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2살 많았다. 나 좋다고 쫓아다닌 남자 중의 한 사람이다. 다른 남자들이 눈에 안 들어왔는데, 이상하게 이 남자는 나의 눈에 들어왔다. 방위 18개월로 병역의무를 마친 남자였다. 나는 대학 3학년이지만, 제대하고 복학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도서관에 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고, 식당에 가도, 휴게실에 가도 자주 마주쳤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나의 동선을 따라 이 남자가 움직인 것이었다. 그렇게 몇 번을 마주치다가, 어느 날 아침, 도서관 2층에 있는 커피 자판기 앞에서 눈이 마주쳤다. 남자가 고개 숙여 인사한다.
아주 작은 소리로, 안녕하세요, 한다.
그게 시작이 되었다.
4학년이 되었고, 남자는 3학년에 복학하였다. 도서관에서, 휴게실에서, 식당에서 목인사를 하면서 친밀감을 표시하였다. 안녕하세요, 라는 말이···, 식사하셨어요, 날이 좋네요, 등등으로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우리 집은 딸만 여섯이다. 일곱째가 아들이다.
딸 부잣집에 나는 네 번째 딸이다. 큰 언니는 나하고 7살 차이이다. 큰 언니와 막내인 남동생하고는 15년 차이가 난다.
난 언니들 보면서 세상을 배웠다. 아버지가 언니들에게 화를 내시면 눈치를 보고 불안한 표정으로 있는 듯 없는 듯 그림자처럼 형제들 속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언니들 무슨 행동이 아버지를 화나게 하시었는지 혼자서 궁리한다.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언니들이 사춘기 소녀일 때,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큰 언니, 둘째 언니가 차례대로 고등학생이 되면서 아버지 몰래 남자친구들 만나고 다녔다. 어린아이였던 나는 언니들 바람막이였다. 이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날 데리고 고려당이라는 빵집에 가서 알리바이를 만들기도 하고, 남자들이 애타는 모습을 즐기기도 하였다. 난 언니하고 빵 먹은 것만 부모님에게 이야기한다.
대학에 입학하던 해에 큰 언니가 시집을 갔고, 남자가 나에게 접근하던 대학 3학년 때 둘째 언니가 시집을 갔다. 바로 위 언니, 셋째가 결혼할 남자와 교제 중이었다.
큰 언니가 연애할 때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맞든 안 맞든 남자를 보는 눈이 이때부터 생기었다고 할 수 있다.
잘생기었나, 못생기었나. 아버지 앞에서 당당한가, 그렇지 못한가. 선물은 비싼 거를 사 오나, 싸구려 사 오나, 언니는 옷 선물을 받았나, 못 받았나. 나에게 용돈을 주나, 안주나. 어떤 버릇이 있나, 없나, 등등이다.
남자하고는 밥 먹는 사이가 되었지만, 연인이라고 하기에는 이르다. 그냥 선배 후배 정도로 말을 하는 관계가 되었다. 경영학과 남자와 영문학과 여자, 남들이 보면 사귀는 관계로 알 수도 있지만, 친구도 아닌, 연인도 아닌, 선후배도 아닌, 아는 사람 정도였다.
큰 언니가 못살겠다고 하면서 1살인 여자애는 등에 없고, 3살 아들을 손에 질질 끌고 울면서 집에 왔다. 아버지가 노발대발, 난 작은 방에서 쥐 죽은 듯이 있었다. 밤늦은 시각에 큰 형부가 왔고,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죄송하다, 말하였다. 어머니는 큰 형부에게, 미안하다, 고 말한다. 아버지는 큰 언니를 데리고 오라 하더니, 큰 언니가 안방에 들어오자마자 안지도 못 하게 하고, 큰 형부에게 데리고 가라고 매우 화난 모습으로 말하였다. 언니는 아버지의 매정함에 몇 마디 큰소리 내었지만, 아버지의 판단을 인정한다는 듯이 형부 뒤를 따라 나갔다. 문틈으로 몰래 대문을 나서는 언니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이 꼭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밤새도록 잠을 못 자고 안방과 거실, 마당을 왔다 갔다 하였다. 아버지의 거센 숨이 작은 방에 있는 나에게도 전염되어 밤새 잠을 뒤척였다.
