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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형훈 Aug 11. 2023

주인공의 이야기

   오늘도 맞은편에 누구라도 있는 듯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모니터의 빛의 일부는 안경을 투과하여 내 망막의 신경세포를 자극하고 있다. 조만간 안경 렌즈를 바꾸러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일을 마쳐도 좋다는 메시지를 받고 컴퓨터를 껐다. 그리고 바로 잠을 잤다. 다음날 눈을 떴을 때, 내가 일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 궁금하였고, 이상하게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참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식탁에 앉았다. 말이 식탁이지, 먹을 것보다는 책과 고지서 등으로 가득한 가구였다. 식빵 두 개를 토스터에 넣었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상당히 그을린 식빵 두 개가 튀어 올랐다. 분명, 아무 생각 없이 타이머를 돌렸을 것이다. 대수롭지도 않다. 요즘 모든 게 이렇다. 아무 생각도 없으며, 뭔가 귀찮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 같으면서도, 투포환 무게 정도 되는 무언가가 내장 속에 자리를 잡아서 가득 차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이 우유부단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신체도 우유부단하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아침의 공기는 낮고 무거웠다. 만약, 지금 바닥에 엎드린다면 낮고 무거운 공기 때문에 적적함은 배가 되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엎드리고 싶어도 식탁 의자에 앉아 벽을 보며 그을린 식빵을 씹을 수밖에 없다. 왠지 이래야 내가 앞으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식탁 의자도 분명 네 개였지만, 지금 앉아 있는 의자를 제외하고는 죄다 무언가가 의자 위에 올려져 있어 앉을 수 없다. 딱히 우리 집에 찾아올 만한 사람도 없었다. 어쩌면 밖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 집 식탁 의자는 죄다 무언가가 올려져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초인종조차 누르지 않는 것일까. 택배를 배달해 주시는 분이 ‘후, 이 집이 오늘 마지막이구먼. 잠깐 물 좀 마실 수 있겠냐고 물어볼까나? ···아니, 이게 뭐야! 식탁 의자가 하나밖에 쓸 수 없잖아? 사람을 거부하는 게 틀림없어. 그냥 택배도 바닥에 두고 가자. 부재중이라서 그랬다 하면 상관없겠지.’라고 생각하며 근 몇 년 동안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바닥에 택배를 두고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름 합리적인 추론이라 생각하며 계속해서 벽을 보면서 쓴 식빵을 씹는다.

   언제까지 벽을 보면서 식빵을 씹어야 할까? 태양이 적색거성이 되어 지구를 삼킬 때까지일까? 어느 정도의 시간이지? 음··· 43억 년 정도 되는 것 같다. 요즘 같은 시대에서는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다. 43억 년 정도만 식빵을 씹으면 되는 거구나. 지구에서의 마지막 날에도 전날 밤까지 일하고, 일어나서 아무렇게나 돌린 타이머로 인해 하와이의 선남선녀들의 초콜릿 피부처럼 그을린 식빵이, 냄새나는 내 입속에서 잘근잘근 씹어 먹히고, 나는 태양의 적색거성화로 인해 지나치게 밝고, 뜨거워진 밖을 바라보면서 “드디어 끝이구만!” 하고 말을 뱉음과 동시에 끈적끈적하게 녹아 버리는 것이구나.

   마지막 식빵 조각을 삼키는 순간 깨달았다. 내가 앞으로도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엎드리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가벼운 공기를 마시기 위해 입식 식탁 의자에 앉아 있는 것도 아니라 지금 당장 병원에 가야 하는 것이라는 걸 말이다.

