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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형훈 Aug 11. 2023

사람은, 생각보다 다를지도···

   눈을 뜨니 당연한 듯이 환한 하늘이 보였다. 추운 지방을 지나고 있는지 하늘이 평소보다 높고, 옅은 구름 무리가 높게 떠 있다가 천장의 저편으로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뒤척이다 잠이 든 것에 비해 몸은 가뿐하다. 내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내 몸은 햇볕과 만나 광합성을 지속했나 보다. 충분히 생산된 비타민D를 비롯한 것들이 나를 건강하게 해 주고 있는 게 확실하다. 사실, 어제 잠이 들기 전에 한 가지 의심을 했었다. 내가 꿈나라에 가 있는 동안 몰래 밤이 찾아온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열차에 모두가 나를 속이는 게 아닐까. 내가 번거롭게 안대를 쓰고 잠을 잘 때를 기다리다가 자신들은 -쿡쿡 웃으며 깜깜해진 밤 속에서 잠을 청하거나 어디 창고에 숨겨둔 무드 등을 꺼내어 야밤의 독서를, 또는 영화 같은 것들을 즐긴 것은 아닌지. 뭐, 그런 의심을 했지만 그럴 리가 없다. 열차의 사람들이 나 하나를 속이기 위해 노력할 만큼 나는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10시간 정도를 푹 잤으니 개운할 수밖에 없었다. 비타민D가 어쩌니저쩌니 했지만 역시 뭐든 간에 양이 많은 것이 최고였다. 그래도 이처럼 푹 잠을 잔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평소에는 잠을 얼마나 잤는지 체크하지도 않는다. 졸리면 자고, 눈 뜨면 일했다. 배고프면 레토르트 식품이나 식빵을 씹었다. 얼마나 무얼 했는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카림은 맞은편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다. 휴대전화는 바닥에 떨어져 있고, 이어폰은 그의 귀에 꽂혀 있다. 그래도 잠을 자는 자세는 반듯하여, 그의 눈을 덮고 있는 안대와 조화(調和, harmony)를 이루고 있고, 무슨 조화인가 하니, 죽음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천장이 뚫려 있는 영안실에서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죽어 있는 사람 같았다. 죽은 사람을 보면 이런 기분일까. 나도 세월이 흐르면 저렇게 누워 있을까. 어머니는 내가 어린 시절, 내 속에서 저것과 비슷한 것을 목격한 것일까. 카림이 정말 급성 심부전 같은 것으로 죽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어 가까이 다가갔다. 다행히, 그의 들숨과 날숨에 의해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나 아직 살아 있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쌀쌀맞은 사람은 무슨 꿈을 꾸는지 상상하며 세안을 하러 욕실에 들어갔다.


   야오린 씨가 말한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들어 보기 위해 나설 채비를 하고 있으니 옆방이 다시 시끄러워진다. 얼른 나가야겠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문 옆에 있는 작은 선반에 수건이 채워져 있었다. 분명 어제 두어 개를 사용했었다. 매일 직원이 세탁한 수건을 채워 놓고 가는 것인가. 선반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와중에 선반 너머의 방에서 사람 한 명이 나왔다. 어디선가 봤다고 생각해 보니 어제 점심쯤에 푸드코트에서, 그 금발 까까머리 남자의 식당에서 밥을 먹던 남자 중, 덩치가 있던 쪽의 사람이다. 그 사람들이 내 옆방을 사용하는 사람들이구나. 그리고 내 수면을 방해한 'H6-4'호실의 녀석 중 하나구나!

   내가 방문 앞에서 엉거주춤 서 있자 그 남자는 눈웃음을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아, 3호실에서 지내시는 분이십니까? 저는 4호실 사용하는 ‘나카무라(中村)’라고 합니다.”

   자신을 나카무라라고 소개한 사내는 덩치가 상당했다. 그와 어울리지 않은 뽀얗고 하얀 피부는 건강하고 매끈함을 자랑했다. 머리는 짙은 검고, 짧게 잘 정돈되어 있다. 눈과 그 주변이 매우 선명하여 그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니 대자연의 기백(氣魄) 같은 게 내 몸을 압도시킨다. 다만, 코는 조금 낮았다. 원래는 높았는데 거친 운동을 하고 있어서 다쳤는지도 모른다. 레슬링이나 유도 같은 실내 스포츠를 하는 선수인가.

   나카무라 씨는 내 이름을 듣고 반갑다고 말하더니 멋쩍은 표정을 하며 말했다.

   “어제는 저희 방이 좀 소란스러웠죠? 죄송합니다. 고집불통인 녀석이 하나 있어서요.”

   ‘좀’이 아니라 많이 소란스러웠다. 그리고 그 고집불통인 녀석은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아닌가! 그래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일을 복잡하지 않게 한다. 그래서 사회에서 배운 마법의 단어를 뱉었다.

   그는 내 대답에 싱긋 웃었다. 웃음은 상당히 자연스러워서 덩치 큰 인상에 잘 어울렸다. 먹음직스러운 대왕 연어를 잡아서 기뻐하는 불곰 같았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다행이군요. 식사하러 가시려는 참이셨나 봐요? 저도 일행이 밥을 안 먹겠다고 해서 혼자 해결하려고 했는데, 제가 같이해도 될까요? 이곳은 너무 적적해서 혼자 먹기 꺼려지거든요.”

   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식사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남의 제안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에 더하여, 그의 마지막 목소리에서 혼자 밥을 먹는 게 적적하다는 진심이 묻어 나와 그러자고 했다. 그나저나 이렇게 붙임성 있는 사람이 왜 광합성 열차에 있는 것일까? 겉보기와는 다르게 속은 아주 여리고, 많은 상처를 입은 것일까.

