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reeze lee Oct 27. 2024

독립된 인격체, 아이들  

-순수의 시대 오래도록 기억되었으면 - 

  아이들을 20여 년 이상 가르치면서 아이들의 대한 생각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나는 사실 아이들을 보기만 해도 "아휴 귀여워~!" 하는 사람은 아니다. 주변에 천상 아이들과 함께할 운명이 느껴지는 이런 분들에 비해 난 내향적인 성격으로 아이들과 지내다 보며 서서히 정이 들고 또 그들 나름의 장점을 발견해 나가는 사람이다. 요즘 들어 아이들의 예쁜 모습이 점점 더 많이 보이는 걸 보면 마음의 여유란 것이 생기고 나이가 들었나 보다.


  예전에 식물원에 놀러 온 할머니들께 기자가 "왜 나이 드시면 꽃 같은 식물들을 프로필로 많이 올리실까요?"라고 하니 "젊었을 때는 사느라 바빠서 꽃이 예쁜 줄도 모르고 살았어요. 그런데 이제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까 꽃도 예뻐 보이고 다른 것도 눈에 들어오네요." 대강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아이들은 부모와는 또 다른 독립된 인격체라도 느껴질 때가 많다. 아이도 부모를 닮아간다고 크면 비슷해진다는 말들도 있지만 자라는 동안은 부모와 다른 자신의 생각을 학교에서 이야기할 때가 많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인상적이었거나 마음이 아플 때가 몇 번 있었다. 


   아파트에 쓰레기가 있길래 열심히 주워서 집에 가져왔더니 엄마가 화내면서 다음부터 줍지 말라고 하셨단다. 이 아이는 유치원이나 학교 또는 영상이나 책에서 떨어진 휴지가 있다면 줍는 것이 선행이라고 배웠을 것이다. 물론 더러운 쓰레기를 집으로 가져왔을 때 아이 어머니가 얼마나 당황스러우시고 싫으셨을까도 이해가 충분히 된다. (나도 지난번 우리 아이가 엘리베이터에서 아이스크림을 누가 버린 것을 들고 와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비닐봉지에 넣어 처리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만 치우도록 하였다) 

  

  그래도 일단 아이의 선한 의도와 실천한 모습은 칭찬해 주셨으면 좋겠다. 그 선한 마음이 혼남 속에 묻혀 버렸다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우리 소현(가명)이는 내가 교과서를 보다가 안에 끼워둔 종이가 떨어지면 교실 뒤에서도 제일 먼저 쫓아와 주워주는 아이이다. 이런 성격의 아이니 자신의 손이 더러워질 것을 생각 않고 길가에 쓰레기를 주울만 하다. 사실 이런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것은 학생어머니이실 것이다. 평소 어머님도 굉장히 밝고 순수한 분이신 거 같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보다 약삭빠르지 못한 것을 속상해하지 않으시길 바란다.

   사실 고학년만 되어도 이 아이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 절대 주워오지 않을 것이다. 배운 것을 실천한 아이의 훌륭한 마음을 칭찬해 주고 그다음에 해결방법을 알려주어도 좋았을 거 같다. 그리고 이 날 날개 없는 천사의 사진과 짧은 기록이 남았다면 좋았겠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이 날 아이의 선행을 많이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부모님이 싫어하는 부분은 어떻게 해결할지도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행히 어떤 곳은 경비 아저씨께서 쓰레기를 주워오는 착한 학생이 많았는지 쓰레기통을 설치해 놓으셨단다. 역시 같이 이야기 나누니 해결책이 보인다. 



  매년 봄 4월 말부터 5월 초쯤은 송홧가루가 많이 날린다. 그래서 2학년 통합 계절 과목을 가르치면서 소나무는 이 시기쯤 노란 꽃가루가 날려 빗물에도 노란 띠가 있고 차에도 노란 가루가 묻어 있기도 하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든다. 아버님께서 트럭운송업을 하신다면서 가끔 아버지의 트럭을 타고 가면서 어머니가 싸주신 김밥을 먹을 때가 제일 맛있다고 한 아이였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하니 아버지가 요즘 송홧가루가 날려 차가 더러워지고 불편한 점이 있다시며 소나무가 보일 때 화내시면서 발로 차셨다고 한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부모님이 하는 일을 잘 관찰하고 있고 또 학교에서 솔직하게 말한다. 나는 그랬구나라고 말해 주고 그래서 표정이 시무룩한 아이를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불편한 점도 공감하되 그럴 때 아버지에게 조언해 드릴 수 있는 예쁜 말도 덧붙여 주었다. 