   다행히 오늘은 근무를 쉬는 날이다. 안경 렌즈도 바꿀 겸 나갔다 오는 게 좋은 것 같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중앙도시에서 하이퍼루프(Hyperloop)를 타고 3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큰 병원은 대부분 중앙도시에 있기 때문에 하이퍼루프를 이용해야 한다. 최첨단 기술 덕분에 이렇게 먼 지역도 수도와 비슷한 문화를 형성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용료가 상당히 비싼 게 흠이다. 급한 일이 아니라면 기분 전환 겸해서 일반 고속열차 등을 이용하여 갔다 와도 좋다. 하지만 나는 얼른 다녀와서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다행히, 평소에 식량을 사는 것을 제외하면 돈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이퍼루프를 이용하는 데 부담은 없다.

   행거 밑으로 처박혀 있는 옷가지를 주워 말라비틀어진 몸 위에 입혔다. 그리고 휴대폰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밖은 정말 눈부셨다. 아직 멀었지만, 태양의 적색거성화가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아마 현관문 밖으로 나온 것은 몇 달만 일 것이다. 일을 시작한 날이 기억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또한 기억이 뚜렷하지 않다. 그 몇 달 전에는 무얼 하러 밖에 나왔을까? 그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이퍼루프 승강장은 내가 사는 원룸과 아주 가까이에 있다. 아마 그것이 마음에 들어서 이 집을 골랐었을 것이다. 아마도. 하지만 이사 온 뒤로 하이퍼루프를 이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차라리 조금 떨어진 곳의 값싼 원룸을 갔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이야 뭐, 돈이 좀 더 있다고 내 삶이 멋지게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하이퍼루프 승강장은 상당히 세련되었다. 건물 전체가 투명한 강화유리로 되어 있고, 거대한 레일이 그 유리를 통과한 것처럼 불쑥 튀어나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지평선을 향해 이어져 있다. 건물 자체도 꽤 높아서 주위의 건물과는 다르다는 것이 돋보인다. 밖에서도 건물 내부가 보이는데, 중간중간 검게 칠해진 부분이 보인다. 이곳은 VIP를 위한 공간들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특수 필름을 붙여 안이 보이지 않게 한 것이다. 어떤 삶을 살아야 저런 방에 들어갈 수 있는지 나로서는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다.

   승강장 내부로 들어오니 많은 사람이 있었다. 각자 다양한 모습을 하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반질반질한 바닥이 사람들의 발과 만나 시원한 소리를 내고 있다.     

   -또각또각

   -또각또각

   -두걱두걱     

   분명, 승강장 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의 발소리로 가득했지만, 내 발에서 나오는 꾀죄죄한 구둣발 소리는 확연히 남들의 그것과는 다르게, 그리고 확실하게 들렸다. 이러한 소리조차도 내 몸에서 나는 소리로, 역시 볼품없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들은 티가 난다. 나는 혹여나 이 소리의 차이를 알아채고 나를 안쓰럽게 보는 사람이 있을까 봐 빠르게 하이퍼루프로 향했다.

   하이퍼루프의 객실은 가로로 눕힌 원기둥 모양이다. 순식간에 시속 1,280킬로미터의 속력에 도달하기 때문에 좌석은 모두 앞을 향해 있고, 등받이가 있다. 만약, 과거의 지하철과 같이 통로 양옆으로 기다란 좌석의 형태를 가졌다면, 출발과 동시에 옆 사람과 부딪히고, 통로 끝으로 처박혔을 것이다. 그리고 처박힌 사람 위로 차례차례 다른 사람들이 날아오고, 그 충격에 신체 어디 한 곳은 부러지거나 심하면 압사(壓死)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내 자리를 찾아서 앉았고, 안전벨트를 매었다. 곧, 객실의 조명이 어두워지더니 -위잉 하는 소리(자세히 묘사해 보자면, 얼룩말이 헬륨가스를 마시고 한숨을 내뱉는 소리와 같은)가 났고, 내 하중은 점점 등받이로 쏠렸다.

   집에서 벽을 보며 식빵을 씹듯이 앞 좌석의 등받이를 보고 있었을 뿐인데 중앙도시에 도착했다는 승무원의 목소리가 나온다. -쉬익 하며 하이퍼루프의 출입문이 열리고, 사람들은 빠져나왔다.