   그는 괜찮다면 푸드코트의 식당에서 식사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열차에 탑승하고 나서부터 자주 이용하는 식당이 있단다. 분명 금발 까까머리 주방장이 운영하는 식당일 것이다. 나도 푸드코트의 음식이 궁금하기도 했고, 왠지 이 덩치의 사내가 맛있다고 말하는 요리는 정말로 맛있을 것 같다는 직감도 있어서 ‘괜찮다’고 말했다. 우리는 푸드코트를 향해 나란히 걸었다. 그가 말하길, 그 요리사는 광합성 열차에서 썩히기에는 아까운 요리 실력의 소유자란다. 세상의 많은 사람이 그의 요리를 접하지 못한다는 게 불행하다고 여겨진다고 말하며 그곳에 대한 칭찬을 식당에 도착할 때까지 쉴 새 없이 말했다. 나도 모르게 이름도 모르는 마른 쪽의 사내에게 동정심을 갖게 된다.

   ‘라이언 스테이크 하우스’라고 적혀있는 식당은 요리하는 공간 바로 앞에 기다란 바(bar) 형태로 식사를 하는 테이블이 있다. 이 바에서 식사해도 되고, 뒤에 있는 넓은 테이블에 음식을 가져가 먹어도 된다. 나카무라 씨는 불이 타오르는 것을 보면서 먹어야 맛있다고 하여 우리는 요리사 바로 앞에 앉았다.

   “라이언 씨, 안녕하세요!”

   나카무라 씨는 요리사에게 에너지를 가득 담아서 인사했다. 금발 까까머리 요리사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 너머로 우릴 바라보며 대답했다.

   “또 왔구먼. 가끔은 광합성 식당 음식을 이용해줘야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다고 몇 번이나 말했건만···. 와타나베는 같이 안 왔는가?”

   나카무라 씨는 한숨을 쉬며 말한다.

   “그 녀석은 됐어요. 오늘은 저랑 밥 먹기 싫다는군요. 하루 정도는 혼자 있게 내버려 두래요.”

   요리사는 하루 이틀 경험한 게 아니라는 듯 가볍게 웃었다.

   “허허. 또 싸웠구먼. 원래, 친구라는 게 티격태격하며 정이 드는 거지.”

   “그 녀석은 ···.”

   나카무라 씨는 말을 하다 말았다.

   “오늘은 옆방에 지내는 분과 같이 왔어요. 라이언 씨 대신에 영업하고 왔으니 서비스 좀 해 주세요.”

   “자네한테 영업 같은 귀찮은 일을 부탁한 기억은 없네.”

   요리사와 나카무라 씨는 꽤 사이가 좋아 보였다. 둘이 즐겁게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입 다물고 눈동자만 왔다 갔다 굴리고 있는 나를 눈치챈 요리사는 손은 잠깐 멈추고 내게 말을 건넸다.

   “새로운 손님한테 실례했소. 저는 이곳 주방장 ‘라이언(Ryan)'이라고 하오.”

   그는 오른손을 행주에 닦고 내게 악수를 청했다. 라이언 씨는 늠름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까까머리의 금색 빛이 그가 얼마나 귀한 사람인지 대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사실을 애써 숨기는 듯한 모습이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한 소개를 하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방금까지 불을 만졌던 그의 손은 묘하게 차가웠고, 표면은 상당히 거칠거칠하여 요리에 대한 내공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가 힘을 실어 내 오른손을 흔들자 가슴속에서 안정감이 느껴졌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나카무라 씨는 찹스테이크(Chop steak) 두 개를 주문했다. 내 의사는 묻지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내가 그를 바라보자 오른손의 엄지를 치켜세우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여긴 찹스테이크가 끝내줍니다!”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다. 안 그래도 뭐가 맛있는지 물어보려고 하긴 했지만 말이다. 내게 음식을 ‘강요’하는 것이다. ‘여긴 이게 맛있어. 내가 맛있었으니깐 너도 맛있다고 할 게 분명해. 그러니깐 잠자코 찹스테이크를 먹어.’라고 긴말할 것 없이, 이기적인 결정 하나로 내 의사는 묵살됐다. 불쾌했지만 그냥 넘어갔다.

   라이언 씨는 우리보다 앞서 주문한 사람의 요리를 끝내고, 우리 것을 시작하려고 한다.

   “참 신기한 곳이죠?”

   나카무라 씨가 운을 떼며 슬금슬금 다가오는 적막함을 물리쳤다.

   “이곳에 온 지 벌써 일주일이 되었는데도 적응이 되지 않아요. 같은 지구가 맞나 싶습니다. 빠르게 달리는 열차에 올라탔을 뿐인데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요?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표시를 했다. 여기서 ‘선생님’은 나를 말하는 것이다. 나카무라 씨는 잘 모르는 상대방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부류’인가 보다.

   “선생님도 여기에 탔다는 것은, 우울증 때문에 고생하고 있으신가 보군요. 약은 뭘 드세요? 보통 SSRI(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s)나 SNRI(세로토닌-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억제제, Serotonin-Norepinephrine Reuptake Inhibitors)계열의 제품을 드실 텐데요. 푸로작(Prozac)? 졸로푸트(Zoloft)? 렉사프로(Lexapro)? 혹시, 렉사프로를 복용하고 계신다면, 아주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다른 항우울제에 비해 부작용도 적고, 가격도 저렴한 편인 거든요.”

