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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형훈 Aug 11. 2023

About time

   끝없는 어둠에서 붉은 기운이 감도는 게 느껴진다. 잠에서 돌아오는 과정이 느껴졌다. 이곳에 와서 언제나 그렇듯, 새파란 하늘과 밝은 태양이 가장 먼저 보인다. 열차는 현재 건조한 지방을 지나가고 있는지, 하늘에는 구름 하나 떠 있지 않았다.

   햇빛에 피부를 너무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걱정할 수 있는데, 다행히도, 이 열차의 유리는 자외선 등의 우주선 등을 효과적으로 차단해 주는 특수한 유리로 되어 있어서 피부암 등의 피부병으로부터 안전하다.

   찌뿌둥한 몸을 세우고 손을 깍지 껴서 기지개를 켠다. 어깨와 등의 근육이 쭉쭉 늘어나는 게 느껴진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였다. 어제는 일찍 잠들 수 있어서 비교적 빠르게 일어날 수 있었다. 맞은편의 침대에는 카림이 자고 있다. 역시나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다. 눈을 뜨면 태양이 떠 있다는 것과 카림이 이어폰을 꽂은 채 잠을 자는 사실은, 내가 잠을 자는 사이에 세상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변하지 않는다는 점은 인간에게 상당한 안정감을 제공한다. 원룸의 식탁에 앉아 식빵을 씹는다는 행위도 마찬가지로, 내게 불안감을 주지는 않았다.

   오늘 처음으로 옆방을 의식해졌다. 묘하게 조용하다. 밥을 먹으러 간 것일 수도 있지만, 내 마음이 허전한 것을 보아 그들이 이 열차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6H-4호실은 다른 환자로 채워질 것이다. 마치, 나카무라와 와타나베라는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는 듯이, 그들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방에서 나와 식당을 향하면서 그들의 ‘흔적’이 있는 곳을 알게 되었다. ‘라이언 스테이크 하우스’에는 그 흔적이 있다. 영화나 책, 애니메이션 등에서 ‘나를 잊지 말아 줘!’라는 느낌의 명대사를 흔히 접할 수 있다. ‘나’는 사라지지만 ‘나’를 기억하는 누군가가 있으면 ‘나’는 추상적인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많으면 많은 수록 즉, ‘기억의 공유’ 범위가 넓어질수록 그 추상적인 흔적은 선명해진다. 역사 속의 인물들을 이미 흙이나 모래가 되었겠지만,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고 있듯이.

   식당에 들어서자 뭔가 흔들리는 게 보이는 데 그것은 다름이 아닌, 라이언 씨의 손이었다. 적확하게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금발의 까까머리를 한 사내는 희귀해서 잘못 봤을 리가 없었다. ‘어이! 너와 같은 걸 기억하고 있는 인간이 여기 있어!’라고 말하듯이.

   하지만 당연히 그런 이유로 손을 흔들고 있을 리가 없다. 그가 왜 손을 흔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오늘은 광합성 식당을 이용하려고 했는데.

   라이언 씨에게 다가가면서 주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접시를 보았다. 오늘은 흰 살 생선을 이용한 요리였다. 레몬즙을 뿌려 먹으면 분명 맛있을 것이다.


   “내가 놓치지 않았구먼.”

   나는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다.

   “나카무라 녀석이, 당신이 오면 이 열차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가서 말이야. ‘분명, 어제도 아주 시끄러우셨을 거예요.’라며 중얼거리더니 다짜고짜 부탁하고 급하게 가 버렸어. 끝까지 정신없는 녀석이야. 아, 음식값은 내고 갔으니 마음껏 먹도록 하게.”

   나카무라 씨가 그런 부탁을 하고 갔다니, 어제 잠깐 이야기를 했지만, 그의 마음속 한편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내가 곧 제자와 교대를 할 시간이라서 당신이 모습을 보이기만을 기다렸다네. 제각각 다른 시간을 살고 있으니 ‘이때쯤이면 오겠구나.’라고 짐작도 안 되고,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지. 열차 직원들은 함부로 환자 객실 칸에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찾아갈 수도 없었어.”

   왜 들어가면 안 되는지 물어보려다가, 생각해 보니 자연스럽게 이유를 알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광합성 열차에서는 날카로운 날붙이와 술은 반입 금지 물품으로 규정하고 있다(담배는 괜찮다). 하지만 열차 내에서 식사를 만들려면 칼이 필요하고, 어쩌다 식자재의 잡냄새 제거용으로 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 손님과 직원 간 모종의 거래로 객실에 술과 칼을 들인다면··· 결코, 좋은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나저나 제자가 있는 줄은 몰랐다. 다른 직원들처럼 교대근무를 하느냐고 물어봤다.

   “당연하지! 나는 기계가 아니라네. 이곳의 식당은 항상 열려있어야 하지. 제자가 잠을 잘 때는 내가 요리를 하고, 내가 잘 때는 제자가 와서 요리하지. 제자의 실력도 괜찮으니까 언제 한 번 그 애의 요리를 맛봐도 좋을 거야. 요즘, 자기 시간에는 손님이 없다면서 상당히 침울해 있거든.”

   그는 제자를 많이 아끼는 모양이었다. 진심으로 그를 걱정하고 있다. 제자는 어디서 자는지 궁금하여 물어봤다.

   “우리는 직원실에서 생활하고 있다네. 광합성 공원을 본 적이 있나? 그 공원의 다음 열차 칸이 직원 전용 칸이야. 나와 제자는 같은 방을 쓰지. 아, 직원실이라고 더 좋거나 그런 것은 없어. 환자들이 사용하는 객실과 완전히 똑같다네.”

   어떻게 직원실이 환자 객실과 똑같다고 알 수 있는지 궁금했지만, 일단은 참았다. 이야기할수록 라이언 씨의 휴식 시간은 점점 짧아지기 때문이다.

   “자아, 뭔가 먹고 싶은 게 있나? 좋아하는 요리라든가 말이야. 메뉴판은 덮어 놔도 돼. 이 열차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를 부탁받았으니,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를 해 주면 되는 거 아닌가?”