   중앙도시답게 하이퍼루프 승강장에는 내가 사는 도시보다 많은 사람이 있었다. 하이퍼루프 또한 여러 방향으로 뻗어져 있었다. 내 미운 발소리가 남에게 들리기 전에 황급히 건물을 빠져나오고 중앙병원으로 향했다.

   중앙병원은 이 권역에서 가장 큰 병원이다. 국가에서 세운 병원답게 접근성이 가장 좋은 곳에 있다. 하이퍼루프 승강장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중앙병원에 자주 왔었기 때문에 길을 찾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아. 지병이 있거나 어렸을 때 많이 아팠던 것은 아니다. 어머니는 아무리 작은 병이라도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치료를 해야 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으셔서, 단순한 몸살에도 중앙병원을 찾아왔었다. 언젠가 왜 매번 귀찮게 여기까지 와야 하냐고 우리 마을에 있는 작은 병원에 가자고 퉁명스럽게 물어본 적이 있는데, 어머니의 대답은 이랬다.

   “얘야, 우리 몸이 아프다는 것은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예를 들어, 네가 목감기에 걸렸다면, 목이 아프다는 것으로 끝낼 게 아니라, 왜 목이 아프게 되었는지, 몸의 영양균형이 깨져 버렸다던가 면역력이 약해진 것은 아닌지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샅샅이 살펴봐야지. 만약, 큰 병원에 가는 것이 귀찮다고 작은 병원에서 최소한의 장비로 검사를 받았다고 생각해 보자. 다른 곳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다’라는 의사의 대답과 함께 항생제와 항히스타민제를 처방받고 집에 왔어. 감기가 다 나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시간이 흘러갈 즈음에 네가 갑자기 구토하고, 코에서 피가 콸콸 흘러나와. 그래서 엄마가 너를 안고 중앙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봤더니 뇌에 문제가 있다고 밝혀지는 거지. 봐, 얼마나 끔찍해? 돈은 돈대로 나가고, 아픔은 더욱 커져 우리 아들이 다 감수해야 하고, 몸과 생활과 정신의 균형 모두가 깨져 버리지. 엄마도 매번 이렇게 가는 게 번거롭긴 해. 그래도 앞서 말한 거에 비하면 이거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지? 그러니깐 더는 잔말하지 말고 엄마 말 들어.”

   병원과 건강 이야기만 나오면 그 따뜻하던 표정이 차갑게 식으면서 그리고 내 눈동자를 확실하게 쳐다보면서 ‘최악의 경우’라는 것들을 입 밖으로 쏟아 내셨다. 지금도 생각하면 오싹할 정도로 무서운 얼굴이었다. 나를 보고 있다기보다는, 내 눈동자 너머에 있는 죽음을 바라보시는 것 같았다. 아직 초등학생인 자식의 죽음을 언제부턴가 바라보고 있으셨던 것은 아닌 건지 이제야 와서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런 어머니의 관념이 가족의 신체적인 건강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식사 후에는 반드시 영양제(비타민은 기본으로, 식이 유황이라든지 L-테아닌 같은 것들)를 챙겨 먹었다. 어머니는 또래에 비해 젊어 보이기도 했다. 잔병도 없으시고 활기가 넘쳤다.     

   옛날 생각에서 벗어나 보니 익숙한 건물이 눈앞에 보였다. 도시의 사람들 전원을 수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큰 건물이다. 병원답게 외벽은 대부분 하얗다.

