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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있으면 되는데 뭘 자꾸 할라 그래? 2

-자기 계발 플루트 편-

by breeze lee Mar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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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루트와의 첫 만남은 15여 년 전이었다. 악기 하나는 해야겠다는 생각에 큰 마음먹고 당시 거금인 50만 원을 주고 야마하 플루트를 구입하였다.


  은빛 나는 플루트의 모습도 예쁘고 소리도 맑고 영롱하였고 무엇보다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연주하는 플루티스트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또한 클로드 볼링의 '아일랜드의 여인' 연주를 라디오로 들으며 반한 것도 있다. 연주를 듣고 있으면 마치 모네의 양산 쓴 여인이 하늘하늘한 양귀비 핀 초원에서 봄바람에 치맛자락을 날리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미혼일 때라 시간적 여유가 있었고 가까운 피아노학원에 플룻강사님이 오셔서 주 1회 정도씩 레슨을 받았다. 호흡도 복식호흡을 평소 안 하는 편이라 일부러 소리를 내려니 불 때마다 머리가 띵해지면서 하늘이 까매지고 머리 위로 별이 돌았고 소리는 늘 새는 소리가 났다. 부족한 실력과 예민한 악기의 만남으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결국 몇 달 배우다 그만두었고 첫 번째 플루트연주 도전에 그렇게 막을 내렸다.


  플루트와 두 번째 만남은 결혼 후 아이가 3살쯤인 2013년 직장에서였다. 일과 후 몇 명 플루트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끼리 모여 강사님을 모셔 배웠다. 다른 분들은 비교적 수월하게 불어지는데 왜 나만 이렇게 플루트를 불 때 힘들까? TV에서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연주하던 플루티스트들이 이런 고통을 참으면 연주한다는 것일까?


  플루트연주가 즐거워야 하는데 막상 레슨 시간이 되면 하기 싫은 마음이 앞섰고 레슨을 마치면 마치 예방주사를 마친 것처럼 작은 성취의 보람보다는 의무를 다한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다른 직장으로 이동하면서 이렇게 두 번째 플루트 배우기 도전도 흐지부지하게 끝났다.



작년 2024년 우연히 책장 위에 먼지가 뽀얗게 앉은 검은색 플루트 가방을 발견하였다. 지퍼를 열고 검은 케이스 속에 든 플루트가 녹이 슬었나 궁금하였다. 달깍 검은 플라스틱 케이스를 열자 여전히 고귀한 은빛을 뿜으며 플루트가 녹슬지 않은 상태로 잘 보관되어 있었다.

  

  당근에 한 1/3 가격으로 내놓을까 고민하다가 삼세판이라고 이번에 한번 더 해 보고 정 이 악기랑 인연이 아니라면 깨끗이 포기하자는 마음을 먹었다. 가까운 피아노 학원에 전화하니 강사님을 연결해 주신다고 하셨다. 곧 강사님과 연락이 닿았고 첫 레슨 날짜를 잡고 작년 3월 중순부터 주 1회 금요일에 1시간 정도 레슨을 받았다.


 친정엄마는 "너는 뭘 자꾸 할라 그러니, 퇴근하면 좀 쉬어라. 사람이 쉴 줄도 알아야지."

엄마 말씀도 틀린 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레슨이 5시 반이다 보니 저녁 식사를 레슨 다녀와서 차려 주려면 헐레벌떡 와야 했고, 어떤 때는 남편이 일찍 오면 다행이나 그렇지 않을 땐 미안하게도 친정엄마에게 태권도 가는 둘째만 먼저 챙겨주십사 부탁드려야 할 때도 있었다. 사실 초등학생이하 자녀를 둔 워킹맘의 자기 계발은 만만치 않고 내 욕심인가 싶어 죄책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래도 이왕 결심을 했으나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안 하면 또 흐지부지되고 다음에 플루트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을 테니 말이다.



  역시 플루트는 도도하게 나에게 쉽게 길들여지지 않았다. 입술모양을 작게 하여 빨대 정도의 바람이 나와야 하는데 아직도 입술구멍이 좀 크고 숨을 조절하여 뒤 연주까지 할 호흡을 남겨두어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강사님은 "어 지금 머리 엄청 아프실 거 같으신데 괜찮으세요? 좀 쉬어야 할 거 같은데...?" 하시기도 했고 "저도 선배님이 왜 이런 지*맞게 예민한 악기를 전공으로 선택했냐고 하셨어요." "다 잘 불면 제가 왜 있어요? 저도 처음엔 소리 잘 안 났어요"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 그리고 고음이 한번 나도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다. 어른이나 아이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이런 칭찬에 레슨을 이어 이어 갔더니 드디어 12월이 되었다. 이제 헨델의 울게 하소서, 센과 치이로의 언제나 몇 번이라도, we wish your merry Christmas 같은 캐럴곡들은 강사님의 도움 없이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의 한 가지 로망이 있었으니 그것은 소규모 연주단에 가입하여 함께 연주회를 갖는 것이었다. 여름에 직장동료와 이야기하던 중 뜻 맞는 사람들이 모여 플루트연주 동호회가 있는데 주 1회 간다고 하였다.