   딱히, 가장 좋아하는 음식 같은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선호가 뚜렷한 편이 아니다. 내 외모와 같이 흐릿한 편이다. 어제 먹은 찹스테이크가 맛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라이언 씨는 살짝 당황스러운 듯이, 금색 눈썹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좋아하는 음식이 없다고?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는가?”

   여기 있었다. 나는 정말 괜찮으니 찹스테이크를 해 달라고 했다.

   “아닐세. 부탁을 받은 입장에서, 어제와 똑같은 것을 만들어 줄 수는 없지. 그럼 내가 적당한 것을 만들어 주겠네.”

   이상하게 그의 눈은 진지했고,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적당히 말하는 사람은, 그 무엇도 진정으로 좋아할 수 없어.”


   그는 화구에 불을 붙이고 그 위에 프라이팬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이것저것을 꺼내었다. 이름 모를 생선의 몸통 부분과 아스파라거스, 버터, 올리브유, 미니 양배추 등이 보인다. 또 다른 화구에서는 냄비에서 물을 끓이고 있고, 곧 물이 끓자 초록 채소들을 냄비에 데치기 시작한다. 주위가 조용해서 그런지 보글거리는 소리가 선명하여 기분이 좋다. 그러고 보니 식당의 손님은 나밖에 없었다. 옆에 있는 탁자를 보니깐 ‘브레이크 타임(Break time)’이라고 적혀 있는 팻말이 밖을 향하고 있다.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 준 것이리라. 나카무라 씨를 매개로 하여,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나를 위해···.

   채소가 삶아지는 동안 라이언 씨는 바삐 움직였다. 달궈진 팬에 버터를 녹이고, 이름 모를 생선을 굽기 시작했다. 생선의 겉면이 적당한 색을 띠자, 불을 줄이고 스푼을 사용하여 팬에 고인 육즙을 생선에 끼얹는다(Basting). 구석구석 꼼꼼하게 생선을 목욕시킨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숙성된 소스를 꺼내서 생선 윗부분을 적당히 적셨다. 잘 익은 생선을 하얀 접시 가운데 올려놓고, 잘 데쳐진 채소를 먹기 좋게 썰어서 플레이팅(Plaiting)을 마무리한다.

   “자, 먹어 보게.”

   딱딱해 보이는 손으로 요리가 담긴 접시를 내게 건네준다. 요리에서는 풍미가 가득할 것 같은 냄새가 그윽하게 올라온다. 미리 준비해둔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여 뼈가 없는 부분을 도려내고 푹 찍어서 입으로 넣었다.

   처음에는 버터 향이 살짝 감돌며 풍부한 지방의 맛이 났고, 곧이어 새콤한 소스의 맛이 혀의 양옆을 자극한다. 그리고 씹으면 씹을수록 생선 살을 촉촉이 적셔 있던 육즙이 흘러나왔다. 정말 맛있는 요리다. 지금 느껴지는 맛들은, 어제의 찹스테이크와는 다른 것들을 내게 보여 주고 있다.

   라이언 씨는 팔짱을 낀 채, 황홀해하는 내 표정을 보며 만족해한다.

   “어때, 맛있지?”

   정말 맛있다고 대답했다. 이런 맛은 내 인생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라이언 씨는 안쓰러운 표정을 한다.

   “얼마나 메마른 생활을 하고 있던 건가….”

   나는 그의 말을 듣지 못했고, 그저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라이언 씨는 까끌까끌한 금빛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말했다.

   “그 생선은 ‘농어’야. 농어를 베이스팅해서 촉촉하게 익히고, 초록 채소에 살짝 간을 한 요리지.”

   나는 무슨 생선인지 물어보는 것도 깜빡하고 음식을 먹고 있었다. 농어는 처음 먹어 보는 생선이다.

   그는 스테인리스 선반에 팔을 짚으며 이야기를 한다.

   “내 고향은 농어가 유명한 지역이었다네. 농어 철이 되면 수개월 동안은 식탁에 농어만 올라올 정도로 많이 잡혔어. 요즘은 잡히는 양이 많이 줄었다지. 아무튼, 그런 지방에서 농어만 먹고 자라다 보니 농어 요리가 손에 많이 익었지. 특히, 굽는 요리는 나에게 잘 맞았어. 어머니가 곧잘 농어 스테이크를 해 주었거든. 어머니의 방식에, 나만의 기술을 더해서 지금의 맛을 만들었지. 아마, 이 열차에서는 가장 맛있는 요리일 걸세.”

   라이언 씨의 말에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내가 생각해도, 충분히 자부심을 느껴도 좋은 맛이다. 이런 자부심은 그에게 강한 동기를 유발하고 있으리라.

   “이걸로 나카무라와의 약속을 지켰구먼.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녀석의 약속을 말이야.”

   순간, 라이언 씨와 눈을 마주쳤다. 그의 푸른 눈동자는 알래스카의 만년설처럼 영원할 것 같은 오라(aura)를 담고 있었고, 눈동자 주변에 붉은 핏줄들이 그것을 질투하는 듯 손을 뻗고 있었다.

   “자네도 느꼈겠지만, 나카무라는 좋은 녀석이야.”

   나카무라 씨는 좋은 사람이다. 제일 싫어하는 타입의 인간이었지만, 어느새 그렇지 않게 되었다.

   한동안 묵묵히 식사했다. 생선의 결을 느꼈고, 초록 채소의 식감을 즐겼다. 조금 지나자 어색한 적막을 깨고 싶은 듯, 라이언 씨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자네는 이곳이 마음에 드는가?”

   음, 아직 이곳에 온 지 사흘밖에 되지 않았다. 마음에 들 정도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전보다 식사가 다채로운 것과 수면의 질이 좋아진 것인지 자고 일어나면 몸이 가벼운 점은 마음에 들었다.