   접수처에 가서 정신과 진료를 원한다고 말했다. ‘정신과’라는 말을 본인의 입으로 뱉는다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흔하게 들었던 단어인데 왜 이렇게 어색하고, 말하는 동시에 어딘가 숨어 버리고 싶을까. 요즘에는 일반 내과만큼 흔하게 들락날락하는 곳인데 말이다. 접수처의 직원 또한 정말 아무렇지 않은 반응이었다. 네. 정신과 진료를 보시겠어요? 진료는 처음이세요? 환자가 많아서 좀 기다리셔야 해요. 삼층 복도 끝에 정신과를 찾으시고, 진료표를 보여 드리면 됩니다. 아주 부드럽게 말을 이어갔다. 내가 감기에 걸렸든, 조울증에 걸렸든 상관이 없다는 말투였다. 약간의 동정도 느낄 수 없었다. 하긴, 동정을 느낄 필요가 없다. 실제로도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다. 아니면, 내 소극적인 말투와 표정을 보고 당연히 ‘삼층의 그곳’에 갈 사람이라고 알아차렸을 것이다. 나는 내심 동정해 주기를 바란 것일까.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외래 진료 대기실에는 환자들로 가득했다. 젊은 사람도 많았지만, 노인과 어린이가 더 많았다. 노인들의 계속되는 푸념과 어린이들의 산만함 때문에 진료는 늦어지고, 환자는 밀릴 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의사들도 환자에게 “환자가 많이 밀렸으니 나가주세요.”하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중에 영수증을 보고 알았지만, 정신과 진료는 일반 진료와 다르게 ‘상담 치료비’라는 것이 붙어서 다른 진료과보다 진료비가 비쌌다. 이렇게 돈을 더 받아 버렸으니 섣불리 나가 달라고 했다간 분명 고성이 오갈 것이다. 내가 내 돈 내고 받아야 할 서비스를 받겠다는데, 이게 병원이야 깡패야! 뭐 이런 식의 대사들이 등장할 것이다. 선불로 결제한 돈가스를 반 정도 먹었더니 한 종업원이 와서, “저기 죄송한데, 손님이 밀려서 나가 주셔야 합니다.”하고 말한다면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드디어 내 차례가 왔고 진료실에 노크를 두 번 하고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은 사십 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성분이다.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단발에, 동그란 뿔테 안경을 끼고 있었다. 상당히 귀여운 인상이다. 영원히 이어질 상담으로 인해 마음이 모나지 않도록 동그란 것에 집착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의사는 오른손을 내밀어 자신의 책상 앞에 있는 의자를 권하고, 내가 자리에 앉자 입을 뗐다.

   “-에. 초진이시네요?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나요?”

   나는 평소에 느끼던 것들을 모두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힘이 없다, 밤이 되면 이상한 공상에 빠진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언제까지 벽을 바라보며 그을린 식빵을 먹어야 하는지 고민한다, 혹시, 43억 년 정도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의사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등 시간을 내어서 여기까지 온 만큼, 그리고 뒤에서 어머니가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최대한 꾸밈없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말을 하는 동안 의사 선생님은 이따금 내 뒤에 무언가를 바라보거나, 내 머리 위(시계가 있는 자리)를 힐끔거리며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씩 “그러셨군요.” 하고 내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는 신호처럼 말했다.

   진료실 문밖에서 어떤 할머니의 고함(아마, “기다리다가 돌아가시겠다.”라고 말한 것 같다.)를 듣고 말을 멈추었다. 내가 꽤 오래 말은 한 것 같아서 의사 선생님에게 죄송했다. 아무리 돈을 받고 하는 짓이라도, 처음 보는 환자가 식빵이 어쩌네, 43억 년이 어쩌네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좋은 기분은 아닐 것이고, 본인이 시간과 할머니의 고함에 쫓기고 있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의사는 내가 말을 그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여러 가지 미사여구를 제거하고 빠르게 본론을 말했다.

