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의 굴레 & 끊임없는 경쟁
배우라는 직업은 참 멋진 직업입니다. 다만 젊었을 때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말입니다.
저 역시 젊었을 때 참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했었습니다.
작품도 많이 하고 인기도 얻고 팬들도 생기고 말입니다.
작품이 없을 땐 쉬기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하고 싶은 작품이 올라왔을 땐
오디션 준비도 하고 합격의 기쁨도 불합격의 좌절감도 그저 배우라는 직업의 특수성으로 받아들이며 하루하루 폼 나게 살았었습니다. 나이에 비해 두투한 돈을 벌기도 했고 다수의 해외 공연을 다니며 저의 지경이 넓어지기도 했습니다.
어느덧 20년이 넘어서 중년의 배우로 분류된 지금 녹록지 않은 현실을 마주합니다.
매달 벌어야 하는 고정비가 생겼고 그걸 채우기 위해 미친 듯이 작품을 잡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젋었을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나이가 드니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일이 없을 때 혼자 집에 있으면 우울감에 빠지곤 합니다. 특히 한없이 자책을 하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20년을 넘게 했는데도 아직도 이런 불안한 삶을 산다는 것이 나의 욕심이었는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평생을 다른 배우들과 경쟁을 하며 살아왔는데도 그 경쟁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는 현실이 버거워지기도 합니다. 다만 이제는 경쟁의 기회조차 줄고 있다는 것도 씁쓸한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배우는 지적받는 직업이자 평가받는 직업입니다. 자신이 하는 행위들에 대해서 대중의 잣대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늘 열등감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나보다 어린 연출들을 만날 때조차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수도 없이 들곤 합니다.
지적을 받는다는 건 다들 똑같겠지만, 적응이 안 됩니다. 20년 넘게 해왔으면 적응될 때도 됐는데.. 초연해질 때도 됐는데.. 도대체 적응이 안 됩니다. 오히려 젊었을 때보다 더 상처도 많이 받고 외로움도 많아졌습니다.
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단어가 생겼습니다.
"재능"
20년을 넘게 해 왔지만 재능이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재능이 있어서 시작한 게 아니라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재능이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네이버 어학사전
재능 - 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재주와 능력. 개인이 타고난 능력과 훈련에 의하여 획득된 능력을 아울러 이른다.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 정답 역시 알고 있습니다.
좋아서 하는 것.
재능이 있어서 시작한 게 아니라 좋아하 시작한일이라는 것입니다.
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중학교 동창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2학년 내내 단짝이어서 같이 붙어 다녔던 친구였습니다.
전 키가 컸고 그 친구는 키가 작았습니다.
전 공부를 못했고 그 친구는 전교 1,2등 하던 친구였습니다.
전 운동을 잘했고 그 친구는 운동을 좋아했습니다.
우리는 잠깐 시간을 내어 차를 마셨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배우를 하고 있는 나에게 그 친구가 말했습니다.
"넌 꿈을 이뤘구나 부럽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할 테지만 그 친구는 현재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다닌다고 했습니다. 아이러니하지요?
그 친구가 계속 말을 했습니다.
"난 공부를 잘해서 주위에서 서울대학교를 가야 한다고 그래서 서울대학교를 갔고 졸업할 때 되니까 당연히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가야 한다고 해서 지금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난 뭘 할지 모르겠어 그래서 그때부터 꾸던 꿈을 지금 이루고 사는 네가 부러워"
아직도 내가 힘들거나 자괴감을 느낄 때 떠올리는 기억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사는 인생!
재능 따위에 내 마음을 쓰고 싶진 않습니다.
잘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좋아서 한 겁니다.
앞으로 그렇게 해야겠지요?
20년을 했지만 아직도 재능이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하지만 난 내 직업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