   나는 약을 먹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의사가 계절성 우울증처럼 일시적인 증상일지도 모르니 약물치료는 경과를 보면서 시작하자고 했다고 덧붙여 말했다.

   나는 나카무라 씨가 어찌 이렇게 약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되물었다. 보기와는 다르게 중증우울증으로 오랫동안 약을 먹어 온 것일까?

   말을 뱉어 놓고 보니 실례되는 질문을 했다는 사실에, 기분을 언짢게 만들 의도는 아니었다고 사과했다. 나는 약을 먹고 있지 않아서, 매일 형형색색의 알갱이들을 입에 털어 넣어야 하는 그들의 기분을 고려하지 못했다. 알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알게 돼 버린 것일 텐데···.

   “하하하! 아닙니다. 사과하지 않으셔도 돼요.”

   다행히도, 그의 반응은 좋았다.

   “저와 그 녀석···, 아, 제 룸메이트 와타나베(渡辺)는 덴마크에 위치한 다국적 제약회사의 영업사원입니다. 자세히 말하자면, 저는 ‘사원’이고, 와타나베는 ‘대리’죠.”

   그는 말을 계속하면서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명함 하나를 내게 건네주었다.

   ‘○○제약, 남유럽 지부 영업부 사원, Nakamura(中村)'

   그리고 그의 연락처와 함께 군청색의 블레이저에, 푸른색 와이셔츠, 검은색 바탕에다가 와인색 줄무늬가 그어진 정장 차림의 나카무라 씨의 멋진 현대인의 모습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는 실내 스포츠 선수가 아니었다.

   “의외라고 생각하시죠? 다들 그렇게 말해요. 실내 스포츠 선수처럼 보인다고 말이죠.”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계속 한다.

   “렉사프로는 우리 회사의 대표상품이에요. 저 항우울제 덕분에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회사 직원들과 그의 가족들이 밥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죠. 저희는 남북유럽의 병원을 돌면서 저희 제품을 한번 써 보라고 판촉 활동을 하죠. 프로작을 쓰는 병원이 있으면, 의사에게 프로작을 부작용과 비경제적인 요소를 마구 설명하는 겁니다. 사실, 모든 정신과 약이 많은 부작용은 있고, 렉사프로도 마찬가지예요.”

   -치이익 거리는 소리가 강하게 들렸다. 네모난 소고기 조각이 달궈진 프라이팬을 만나서 나는 소리다. 곧이어, 담백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저는 사실, 영업실적이 그렇게 좋진 못합니다. 그것도 그런 게, 의사에게 렉사프로가 좋다고 말하면서, 의사가 ‘우리가 굳이 렉사프로로 바꿔야 하는 이유가 뭔가요?’라고 물으면, ‘요즘 약들이 다 비슷비슷하니 이번에는 우리 회사 제품을 사용해 주면 안 될까요?’라고 대답해 버리니 당연한 결과이기는 합니다. 조금 저렴한 정도밖에 큰 차이점이 없거든요.”

   내가 의사라도 굳이 바꾸고 싶지는 않았을 것 같다.

   “다만, 이게 사실이에요. 요즘 약은 웬만하면 효과가 좋고, 부작용도 점차 줄어들고 있어요. 사람에 따라 효과와 부작용의 차이만 있을 뿐이에요. 영업하려면 어느 정도 거짓말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아니, 거짓말은 아니에요. 렉사프로가 확실히 타사의 제품에 비해 저렴하고, 부작용이 조금 더 적다는 실험 결과도 있으니까요.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여기까지 왔죠? 아. 그래요. 제가 이렇게 거짓말이나 ‘과장’ 같은 것을 잘하지 못하거든요. 시도는 해 봤지만, 과장하고 있는 제 모습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얼굴은 웃음과 부끄러움을 섞어 놓은 표정이 되고, 말도 조리 있게 하지 못하게 되며, 이상한 죄책감이 들기 시작해서 영업이 엉망이 되더군요. 실적은 당연히 고공낙하를 하죠.”

   나카무라 씨는 바에 올려놓은 왼손의 날을 세워 테이블 끄트머리에 위치시켜 밑으로 떨어트린다.

   “그래서 원래 하던 영업방식(솔직하게 말하는)을 고수하면서, 조금이라도 비용을 아끼고 싶어 하는 특히, 개인병원의 의사들을 찾아가 렉사프로를 판매하죠. 유럽에는 의사들이 많아서 환자를 많이 유입시키는 방법보다는, 내부의 비용을 줄이는 방법으로 경영을 유지하는 추세거든요. 아니면 의사나 병원의 경영부서에서, 현재 병원에서 사용하고 있던 제품에 대한 서비스 불만이 생기면, 다른 회사 제품을 사용하겠다는 모션을 취하는데, 그 시기를 잘 노려서 렉사프로를 판매하죠. 근데, 이러한 방법들도 요즘은 잘 통하지 않아요. ‘그 시기’가 오지 않도록 경쟁사 직원들도 열심이거든요. 어떤 방법도 영업사원으로서의 개인적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죠.”

   그는 잠시나마 시무룩해졌다.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 녀석, 와타나베는 달라요.”

   나카무라 씨의 얼굴은 상당히 진지했다. 눈은 어느새 푸른 하늘이 예쁘게 담겨 있는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와타나베는 저와 입사 동기임에도 불구하고, 저와는 확연히 다른 말솜씨로 고지식한 의사들을 설득시켜 왔어요. 그는 마치, 영업 10년 차의 베테랑 직원 같았어요. 언젠가 그에게 물어본 적이 있어요. 혹시, 이전 직장이 이런 영업이었냐고 말이죠. 그의 대답은 역시나 ‘NO’. 여기가 첫 직장이라더군요. 와타나베는 렉사프로를 여기저기 판매시켰고, 결국, 선배들을 넘어서 올해 최고의 판매실적을 기록했어요. 입사 3년 차인데, 놀랍지 않나요? 그리고 다른 동기들을 제치고 몇 개월 전에 대리로 승진까지 했죠. 정말 대단한 녀석이에요. 그 녀석한테는 배울 점이 많습니다.”


