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미디어나 책에서 단골처럼 등장하는 심리치료 과정이 있다.
과거의 상처를 바로 알고 떠나보내주기
말처럼 쉽다면 심리치료 따위는 받지 않을 것이다.
어렸을 적 상처는 죽는 날까지 떠나보내기가 쉽지 않다.
중학교 1학년
소위 뺑뺑이로 학교를 가던 시절.
형들과는 다르게 나만 거리가 좀 떨어진 학교로 배정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같은 초등학교 출신들이 우리 반에는 한 명도 없었다.
그것이 지옥 같은 시절의 시작이었다.
소위 가장 많은 출신의 학생들이 모여 있는 1반으로 배정이 되었고 그곳에 들어갔을 땐 온통 나를 경계하는 눈빛들이었다. 그리고 거칠 것 없는 시기답게 소위 일진들이라는 애들이 처음 본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짝꿍과 밖으로 나가 도시락을 먹고 들어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밖에서 먹고 왔다는 이유로 우리 반 짱이라는 아이는 반 전체를 자기 부하인양 불러 모았고, 그들 가운데서 나와 짝꿍은 심판을 당했다.
가슴을 주먹으로 난타당하며 거친 욕설과 피멍을 함께 받아내던 순간들..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기억이 이따금씩 떠오르면 불의에 맞서지 못한 나 자신을 원망하고, 자책하며 다시 2차 가해를 한다. 다수에 의한 소수의 폭력이었고 서서히 잠식되어 온 누구도 정해주지 않았던 서열정리의 피해자였고, 모든것이 가해자의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책한다.
이런 경험들은 커가면서도 인간관계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사람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 다른 이들보다 더 예민하다.
사람 만나는 게 싫다는 건, 상처가 많다는 뜻이고, 그 상처를 극복하기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때 그 아이들은 왜 그랬는지, 날 지켜 줄 어른들은 왜 없었는지,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며 혼자 온전히 버틸 수밖에 없었던 공포스러운 순간들을 막아주지 못했던 시스템 왜 그렇게밖에 안됐는지..;;
그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 너는 어떤 어른이 되어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지만, 그때 일을 일진이라 칭하며 자랑처럼 떠벌리는 어른이 아니라, 후회하고 반성하는 그런 마음을 가진 어른이 되었기를 바란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나쁜 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