   “그렇군. 확실히 이곳에서의 생활은 건강에 좋지.”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가, 라이언 씨가 다시 그것을 깨부쉈다.

   “앞으로 이곳에 얼마나 머무는가?”

   나는 중앙병원에서 9박 10일을 처방받았으니, 하차하는 날까지 계산에 넣는다면 일주일 남짓 남았다. 그렇게 대답하자 라이언 씨는 내 등 뒤에 무언가를 응시하기 시작한다. 어렸을 적,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던 그런 눈을 하고 있었다. 나는 뒤를 돌아봤다. 식당 칸의 한 가운데에는 8명의 성인이 천장을 고개를 들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몸을 부딪친 키가 큰 사내도 있었다. 그때는 분명 4명이었는데 그새 머릿수가 늘었다.

   “자네는 늦지 않았으면 좋겠구먼.”


   식사를 마치고, 라이언 씨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라이언 씨는 미소를 살짝 지으며 또 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자네와 같은 눈을 알고 있어. 와타나베의 눈과는 조금 다르지. 나중에 여유가 생길 때, 그 눈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겠네.”라며 말했다. 내가 무슨 눈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내게서 무언가를 본 것이 틀림없다. 나는 다시 들르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를 뒤로했다.

   양치하러 방에 들렀다가(카림은 여전히 이어폰을 꽂은 채로 자고 있었다. 저러다간 그의 청신경-聽神經, acoustic nerve-은 얼마 가지 않아 망가질 게 틀림없다.) 안내데스크로 향했다. 데스크에는 아담한 체구의 안내원 마리 씨가 반듯하게 앉아 있었다. 미래에서 온 것 같은 헤어스타일은 변함없었다. 머리가 자랄 때마다 어떤 종류의 틀을 대고 커트를 하는 것일까.

   내가 데스크에 다가가는 것을 느꼈는지, 나를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밝게 인사한다. 귀여운 사람이다.

   나는 정신 건강 프로그램을 받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물었다.

   “특별한 절차는 없으십니다. 프로그램은 네 시간 간격으로 운영하고 있고, 만국 표준 시간(萬國 標準 時間, UST: Universal Standard Time)을 기준으로, 하루에 총 6회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으니깐 그 6회의 스케줄 안에서 환자분이 편하신 시간대를 이용하시면 되세요.”

   설명을 듣고, 지금 프로그램을 들을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스케줄 표를 확인한다.

   “어디 보자, -에, 10분 뒤에 ‘동양 글자 쓰기’가 시작하네요. 여기서 저쪽, G칸을 향해 가다 보면 커다란 프로그램 공간이 보이실 거예요. 거기서 들으시면 돼요.”

   나는 마리 씨가 손으로 가리킨 방향으로 갔다. 그녀의 설명대로 커다란 공간이 하나 나왔다. 프로그램 공간의 입구에는 ‘큐어 룸(Cure room)'이라고 적혀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역시나 통유리 회전문이다. 큐어 룸의 바닥 전체에는 폭신폭신한 매트가 깔려 있다. 그래서 신발을 벗고 들어오라는 안내 팻말이 있었다. 그리고 네모난 테이블과 의자들이 곳곳에 있다.

   적당한 자리에 앉아 시작을 기다렸다. 주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청소년과 노인이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사람은 세 명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린 친구들과 노인들에게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는 야오린 씨의 말이 생각났다. 그녀와 한 번쯤은 마주칠 만한데, 첫째 날 이후로 마주친 적은 없다.

   야오린 씨의 기다란 포니테일 머리를 생각하고 있어서 글쓰기 강사가 들어온 줄도 몰랐다. 큐어 룸 정중앙에 까무잡잡한 동양인 강사 세 명이 서 있었다. 그들은 ‘붓’과 ‘먹’이라는 동양의 전통 글쓰기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시범을 보였고, 이제 우리가 ‘한지’라는 투명한 종이에 글을 쓸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적을 글자는 精神力(정신력)이라는 동양의 문자다.

   강사 중 한 사람이 예시가 되는 글자가 적힌 한지를 보여 주었다.

   “옛날부터, 동양에서는 글자를 통해서 글자가 가진 의미 말고도, 글을 쓴 사람의 정신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이걸 보시면, 精神(정신)은 글자의 끝이 부드럽게 휘어있고, 붓의 거친 질감을 활용하여 화려하게 표현이 되어 있죠? 그리고 여기 力(력)은 精神과 다르게, 끝을 확실하게 맺고, 첫 획을 두껍게 표현하여 힘이 있어 보입니다.”

   확실히 그렇게 보인다. 일부러 力자만 절제하여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이 글자를 보고 글을 쓴 사람의 의도를 대략적으로나마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두 가지로 추려지는군요. 우선, 자신이 생각하는 정신력이란, 화려한 영혼 속에서도 원래 ‘의미를 잃지 않는 힘’이라는 것이 첫 번째고, 반대로, 절제된 力은 사실 절제된 것이 아니라 ‘초라해진 힘’을 나타낸 것이고, 그 힘을 화려한 영혼 속에 숨기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다는 게 그다음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보이시나요? ‘글자’라는 것은 그림과 같아서, 개인의 가치관과 현재의 정신상태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표현하고자 하는 精神力(정신력)을 마음껏 표현해 보세요.”