   라이언 씨는 나카무라 씨가 말을 마치는 것을 기다렸는지, 바로 요리가 담긴 트레이를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트레이에는 찹스테이크, 핑크빛을 띠는 피클, 레몬 한 조각이 잠겨있는 레모네이드가 있었다. 레모네이드는 주문하지 않았는데.

   “레모네이드는 서비스야.”

   다시 요리를 시작한 라이언 씨가 무심한 듯 말했다. 나와 나카무라 씨는 잘 마시겠다고 말했고, ‘영업 수당으로 생각할게요!’라며 나카무라 씨가 덧붙였다. 우리는 뜻밖의 선물에 기분이 좋아졌다.

   찹스테이크가 담긴 접시에는 잘 구워진 두툼한 소고기와 함께 볶은 형형색색의 큼직한 파프리카와 양파가 있었다. 고기는 한입에 넣기 적당하게 잘려 있어서 나이프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다. 은색 포크를 고기에 푹 찌르자 압력에 못 이긴 소고기의 육즙과 핏물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주저 없이 입속으로 넣었다. 고기를 씹을 때마다 육즙이 혀를 감쌌다. 짙은 농도의 버터가 들어갔는지 유지방의 풍미도 더해졌다. 그리고 버터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토마토케첩의 새콤달콤함은 아주 적절했다. 너무 시큼하지도, 너무 밋밋하지도 않은 그 적당함, 그 맛의 ‘균형’이 훌륭했다.

   옆에 있는 나카무라 씨도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우물우물 고기를 씹고 있다. 그러다 그와 눈을 마주치니깐, “어때요? 진짜 끝내주죠?”라며 웃어 보였다. 정말 맛있다. 만약, 내가 찹스테이크를 고르지 않았더라면 이 맛을 느낄 수 없었으리라. 물론, 이 정도의 솜씨라면 라이언 씨의 음식은 무엇 하나 맛없을 리 없었다.

   아까 나카무라 씨가 말한 것 중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나카무라 씨는 와타나베 씨를 동경하고 있다. 그리고 와타나베 씨에게는 배울 점이 많다고 하였다. 그 ‘배울 점’이라는 것은 영업능력일 것이고, 그 능력은, 아까 나카무라 씨가 말했지만, 상대방이 수긍할 수 있는 적당한 거짓말을 하거나, 사실을 과장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나카무라 씨가 꺼리는 것들로,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능력들이다. 왜 그는 굳이 그런 점들을 와타나베 씨에게 배우려는 걸까.

   나는 방금 생각을 나름대로 조립하여 물어봤다.

   “네? 아 그렇죠. 확실히 그런 점들은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죠. 그렇긴 한데 그냥 자기 직업에 충실한 그 녀석의 모습이 멋있더라고요. ‘나도 저렇게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어느샌가 와타나베를 동경하고 있었어요. 왜, 그런 거 있잖습니까, 내가 못하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 유달리 멋있어 보이는 그거요. 그리고 이런 개인적인 감상 이외에도, 와타나베 덕분에 우리 남부유럽지사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 많은 직원이 그에게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그는 ‘멋진’ 친구입니다.”

   그다음 “하지만 그만큼···”이라고 속삭였고, 나카무라 씨는 바삐 움직이던 포크를 내려놓고 하늘을 바라본다. 그의 시선을 따라 나도 하늘을 보았다. 지금은 덥고 습한 지역을 지나고 있는지 낮고 두꺼운 적운(積雲, Cumulus)이 여기저기에 눈에 띈다. 나는 어느새 그들의 이야기에 발을 들여놓아 있었다. 와타나베 씨가 어떤 사람인지도 궁금해졌다. 나는 다시 시선을 내려 접시 위에 남은 빨간 파프리카 한 조각과 노란 파프리카 한 조각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서로 색은 다르지만, 둘 다 파프리카임은 틀림없었다. 그리고 포크로 그 두 파프리카 조각을 한 번에 찍어 입속으로 넣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커피 두 잔을 포장하여 광합성 공원으로 향했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3시가 되어 있었다. 꽤 시간을 들여 식사 시간을 가진 것이다. 고기를 굽는 시간도 있었고, 나카무라 씨와 대화를 하느라 서로 식사를 천천히 한 것도 있었다. 식사 시간을 떠올려 보는 게 어색하고 신선했다. 집에서 식빵을 씹을 때는 시간 따위야 어떻든 상관없는 것이었는데 말이지. 커피는 라이언 씨가 추천해 준 카페에서 포장했다. 그 카페가 기본에 충실한 맛이라고 하더라. 카페 이름은 ‘트레인 카페(Train Cafe)’로, 가게 이름 따위야 어떻든 상관없다는 듯이 담백했다. 나는 하와이안 코나 블렌드를, 나카무라 씨는 남미계열의 커피콩을 사용한 블렌드를 주문했다.