   “우선, 여기서는 환자분께 ‘우울증이다.’, ‘조현병이다.’, ‘공황장애다.’ 이렇게 딱 잘라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인간의 정신은 생각보다 많이 복잡하고, 정신 건강은 신체의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호소하는 부분과 환자분이 말씀하신 부분은 상당히 비슷하고, 그 비슷하다는 부분이라는 게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계절의 변화로 인해 일시적으로 오는 우울함과 불안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혹시, 하시는 일이 어떤 것인지 여쭈어 봐도 괜찮을까요?”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살짝 기울여 의문을 한다는 눈썹 모양을 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정보 보안 업체에서 일하고 있고, 주로, 회사의 기기를 집으로 가져와서 일하고 있다고 대답하였다.

   의사선생님은 뒷머리가 살짝 흔들릴 정도로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그러면 자택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군요. 바깥 활동은 좀 하시는 편이세요?”

   그렇지 않았다. 식료품도 배달시키고 있고, 쓰레기도 현관문 앞에 놓아두면 알아서 수거해 가서 나갈 일이 별로 없다. 실은, 오늘 나온 것도 거의 몇 개월 만이다. 정확한 기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의사 선생님은 -흠하고 신음을 내뱉더니 키보드를 바삐 움직였다.

   “인간은 싫어도 햇볕을 쐬어 주어야 해요. 정신과 몸의 균형을 위해 필요한 행동입니다.”

   어머니가 들었다면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균형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며 맞장구를 쳤을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아직 약을 권할 정도는 아닌 것 같고, 조금 쉬다 오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광합성 열차 9박 10일 티켓을 병원에서 발급해 드릴게요. 발생하는 비용 대부분은 보험처리가 될 거고, 중앙병원에서 직장으로 통보도 해 드리니 일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열차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시고, 그래도 불편함이 느껴지면 다시 병원에 방문해 주세요.”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진료실에서 나왔다. 문 앞에서 어떤 할머니가 나를 몹시 불쾌하다는 듯이 째려보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눈을 돌리고 복도 끝을 향했다. 정신과 외래 동을 빠져나가려 할 때, 간호사가 나를 불러 세웠다. 광합성 열차 생활에 필요한 간단한 신체측정을 해야 한단다. 측정에는 1분도 소요되지 않았다. 신발을 벗고 납작한 기계에, 마치 정육점에서 돼지고기 한 근을 저울에 올리듯이, ‘멋지다’는 것과는 거리가 먼 몸통을 올려놓았고, 5초 정도 지나자 이제 내려와도 된다는 간호사의 말에 ‘벌써?’라는 의문을 가지며 간호사의 이마를 쳐다보았다. 얼마나 보잘것없는 몸이길래 30년간의 세월을 함께한 신체를 고작 5초 만에 측정을 끝내는 것일까. 내 영혼이 담긴 그릇은 ‘5초짜리’인가. 1층에 있는 재증명 창구로 갔다. 창구 앞에 있는 기기에 환자 번호를 입력하니 티켓 한 장과 진단서가 프린트되어 나왔다. 진단서에는 내가 일시적인 우울감과 불안함을 호소하여 광합성 열차 치료가 필요하다고 나와 있었다.

   휴가라. 얼마만의 휴가인지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나 떠오르지 않는다. 어떠한 설렘이나 기쁨도 내 마음을 통과하지 않았고, 그저 귀찮고 무기력할 뿐이었다. 안경의 렌즈를 교환하고 가려 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바로 하이퍼루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병원이라는 곳은 사람의 기운을 빨아들이는 것이 틀림없다. 비과학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병원은 다른 공간의 배로 내 속의 무언가가 소모된다.

   회사에 전화해야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회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병원으로부터 회사에 연락이 왔습니다. 저희 인사팀에서 해당 사항을 병가로 하여 처리하려고 합니다. 회사에 따로 방문하실 필요 없이 내일부터 치료를 받으시면 되고, 광합성 열차에서 내리시더라도 이참에 이것저것 정리도 하시라고 총 12일의 휴가를 드리라고 하더군요. 괜찮으신가요? 아, 그러면 그렇게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겠습니다.”

