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전의 이야기야. 언젠가, 그녀가 내 식당에 밥을 먹으러 온 적이 있어. 그때 그녀의 모습이 조금 이상했지. 술에 취한 사람처럼 눈이 풀려 있었고, 오른손을 심하게 떨고 있었어. 하지만 술 냄새는 나지 않았지. 전에 말했듯이, 열차에서 음주는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어.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그 몰골이 된 것이면, ‘다른 걸’ 했겠지. 이건···, 그냥 추측이야. 확신은 없어.
아무튼, 우리는 서로 비슷한 시기에 이 열차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안면은 있었지.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잡은 포크로 찹스테이크를 찍으며 내게 말을 했지. 자신의 남동생이 해바라기를 좋아했었다고 말했어. 뜬금없는 말에 당황스럽긴 했지만, 적당히 대답했어. 일을 쉬는 날에 동생에게 해바라기를 선물해 주면 되겠다고 말이야.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녀의 남동생은 그녀가 중학교 2학년의 여름을 맞이했을 때, 죽었어. 당시, 남동생은 초등학교 3학년, 10살이었지. 그녀의 동생은 심한 조현병(구.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었어. 조현병은 기본적으로, 뇌에 과분비 된 도파민이 문제가 되어서 환각 증상 등을 불러일으키는 질병이야. 근본적인 원인은 모르겠지만, 동생이 언제부턴가 기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도파민’ 분비를 억제하는 향정신성 약물을 먹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수준까지 와 버렸다고 말했어.
학교도 잘 다녔었지만, 9살 때부터 학교를 쉬고 있었지. 담임 선생님은 동생이 매일 학교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아이들을 때리는 등 기이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고 걱정했어. 학교를 쉬어야 할 것 같다는 소식을 학교에 전하자, 담임 선생님은 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부모님께 말했다더군. “···학부모님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제가, 저희 반 애들이···, 너무, 너무 힘들었습니다.”라고 말이야. 아마도, 순간적으로 느낀 안도감에 죄책감을 느꼈던 것이겠지.
그렇게 학교를 쉬게 되었는데도, 동생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매일같이 책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갔다고 말했어. 그리고 집에 돌아올 때는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어서 돌아오고, 책가방에는 야생 꽃들이, 가방의 지퍼가 열린 부분에 -빼꼼하고 머리를 들고 있었다고 했어. 그 이야기를 할 때, 그녀는 마치 눈앞에 그 꽃이 보이는 것처럼 한곳을 응시하고 있었지.
동생이 말하기를 “누나, 가방을 꽉 닫으니깐, 가방에서 소리가 들렸어. ‘너무 답답해’, ‘밖의 공기를 마시게 해 줘’라고 말이야! 그래서 내가 지퍼를 조금 열어 주고 우리 집까지 업어 주었어. 잘했지?”라며, 꽃처럼 활짝 핀 모습을 하고 있었다더군. 그래서 야오린과 부모님은 동생을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어. 아이가 활짝 웃고, 씩씩하게 다니니깐 꽃을 따오는 행동이 동생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 같았거든.
그렇게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머릿속의 ‘어둠’이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음미하며 삼키고 있었던 것이었지. 사고가 일어나기 나흘 전부터 동생이 이상한 소리를 하더래. 야오린은 그때 중학교 1학년으로 바쁘고 예민한 사춘기 여학생이었고, 새로 사귄 친구들과 여름방학을 즐기고 있었지. 아무튼, 그 이상한 소리라는 게, 오후 2시가 되면, 온몸이 유리로 된 나비 수백 마리가 날아와서 자신을 괴롭힌다는 거야. 뜨거운 태양 빛에 반사된 수백 마리의 나비가 자신을 감싸며 가지고 놀았다고, 그 반사되는 빛들이 너무 눈부셔서 눈을 감았는데, 그 투명하고 하얀빛이 눈꺼풀을 뚫고 들어와서 자신을 괴롭힌다고 호소했어. 가족들은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 그건 지금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더군. 그냥 평소처럼 환각과 망상에 빠져서 느껴지는 모든 것을 말한다고 생각했지. 사고가 일어나기 하루 전까지 유리 나비가 괴롭히고 있다고 말했고, 이제는 눈이 안 보인다고 호소했다더군. 혹시나 해서 저녁에도 운영하는 안과에 데려갔는데 아무 이상이 없더래. 의사는 동생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일시적인 증상인 것 같다고만 말만 반복했을 뿐이었어. 그날 밤, 동생은 푹 쳐진 채로 잠을 잤어. 야오린이 보기에는, 동생이 무언가에 온몸의 정기를 다 빨린 것처럼 말이야.
