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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웜스 Oct 23. 2024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

내 인생 ‘따뜻함’ 보정하기 #2


[말귀를 못 알아듣는 warmth +2]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사람을 흔히 '사오정'이라고 부르곤 한다. ‘날아라 슈퍼보드’를 보지 않아서 왜 사오정이라고 부르는지 의문이었는데, 머릿살의 주름에 귀가 파묻혀 있어서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단다. 사진을 보니 그리 귀엽게 생긴 캐릭터는 확실히 아닌 듯하다. 사오정과 관련된 일화가 하나 있는데 친구들과 술집에서 약속이 있었던 날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즐겁게 대화하는데 그날따라 내가 유난히 동문서답을 했다. 친구들이 답답해하자 난 그냥 인정하자 싶어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 내가 사실 약간 저팔계이긴 해.”

그러곤 살짝 웃으며 당당하게 화장실을 갔는데 친구 둘이서

"응? 근데 사오정아님?"라고 해 너무 민망했다.


맞다. 나는 사오정이다. 사람들이 웅얼거리며 하는 얘기는 거의 잘 못 알아듣는다. 언어적 메시지에만 의존해야 하는 전화 대화에서는 거의 3번 이상은 "어? 뭐라고 했어?"라고 되묻게 된다. 오늘따라 더 못 알아듣는다며 친구들에게 매번 욕먹기 십상이고 상대방이 짜증 낼 것 같을 땐 알아들은 척 슬쩍 넘어가는 일도 다반사다. 이런 내 안의 사오정은 늘 날 묘하게 불편하게 하지만, 사오정의 뜻밖의 매력을 발견한 이후로 나는 내 안의 사오정에게 조금 더 다정하게 대해주기로 맘먹었다.


 초등학생 남형제 두 명을 과외했을 시절 이야기다. 과외 초반이라 아이들과 조금 어색했고 많이 친해지지 못한 상태였다. 어느 날 형제 중 동생인 민우가 아직 어려 책을 나에게 읽어달라고 했다. 그때 난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있어서 무슨 책인지 큰소리로 물어봤다.


나: 책 읽어달라고? 무슨 책인데?

민우: 소피가 xxx 오나 둥 완둥 **^^*}~*책이요

나: 뭐? 소피가 완둥완둥 똥을 싼다고?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이라는 책이었다. 아이들은 숨이 넘어갈 정도로 깔깔댔다. 거의 10분 넘게 둘이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웃더라. 이때까지 그렇게 낯을 가리다가 '완둥완둥' 한방에 그렇게 웃다니. '완둥완둥'이라는 생전 처음 보는 표현도 웃긴데 '똥'이라는 초등학생 맞춤 웃음 유발제까지 들어갔으니... 아이들이 어머니께 나를 '정말 웃긴 선생님'이라고 칭찬해줬다고 한다.



그 이후로 아이들은 나를 '완둥완둥 선생님'이라고 불렀고 근 2년간 함께하며 남동생과 누나 사이처럼 서로 티격 대기도 했지만 가끔 보고 싶은 제자들이 되었다. 솔직히 업무를 할 때의 사오정은 골칫덩어리 그 자체다. 말을 잘 못 알아들어서 괜히 내 능력을 의심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혼자 착각하지 않게 늘 한번 더 여쭤봐야 하기에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내가 사랑받을 때는 뜻밖에도 아이들과 함께 할 때다. 사오정 동지 여러분, 들리는 그대로 억양을 약간 웃기게 해서 뱉어보시라. 아이들은 생각보다 더더 좋아할 것이다.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의 특성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다시 찬찬히, 따스하게 살펴보는 건 어떨까. 생각 외의 곳에서 그 성격을 따스하게 봐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사오정이 뜻밖에 아이들을 웃기는 재능이 있는 것처럼! 


창신동 골목, 오후 6시




 요즘 평범한 동네의 골목을 찍는 것에 푹 빠져 있다. 가장 좋아하는 시간대는 오후 6시 즈음, 아이들이 학원에서 돌아오고 회사원들이 퇴근하는 시간이다. 아이들 손에는 00 피아노 학원이라고 적힌 가방이나 때 묻은 신발주머니가 들려있고, 회사원들의 손에는 닭강정 박스나 편의점 캔맥주가 들려있다. 그 시간의 하늘은 가장 여유로운 색깔로 물들고 사람들의 마음 역시 노곤노곤 푹신해져 있다. 골목길을 거닐다 보면 주로 부모님의 손을 잡고 놀이터에서 집으로 가는 여섯살, 일곱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엄마와 손을 꼭 잡고 오늘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절로 마음이 몽글해진다.  


어쩌면, 우리 어른들 모두 아이들에게는 '사오정'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의도를 가지고 열띠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토해내는데 정작 우리 귀에는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어른들은 아이들의 언어에 점차 익숙해지고, 아이들 역시 어른들의 언어를 따라 하며 서로가 무엇을 전하고 싶었는지 점점 깨닫는다. 아이들의 말 속에는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더 큰 사랑이 담겨 있었고, 어른의 말은 그 사랑을 세심하고 구체적인 모양으로 만들어가는 능력이 있음을 함께 느끼면서 말이다. 결국 '사오정'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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