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아들, 글 쓰는 아빠 #10
암스테르담에서 온 엽서
어느 날, 유럽의 낭만이 담긴 엽서 한 장이 우리 집에 도착했다.
"심쿵아, 나는 지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어.
비가 와서 숙소에 있다가 점심 먹으러 나왔어... (중략) 그럼 다음엔 독일에서 편지를 보낼게."
유럽에서 날아온 엽서는 여기저기 꾸깃꾸깃해져 있었고, 심쿵이 친구의 삐뚤빼뚤한 글씨는 손끝에서 전해져 온 생생한 온기처럼 느껴졌다. 그 엽서를 받아 든 심쿵이는 금세 나를 찾아와 반짝이는 눈빛으로 물었다.
“아빠, 우리는 언제 해외여행 가?”
그렇게 나는 아내에게 ‘심쿵이와 단둘이서 떠나는 일본 여행’을 제안했다. 아내는 일본어 전공자로서 통역사로도 일하며 도쿄에서 몇 년간 거주한 경험이 있었다. 일본 여행은 그녀에게 익숙하고도 편안한 선택지였다. 며칠 고민해 보겠다던 아내는 불과 몇 시간 만에 결정을 내렸고, 아내와 심쿵이는 금세 기대와 설렘으로 가슴을 부풀렸다.
심쿵이의 60권, 고전 읽기 도전!
여행 계획이 확정되자마자, 아내는 심쿵이에게 깜짝 제안을 내놓았다.
"여행 전에 우리 집 서가에 꽂힌 고전 책들을 모두 읽어야 해!"
아내의 계획에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행이라는 목표를 통해 고전 읽기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다니, 참으로 기발한 발상이었다. 그러나 곧이어 내 시선이 서가에 꽂힌 60권의 두꺼운 책들로 향하자, 걱정이 앞섰다.
‘남은 시간은 겨우 3주, 심쿵이가 과연 이 많은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너무 무리한 목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1위: 집 없는 아이 (엑토르 말로)
엑토르 말로의 집 없는 아이는 심쿵이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부모를 잃고 방황하던 주인공 레미가 가족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를 보며, 심쿵이는 걱정했고, 긴장했고, 함께 기뻐했다. 심쿵이는 레미의 여정을 따라가며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친구들과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는 모습을 통해 따뜻한 우정과 가족의 소중함을 배웠을 것이다. 내가 왜 이 책을 베스트로 뽑았는지 물었더니 심쿵이는 이렇게 답했다.
"이 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해피엔딩 중의 해피엔딩이야!"
나는 그 말을 듣고, 아빠도 너와 함께라면 모든 것이
해피엔딩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대신 미소를 지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2위: 조웅전
심쿵이는 우리나라 명장들이 펼치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특히 이 책을 좋아했던 이유는 영웅전이 일곱 살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조웅이 난관을 극복하고 영웅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보며, 심쿵이는 소파에서 내려와 용맹한 얼굴로 태권도 실력을 가끔씩 뽐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역적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조웅전을 2위로 꼽아준 심쿵이가 은근히 고맙다.
비록 조웅전에는 그런 구절이 없지만, "아버지의 이름으로!"라고 시작하는 아들의 복수 이야기는 세상 모든 아빠들에게 자신이 특별해진 기분을 들게 하기 때문이다.
3위: 오즈의 마법사 (프랭크 바움)
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는 심쿵이에게 상상력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도로시가 친구들과 함께 오즈의 땅을 모험하며 용기, 지혜, 그리고 마음을 찾기 위한 여정을 통해 심쿵이는 진정한 용기와 우정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것이다. 특히,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도로시의 간절한 마음에서 심쿵이는 가족의 소중함과 집이 주는 따뜻함을 새삼 느꼈을 것이다.
하루하루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고전 속 이야기들은 아이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고, 읽을수록 더 많은 책을 찾아 나섰다. "엄마, 오늘 세 권을 다 읽었어!"라며 뿌듯해하는 아들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러웠다.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열 권에서 다섯 권 다시 세 권에서 한 권이 남았을 때, 우리 부부 또한 아들의 성취를 숨죽여 지켜봤다. 마침내 60권의 고전을 모두 읽었을 때, 심쿵이는 환호성을 질렀다. 두 팔을 벌리며 환호했고, 아내와 나는 아들을 끌어안고 축하해 주었다.
심쿵이는 오늘도 자랑스러워하며 이야기한다. "우와 내가 저것을 다 읽었다니, 너무 자랑스러워!"
심쿵이를 보며 우리는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가족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난카이 대지진 경보 발령과 부산의 해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