   눈앞에는 하얀 종이가 검은색 막대에 고정되어 있다. 이제 이곳에다가 저 붓과 먹을 사용해서 글자를 그려 넣으면 된다. 엉거주춤 붓을 쥐어 보자 옆을 지나가던 강사가 붓을 쥐는 법을 상냥하게 가르쳐 준다. 엄지와 검지의 위치를 재조정하고 힘을 뺀다. 붓에 진한 농도의 검은 액체를 듬뿍 흡수시킨다. 그리고 적당히 털어 내서 한지에 획을 긋는다. 뭔가 잘못했다. 나는 반듯하게 긋고 싶었는데 구불구불한 모양이 되었다. 너무 힘을 뺀 것일까. 이번에는 적당히 힘을 주고 획을 그었다. 이번 획은 지나치게 두껍다. 붓을 다루는 것은 상당히 까다로웠다. 어린 친구들은 이따금 손을 들어서 자기가 잘 쓴 것인지 강사에게 확인을 받곤 했다. 개중에는 동양 사람도 있었다. 동양 사람이라고 전부 잘 쓰는 것은 아니리라. 하긴, 나도 부모님으로부터 ‘네 알파벳은 정말 엉망이야!’라는 잔소리를 곧잘 들었다. 나는 한지를 다시 받고 글자를 쓰는 데 정신을 집중했다.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우리가 쓴 글자들을 유리로 된 게시판에 붙였다. 우리 다음으로 오는 환자들에게 보여 줄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내가 쓴 것을 대표로 보여 주진 않을 것 같다. 나는 벽에 붙어 있는 나의 작품을 바라봤다. 동양의 글자를, 서양식 추상화로 표현한다면 이런 모양이지 않을까 싶은 것이었다. 여기에 내 정신이 담겨 있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지금 내 정신은 흐물흐물하고, 끝이 흐릿하며, 정확한 의사전달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적당히 재밌고, 지루한 프로그램이었다. 이게 우울증 치료에 무슨 도움을 주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 정신 속에 난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갔을지도, 그것도 ‘붓’으로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자 문득, 붓을 들고 웃고 있는 노인들, 제가 쓴 글이 어떠냐고 물어보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뭔가 꺼림칙하다. 그들이 이상해 보인다. 별거 아닌 치료임이 분명해 보이는데 억지로 이 행위에 의미 부여하는 기분이 든다. ‘이 글쓰기 프로그램이 내 우울감을 날려 줄 거야.’라며 생각하고 이 열차에 동화되고, 이 열차에 기대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끼어 있는, 지금 여기에 있는 내가 매우 낯설게 느껴진다.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실히 일하는 사회인이었다. 지금도 물론이고, 여기는 잠깐 쉬러 온 것이다. 한 곳을 응시하며 식빵을 씹는 버릇이 있기는 하지만, 렉사프로나 졸로푸트를 먹을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가볍거나 무거운 우울증을 앓는 환자들과 얽혀서 살아생전 처음 보는 문자에 의미를 부여하고, 글자를 쓰고 있다. 건널목 횡단보도 왼편에는 오리 가족들이, 오른편에는 거위 가족들이 있다. 초록 신호가 켜지자, 오리와 거위 가족은 횡단보도를 건넌다. 횡단보도 중간지점에서 서로 교차하고, 이윽고 길을 건넌다. 왼편으로 건너온 거위 가족들이 집을 향하는데 뭔가 이상하다. 어라? 우리의 행렬 끝자락에 오리가 끼어들어 왔다. 내가 바로 그 오리와 같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내 기분을 자세히 알고 싶어 장황하게 묘사를 해 봤다.

   이 ‘프로그램’이라는 게 정말 묘하다. 내가 프로그램을 받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부터 내가 진정한 ‘환자’가 되었다는 기분을 떨쳐 내기 어려워진다. ‘아, 내가 아프긴 한가 보다.’, ‘광합성 열차 처방을 받은 이유가 있나 보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치료에 거부감을 느낀다. 나는 아직 ‘일시적인 우울감’에 시달린 정도지만, 이들과 함께한다면 이윽고 중증우울증이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면서 말이다.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는, 치료의 역효과가 시작되리라. 저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 치료를 거부하는, 모순적인 행동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여 부정적인 고리를 형성하리라. 그 고리는 두껍고 단단하여 쉽게 끊어지지 않으리라···.

   책상을 정리하고 신발장에 서자 묘한 기분에 유리 게시판 쪽을 보았다. 내 ‘정신력(精神力)’은 가만히 벽에 붙어 있다. 이상하다. 방금, 저 곡선들이 꿈틀거린 것 같았는데. 그럴 리가 없지. 나도 점점 열차 내 환자들과 닮아 가는 것일까. 정신력의 ‘공유’를 통해서.


   기분이 이상해졌다. 농어 스테이크의 효과가 사라져 버린 것일까. 이 기분 나쁜 감정을 떨쳐 내고 싶다. 방으로 가서 조금 쉬면 괜찮아질까? 그러나 시베리아 가옥의 창문처럼 차가운 룸메이트가 있는 방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환자’가 아닌 라이언 씨를 만나야겠다. 그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 원래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곧바로 광합성 식당 내에 있는 ‘라이언 스테이크 하우스’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금발 까까머리의 사내는 없었다. 그를 대신해서. 어딘가 맹해 보이는 청년이 있었다. 라이언 씨는 분명 교대하여 잠을 청하러 갔으리라. 어떡해야 할까. 그래. 야오린 씨를 만나러 가자. 내 기분을 설명하고 혹시, 예정보다 빨리 열차에서 내릴 수 있는지 물어보자. 그런데 간호사실은 어디지? ··· 결국, 식당에서 가까운 광합성 공원으로 왔다. 잠시 앉았다가 마리 씨를 찾아가 간호사실이 어딘지 물어보자.

   나는 나카무라 씨와 대화를 나누던 벤치에 앉아서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멋있었다. 슬슬 지겹게도 느껴진다. 먹구름이 잠깐 이어져서 흐려지다가, 찰나의 어둠도 허락하지 않는 듯이, 다시 태양이 모습을 보였다.

   오늘 아침에 라이언 씨와의 대화를 떠올려 보았다. 나와 같은 눈을 알고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라이언 씨는 ‘어머니와 같은’ 눈으로 햇볕을 쬐는 무리를 바라보았다. 어렸을 때, 내가 중앙병원에 가야 하는 이유를 알려 주던 눈. 내 안구 너머에 ‘죽음’ 비스무리한 것을, 혹여나 놓칠세라 뚫어져라 쳐다보는 눈이었다.