   혹시, 블랜드와 블렌드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신가. ‘ㅐ’와 ‘ㅔ’의 차이가 있다고 말해도 할 말은 없지만, 커피 용어로서 의미의 차이가 있다. 블랜드(Bland)는 향이 약한 순한 커피를 지칭하는 용어다. 소프트(soft) 커피라고도 자주 쓰인다. 반면에, 블렌드(Blend)는 여러 종류의 커피콩을 사용해서 만든 커피를 지칭한다. 우리가 주문한 커피는 둘 다 ‘블렌드’라서 진하고 향이 강한 일반적인 커피이다.

   광합성 공원은 I칸 근처에 있어서, 그곳에 가려면 몇 개의 객실 칸을 가로질러야 했다. 식당에서 오 분 정도 걷자 식당 입구와 똑같은 유리 회전문이 있었다. 대형 자동문을 설치해도 괜찮았을 텐데, 광합성 열차를 디자인한 사람은 리듬감을 중요시하는지 공용공간의 출입구는 전부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문이다. 뭐, 심미적인 점을 고려하자면 자동문보다는 예쁜 회전문이 좋긴 하다.

   회전문을 밀고 들어가자 습한 공기가 우리의 코를 감싼다. 열차 몇 칸을 합쳐서 조성했는지 규모가 상당하다. 축구 경기장 두 곳을 붙여 놓은 넓이다. 열차의 천장은 5m 언저리여서 키가 큰 나무도 여럿 있었다.

   “안쪽으로 더 가 보죠. 선생님!”

   나카무라 씨도 공원의 규모에 흥분되었는지 목소리가 다소 격앙되어 있었다. 고향에 돌아온 불곰 같았다. 정말 알기 쉬운 사람이다. 그는 확실히 거짓말을 못 하는 사람이다. 표정에 너무 많은 것들이 드러나 있다.

   공원의 중앙을 향할수록 식물의 종류는 다양해진다. 어제 광합성 식당에서 봤던 율마나 보스턴 고사리는 물론이고, 고무나무나 벚나무. 동백나무 등과 장미와 금잔화 등 다양하다. 그리고 작은 인공 개울 같은 것이 있어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는 식물과 조화를 이룬다. 작은 숲에 온 것 같다. 곤충이나 새도 있으려나? 지금까지는 시선에 들어오지 않았다.

   광합성 공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든 식물은 햇볕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수분도 적절히 공급받는지 식물들의 허리는 곧게 펴져 있고, 전체적으로 건강해 보인다. 빛의 사각지대가 존재하지 않는 이 열차는 어떻게 보면, 거대한 유리온실과 같다. 그리고 세계 각지의 식물 전문가들을 고용하여 여러 식물을 키워 보는 시도를 할 수도 있다. 다양한 식물을 조성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키워진 식물들은 환자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아 준다. 얽혀 있는 자신의 시간을 정리할 시간도 갖게 한다. 환자들도 그걸 충분히 이용하고 있는지, 공원에는 산책을 즐기거나 사색에 잠겨 있는 사람들이 있다. 앞으로의 삶에 대한 것들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근처에 있는 적당한 나무 벤치에 기대어 앉았다.

   “이야! 이건 정말 대단하군요. 지난번에 혼자 둘러봤을 때는 대충 훑고 방으로 돌아갔거든요. 이렇게 안쪽까지 식물들이 이어져 있을 줄이야! 그리고 저길 보세요. 물이 흐르고 있어요. 열차에 물이 흐르고 있잖습니까! 오길 정말 잘했군요. 그 녀석도 이걸 봤으면 기분이 조금 풀렸을 텐데···.”

   우리는 한동안 포장해 온 커피를 홀짝이며 공원에 대한 감상을 주고받았다. 그와 이야기를 할수록 마음이 편해진다. 내 하찮은 질문에도 충분히 진지하게 생각하여 대답해준다. 영업을 하는 사람이라서 남을 대하는 게 몸에 밴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그가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 거짓이나 과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조금 전부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곰 같은 그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렉사프로의 효능이 그렇게 좋은 것일까. 그는 지금 항우울제로 마음이 조정된 사람인 것인가.

   그가 항우울제를 대표상품으로는 제약회사의 영업사원이기 때문에 약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왜 열차에 타게 되었는지는 아직 듣지 못했다. 문득, 야오린 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이 무언가를 표현한다.

   ‘그냥 평소와 다른 것을 하러 오셨다고 생각하시면 마음 편해요. 우울증은 계기가 되었을 뿐.’

   나는 궁금함을 못 참고 그에게 물어봤다. 제가 사려 깊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나카무라 씨는 쾌활하시고, 말에 힘이 실려 있어서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는 내가 선명한 질문을 하는 것이 의외라고 생각하는지, 놀라움이 살짝 가미된 눈웃음을 지었다.

   “선생님께서 보시기에도 우울증 환자 같지는 않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커피를 한 번 홀짝이고 대답을 한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은 와타나베입니다. 저는 그냥 딸려 왔어요. 2주 전에 회사에서 다들 책상에 앉아서 사무를 보고 있는데 문제가 발생했어요. 누군가 갑자기 괴성을 지르더니 이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죠. 저는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가 들려온 자리를 바라봤어요. 그곳은 와타나베가 몇 개월 전에 대리가 되면서 옮긴 자리였고, 그 책상에는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 잡고 울고 있는 와타나베가 있었죠. 항상 단정함을 유지하던 그의 머리는 엉망이 되어 있었어요. 저는 그가 어디가 아픈 것인지 걱정되어 그의 책상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등에 손을 대고 물었어요. ‘이봐! 무슨 일이야? 어디 아픈 곳이 있나?’라고 말이죠. 그리고 제가 구급차를 부르려고 휴대전화를 드는데, 갑자기 와타나베가 제 손을 꽉 잡고 ‘됐어. 아무 일도 아니야.’라며 말했죠. 그래도 제가 구급차를 부르려 하니깐 ‘아무 일도 아니라고 말했잖아!’라며 핏기가 서린 눈으로 저를 똑바로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어요. 그는 급하게 냉정함을 찾고 벌떡 일어나서 놀란 주위 사람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어요. 그리고 그는 부장실로 들어갔고 수 분 있다가 나와서 그대로 조퇴했습니다.”