  우리 학교는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인 곳이라 거의 모든 학생들이 도보로 다니고 있다. 그나마 조금 먼 단지에 사는 아이들은 부모님이 직장 가는 길에 태워 주어 교문 근처에 내려 걸어온다. 교통봉사자 분들도 여럿이 계셔서 길 건너는데 도움을 주신다.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학교도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외부인은 교문 안과 학교 주차장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교직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주차장은 8시 10분이면 자리가 없어 우리도 들어왔다가 다시 돌아 나가야 한다. 특별한 경우(다친 학생, 장애 아동, 회의 참여)를 제외하고는 학생 보호자의 학교 출입을 제한한다는 안내장이 여러 번 공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꼭 차를 태워 주차장까지 들어와 내려주시는 보호자분들이 계시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이가 교실 문까지 들어가는 것을 보아야 안심이 되시는 거 같기도 하고 가끔 홈드레스에 슬리퍼 차림이신 걸 보면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인가 싶기도 하다. "잘 다녀와~ 사랑해! 손 하트" 등의 짧지 않은 인사가 끝나면 다시 돌아나가신다. 이분들은 대체로 이중정차 중이시기에 이때 들어온 교직원차들은 주차를 위해 뒤에서 기다리기도 한다. 비록 부모님은 학교 규칙을 지키지 않으셨지만 아이는 교실을 들어가다가 누가 학교 우유냉장고에서 우유 박스를 꺼내고 열고 갔으면 다시 힘주어 닫아 주고 들어가는 모습을 본다. 이런 모습을 보면 내가 직접 가르친 아이는 아니지만 스스로 바르게 판단하고 실천하는 모습에 작은 전율이 느껴지고 이런 아이들이 우리 학교에 있다는 게 뿌듯하다. 다만 어느 날 이 아이가 어머니께 "다른 아이들은 교문 근처에서 내리던데 나는 왜...라고 할 날이 있을지 모르니 학교규칙을 지켜주시기를...


 문득 예전에 아이들을 특히 귀여워하셨다는 성철 스님이 떠오른다.

'가야산 호랑이'로 불릴 만큼 엄격했던 성철 스님(1912∼1993)은 누구보다도 어린이를 좋아했다고 한다. "아이들의 마음은 곧 천진한 부처님이야. 모든 어른들은 어린이들의 마음을 배워야 해." '어린아이를 보면 꿀밤을 먹이거나 볼을 꼬집으며 장난을 걸기도 하고 아이들과 놀다가 다친 적도 있었지만 제자들이 어린이들을 막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렸다고 한다. 어린이들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르며 순수한 '천진불'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나도 나이 들어가면서 아이들이 친진불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중이다. 물론 그중에 장난꾸러기들로 인해 힘든 점도 있지만 그 또한 천진불이기 때문일 거라 이해하려고 한다.^^  


 누가 보던 안 보던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아이들을 보면 아이들은 어른과는 다른 독립된 인격체로 느껴진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수학, 영어, 운동 실력뿐만 아니라 순수한 마음과 그 실천의 모습들이 충분히 기억되고 칭찬받기를 바란다. 그들이 자라서 그런 일은 쓸데없는 짓이라거나 괜한 일을 했다고 다시 자녀를 혼내거나 가르치는 어른이 되질 않길 바란다.

   아이가 커서 여자 친구, 남자 친구 또는 예비 배우자를 데려오면, 몇 살 때 이런 행동을 했다는 아름다운 미담들을 꽃피우며 스펙보다 집안의 정서적 분위기로 미래의 배우자를 선정하는 기준이 되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이전 01화 40년째 학교 갑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