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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eze lee Aug 16. 2024

오늘도 아이들과 함께 자랍니다

-방학 전 작은 소동 

  

   여름방학이 다가오는 7월 교실은 뭔가 들썩들썩하고, 복도도 뭔가 움직임이 분주하고 뛰어다니는 학생들도 자주 목격된다. 동학년 선생님들은 이구동성으로" 아~방학이 다가오는구나를 아이들도 느끼네요."라고 하시며 자신들도 배터리가 방전될 직전 같다며 웃으셨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왁자지껄한 쉬는 시간이었고 무언가 복도에서 쾅하는 굉음이 들려 문을 열고 나가보니, 6학년 학생들이 강당 체육수업을 끝내고 우리 2학년 복도를 뛰어가다 한 남학생의 핸드폰 가방이 우리 반 우산대의 우산에 걸려 우산대가 넘어지는 소리였다. 


  그 남학생은 키가 몹시 컸고 앞서 가던 여학생들은 킥킥거리며 고소하다는 건지 미안한 건지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 남학생은 난처해하며 저 아이들이 놀려서 잡으러 뛰어갔다는 약간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변명을 하고 있었다. 죄송하다고 목례를 연신 하는 아이에게 다음부터는 걸어서 다니라고 주의를 주고 방학 전 들뜬 아이들이라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며 얕은 한숨을 쉬고 교실에 들어왔다.


  잠시 후 울음소리와 함께 반 학생 몇 명이 교탁 앞으로 달려 나왔다. "선생님 지금 00가 울고 있어요. 아까 우산대가 넘어질 때 우산살이 부러졌대요!" 나는 서둘러 우산함으로 가서 우리 반 여자 아이의 우산을 살펴보니 정말 우산살이 4개가 궤도를 이탈하고 우산 손잡이의 대도 약간 휘어있었다. 


  아이는 자기가 아끼는 우산이라며 복도에서 엉엉 소리 내어 울었고 나는 일이 생각보다 심각해졌음을 감지하였고 우선 아이들 달래고 궤도를 이탈한 우산살을 맞춰보려고 애를 썼다.

   1개를 겨우 끼우고 2개째 끼우려는 순간 맨손으로 힘을 어찌나 주었던지 집게손가락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피가 꽤 많이 나는 것을 알고 더 이상 우산을 고칠 수는 없었다. 


  아이의 고장 난 우산을 더 이상 고칠 수는 없었으나 아이의 속상한 마음이 이해되었고  아까 그 남학생도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알지 못하므로 이런 상황을 혼자만 끙끙 앓지 말고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그 남학생을 이름을 묻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일단 소통메신저를 통해 솔직한 현재상황을 알리고 이런 일이 있었으니 몇 시쯤 체육수업을 끝내고 지나갔고 이런 인상착의 학생이 있다면 내려 보내 달라고 간단히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담임선생님이 안심하시도록 사과하는 시간을 갖고 잘 타일러서 보내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점심시간을 마치고 수업 중 똑똑 교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역시 큰 키의 순하게 생긴 그 남학생이 서 있었다. 수업 중이라 조용히 우산이 망가진 아이를 데리고 나가 키 큰 남학생 오빠와 나란히 서게 되었다. 00도 아까는 그렇게 서럽게 울더니 이제 조금 기분이 풀린 데다가 키 큰 오빠가 와서 사과한다고 하니 멋쩍은지 쑥스러운 미소를 띠고 어색하게 서 있었다. 


  남학생도  뒷머리를 몇 번 만지더니 아주 정중하게 "네가 너의 우산을 망가뜨려서 정말 미안하다. 앞으로는 조심할게."라고 사과를 하였다. 우리 반 00도 이제 좀 화가 풀렸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우산까지 새로 사 주었다면 더 바람직한 결말이었겠지만 이것으로 남학생도 충분한 교훈을 얻었을 것이고 더 이상 복도에서 뛸 때 이런 결과를 떠올리며 조심하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방과 후 나는 그 여학생의 부모님에게 이런 과정을 전화로 설명드렸고 부모님도 충분히 그런 상황을 이해하셔서 작은 소동이 잘 마무리가 되었다. 

  이 일을 통해 우산살을 고치려고 쉬는 시간 고분군투 했던 내가 안쓰럽기도 하였지만 이런 문제가 있을 때 내가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함께 해결하려는 자세가 오히려 문제의 실마리가 쉽게 풀린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학생들이 제 자리로 돌아가고 수업을 시작하였고 실물화상기를 통해 그림책을 읽어주는 시간이었다. 책 이야기에 집중하던 아이 중 한 명이 "선생님 손가락에 왜 밴드를 붙었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혹시 그 친구의 우산 고치다 다쳤다고 하면 그 아이가 난처해질까 봐 "응 그냥 뭐 하다가 좀 다쳤어."라고 하며 열심히 우산을 고친 애잔하고 기특한 손가락을 화면에서 쓱 감추었다. 


-2024. 7. 어느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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