   얼마 전까지 집에서 식빵을 씹으면서, 삶이란 무엇인지, 죽음이란 무엇인지, 영원(永遠, eternity)이란 무엇인지 고민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일하는 중간마다 과거의 ‘성인(聖人)’들의 말을 찾아보고 곱씹어 봤지만 내게 위로와 안식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나는 세월이 흘러도 철학적 깨달음을 얻지 못한 채 그저, 심장이 멈춰 버린 고깃덩어리가 되어 흙이 되어 버리는 것일까. 항상, 내 생각의 끝은 이런 식으로 마무리된다. 어떠한 꿈도 희망도 없는 비극이다. 그리고 또다시 이 생각에 빠진다. 무언가를 씹으면서, 그게 빵인지 고무인지도 모른 채, 질겅질겅 씹으며 삶이 무엇인지 다시 고뇌에 빠지며, 그리고 다시 비극으로 끝난다. 언제부턴가 이런 고리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끊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고리가 끊어지는 순간, 나는 고리의 선(line)에서 이탈하여 심연으로 떨어질 것이다. 이 부정(不淨)의 고리가 나를 지금까지 살아 있게 하는 것인가. 이 고리가 없었다면, 나는 일찍이 사라져 버렸을까. 그건 아마도, 벽을 보면서 식빵을 씹기 시작한 이전이겠지. 내 세포의 생존 DNA가 발현되어, 내 사고(思考)를 영원이라든지, 죽음 쪽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정말로 찾아올 수 있는 죽음’을 외면하기 위해,

   내가 점점 열차의 농도에 맞춰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살짝 짭조름한 소금물인데 주위에는 간장과 같은 사람들이 많아서 그들과 섞이면 섞일수록 내 무언가의 농도가 짙어져 간다. 야오린 씨를 만난다면, 기타 불순물이 섞여 있지 않은 증류수(蒸溜水, distilled water)를 내게 부어 주지 않을까. 내 농도가 연해질 수 있게.


   나는 광합성 공원을 빠져나와서, 다시 마리 씨를 찾아갔다. 마리 씨는 아까 만났을 때와 똑같이, 반듯한 자세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내가 데스크로 다가가자 그녀는 나를 알아채고 일어난다.

   “또 오셨네요. 프로그램은 괜찮으셨나요?”

   마리 씨는 상냥하게 물어봤다.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았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간호사실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봤다.

   우리가 열차에 탑승한 첫날에 안내받은 네 갈래 길에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가자 간호사실이 눈에 보였다. 간호사실 바로 옆은 의사실이었다. 나는 노크를 두 번 하고 간호사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은 아픈 환자들을 충분히 수용할 만큼 넓었고, 침대의 개수가 많았다. 광합성 열차답게, 침대와 침대를 구분하는 것은 우리가 병원에서 보던 흰 커튼이 아니라 속이 뿌연 유리로 되어 있다. 자연광(自然光)의 사각지대는 없었다. 몇몇 간호사는 자신의 책상에서 사무를 보고 있었고, 다른 몇몇은 환자들을 골고루 살피고 있었다. 입구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간호사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어디 편찮으셔서 오셨나요?”

   나는 기분이 이상해서 왔다고 했다. 

   “그러시군요. 기분이 어떻게 이상한지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갑자기 부정적인 생각이 몰려든다고 말했다.

   간호사의 얼굴은 살짝 어두워졌고, 환자 번호가 적힌 팔찌를 보여 달라고 했다. 그리고 나를 사방이 유리로 막혀 있는 병실로 안내했다. 간호사는, “이곳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으면 담당 간호사가 올 거예요”라며 말하고는, 내가 있는 병실의 문을 닫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병실은 내 숨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외부의 소음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다. 걷는 소리, 의료진의 말소리 등 작은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커다란 구름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뭘까. 병원 속의 병원에 온 이 기분은.

   10분 정도 기다리자 야오린 씨가 내가 있는 병실로 왔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캔버스 백이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뭔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다른 간호사가 이곳으로 안내했나요? 이런···, 우선 이곳에서 나가죠. 괜찮은 곳이 있어요.”

   나는 야오린 씨를 따라 병실을 나왔다. 밖으로 나오며 내부를 둘러보니 의사실과 이어지는 통로가 있었다. 저곳을 통해 의사와 간호사가 소통하는 것이리라. 밖에서는 몰랐지만, 내부에서는 긴밀하게 통하고 있다. 저 통로를 보고 있자니 직장 생각이 났다. 우리 회사의 정보 보안 직원은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그래서 나를 제외한 사람들이 무얼 하면서 사는지,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등 아무것도 모른다. 만약에 ‘나’만 모르고 있는 것이라면 어떨까. 겉으로는 그렇지 않아 보이지만, 다들 연락도 하고, 모임도 하고 있으며, 가끔 축구라도 하는 사이라면···.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남’의 생활에는 관심이 없었다. 근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일까. 왜 나 혼자만 무인도에 갇혀 있는 기분이 드는 걸까. 왜 자꾸 피해망상에 빠지는 걸까.

   별로 유쾌하지도 않은 생각들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야오린 씨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속이 뿌연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아까의 병실과 비슷한 공간이었다. 사방이 뿌연 유리 벽이 있고, 천장은 역시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다. 다만, 침대 대신에 동그란 탁자와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다는 점과 바닥에는 목소리 때문에 공간이 울리지 않도록 폭신한 카펫이 깔린 점이 달랐다. 병실보다는 조금 좁은 공간이었지만, 이상하게 숨통이 트인다.

   야오린 씨는 테이블에 들고 온 캔버스 백을 올려놓고 내게 의자에 앉으라고 권했다.

   “이곳은 의료진들이 간단한 미팅을 할 때 사용하는 공간이에요. 환자분들은 사용하면 안 되지만···, 제가 붙어 있으니깐 괜찮을 거예요. 병실보다는 훨씬 좋잖아요?”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캔버스 백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물, 초록색 알약, 다크 초콜릿이다.