남자하고는 술도 한잔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남자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술집보다는 클래식 LP를 틀어주는 음악다방을 많이 다녔다.
종로에 있는 심포니라는 곳이 우리 단골 찻집이었다. 비엔나커피 한 잔씩 앞에 놓고 수다를 떤다. 젊은 남녀가 말을 섞으면서 시간이 만들어 준 다정함은 사랑의 시작이었다.
딸만 여섯인 집에 넷째 딸이라고 하니 놀란다. 아들은 있냐고 해서 막내가 아들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형제들끼리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하면서 살아야 했다고 했다. 좋은 반찬은 전부 아버지와 남동생 차지이고, 큰 언니와 둘째 언니가 젓가락 왔다 가면 남는 것을, 남은 네 명의 여자 형제들이 하나라도 더 입에 넣으려 했다고 말했더니, 남자가 재밌는지 입을 헤 벌리고 웃으면서 듣는다. 화목해 보이는 것이 부럽다고 말한다.
둘째 언니가 집에 왔다. 허락을 받았다고 하면서 자고 갈 거라고 한다. 셋째 언니는 데이트하느라 늦게 들어온다. 나는 오랜만에 본 둘째 언니라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언니는 나에게, 결혼하지 말라고 말한다. 남자만 보지 말고, 그 집안이 어떤지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언니의 부부관계가 더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는 없었다. 저녁상을 물렸는데, 바로 둘째 형부가 과일 바구니를 들고 집에 들어왔다. 언니하고 작은 방에서 이야기하는 걸, 문 앞에 귀를 대고는 몰래 들었다. 형부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잘못했다, 내가 잘할게, 우리 엄마가 좀 유별나잖아. 뭐 이런 이야기 들리는가 했더니···,
손 치워, 어딜 만져, 새침한 언니 소리가 들렸다.
그때 부엌에서 나온 엄마가 빠른 걸음으로 나에게 온다. 내 손을 잡고 안방에 끌고 간다.
둘째 언니는 시어머니와 문제가 있나 보네···, 고부 갈등인가, 라고 말했더니, 엄마가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모른 척하고 있어, 이것아, 라고 말한다.
30분 정도 있으니, 언니는 아버지 오기 전에 가야겠다면서 헛기침하는 형부를 따라 나온다.
딴청을 부리듯···, 엄마 저 가요, 하고는 형부 팔짱을 낀다. 형부는 가기 전에 나에게 만 원짜리 두 장을 주면서, 내 어깨를 다정하게 두세 번 두드려 준다.
그 뒤로 남자를 보는 나의 눈이 한 단계 높아졌다. 결혼하려면 남자의 성품도 봐야 하지만, 집안도 봐야 하는 것을 알았다. 집안끼리 결혼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둘째 언니를 통해서 알았다.
대학 졸업하고 무역회사에 취업했다. 남자는 대학 4학년이다. 남자는 내가 졸업식 하는 날 꽃을 들고 왔다. 아버지, 어머니, 언니 동생들이 남자의 존재를 알았지만, 나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남자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내가 일하는 사무실 근처에 와서 나를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날이 어두워지는 명동 거리를 걷다가 명동 성당 앞을 지나게 되었다.
성당에 들어가자, 남자가 말한다.
남자와 손을 잡고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크리스 마스에 미사를 드리는 모습이 TV에 나오면 웅장하다고 생각했던, 대성당에 들어와 앉았다. 명동대성당이 아무나 들어와서 앉아도 되는 곳인지 몰랐다. 잠시 뒤에 남자와 나는 대성당 출입문 밖으로 나왔다. 내리막길을 잠시 걷다가 명동길을 얼마 안 남기고, 걸음을 멈춘다.
나를 본다.
나도 남자를 쳐다보았다.
할 말이 있는 듯 보였다.
갑자기 사람 많은 곳에서 내 얼굴을 두 손으로 잡는다. 움찔했다. 나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맞춘다.
눈을 감았다.
명동 성당의 종소리가 마침 그때 울렸다. 아니 나의 귓가에 종소리가 들린 듯했다. 나도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마도 기다렸던 것 같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박수하고 환호를 한다.