사고가 일어난 날 아침, 야오린은 기운 없는 동생을 위해 해바라기 하나를 꺾어 왔어. 삼 주 전에 동생이 해바라기 삼 형제를 만나고 왔는데, 동생이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하는 법이 없었고, 그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고 말했어. 동생은 야오린에게 그 해바라기들이 너무 멋있었다고 소리쳤어. 자신은 주위에서 너무 많은 말을 걸어오고, 때로는 무언가가 자기 귀에 바싹대고 “안녕”하고 속삭이는 탓에 매일같이 흠칫 놀라 버리는데, 해바라기들은 용감하고 씩씩해서 주위의 말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보고 싶은 것을 바라본다는, 자신과는 다른 점이 너무 멋있었던 거야.
야오린은 그때의 동생의 얼굴을 잘 기억하고 있었어. 동생이 해바라기에 푹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았지. 그래서 그 해바라기를 동생의 책가방에 머리가 보이도록 꽂아 넣고 외출을 했어. 이전에 친구들과 수영장에 가기로 약속했었다고 말하더군. 수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날씨가 좋았더래. 오후 5시의 살짝 노릇노릇한 하늘에 풍성한 적운이 가득하고, 축축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서 젖은 머리카락을 시원하게 말려 주는 그런 환상적인 날씨였어. 집까지 건널목 하나를 남겨 놓고 있었는데, 익숙한 모습이 보였어. 가방에 해바라기를 꽂아 놓고 다니는 소년 말이야. 소년은 눈을 감고 있었고 오른손을 쭉 뻗은 채 무언가를 쫓아가고 있었어. 끌려가고 있다는 게 더 그럴듯해. 그리고 뭐라 뭐라 계속해서 중얼거리고 있었어.
야오린은 겁도 나고, 이상하게 분노가 머리끝까지 솟아올라서 동생을 쫓아가서 동생의 팔목을 강하게 낚아채며 소리쳤어.
“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눈은 왜 감고 있어! 지금 자동차 소리, 오토바이 소리 안 들려? 이젠 현실에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야? 그러다 큰 사고라도 나면 어쩔 거야. 지금까지 너만 바라보며 살아온 우리 가족은 어쩔 거냐고?! 대답 좀 해 봐!”
하지만 동생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고, 동생은 아주 다급한 듯이 말했어.
“누나, 나 빨리 가 봐야 해! 나비들이, 그 유리 나비들이 내 눈을 고쳐 준대! 자신들을 따라오면 강렬한 빛에도 눈을 뜰 수 있도록 해 주겠대! 내가 지금 가지 않으면, 이 녀석들 장난이 심한 애들이라서 누나나 엄마나 아빠를 괴롭힐 게 틀림없어. 그러니깐, 지금 내가 가서 어떻게 치료하는지 배우고 올게! 그러니깐 이 손을 놔 줘!”
야오린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동생의 머리에 꿀밤을 놔 줬어. 그녀의 작은 손이 얼얼할 정도로 말이야. 그리고 그 손에는 동그란 눈물이 -뚝뚝 떨어졌어.
“너··· 진짜! 속상하게 왜 그래!!!”
“누나 울지 마. 괜찮아! 내가 가서 배우고 올게. 그리고 나비들이 우리 가족들을 괴롭히지 못하게 단단히 일러둘게. 미안해 누나. 나 ‘더 늦기 전에’ 가 봐야 해. 지금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몰라. 나 먼저 가 볼게!”
그렇게 동생은 양손으로 야오린의 팔을 떼어 내고, 보이지 않는 나비들을 향해 달려갔어.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빠르게 달렸어. 그리고 머지않아 -쾅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해바라기를 업고 있는 소년은 하늘을 향해 날았고, 그대로 딱딱한 아스팔트 바닥에 고꾸라졌어. 달려오는 10톤 화물트럭을 확인하지 못하고 그대로 치여 버린 거야.
사고를 목격한 야오린은 당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고 하더군. 머릿속이 정말 하얗게 되었다고 말했어. 그녀는 동생이 하늘 높이 올랐을 때, 그게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고, 그대로 하늘 위로 날아갈 줄 알았다고 했어. 그 보이지 않는 유리 나비들을 향해서.
야오린은 신체 여기저기가 뭉개지고 터져 버린 남동생의···, 시신인지 고깃덩어리인지 구분인 안 가는···, 빨간 액체를 줄줄 흘리는 덩어리를 안았어. 거짓말처럼 따뜻했다고 내게 말했어. 그 덩어리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다고 말이야.
그 뒤의 일들은 자신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어. 눈을 떠보니깐 모든 것이 하얀 병원에서 수개월인지 수년을 지냈고, 어떤 ‘계기’로 간호 대학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고, 지금까지 왔다고 말했어.