   “대충의 내용은 듣고 왔어요. 부정적인 생각이 끊임없이 생각난다면서요. 일단, 종합비타민이랑 초콜릿을 가져왔어요. 기분 전환에 작게나마 도움이 될 거예요. 신체에 영양분이 부족하면 기분이 우울해지죠.”

   나는 초록색 영양제를 들고 냄새를 맡아 보았다. 어떠한 냄새도 나지 않는다. 렉사프로가 초록색은 아닐 것이다. 수수께끼의 캡슐을 단숨에 삼켰다. 맞은편에는 야오린 씨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 거죠?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게 이야기해 주세요.”

  나는 오늘 프로그램을 받으며 느꼈던 기분을 최대한 꾸밈없이 설명했다. 그리고 어딘가에 구속된 거 마냥 답답하고,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아서 열차에서 내릴 수 있으면 그러고 싶다고 말했다.

   야오린 씨는 의아해하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환자분의 그 말씀, 어르신들이 들으셨으면 ‘행복한 소리 하고 있네!’라며 호통치셨을 거예요.”

   그렇긴 할 테지만···, 정말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고, 그 때문인지 불안감을 종종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시간이 늦게 가신다는 건, 주변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는 증거에요.”

   내게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주변’이라는 게 없다. 회사 생각도 ‘주변’ 생각이려나. 내 주변 범위는 가족과 회사 컴퓨터(사람은 포함되지 않는다)까지다.

   “도파민(Dopamine)이라고 들어 보셨어요?”

   뭐, 사랑···, 감정··· 그런 것에 작용하는 거였나?

   야오린 씨는 내 대답이 재밌었는지, -쿡쿡하고 웃었다. 살짝 웃으며 그녀의 기다란 포니테일의 끝부분이 살짝 찰랑거렸다.

   “맞아요. 많은 사람이 사랑에 관련된 신경전달물질로 알고 있죠. 물론, 맞는 말이에요. 도파민은 인간을 흥분시켜서 삶의 의욕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아주 중요한 물질이에요. 사랑이나 쾌락의 감정을 느낄 때, 인생이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죠. 그런데 도파민은 감정에만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이 아니에요.”

   그녀는 허공을 바라보던 시선을 내게 돌리고, 오른손의 검지를 세워 ‘No'라는 의미를 강조하고 싶은지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도파민은 자신의 주위 환경을 분석하고 해석할 때 많이 분비돼요. 그게 낯선 환경이면 더욱더 분비되겠죠? 도파민 분비가 많이 될수록 뇌가 처리하는 정보량이 많아지고, 무의식적으로 많은 것들을 정신없이 생각하고 있으면 상대적으로 외부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음···, ‘주마등’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주마등을 겪어 본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것과 상당히 비슷하다고 해요. 왜, 그거 있잖아요. 10톤 트럭이 나에게 빠르게 달려오고 있고, 나는 약 3초 뒤에 그 트럭과 부딪힐 게 분명한 상황에서, 그 3초 동안 내 유년 시절, 학창 시절, 주위 사람들, 행복했을 때, 좌절했을 때 등이 마구 떠오르죠. 트럭은 아주 천천히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지고요. 트럭과 부딪힌다는 낯선 상황을 분석하기 위해 도파민이 과다 분비되고, 동시에 여러 생각이 흘러넘치게 되는 거죠. 대충 느낌이 오시나요?”

   대충 느낌이 오긴 하는데, 주마등이라. 주마등···. 영화의 시각적인 연출로나마 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본 게 아니라서 크게 와 닿지 않는다.

   이러한 내 생각을 말하자, 야오린 씨는 턱을 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 그럼 이건 어떨까요. 예를 들어, 우리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했어요. 입학식에 가기 위해 처음으로 중학교 등굣길에 오르게 되죠. 버스로 가든, 도보로 가든 간에 6년 동안 다녔던 초등학교 등굣길보다는 확실히 낯설죠. 건물도 다르고, 가로수의 종류도 다르고, 버스 노선도 달라요. 모든 게 새로워서 등굣길이 길게 느껴져요. ‘언제면 도착할까?’, ‘이 길이 맞나?’, ‘여기서 내리면 되나?’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요. 이는 새로운 환경을 분석하기 위해 도파민 분비가 평소보다 많이 분비되고, 뇌가 많은 정보를 처리하면서 느끼게 되는 시간 감각이죠. 그런데 이런 등굣길도 1년? 아니, 수개월 정도 지나면 익숙해져요. 방금 집에서 출발한 것 같은데, 어느새 학교가 보이기 시작하죠. ‘아니, 벌써 도착했어?!’, ‘버스에서 좀 더 자고 싶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죠. 새로운 환경이 일상이 되어 버려서 도파민 분비량이 평소보다 적어지면서 외부의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죠. 이번 설명은 괜찮았나요?”

   야오린 씨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내 반응을 살폈다.

   확실히, 방금 설명은 내가 어렸을 때 겪어 본 것들이라서 이해하기 쉬웠다. 내가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느끼는 것은 ‘광합성 열차’라는 새로운 환경을, 내 그리 뛰어나지 않은 두뇌가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마구 뿜어내며 분석하고 해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열차에 탑승한 날은, 학교 입학식과 같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나는 열차에서 이따금 하늘이나 벽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사색을 하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가만히 지켜봤다. 때때로 지루함도 느꼈다. 지루하다는 것은 도파민을 마구 뿜어낼 만큼 주위 환경을 분석할 필요가 없는 환경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면 도파민 분비량이 적어져서 시간은 빠르게 흘러야 한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지루하면 시간이 느리게 간다. 이건 뭘까?

   내 질문에 야오린 씨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나는 오늘만 해도 그녀를 여러 차례 곤란하게 만드는 것 같아 미안했다.

   야오린 씨는 확신이 없는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그러게요. 이번에는 그냥···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문득 떠올랐어요. 우리는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은 생활을 하는 게 아닐까요? 그러니깐, ‘지루함’을 느끼는 일이 별로 없었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의 두뇌는 자신의 신체가 평소와는 다르게 지루함을 느끼니깐 그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도파민 분비를 많이 하게 되는 거죠. 우리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느끼지만 두뇌는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있는 ‘무언가’를 분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정확하지는 않아요.”