   어제 멀리서 보긴 했지만, 와타나베 씨는 차가운 분위기를 하곤 있어도 호감이 가는 인상이었다. 얼굴이 훤해서 신뢰를 주는 얼굴이랄까. 피부는 하얗고, 말랐다. 신체의 여기저기에서 섬세한 여성의 그것과 같은 것들을 풍기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오열하는 모습은 가히 상상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다음 날, 회사의 인사팀에 전화가 한 통 왔다는 소식이 있더군요. 와타나베의 연인이었어요. 와타나베의 마음이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라서,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답니다. 공황 상태와 우울감에 빠져 있다고요. 하지만 회사에서는 조만간 있을 대형 사립병원과의 계약 때문에 지금 시기에 와타나베가 장기간 쉬는 건 곤란하다고 말했어요. 참 지독하죠? 그리고 연인분은 전화를 끊어 버렸어요. 그리고 오후가 되자 다시 전화가 왔어요. 이번엔 그의 연인이 아니라, 중앙병원 정신과에서였죠. 회사의 입장도 알겠고, 와타나베 본인도 당장 내일부터 출근하겠다고 하는데, 이대로 가다간 그가 무너져 버릴 게 분명하니깐, 적어도 약물치료와 함께 광합성 열차 치료는 받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와타나베와 가까운 사람도 진료를 받아 보는 게 좋다고 당부했죠. 남유럽지부에 다른 동기들은 저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른 지사에 있어서 저만 진료를 받으면 됐어요. 어쨌든, 중앙병원의 권고는 강력하기 때문에 훗날 문제가 되지 않으려면 최대한 따르는 게 좋습니다. 회사는 미래를 위해 그렇게 타협했습니다만, 그것도 당장은 곤란하고, 적어도 사립병원과의 계약이 끝나고 나서 가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다음날, 그는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사무실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평소처럼 일했어요. 그리고 그가 계약을 진행하는 동안, 저는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습니다. 역시나, 별다른 문제는 없었어요. 그래도 직업 특성상 우울감이 잠재되어 있을 수도 있고, 와타나베가 절규하는 모습을 본 영향으로 불안감이 있을 수도 있으니깐 예방 차원으로 와타나베와 함께 광합성 열차 처방을 받게 되었습니다. 회사에 자초지종을 설명하니깐 오히려, 잘 됐다면서 가서 기분 전환도 하고 ‘와타나베를 보살펴 주라’는 말을 들었어요. 아마, 후자의 이유로 제가 열차를 타는 것을 바랐을 거예요. 어차피 저는 영업실적도 초라해서 회사에 없어도 티가 나지 않거든요. 그래도 저는 잘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와타나베가 어느 순간부터 저를 멀리하려고 하는 게 느껴졌는데, 이 기회에 가까워지고 싶었거든요.”

   나카무라 씨는 내게 쓴웃음을 보였고, 조금 식어 버린 커피를 홀짝여 마른입을 촉촉이 적셨다.

   “그 뒤로, 와타나베의 능력 덕분에 병원과의 계약은 성사되었고, 휴가를 받아서 같이 열차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젯밤에 선생님께서도 들으셨듯이, 저와의 생활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가졌는지 제 상대를 해 주지 않네요. 말을 계속 걸어 보고 있지만, 매번 돌아오는 대답은 ‘시끄러워’, ‘방해돼’, ‘혼자 있게 해 줘’ 뭐, 이런 말들이에요.”

   어제 그들이 나눈 대화를 보면 와타나베 씨의 행동은 확실히 차가웠다. 그리고 나카무라 씨를 멀리한다는 느낌은, 타인인 나에게 도달할 정도로 명확했다.

   나카무라 씨는 자세를 내 쪽으로 돌리고 내게 물었다.

   “선생님이 보기에는 어떤가요? 그 녀석, 와타나베는 저를 싫어하는 것일까요?”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와타나베 씨는 당신을 싫어한다고.

   “그렇죠?”

   사실, 전부 알고 계셨죠?

   “네. 알고 있어요.”

   미움받는 걸 알면서도, 그를 마주하고 싶나요?

   “네! 저는 그 녀석에게 도움이 되고 싶거든요.”

   나카무라 씨는 나지막하지만, 에너지를 가득 담아 대답했다. 그는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계속해서 구애(求愛)한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무엇이 다르다 한들, 그 행동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녀석은 회사의 모두를, 특히, 저를 미워함을 넘어 증오할 겁니다. 저 때문에 아픈 것이나 다름없어요. 그는 알고 있어요. 자기의 실적이 곧, 회사의 실적이고, 자기가 부진한 성과를 보이면 많은 사람이 곤란해진다는 것을요. 그래서 엄청난 부담감에 시달리고 있을 거예요. 대리로 승진하면서 그의 어깨는 더더욱 무거워졌겠죠. 그리고 자신에게 모든 부담을 떠넘긴 실적 부진의 직원들을 증오함이 당연하고, 단연 그중 최고는 바로 ‘저’입니다. 그날, 회사에서 괴성을 지르던 날, 그 녀석을 나를 향해 소리친 것은 아닌지 요즘 많이 생각했어요. ‘일 좀 똑바로 해서 날 살려 줘’라고 말이에요.”