   몇 마디 하지 않았지만, 일사천리로 일이 처리되는 것에 편리함을 느꼈다. 정보를 다루는 회사라서 그런지 모든 게 빠릿빠릿하다.

   집에 도착할 무렵에는 하늘이 붉게 물들여져 있었고, 일부분은 파랗게 멍이 들기 시작했다. 휴대폰을 식탁에 내려놓고 몸을 깨끗이 씻었다. 병원의 기운을 바디클렌저의 거품에 충분히 녹여 내고, 따뜻한 물로 흘려보냈다. 온몸에 묻은 거품을 빠짐없이 흘려보냈다. 몸을 흰 수건으로 충분히 닦아내고 냉장고에서 레토르트 파스타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리기 시작했다. 레토르트 파스타의 포장지에는 토마토 무늬의 원피스를 입은 파스타 공주가 웃고 있었고, 공주의 양 갈래머리는 푸실리(나선 모양의 면을 이용한 파스타)로 표현되었다. 그 빙글빙글한 헤어스타일을 한 공주님은 전자레인지 속을 빙글빙글 돌고 있다. 빙글빙글. 빙글빙글. 노란색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산뜻한 왈츠를, 홀로 고독하게 추는 것만 같다. 공주님이 춤을 추는 동안 머리를 정성껏 말린다. 거울을 통해 소심하지만 그래도 남자임을 증명하는 이마가 보인다. 남성호르몬의 영향으로 이마의 양 끝에 있는 골짜기는 날이 갈수록 깊어진다. 하이퍼루프를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내 이마의 골짜기를 해결해 줄 기술력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그 기술은 일찍이 개발되었지만, 돈이 많은 상류층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된 것일까.

   따뜻하게 데워진 파스타를 씹으며 당장 내일부터 시작될 광합성 열차 치료에 대해 검색했다.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는 후기들이 많이 보인다. 24시간 밝은 곳이기 때문에 잠을 청하기 어려웠다는 후기도 간간이 보인다. 광합성 열차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본 치료에 대한 소개 글을 읽어 보았다.

   광합성 열차는 세계보건기구(WHO, World Health Organization)에서 관리하는 치료목적의 탈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우울증이 만연하고,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심각하게 발생하여 국가 간 긴밀한 협조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설립 배경이었다. 70여 년 전부터 우울증 치료 서비스를 시작했고, 의료진과 열차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인력, 그리고 병원으로부터 광합성 열차 처방을 받은 사람만 탑승할 수 있다.

   이 열차가 ‘광합성 열차’라 불리는 이유는 열차가 계속해서 태양을 좇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광합성 열차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 속도, 자전축의 기울어짐 등을 계산하여 설계된 열차 레일 위를, 설계된 속력으로 지구를 빙글빙글 돈다. 그래서 열차 내 사람들은 24시간 햇볕을 쬘 수 있다. 그리고 중간마다 여러 국가에 설치된 승강장에서 환자와 물자의 교환이 이루어질 때를 제외하고는 멈추지 않는다.

   본 열차의 치료를 통해 세계의 구성원들이 다시 본래의 정신 건강을 되찾고, 쾌적한 삶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시스템의 존재 목적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본래의 정신 건강’과 ‘쾌적한 삶’이 어떠한 것인지, 기준이 무엇인지 명시되어 있으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 나 같은 사람은 그런 것들을 잘 모른다. 예전에 어떤 유명 작가의 소설에 자주 등장한 문구가 생각난다.

   ‘설명해 주지 않으면 모른다는 건, 설명해 줘도 모르는 거야.’

   그렇다. 본래의 정신 건강이 무엇인지, 쾌적한 삶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지 않으면 모르는 나는, 어쩌면 설명해 줘도 모를 것이다. 그래도 그게 무엇인지 알아야 개선이 되기 때문에 부디 알려 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아마도 열차에 타면 차차 알게 될 것이다.