이 남자 좋은 남자이다,
생각이 정리된 남자다,
세상을 제대로 보고 있는 남자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는 나하고 둘이 만드는 세상을 살자고 말한다.
자기 아버지, 어머니, 자기 동생, 그리고 내 아버지, 내 어머니, 내 언니와 동생들은 다 남이라고 한다. 나하고 자기하고 둘이 사는 세상을 살자고 한다. 만에 하나 남이 아닌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자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기가 자기 부모에게 하듯, 자식도 결국에는 남이 되는 거라고 한다. 내가 있어 자기가 있고, 자기가 있어 내가 있는 거란다. 그런 사랑을 하자고 한다. 나와 자기, 그렇게 둘이 있어 사랑이 있고, 사랑이 있으니 세상이 있고, 세상이 있으니 우리 삶이 있는 거라고 말한다.
남자의 진지한 표정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살아갈 세계, 우리 세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성당 앞에서 첫 키스를 하고, 사랑의 고백을 들었다.
셋째 언니도 결혼했다. 이제 내 차례가 왔다. 하지만 셋째 언니가 결혼하고 6개월쯤 지났을 때 큰 언니가 이혼하였다. 아이들을 다 두고 나왔다고 한다. 큰 형부가 바람을 피운 것도 모자라서 술을 먹고는 자기를 때렸다는 거다. 한번을 참았는데, 두 번째는 못 참겠다는 거다.
그날 밤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큰 언니를 말없이 보고만 있었다. 그날 밤 아버지는 큰딸을 데리고 동네 포장마차를 갔다. 아버지와 딸이 술을 먹었다. 나중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큰 언니가 말해서 알았다.
아버지가, 사는 거 별거 아니라고, 내가 재미있게 살아야 하니, 재미없으면 깰 수도 있다고···, 너무 열심히 살 필요 없다, 고···,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큰 언니는 집에 3개월 정도 있다가 통영에 집을 얻어 독립하였다. 그 뒤에 통영에서 만난 남자와 재혼 하였다.
남자는 신용보증기금에 취업하였다.
먼저 퇴근하는 사람이 상대 회사 앞에서 기다리는 것은 약속 아닌 약속이었다.
우리 집은 수유역에서 내려 10분 정도 번동 끝자락까지 걸어야 했다. 마당에 대추나무가 있는 집이었다. 어두운 밤 남자는 우리 집까지 나를 바래다준다. 둘 다 헤어지기 싫어서 집주변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고 돈다.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으슥한 곳을 찾으면 짧지만 강렬하게 키스한다. 몇 번 그러다가 보니, 수유역에서 내리면 발걸음이 동네의 한적한 곳으로 바로 찾아간다. 어린이 놀이터거나, 문이 열린 학교 운동장이다.
남자가 결혼하자고 프로포즈를 하는 날, 내가 여행 가자고 했다.
나는 경험이 없다고 했다.
남자도 경험이 없다고 말했다.
결혼 전에 나는 경험하고 싶다고 했다.
남자는 결혼하고 첫날 밤을 보내는 것이 어떠냐, 고 말했다.
난 싫다고 했다. 자기하고 나하고 둘만 중요한 것이니, 우리 둘만의 첫날 밤은 결혼 전이나, 결혼 한 날이나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귀 기울이며 남자에게 말했다.
남자는 좋다고, 말한다.
나는 궁합을 맞추는 거라고 했다. 결혼은 궁합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것은 자보지 않고 모르는 거라고, 말했다.
난 웃지 않았고, 남자도 웃지 않았다.
난 위로 3명의 언니를 보면서 알았다고 말했다.
언니들이 집에 오면 동생들 앉혀놓고 성교육을 몰래 해주었는데, 좋은 이야기도 있지만 불편한 이야기도 있었다고 말했다.
둘이서 용문산에 1박 2일 일정으로 여행 가기로 했다. 남자가 자기 아버지 차를 끌고 나를 데리러 왔다. 토요일이다. 집에다가는 회사에서 연수 교육 간다고 말했다. 용문사 진입로에 커다란 풍차가 보이는 숙박업소에 방을 잡았다. 저녁까지는 시간이 남아서 용문사로 산책하였다. 용문사 은행나무를 사진에서 보았지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었다.