   지루함을 느끼는 날이 흔하지 않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설명이 길어졌는데, 어쨌든, 환자분이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라고 느낀다는 것은, 도파민 분비가 촉진된 상태라는 증거가 되고,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다는 거예요. 저는 기쁜걸요? 제가 환자분을 처음 만났던 날에 말씀드린 것을 잘 지켜 주시고 있다는 거잖아요.”

   야오린 씨를 처음 만난 그날, 그녀는 ‘그냥 평소와 다른 것을 하러 오셨다고 생각하시면 마음 편해요.’라고 말했다. 내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느끼는 것이리라.

   “열차에 처음 온 환자들을 보면, 유난히 이 광합성 열차를 낯설어하는 분들이 계세요. 저는 그런 분들을 만날 때마다 ‘평소와는 다른 것을 하러 왔다’고 생각하라고 자주 말하죠. 환자분이 그랬고요.”

   그리고 잠깐의 침묵이 있었다. 야오린 씨는 슬픈 얼굴을 하고, 눈을 반짝거리고 있다.

   “계기가 있더라고요. 시간이 천천히 흐르게 되는 계기 말이에요. 계기가 된 이후의 시간은 정말이지, 엄청나게 찐득찐득해져서 사람을 보이지 않는 차원에 붙여 버려요. 달팽이가 진액을 흘리며 나뭇잎에 붙어 있는 듯이요. 잘 떨어지지도 않고, 떼어 내려 발버둥을 쳐 봐도 끈질기게 매달려 있어요.”

   야오린 씨는 갑자기 “아니지, 아니지”라며 중얼거리더니, 양 손바닥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찰싹 소리가 들릴 정도로 잡더니, 목소리에 힘을 실어서 말했다.

   “그리고 이곳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매우 많은 사람과 부딪히는 곳이에요. 환자마다 기차에 머무는 기간은 천차만별일지라도, 인간의 몸에서 우울증이 만들어지는 기간에 비하면 이곳에서의 시간은 아주 짧은 편이고, 우울증을 가진 사람이 평소에 만나는 사람보다 훨씬 다양한 사람들을 이곳에서 마주하죠. 빠르게 환자들의 우울감을 해결해서, 다시 사회로 돌려보내기 위한 의료시설이 이 ‘광합성 열차’에요. 그저 햇볕을 쬐기 위해 열차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랍니다. 광합성 열차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노출요법(露出療法, Exposure therapy)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매우 넓고, 개방적으로 디자인되었죠. 객실, 식당, 테이블, 공원 등 모든 것들이, 환자가 다양한 사람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동선에 자리 잡고 있죠. 그리고 의료진과 직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환자들과 대화를 나누도록 교육을 받았어요. 단숨에 마음의 거리를 좁혀 다가가야 하죠. 그래서 시간을 들여서 이루어져야 하는, 열차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꾹꾹 압축시켜서 환자들에게 제공하고 있으니 정신없고, 불안할 수밖에 없죠.”

   자연스럽게 노출요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야오린 씨가 나에게 상당한 친절을 베푸는 이유 또한 알게 되었다. 광합성 열차는 우리를 최대한 빨리 회복시켜서 얼른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고 일을 시키기 위해서 치밀하게 설계된 시설이었다.

   내가 꽤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야오린 씨는 재빨리 다시 설명했다.

   “저기···, 그런 교육을 받았다는 것뿐이고, 직원들이 거짓된 마음으로 환자분들을 대하는 건 아니에요. 교육은 교육일 뿐이죠. 모든 직원이 그것을 따르진 않아요. 환자와의 대화를 귀찮아하는 직원도 많고, 무슨 주제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곤란해 하는 직원도 많아요. 우리도 똑같은 ‘인간’인 걸요. 그러니깐, 아까 제 말에 오해하지 않아 주셨으면 고마울 것 같아요.”

   야오린 씨는 -싱긋하고 웃어 보였다. 그녀의 웃음에는 거짓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환자분께서는 하루하루가 갑자기 정글에 떨어진 사람이 험난한 시련을 거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일 거예요. 그러니 오늘과 같이 불안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해요. 도망가고 싶기도 하고, 열차에서 내리고 집으로 가고 싶을 거예요. 환자분만 그런 게 아니에요. 저도 그렇고 모두가 그래요. 새로움을 만난 인간은 불확실한 미래가 두려울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깐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지금, 이 순간도 어느새 익숙해져 버려서 시간이 빠르게 흐르기 시작할 거예요. 그때는 너무 빨라서 많은 것들을 놓칠 수도 있어요. 그러면 다시 새로움을 찾아 떠나야 하죠. 그리고 다시 불안함을 느끼고···.”

   야오린 씨는 하늘을 바라본다. 가느다란 오른손 검지를 뻗어서 허공에 동그라미를 그린다. 그녀는 그 이후에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내가 말해 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정적을 깬 것은 야오린 씨였다. 내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다.

   “정신과 간호사를 한 지 벌써 30년이 되어가요. 정신병동에도 오래 있었죠. 많은 환자를 살펴보고 있으면, 어린 환자의 시간과 노인환자의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걸 확인할 수 있어요. 도파민은 나이가 들수록 분비량이 적어지거든요. 어린이들은 자신을 붙잡고 있는 시간을 답답해하고, 노인들은 자신을 두고 가는 시간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에요. 병동에서 이 극과 극의 세대를 섞어 놓으면 꽤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어요. 서로의 시간을 밀고 당겨 주면서 적정 속력에 가까워지고 환자들은 안정감을 느끼죠.