   나카무라 씨의 표정은 처참해져 있었다. 그가 아픈 것에 대해 상당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으리라. 나는 와타나베 씨가 아픈 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당신도 매우 힘들 거라고 위로했다.

   “죄송합니다. 위로받으려고 꺼낸 이야기는 아닌데 말이죠. 선생님께서도 적잖이 힘드실 텐데···. 이곳에 와서 누군가와 길게 대화하는 것은 처음이거든요. 말할 사람이 그리웠나 봅니다. 며칠 전 복도에서, 선생님 방에 있는 남자에게 말을 걸어 보았는데 ‘그러시군요.’라며 시원하게 무시당했습니다. 와타나베와는 다른 차가움이었어요.”

   그 사내라면 카림을 말하는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그런 태도를 하고 있었구나. 나에게만 무관심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 이상한 안도감을 주었다.

   아까 푸드코트의 라이언 씨와는 잘 맞는 것처럼 보였다.

 “라이언 씨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죠. 근데, 제가 식당에 갈 때마다 항상 바쁘셔서 느긋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지 물었다.

   “지난번에 저희 객실의 테이블에서 그가 먹는 약을 본 적이 있습니다. 렉사프로가 아니라 졸로푸트를 먹고 있더군요. 그때 -짜릿한 생각이 떠올랐어요. 제가 그 녀석이 먹는 약을 졸로푸트에서 렉사프로로 바꾸도록 설득시킬 수 있다면, 아마 모든 것이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우선, 그것을 목표로 하려고 합니다!”

   나카무라 씨는 하얀 이를 보이며, 큼지막한 그의 오른손 엄지를 들어 보여 줬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두툼한 왼쪽 손목에,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매달려 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벌써 오후 8시군요. 점심만 먹고 금방 돌아가려고 했는데, 제가 분위기를 타는 바람에 선생님의 시간도 빼앗아 버렸네요.”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어차피 한가해서 오늘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고, 덕분에 맛있는 식사도 하고 재밌었다고,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했다.

   나카무라 씨는 미소 지었다.

   나와 나카무라 씨의 시간은 얼추 비슷했다. 나도 우선은 방으로 돌아가서 양치를 하는 게 좋겠다. 입이 텁텁하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가 담겨 있었던 종이컵을 정리하고 왔던 길을 돌아간다. 광합성 공원을 재차 둘러보니 식물들은 여전히 햇빛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공원 구석에는 속이 훤히 보이는 유리 공간이 하나 보였는데 ‘Smoking room(흡연실)’이라 적혀있었다. 굳이 공원에 흡연실을 두어야 했나 싶었지만, 공원이니깐 흡연실을 두었다고도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열차 안에는 흡연을 장소가 마땅치 않다. 열차가 천천히 달려 준다면 밖에서라도 피우겠지만, 광합성 열차는 밖을 나갈 수 없을뿐더러 설사 나간다고 하여도 엄청나게 강한 공기의 압력에 열차 밖으로 튕겨 나갈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담배 반입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확실히, 반입 금지 물품에 ‘술’은 있었지만, ‘담배’는 없었다. 금단증상 때문에 불안하고, 폭력적으로 변한 사람이 다른 환자들에게 시비를 걸 수도 있기 때문이지 아닐까 싶다. 술은 왜 안 될까? 알코올중독자에 있어서 술은 담배와도 같다. 이것에 대해서도 나름 머리를 굴려보자면 예를 들어, 담배는 아까 말했던 것처럼 금단증상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렇지만 담배 한 모금이면, 배고파 우는 갓난아이에게 젖을 물린 것 마냥, 평온한 사람으로 변한다. 하지만 술은 다르다. 금단증상에 의해 짐승처럼 흉악해지고, 술 한 모금을 마시면 그냥 짐승이 된다. 어차피 짐승이 된다면 마시지 않는 편이 건강에 좋지 않을까.

   아무튼,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흡연실을 멍하니 바라보니 익숙한 얼굴이 그 답답할 것 같은 공간 안에 있었다. 어제 식당에서 눈을 마주친 ‘화려한 미인’이다. 그녀는 등을 벽에 기대고 우수에 젖은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고 잠시 멈추었다. 곧이어 그녀의 촉촉한 입술에서 강한 한숨과 함께 새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녀가 다시 담배를 입에 가져다 댈 때,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나는 어제와 같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자연스럽지 못한 동작이었다.

   내 옆에서 걷고 있는 나카무라 씨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있었는지, “응?”하고 짧은 의문을 뱉고, 내게 말을 걸었다.

   “저 여성분을 알고 계시나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아까부터 빤히 쳐다보고 계시던데, 아니시군요. ···확실히, 미인이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도 몇 번인가 열차에서 봤어요. 우리가 이 열차에 탑승하기 전부터 있던 사람 같아요. 자주 그녀의 ‘화려함’에 눈이 이끌렸어요.”

   나카무라 씨는 적당한 단어를 고르는지 잠시 말을 끊고는 다시 말한다.

   “화려함은 무언가를 감추기에 적당하죠. 하얀 새치를 감춘 공작(孔雀, Peacock)과 같다고 할까요.”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객실이 있는 H칸을 향했다.

   우리는 H6-4호실 문 앞에 서서 인사를 나눴다. 남은 시간은 방에서 와타나베와 함께하려고 해서 나와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이게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게 나카무라 씨의 설명이었다.