  나도 그곳에 합류 가능한지 물으니 지금 인원이 꽉 차서 어렵다고 하였다. 그럼 사람이 비면 꼭 말해 달라고 하였는데 12월 드디어 자리가 났다고 연락이 왔다.


  1월 초 연주 동호회 연습 장소를 찾았다. 피아노학원을 대관하여 강사님을 모시고 피아노학원 문을 닫는 시간에 모여서 연습을 하는 거였다. 찾아가니 신입회원이라고 모두 연습방에서 나와 맞이해 주었다. 거실 같은 홀에 쭈뼛거리고 있던 나에게 각자 자신을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내 소개를 마치자 박수로 환영해 주었다. 그리고 바로 5월에 학원 아래 지하카페에서 연주회가 있을 거라고 귀띔해 주었다.



2번째 만남부터 본격적인 연주 계획을 발표했다. 쇼스타코비치의 2번 왈츠는 공통곡이고 희망에 따라 리베르 탱고와 엘가의 사랑의 인사 팀으로 나누어 연주하기로 했다. 나는 고음이 어려우므로 사랑의 인사를 선택했고 우리 팀은 4명이었다. 연주 악보를 받았는데 와~ 음표가 어찌나 빽빽한지 순간 내 수준을 모르고 여기 잘못 왔나 싶었다.

  

어쩌다 4파트 중 3세 번째 파트를 맡게 되었다. 1번 파트는 당연히 소프라노라 제일 유능한 분이 맡았고 어떤 분이 제가 잘 못한다고 4번을 선택하니 2,3번 중 3번을 선택했더니 아뿔싸! 거기 사랑의 인사의 제일 익숙한 그 부분이나 고음인 그 부분이 나에게 있는 거였다.


 이미 선택했으니 연습만이 살길이라고 지금도 열심히 연습하고 있으나 아직도 일명 삑사리가 난다. 5월까지 내 부분이 올 때 티가 안 날 정도로 청중이 듣기 좋게 스무스하게 넘어가길 바랄 뿐이다.

청중은 물론 가족이 될 거 같기는 하지만 연습하다가 잘 안되면 이번엔 연주회를 안 알릴 수도 있다.

  

  원래 배우던 강사님과 레슨을 병행하며 쇼스타코비치 왈츠와 사랑의 인사 내 파트 부분을 연습했다. (연주회를 위해 또 다른 과외라니) 그러자 2월 말쯤 되자 이제 좀 익숙하게 되었다. 3월부터는 직장일도 바빠지지먀 워킹맘으로서 2번 저녁에 늦게 들어갈 수 없어 원래 강사님의 응원을 받으며 레슨을 종료하고 동호회 플루트 연습만 하기로 하였다.



  리베르 탱고는 역시 강렬하고 매혹적인 멜로디로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곡이다. 피아노방에서 연습하다 보면 리베르 탱고팀의 연주에 반하게 된다. 반면 우리 사랑의 인사팀은 마치 우아한 모습으로 파티에 온 사람들을 따스하게 맞이하는 것 같은 곡이다.


  지난주에는 그날 입을 의상을 정하기로 하였다. 리베르 탱고팀은 곡명에 맞게 강렬한 빨강 칠부 드레스에 붉은 꽃을 귀에 꽂는다고 한다. 우리 팀을  5월이라 많이 더울 거 같아 반팔에 하늘하늘한 하늘색 드레스를 생각하고 있다. 쿠*에 연주회 드레스를 검색하니 의외에 종류가 많았다.


강사님의 지휘로 4부가 모여서 함께 연주하고 녹음도 해 보았다. 집에 오는 길에 차 안에서 보내주신 녹음된 곡을 듣는데 내 부분에서 눈이 찡긋 아휴~ 아직 갈길이 멀다. 정 안 되면 이 부분만 다른 파트 분께 부탁드리자고 그리고 동료가 알려준 방법대로 힘은 빼고 입술에는 힘을 주고 절차탁마로 그때까지 연습하면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목표가 있다는 건 긴장되는 일이고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목표가 있을 때 동기부여가 되고 내가 지금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거 같다.

   1년여 전의 결단으로 플루트이라는 악기를 잘 불지는 못해도 불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연주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기쁘고 나의 결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누군가 그랬다.


"꿈을 심으십시오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성공을 미래기억 속에 심으십시오. 심는 순간 꿈을 향해 움직이는 엔진이

작동할 것입니다. 그 행복한 미래기억은  당신을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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