   우울증과는 다른 이야기지만, 예전에 어떤 치매 노인들을 전문적으로 케어해 주는 복지시설에서 획기적인 치료법을 도입한 적이 있어요. 바로, 치매 노인들에게 유기 동물을 돌봐 주게 하는 거죠. 이 방법은 효과가 정말 좋았어요. 평소, 면회 온 가족들을 알아보지 못한 치매 노인들이 가족들을 이따금 알아보기 시작했고, 운동 신경이 좋아져서 쉽게 다치지도 않게 되었어요. 일찍이, 시간이 느리니, 빠르니 이야기했지만, 결국 도파민이라는 것은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에요. 인간과 인간, 아니면 인간과 동물이 섞이면서 서로를 의지하고, 때로는 돌봐 주면서 우리는 이 우주 속을 살아가죠.”

   이후로도, 야오린 씨와 한참 이야기를 했다. 열차에서 만난 나카무라 씨와 푸드코트의 라이언 씨 이야기를 했다. 그녀도 라이언 씨를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가끔 그곳에서 식사를 해결하곤 한단다. 그녀와도 ‘라이언’이라는 인물에 대한 기억을 공유할 수 있어서 기뻤다. 왜 기쁜지는 모르겠지만, 라이언 씨와 함께 나카무라 씨의 이야기를 했던 ‘그것’과 같은 것이리라.

   야오린 씨와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인간이 다른 생물과 서로 의지하고, 돌봐 주며 살아간다는 그녀의 말을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을 지금 내가 피부로 느끼고 있다. 아까는 무슨 이유로 불안함을 느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다. 대화가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에서 나는 그녀에게 진심을 담아 고맙다고 말했다.

   “천만에요. 환자분들을 보살피는 게 저희 일인걸요. 오히려, 아까는 제가 너무 가르치듯이 말한 것 같아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상담은 역시 어렵군요.”

   그녀는 쑥스러워하며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하는 내내 궁금했던 것을 물어봤다. 아무리 간호사라지만 어째서 이렇게나 도파민에 대해 잘 알고 계시는지 물어봤다.

   그녀는 대답했다.

   “그럴 만한 ‘계기’가 있었을 뿐이죠.”


   언제든지 자신을 찾아와도 좋다고 말을 하는 야오린 씨를 뒤로하고 광합성 식당으로 갔다. 불안감이 해소되어서 그런지, 아니면 아까 먹었던 다크 초콜릿이 죽어 있던 입맛을 소생(甦生)시켜 준 것인지, 아무튼 허기가 졌다. 혹시 라이언 씨가 돌아와 있지 않을까 하여 푸드코트를 먼저 살펴봤지만, 아직도 맹한 얼굴의 제자가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그래도 아까와는 다르게 손님이 제법 있었다. 라이언 씨가 돌아오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12시간씩 일을 하고 교대를 하고 있겠지.

   불안함은 사라졌기 때문에 지금 당장 라이언 씨를 만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나중에 만나면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해 말씀드려야겠다.

   그래서 오늘은 오랜만에 광합성 식당의 음식을 먹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깐 첫날의 첫 끼니를 제외하곤 전부 라이언 씨의 가게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키오스크로 메뉴를 주문하고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주방은 여유가 있는지 금세 음식이 나왔다. 지난번과는 다른 요리사가 음식을 건네주었다.

   오늘의 메뉴는 버터 롤과 겉면을 살짝 익힌 연어가 들어간 샐러드였다. 심플했지만 샐러드에 다양한 채소와 연어가 듬뿍 들어가 있어서 만족스러운 구성이었다. 왠지 나카무라 씨가 이 메뉴를 봤다면 몇 번이고 먹었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부드러운 연어를 음미하며 야오린 씨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칙칙한 방에서 벽을 보며 식빵을 씹던 사내가 비교적 빠르게 열차에 적응한 것은 모두 광합성 열차의 치밀한 계획이었다. 나카무라 씨와 이틀 만에 대화를 한 것도, 그리고 그 대화의 내용이 꽤 진지한 것도, 라이언 씨와 친해질 수 있었던 것도, 이 전부가 말이다. ‘천천히’ 이루어져야 할 것들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가 빨리 우울함을 털어 버리고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나뿐만이 아니라 열차의 모든 환자, 심지어 의료진 같은 직원들도 나와 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고 하였다. 광합성 열차는 이른바, 우울증 계의 ‘스테로이드(Steroid)’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나는 야오린 씨와 대화를 나누고 오히려 편안함을 느꼈다. 열차가 치밀하게 계산된 공간인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남들과 비슷하다는 소속감이 포근한 안정을 선사해 주리라 생각도 못 했다. 나는 남들과 다르지 않다. 적어도, 광합성 열차에 탑승한 사람들과는 다르지 않았다.

   방으로 돌아오니 카림이 있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어폰을 끼고 무언가를 보고 있다. 슬슬 궁금하기 시작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길래 몇 날 며칠을 동영상 속에 빠져 있는 것일까. 하지만 물어봤자 싸늘한 반응이 돌아올 게 뻔해서 그러지 않았다. 모처럼 찾아온, 이 기분 좋은 감각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나와 저 사람 사이에는, 치밀한 광합성 열차의 시스템도 어쩔 수 없는 것이리라. ‘빠르게’ 가까워지기는커녕, ‘빠르게’ 멀어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열차가 극지방을 지나가고 있는지, 침대에 누워 올려 본 하늘은 티끌 하나 없이 파랗다. 평소보다 더 진하게 느껴진다. 나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천천히 음미했다. 시간이 흐르는 감각을 느끼고, 열차의 미묘한 진동을 감지해 보기 위해 감각을 곤두세워 봤다. 생동감 같은 것들이 내 마음을 관통하며 지나간다. 내 주변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느끼는 것은 내게 좋은 현상이다. 이렇게 생각하니깐 답답함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분명 무념무상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지만, 내 두뇌가 열심히 도파민을 분비하며 주위를 분석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귀엽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해 보자. 이곳으로부터 도망쳐도, 다시 이곳에 돌아올 것이 분명하다. 오히려 그때는 더욱 오랜 기간 동안 이곳에 갇혀 있어야겠지. 그래. 내일도 새로움을 향하고, 받아들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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