   “저희는 내일 열차에서 하차합니다. 이곳은··· 그다지 정이 생기는 공간은 아니지만, 배울 게 있고, 깊이 생각해 볼 만한 무언가가 있는 곳은 분명합니다. 선생님은 이곳에서 많은 것을 얻어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렉사프로를 만나지 않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나카무라 씨는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왠지 모르는 쓸쓸함을 느끼며 방으로 들어갔다. 카림의 침대를 보니 아무렇게나 말려있는 이불만 있을 뿐, 주인은 없었다. 밥이라도 먹으러 갔으리라.


   나는 욕실에 들어가 양치를 꼼꼼하게 했다. 내친김에 차가운 물로 세수도 꼼꼼히 했다. 얼마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몸이 나른해서 아마, 지금 이후로는 문밖으로 나가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굴을 깨끗이 닦고 욕실에 구비되어 있는 남성용 스킨과 로션을 -착착 발랐다. 피부에 변성 알코올 향이 진하게 스며드는 게 느껴진다. 조금 따끔거리기는 하지만 바르지 않는 것보단 피부에 좋으리라 생각된다.

   내가 씻는 동안에도 카림은 들어오지 않았나 보다. 어제 다 읽었던 소설을 쓴 작가의 다른 작품이 책장에 있어서 그걸 집고 침대에 올랐다. 소설의 제목은 ‘미션(Mission)’이다. 영화에서도 자주 쓰이는 흔한 제목이었다. 이번엔 기자가 주인공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이 수상한 인물과의 첫 번째 인터뷰를 마쳤을 즈음에 방문이 열렸고 카림이 들어왔다. 여전히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였다. 외부의 정보를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확고한 모습이었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고개를 살짝 끄덕일 뿐, 별다른 인사는 없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오후 9시가 넘어 있었다. 카림은 무얼 하다가 오는 것일까. 상상해 보았다. 식당에 가서도, 공원에 가서도 휴대폰을 보며 킥킥거리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니면 의외로, 광합성 열차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겉모습으로 판단한 내가 부끄러웠을 것이다. 다시 상상해 보았다. ···역시, 물개박수를 치며 웃음 치료 프로그램을 하는 카림의 모습은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감고 있는 눈 위로 햇살이 느껴져 붉은 기운이 눈에 맺힌다. 안대를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불편하지 않았다. 그래도 안대를 해야 하는데. 잠을 자는 사이에 눈은 아직도 낮인 줄 알고(낮은 맞지만) 쉴 새 없이 눈알을 굴릴 텐데. 그러면 시력이 나빠질 것이 분명하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이고 싶지가 않다.

   나와 붙어 있는 벽 너머에서 어제와 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여전히 나카무라 씨의 목소리가 주를 이루고 있다. 아까 옆방 사람과 광합성 공원에 갔다 왔는데 엄청나게 끝내주더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구경하는 게 좋다, 기분이 상쾌해질 것이다. 등의 말을 쏟아 내고 있었다. 그리고 와타나베 씨의 짜증 가득 섞인 말들도 이따금 들려온다.

   어제는 분명 내 단잠을 방해하는 소음이었는데, 어제와 다르게 화가 나지 않았다.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오늘 있었던 일들이 내 신경을 전환해 준 것일까. ‘저 소리는 짜증 나는 소리가 아니야.’ 그런 메시지들이 내 신경세포에 도달한 것일까.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니 어느새 와타나베 씨에게 정면으로 다가가는 나카무라 씨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중저음 목소리는 내 장기들을 가볍게 진동시켰고, 그것들은 나의 내부를 마사지한다. 편안함이 몰려오고 잠이 쏟아진다. 안대는 하지 않았다.

   내가 잠이든 사이에 그 둘은 광합성 공원을 향해 나란히 걸을까. 나란히 걷진 않겠지. 나카무라 씨가 앞장서서 걸을 것이고, 와타나베 씨는 엄마의 잔소리에 못 이겨 목욕탕에 끌려가는 아이처럼, 툴툴거리며 뒤를 따를 것이다.

   ···갑자기 내 시야에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는, 그런 꿈을 꾸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내가 없었다. 주변에 섬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 하얀 티끌처럼 요트 하나가 두둥실 떠 있다. 배를 잠시 멈추도록 한 것인지, 돛은 반듯하게 접혀 있었다. 그곳을 확대해서 보니깐 성인 남성 두 명이 요트 끄트머리에 나란히 앉아서 낚시하고 있었다. 바닷바람에 그들의 검은 머리카락이 가볍게 살랑거린다. 둘의 시선은 바다를 향한 채였고, 즐거운 듯 대화를 나누고 있다. 무슨 주제로 말을 하는지는 잘 들리지 않는다. 내용은 중요치 않으리라. 와타나베 씨가 무언가를 말하는 중에, 그의 낚싯대가 반응하기 시작한다. 와타나베 씨는 낚싯대를 힘껏 끌어 올려 보지만 꽤 큰놈이 걸렸는지 와타나베 씨가 역으로 흔들리고 있다. 그것을 본 나카무라 씨가 같이 거든다. 나카무라 씨는 반소매를 입고 있어서 팔뚝이 드러나 있다. 그의 덩치만큼 커다란 이두박근에 핏줄과 힘줄을 팍 세우자, 물 밖으로 물고기의 모습이 보였다. 낚싯바늘에는 커다란 고등어가 세차게 파닥거리고 있었다. 고등어는 입에 걸린 바늘이 고통스러워 똥그란 눈알을 마구 굴리다가 하늘의 한 지점을 바라보며 멈추었는데, 그곳은 내가 있는 자리였다. 점점 죽어가는 고등어의 눈은 내 눈을 확실하게 보고 있었고, 이윽고, 내 안구(眼球, eyeball) 너머에 존재하는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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