인제 와서 생각해 보면, 눈은 풀리고 손을 심하게 떨며 내 식당에 온 그날, 그게 나라서 이야기 한 게 아니었어. 말을 뱉은 곳에 우연히 내가 있었을 뿐이야.
무슨 잔혹한 동화 속 이야기 같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저기 그녀의 얼굴을 봐. 명백히 사실인 이야기야. 그녀는 지금 50대의 시간을 걷고 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가방에 커다란 해바라기를 꽂아 놓고 마을을 달리는 소년이 남아 있어. 그 소년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그녀의 심연을 식사로 하며 살아가겠지.
야오린은 알고 있어. 그래서 마음속의 동생과 같이 살기 위해 이 열차에 탄 것일 거야. 그 당시 그녀는, 동생의 기이한 행동에 차츰 지쳐가고 있었다고 했어. 동생에게 지쳤던 그때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게야. 마음속의 남동생을 지우지 않는 것은 일종의 ‘속죄’인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건 누구를 위한 ‘속죄’인 것일까. 나도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고민해 봤지만, 아직도 모르겠어.
그리고 정말 잔인하게도, 그녀의 그런 과거 덕분에 정신과 간호사로서의 역량은 몹시 훌륭하지. 자신은 더욱 어두워지면서, 옆에 있는 환자들을 상대적으로 빛나 보이게 하고 있으니깐 말이야.]
라이언 씨는 굳게 입을 다물고 해바라기 잎을 손질하는 야오린 씨를 바라보았다. 나도 어안이 벙벙한 채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시금 그녀가 내게 해 준 말이 생각난다. 이곳은 천천히 이루어져야 할 일들이 단번에 일어나는 장소라고 했던 그 말이··· 피부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녀는 도파민이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신경전달물질이라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동생은 도파민 과다분비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세상’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큰지도 모를 나이에. 그녀가 말한 ‘계기’는 동생의 죽음이었으리라.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가히 상상도 되지 않는 깊은 어둠의 입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소년과 소녀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생각했다. 어둠 속에서라지만, 그 둘이 활짝 웃을 수 있는 거라면, ‘그걸로 좋지 아니한지’, 그런 것들을 깊게, 깊-게 생각해 봤다.
라이언 씨와 헤어지고, 지금은 방에 가만히 누워 있다. 야오린 씨의 아픔을 모른 채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낸 내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당연히 그녀가 내게 이런 말을 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모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서 어느 정도 눈치챌 만한 점이 보였을 텐데(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가 나와 대화할 때 이따금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그러한 것이리라. 태양이 제대로 하늘에 떠 있는지, 어디 숨어 버린 것은 아닌지 확인한 것이리라. 그리고 자신이 앞에 있는 이 칙칙한 남자에게 ‘너’의 이야기를 조금 들려줘도 괜찮은지 물어보기도 했으리라), 당시에는 내 불안감을 얼른 해소하고 싶어서 내 감정을 앞세운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이곳에 우울증을 치료하러 온 것이다. 의료진의 개인 사정을 일일이 고려하긴 어렵다.
마음이 복잡하다. 화도 나고, 창피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이 열차는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구나. 내가 얌전히 침대에 누워 있어도, 이 열차는 나를 태우고 하루에 몇 번이나 지구를 돌고 있구나.
어찌 됐든, 나는 야오린 씨에게 사과해야 한다. 뭐라고 해 볼까. 야오린 씨 정말 죄송합니다. 라이언 씨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당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너무 혼란스러워서 당신의 무의식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그런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도파민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이 재차 괴로운 기억을 떠오르지 않도록 했었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과연, 이런 내 사과를 받은 야오린 씨의 마음은 어떨까. 괴롭지 않을까. 자신의 환자가 자신의 과거사 때문에 눈앞에서 사과하고 있다. 정말 괴로운 듯이, 정말 미안하다는 듯이 사과를 하고 있다. 어디선가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와서 계속 사과를 한다···라, 최악이다. 세상의 모든 부정을 한 곳에 들이부은 것만큼이나 더러운 기분이다.
그러면 도대체 어찌해야 좋을까···. 라이언 씨, 어째서 그 이야기를 제게 해 주신 건가요? 제가 다시는 열차에 타지 않기를 바라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지금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지금 기분이라면,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다시 올라타서 6개월은 이곳에 갇혀 있을 거예요. 당신은 저를 좋아해 주신 게 아닌가요? 이 모든 것이 제 착각인가요? 나카무라 씨가 내게 말을 걸어 준 것도, 당신이 메뉴판에도 없는 농어 스테이크를 손수 만들어 준 것도 모두 제가 좋을 대로 생각한 것인가요?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잠이라도 들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혼란스러운 정신 속에서 신체의 감각은 또 선명해서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다. 시계를 확인하니 새벽 3시였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러 버린 걸까. 방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진다. 산책이라도 하자.