이곳에 온 게 처음이라고, 남자에게 말했더니,
남자도 처음이라고 말한다.
처음이라는 말에···, 피식 둘 다 웃었다.
처음인 거 뭐가 있을까, 남자가 말한다.
잠시 생각하더니, 남자가 두세 걸음 앞에 쪼그리고 앉아 등을 내민다.
남자가 업어주겠다고···, 처음으로 업어보자, 말한다.
남자 등에 업혔다. 어릴 적에 아빠 등에 업혀 보고는 처음이었다. 따뜻한 느낌이 좋았다. 남자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는,
사랑해요, 라고 내가 말했다.
고맙다, 고 남자가 걸으면서 말한다.
내려 달라고 말했고, 남자가 내려 주었다. 남자가 뒤를 돌더니 아주 짧은 시간 나를 품에 안았다가 놓는다. 둘이 손잡고 내려오는데 밥집이 보였다. 밥 먹자고 하였다. 둘 다 비빔밥은 먹어보았지만, 산채비빔밥은 둘 다 처음이었다. 비빔밥과 산채비빔밥은 같은 거다, 아니다로 옥신각신하기도 했다.
더덕구이 먹어보았냐고 남자가 묻는다.
아니, 라고 대답했다.
더덕구이와 산채비빔밥을 남자가 주문하였다.
우리 처음인 거 너무 많다, 고 말하면서 내가 웃었다.
남자도 따라 웃는다.
술 먹고 싶으면 먹으라고 내가 말했다.
남자가 싫다고 한다.
나를 만났으니 술에 취해 세상을 보는 일은 자기 인생에 없을 거라고 말한다.
샤워를 마치고···, 어둡게 남자가 조명을 만졌다. 컴컴한 어둠에 희미한 빛이 허공에 있다. 둘 다 어색하고 쑥스러워했다. 하지만 둘의 입술이 공기의 흡입력으로 부딪히면서 모든 것은 쉽게 흘러갔다. 자연스럽게 몸에 걸친 것이 떨어져 나갔고, 피부의 감각이 살아났다. 둘의 몸이 하나가 되기 위해 욕망이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하지만 어설픈 것보다 더 어설픈 남자였다. 경험이 없다 보니 미끄러지면서 여자의 문을 찾지 못했다. 남자가 쩔쩔매는 것을 보았지만, 나는 어떻게 할지를 몰랐다.
내가 쉬었다가 할까 하고 말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팔의 긴장을 풀고 몸을 일으키려 하는 순간에 뭔가 걸렸다는 느낌이 왔다. 남자도 알았나 보다, 갑자기 밀어붙이는 힘이 느껴졌다. 뭔가가 나의 몸을 쿡쿡 치는 것을 느끼고, 그것을 꽉 막고 있는 것을··· 나는 몸이 주는 감각으로 알았다. 남자도 진입을 허용하지 않는 문의 두터움을 알았을 것이다.
힘들게 비집고 들어오려는 남자의 몸이 느껴졌다. 툭툭 건드리는 느낌이 아랫배를 통해 오고 있었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찢어지는 느낌이 나면서 칼에 베인 듯 아픔이 몰려왔다. 막혔던 문이 열리자 남자의 몸은 어설프지만 빠르게 움직였다.
나는 그냥 아프기만 했다.
아파, 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파서 눈물이 나왔다. 남자가 몸을 바르르 떨더니, 움직임이 멈추었다. 남자가 가만히 있다. 나는 끝났음을 알았지만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겠고, 아프다는 느낌뿐이었다. 남자가 뭐라 말하고, 내가 뭐라 대답하였다. 나의 첫 경험은 아프기만 하였다.
나중에 남자가, 자기는 미끄러운 느낌에, 블랙홀에 몸이 강하게 빨려 들어가는 듯한, 뒷골이 짜릿한 느낌이라고 말해주었다. 남자가 말하는 것이 무슨 느낌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궁합이 잘 맞았다. 궁합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거였다. 궁합은 육체적인 결합이 아니라 마음의 결합을 전제로 하는 거였다.
