가 했던 온갖 걱정과는 달리, 호스트 분의 눈에는 수줍게나마 웃었던 우리의 얼굴만이 보였던 모양이다. 웃는 얼굴만큼 가치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나는 피부에 가려 잊고 살았던 것이다.
따뜻한 미소는 보는 이와 감정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다리를 놓아준다. '피부의 깨끗함'과 '외모의 아름다움'과 같은 것들은 그저 흘러가는 강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