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밖에서 거위가 “끄억 끄억.” 하고 우는 소리가 유난하다. 창밖을 내다보고 깜짝 놀라다. 거위들이 이 밤중에 호수 위에 떼를 지어 있는 것이다. 눈이 많이 와서 사방은 눈에 덮여 있다. 기온 변화가 참 심하다. 그저께, 영상의 온도이더니 오늘은 또 영하 20도가 된다. 거위들의 울음소리가 밤새 요란했다.
거위는 집이 없단 말인가? 까치도 집이 있고 토끼도 굴이 있는데 하늘 높이 날 줄도 알고, 물속에서 헤엄칠 줄도 알고, 땅 위에서 걸을 줄도 아는 능력의 소유자가 추운 눈보라 치는 겨울밤을 피할 안락한 집을 갖지 못해 호수 위 얼음 위에서 웅크리고 있다니.
오전 10시경, 다른 곳에서 몇 마리 거위가 날아와 웅크리고 있는 거위들 보고 어서 일어나라는 듯 무척 시끄럽게 운다. 거위들의 오전 운동 시간인데 밤새 얼음 위에서 웅크리고 있던 거위들은 아직도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정오가 지나자 다른 곳에서 밤을 새운 거위들이 호수로 날아들기 시작한다. 거위들이 호수 위 얼음 위에 앉아 해가 있는 쪽으로 조금씩 얼굴 방향을 바꾸며 햇볕을 쬔다.
저녁 해 질 무렵, 하늘이 온통 붉은색을 띤다. 해지는 광경이 정말 멋지다. 서쪽은 불타는 것 같다. 이제 거위들 모두가 머리를 서쪽으로 향해서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있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넓은 하늘 전체가 다 붉게 물든 것을 본 것이 몇십 년 만인지 모르겠다. 고등학생 때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그런 저녁노을을 본 적이 있었다. 꿈속인 듯, 나도 거위들처럼 얼굴을 서쪽으로 향해서 불타는 하늘을 본다. 우리는 붉은빛이 사라질 때까지 그렇게 한참 동안 같이 노을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