마음이 없으면 궁합은 맞을 수가 없는 거였다.
마음이 없으면 남자의 일방적 배설 작용을 위한 행위일 뿐이다.
배설에 집중한 관계는 부부관계가 아닌 거였다.
언니들의 성교육은 잘못된 것이었다. 우리는 마음을 맞추기 위해 노력을 다했고, 서로의 몸을 서로의 눈, 코, 귀, 입, 혀, 손에 길들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결혼했다.
결혼 준비하면서부터 남자는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나를 철저히 보호하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그런 모습을 이해하고 있었다. 자기 마누라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아들이 잘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에게도 따뜻하게 해주신다. 시어머니 모르게 용돈을 통장으로 넣어주신다. 한번 뵙자고 하면, 나중에 보자고 하면서 피하신다.
시어머니는 아들을 달달 볶는 듯하다. 나에게도 전화가 오지만, 나는 한 귀로 와서 한 귀로 흘린다. 남자가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했다. 자기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를 이야기해 주었고, 아버지를 어떻게 쥐고 사는지 알고 있다고 한다.
우리 둘이 그렇게 살았다.
우리 둘은 행복하였다.
행복에 위협이 되는 사람은 시어머니였다. 내 형제들하고도 잘 지냈다. 형제들끼리 주고받는 것이 없어야 잘 지내는 거라고, 남자는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았다.
형제들을 도와주지도 않고, 형제들에게 도움받지도 않는다. 도와 달라는 형제가 있으면 못 도와주는 내가 불편하고, 도움을 못 받은 형제는 내가 안 도와준다고 생각해서 화가 나는 것이다. 나를 버려야 한다, 고 남자가 말했다. 각자 잘 살면, 그게 최고이다. 남자의 생각이 나에게 전염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았다.
우리 부부는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렇게 살았다. 우리 두 사람의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다.
시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었다. 우리는 간호를 하지 않았다. 병간호는 시어머니 몫이라고 남자가 말했고, 시어머니가 못한다고 하자, 남자는 간병인을 두었다. 남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찾아갔다. 간병인 비용과 병원비를 어머니에게 달라고 했고, 어머니는 없다고 했다.
남자가, 어머니 남편이잖아요, 했고
어머니는, 네 아버지다, 라고 말했다.
남편의 여동생은 자기 엄마 편에 서서는 오빠가 해야지, 아들이잖아, 말한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시어머니는 상속재산을 자기 앞으로 하고는 아들에게 찾아오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명절날이 되면 명절날 갈 곳이 없다면서 우리 집을 찾아온다. 그리고 반찬 투정하고, 우리 아이에게 내 흉을 본다. 아이는 할머니를 피한다.
시누이는 오빠에게 말 한마디 못 한다. 어머니가 시누이가 집을 장만할 때 돈을 해준 것을 알지만, 우리는 모른 척한다. 아니 모른 척이 아니라 알았지만, 해주든 말든 관심이 없었다.
아이는 성장을 하고, 우리는 우리끼리 이사 다니면서 부지런히 살았다. 신도시로, 재개발, 재건축, 뉴타운으로 그렇게 7번을 정신없이 다녔다. 32평짜리 아파트를 빚 없이 장만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은 날 사랑하였고, 나도 남편을 사랑했다.
나는 행복했다.
딸아이와 남편, 우리 셋이 사는 세상을···, 나는 사랑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한 해가 가면 갈수록 남편하고 나는 서로의 몸을 너무 잘 알았다. 몸짓 하나에, 눈빛 하나에 상대가 원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서 만져주고, 깨물어준다.
20대에는 어리숙한 흥분이,
30대는 뜨거운 흥분이,
40대는 은근한 흥분으로···,
부부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쁜 쾌락에 행복하였다.
우리 두 사람은 인간이라는 남자와 여자에게 더 깊숙이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가 심장에 이상이 있어서 쓰러졌다. 심장 판막에 연결되는 혈관이 태어나면서부터 비정상이었다. 그것을 모르고 산 것이다. 병원에 옮기었다. 시어머니와 여동생에게 연락했는데···, 시어머니 문자가 왔다.
네 남편이다, 하는 문자였다.
병원 중환자실에 6개월이 있다가 남자는 죽었다.