광합성 공원으로 가는 길에 푸드코트 쪽을 슬며시 바라보았다. 라이언 씨가 있었다면 몹시 불편한 감정을 느꼈을 테지만, 다행히 라이언 씨는 없었고, 맹하게 생긴 제자가 오뚝이처럼 식당을 지키고 있었다.
웬일인지. 광합성 공원에는 사람이 없었다. 시간이 뒤죽박죽 섞여 있지만, 같은 칸의 사람들은 최대한 비슷한 시간대를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런 날도 있는 것이리라. 너무 적막하다. 식물이 이렇게나 우거져 있는데, 새의 지저귐이라든가 벌레의 울음소리 같은 생명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사람이 없을 뿐인데, 쓸쓸한 사막에 덩그러니 솟아 있는 100층짜리 빌딩을 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확실히 이곳은 ‘만들어져’있었다.
저기 야오린 씨의 해바라기 화단이 보인다. 고개를 떳떳하게 든 해바라기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려 온다. 저곳과는 멀리 떨어져야겠다. 나는 커다란 공원을 가로질러 곳곳에 있는 고무나무들을 바라보며 걸었다. 천천히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곱씹었다. 그리고 공원 구석에 위치한 흡연 공간이 눈에 보일쯤에 누군가 우는 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보통 흐느끼는 게 아니라 어릴 적, 골목을 달리다가 넘어져 단단하게 코팅된 아스팔트에 피부가 쓸려 나간 고통에 울부짖는 아이와도 같은 소리였다. 소리를 따라가자 어떤 성인의 여자가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몸을 웅크린 채 울고 있었다. 그녀의 등이 들썩거리는 정도가 점점 심해진다.
오늘은 정말 너무한 날이구나. 슬픈 일들이 ‘단번에’ 쏟아져 나오는구나.
···나는 불과 수 시간 전까지만 해도 하늘을 보며 수영을 하고 있었다. 이따금 느껴지는 작은 진동을 물을 통해 감지하고 있었다. 그뿐이었다. 그냥 오랜만에 찾아온 자유로움을 즐기고 있었고, 갑자기 생겨 버린 심각한 고민 탓에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표면이 매끈매끈한 고무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꽤 큼직하지만 귀엽고 반짝거리는 나무였다. 하지만 달콤한 평화는 인간에게 크나큰 사치라도 되는지 내 눈앞에는 어떤 여자가 울고 있다. 투명한 열차의 천장에서 하염없이 내리쬐는 빛을 받으며 말이다.
울고 있는 사람을 앞에 두고 말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그 눈물은··· 그러니깐, 그녀의 하얗고 매끄러운 볼의 곡선을 타고 내려오는 그녀의 눈물은, 태양의 광선을 받아 마치 유동성 다이아몬드와 같았고, 그 눈물의 가치 또한 그렇게 느껴졌다. 많은 사람이 미(美)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영원히, 지금과 같은 자세로 눈물을 흘려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저 영혼에 대한 너무나 가혹한 행위로, 그 어떤 누구도 그것을 강요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만큼 아름다웠다는 것을 문자로 표현하자니 지금 타고 있는 열차처럼 지구를 빙빙 돌듯이 빙빙 돌려 말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녀의 머리카락을 보고 그녀가 ‘어떤 여자’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나와 계속 눈을 마주치는 ‘그녀’였다. ‘괜찮으세요?’라고 물어보고 싶지만, 괜찮지 않은 게 눈에 보이듯 뻔했고, 여기서 그녀에게 말을 건다면, 그녀는 이번에야 정말로 나를 ‘변태 스토커’로 확신할 것이다. 상상해 보자. 매번 눈을 마주치는 남자가, 심지어 수영장까지 따라와 몸매를 감상하는 것도 모자라서, 공원 구석에서 울고 있는 자신을 도대체 어떻게 찾아냈는지, ‘괜찮으세요?’라며 말을 건다. 지금까지 -쭈욱 자신을 지켜본 것 마냥···. 정말 소름 끼치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그녀를 지나칠 수밖에 없다. 만약, 내가 상상한 대로 일이 발생한다면, 나는 지금의 고민에 더하여 사회적인 문제도 생각해야 한다. 기껏, 오늘 오후에(시간상으로는 어제이지만···) 직원이 아닌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의 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는데, 그 싹이 처음 마주한 상황이 이런 것이라니···, 이 새싹은 다시 밟혀 버리는 것인가. 그리고 이곳에 다시 새싹이 돋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가려 할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