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조용히 갈대처럼 울었다.
여름방학이 다가오자 설렘으로 가득한 아이들로 뭔가 들썩들썩한 7월 중순경. 학교현장을 술렁이게 한 뉴스 기사가 떴다.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
학교현장의 교사들은 이전부터 터져야 할 게 터졌다며 망연자실했고 언론과 전국 학교현장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았다. 이전에도 분명 교사들의 사망소식은 간간히 전해졌지만 개인적인 지병이나 사유로 결론내고 신문에 작은 란이나 차지하는 게 신기할 만큼 이렇게 메인 뉴스로 이슈를 탄 적이 없었다.
작년에는 슬픔으로 이 선생님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여력이 없었으나 이번 1주기 추모를 맞이하여 웹사이트를 통해 유족이 공개한 선생님의 생전 사진이나 교사시절 창고를 상담실로 바꾼 사진 등을 둘러볼 수 있었다.
선생님은 참으로 고운 20대 꿈 많은 교사였다. 의욕에 불타 현장에서 배운 것을 실천해 보고 싶어 했던 어쩌면 평범한 직장인 다른 직장인과 좀 더 차별화된다면 돈이나 명예보다는 아이들을 정말로 사랑하고 마음이 힘든 아이들을 위해 마음을 열 수 있도록 창고를 상담실로 개조하여 알록달록 가랜드를 달고 푹신한 의자를 놓을 줄 아는, 자신의 존재이유가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다는 게 다를 뿐.
작년 9월 서울에서 열린 서이초교사 추모집회에 가서 서이초 동기 선생님들의 편지 낭독을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그들은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주말에 같이 쇼핑을 가서 친구가 골라준 노란색 원피스를 입고 좋아하던 꿈 많은 20대 직장인. "너는 노란색 원피스가 정말 잘 어울렸어 우리 이거 입고 다음에 만나자고 했잖아..."라고 오열하던 친구의 편지 낭독에 우리 모두는 소리 죽여 흐느꼈다.
20대지만 사명감으로 불탔던 어쩌면 나보다도 의젓했을 선생님은 3월부터 7월까지 천여통 이상의 문자에 시달렸다. 피폐해진 20대 꿈 많던 선생님은 여름방학이 가까울 무렵
"핸드폰 번호를 바꿔야 할까 봐요..."라는 동료 선생님에게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직감했을까? 그 바꾼 핸드폰 번호로도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여름방학 며칠 전 그녀는 어쩌면 그녀 인생의 전부였을 그 일터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여름방학식 들뜸으로 가득할 학교로 가는 길 나는 차 안에서 동료선생님으로부터 바위라는 시를 전송받았다.
나는 잠시 신호대기 중에 눈앞이 뿌해지고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1학기 동안 얼마나 고생했을까 이 여름방학을 함께 맞이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누군가는 교사에게 여름방학이 있어 좋겠어요라고 한다지만 그 기간도 각종 연수와 2학기 준비 또는 학교에서 공문 등 연락으로 마음이 편치만은 않은 여름방학이다.
단 1학기 동안 아이들과 학부모로부터 조금 떨어져서 자신을 돌보고 2학기에 온전히 배운 것을 기꺼이 쏟아낼 수 있도록 잠시 충전할 수 있는 시간
그녀도 그 시간을 가졌다면 다른 결정을 했을까? 반복적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작년 그 여름방학을 앞두고 전국의 교사들은 서이초 앞에서 또는 집회현장에서, 출근길에서 조용히 속으로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올해 작고하신 신경림 시인의 '갈대'라는 작품이 떠오른다.
갈대
- 신경림
언제부터인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너무나 선생님이 되고 싶어 꿈을 품고 온 학교에서 산산이 부서진 20대 선생님의 꿈의 부스러기들이 여름날 오랫동안 전국에 비처럼 뿌려져 모두 마음에 내려앉은 2023년 여름이었다. 그리고 전국의 선생님들도 그렇게 갈대처럼 조용히 울었던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