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세상의 소금

by 권민정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마태복음 5장 13절)




기독교 대학에 입학한 나는 채플이라는 것을 처음 경험 했다. 유교 의식이 강했고, 무척 가부장적이었던 우리 아버지가 우리 대학교가 그런 학교라는 것을 알았다면 내가 그 대학에 합격했을 때 그렇게까지 좋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딸을 서울로 유학 보내면서 아버지는 마냥 기뻐만 하셨다.


아버지는 예수쟁이를 싫어하셨는데 우리 학교가 딸을 예수쟁이로 만드는 학교였다.


대강당에서의 채플시간, 내가 정말 빠지지 않고 좋아서 참석했던 시간이다. 생전 처음 불러보는 멋진 가사의 찬송가들. 우리는 주로 학생수첩에 들어있는 찬송가를 불렀는데 그 찬송가들은 젊은이가 좋아할 만한 것만 뽑은 것이었다. "아침 해가 돋을 때 만물 신선 하여라 나도 세상 지낼 때 햇빛되게 하소서~~", "어둔 밤 마음에 잠겨 역사에 어둠 짙었을 때에 계명성 동쪽에 밝아 이나라 여명이 왔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빛 속에 새롭다 이 빛 삶 속에 얽혀 이 땅에 생명탑 놓아간다"


이런 찬송가를 부르면서 나는 정말 이 땅의 빛과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소금의 특징인 부패를 방지 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 녹아져 맛을 내게 하는 존재.


지난 일주일 동안 변산, 신안, 전주를 여행했다. 변산과 전주는 몇 번씩 가본 곳이지만 신안은 처음이었다. 신안 증도에서 2박을, 자은도에서 1박을 했다. 신안에 있는 12 사도 교회를 순례하고 싶었고 문준경 전도사가 활동했던 섬들도 보고 싶었다. 섬티아고 순례길을 제대로 느끼려면 신안에서 3박 4일은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일주일쯤 신안에 묵으면서 천천히 둘러볼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나도 황혼육아에서 벗어났고, 남편도 사업을 정리했으니 가능한 일이었는데 아쉬웠다.


항상 쓰는 소금이 신안소금인데 현지에서 소금 생산하는 것을 보니 신기했다. 증도에는 태평염전이 있는데 한국 최대 규모라고 한다. 그곳에서 강제노동하던 노동자가 몇 년 전에 밝혀지면서 태평염전에서 생산하는 소금은 미국 등에 수출을 못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이 신안에 놀러 간다고 하니 "엄마 아빠도 조심하세요. 거기 사람 납치할 수도 있어요." 하고 농담 섞인 말을 했다. 분명히 그곳에 노동착취가 있었는데 지금은 개선 됐는지 알 수가 없다. 지금은 그런 일이 없다고 해도 한 번 인식이 잘못되면 그걸 바꾸기에는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소금박물관과 힐링센터는 생각보다 잘 만들어져 있어 좋은 시간을 보냈다. 커다란 매머드 형상의 조형물이 소금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져 있는데 그 이유는 홍적세 중기부터 빙하기까지 살았던 고대 포유류 매머드가 생존에 필요한 소금을 찾아서 지구상을 이동했기 때문이다. 고대 인류도 사냥을 위해 매머드를 쫓아 이동했기 때문에 그 길을 매머드 스탭 또는 소금길이라고 했다. 소금박물관에서 빌 게이츠 재단이 제작한 특별 영상 "Superpower of salt"를 보았다.


신안은 기독교 비율이 40% 정도라고 한다. 섬은 미신이 강한 곳이라 기독교 전도가 어렵고, 그 비율도 낮은 편이다. 그러나 신안에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다 가신 문준경 전도사가 계셨다. 한 여인의 바울과 같은 전도 사역 덕분에 신안은 기독교인이 많아졌다. 문준경 전도사에게 전도를 받아 목사님들이 많이 배출되었는데 그중에는 한국 기독교를 부흥시킨 유명한 목사님도 많다. 또 신안에는 6.25 때 공산당에게 당한 순교자도 많이 생겼다. 문준경 전도사님도 1950년 10월 5일에 순교했다. 빛과 소금으로, 또 한 알의 밀알로 살다 가신 문준경 전도사님이 있어 신안은 더 특별한 섬인 것 같다.


문준경 전도사 기념관과 문준경 전도사 기념교회만 보아도 신안 여행은 충분할 것 같았다. 학교 채플 시간에 그렇게 원했던 이 땅의 빛과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던 소원이 다시 되살아나는 시간이었다.

(문준경 전도사 기념관)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10화감사하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