   딱히 짐을 꾸릴 필요는 없었다. 광합성 열차 티켓 뒷면에 탑승 전 준비사항이 설명되어 있는데, 환자 번호가 명시된 진단서와 티켓 그리고 오전, 오후를 구분할 수 있는 아날로그시계 이 네 가지만 준비하면 된다고 한다.

   대부분의 서비스는 보험이 적용되며 그 외, 자잘한 것들은 중앙납세시스템에 등록된 내 계좌를 통해 청구된다고 한다. 참으로 편리하다.

   아날로그시계는 자신이 속해 있는 국가의 시간대를 확인하는 데 필요하다고 한다. 낮과 밤의 구분이 없기 때문에 바이오리듬을 유지하기 위함이리라. 환자들은 비슷한 시간대를 가진 사람들을 묶어서 분류하여 각각의 열차 칸에 배정되는데, 아무리 비슷하다 한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열차에 탑승한다. 그래서 열차에서는 개인이 시간 관리를 잘해야 한다. 이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면 꽤 우습다. 열차에서 여러 사람이 나란히 앉아 밥을 먹고 있지만, 그들이 느끼는 시간은 제각각이다. 누구는 아침밥이고, 다른 누구는 점심밥이며, 또 다른 누구는 저녁밥일 것이다. 개인이 가진 시계를 확인하며 자신만의 시간으로 나아간다.     

   디지털시계는 당연히 안 될 것이다. 요즘의 디지털시계는 GPS가 기본적으로 달려 있다. 자신이 위치한 곳의 시간을 자동으로 설정해 주기 때문에 ‘아날로그’라고 확실하게 명시한 것 같다. 만약에 디지털시계를 차고 열차를 탄다면 시간을 알려 주는 디스플레이는, 무슨 고장 난 타임머신처럼 시시각각 시간이 변하는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 그 이외로는 하나의 주의사항이 적혀 있었다. 확실하게 경고하듯이 빨간색 글자로 ‘날붙이와 같은 금속 재질의 위험 도구 소지 및 반입 금지’라고 적혀 있다. 우울증세가 심한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아니 그냥 평범한 사람도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불안정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사전에 알려, 열차는 의료시설이라는 사실을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을 다시 한번 환기해 준다.

   광합성 열차는 의료시설답게 식사도 무료로 제공하고 있지만, 만약, 열차의 식단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면 열차 내에 있는 푸드코트를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카페도 있다. 다만, 이곳을 이용하기는 할 때는 개인 비용을 사용해야 한다. 그 외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은 무료로 제공한다. 없던 우울증도 만들어서 열차에 타고 싶을 정도의 의료 서비스다.

   모든 것은 준비되었다. 내일이라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평소와 같이 눈을 뜨고, 아무 생각 없이 빵을 구울 것이며, 벽을 보며 식빵을 씹을 것이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고 광합성 열차를 타러 가는 것이다.

   잠자리에 들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약 열흘 뒤의 내 모습을 흐릿하게나마 그려 보며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다. 숨 쉬는 것을 의식하게 되는 순간부터 숨쉬기 거슬리기 시작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다.

   눈은 언제나 앞을 보고 있다. 눈을 감는다는 것은 눈이 두개골 속으로 숨어들어 가거나. 안구의 검은자위가 뒤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냥 앞을 보고 있는데 눈꺼풀이 내려와 앞을 가려 버린 것이다.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금의 내 모습과 같았다. 나는 그냥 앞을 바라보며 살고 있었을 뿐인데, 무언가가 슬슬 내려와 눈 앞을 가려버린 것이다. 내가 피곤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이 나를 가렸을까. 거대해진 태양? 43억 년의 시간? 검게 그을린 식빵? 식탁 옆에 있는 벽? 잘 모르겠다. 무엇이 나를 가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많이 지쳐 있는 상태임은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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