그동안에 시어머니와 여동생을 병원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우리 집 형제들이 몇 번씩 오고는 병원비 쓰라고 돈 봉투를 주고 갔다. 장례식을 치르는데, 시댁 식구 중에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 6촌 형제가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 뿐, 시어머니와 여동생은 장례식 동안에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아들이고 오빠인데···, 몇 번을 전화했지만, 연결이 안 되었고, 문자를 보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수목장으로 남자와 이별을 해야만 했다.
남자는 나에게 모든 것을 주고 갔다. 그렇게 산 남자였다.
남자에게 받을 수 있는 사랑이 있다면, 이 남자의 사랑 이상은 없을 것이다.
아이에게 이야기해야 했다.
너와 나 둘이···, 살아야 한다. 너에게 가족은 없다. 할머니, 고모가 아빠한테 하는 거 보았지, 그게 인생이라고 말해주었다. 네가 행복하고, 네가 인생을 사는 거라고···, 아빠는 그렇게 산 사람이고, 아빠는 그렇게 너와 나를 사랑하면서 살았다고···, 너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네가 이다음에 커서 사랑한다면, 아빠가 엄마를 사랑한 것처럼···, 네가 만나는 그 남자를 사랑해 주라고··· , 말해주었다.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였다. 남자가 죽은 지 1년이 넘었다.
종신보험 들어 놓은 것이 있어서 사망보험 수령액으로 5억 원이 나왔다. 보험금이 나온 것을 알고는 시어머니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자기 아들이 죽어서 나온 돈이니, 자기에게 권리가 있다는 거였다.
죽어가는 아들을 찾아오지 않은 사람이, 돈 달라고 찾아왔냐고 하였다. 한 번 더 찾아오면 물벼락 맞을 생각으로 오라고, 했다.
밤이면 나의 모든 것을 사랑해 주었던 남자가 그립다. 죽은 사람의 손길이 그리워 눈물이 나왔다. 사랑하는 이가 없다는 것이 삶의 에너지를 뺏어가고 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주고 죽지 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남들처럼 적당히 하였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나에게 모든 것,
하나도 남김없이 주고 간 사람,
그립고 그립다.
내가 삶의 의욕이 없이 지내는 것을 딸이 눈치챘는지, 어제는 저녁을 먹고 대화 좀 하자고 한다.
엄마 시집 다시 가라고 말한다.
그게 말이 되냐고 말했더니,
말이 된다고 한다. 자기는 엄마하고 살 수 없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에게 갈 것이니···, 엄마는 엄마 새 사랑을 찾으라고 한다.
아빠 같은 사람 없을 거라고, 말했더니···,
아빠 같은 사람 찾지 말고, 아빠하고의 사랑은 지난 것이고, 새로운 사랑, 새로운 인생을 살라고 말한다.
지난 것은···, 지난 것으로 잊고, 새로운 것으로···, 살라고 한다. 아빠를 버리라고 한다.
할머니도 자기가 배 아파 낳은 아들을 버렸는데, 엄마가 왜 못 버리냐고···, 딸이 말하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레스토랑이다. 피자와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앞에 앉은 남자는 백화점 재테크 강의에서 만났다. 강사였다. 강의가 끝나고 질의응답을 하다가 내가 질문을 하였다. 그리고 그날은 그게 다였다.
매일 경제 신문 하단에, 부동산 투자 전략이라는 안내가 있었다. 이 남자가 강사로 나와서 건설회관에서 30분 강의한다는 내용이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판교역 앞에 있는 스트리트 상가를 분양하는 행사였다. 건설회관을 갔더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맨 앞에 앉아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앞자리까지 찾아가서 인사를 했다.
남자가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하는, 그런 눈빛으로 일어난다.
기억하시냐고 했더니···,
알고 있다고 한다. 목동 현대백화점에서 질문한 분 아니냐, 고 한다.
선생님 쫓아 왔어요, 라고 말했더니 남자가 웃는다.
남자의 모습이 보이는 뒤편에 자리 잡고 앉았다. 행사 진행에 따라 남자의 순서가 끝나고, 관계자들과 악수하고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따라 나갔다.
뒤에서 선생님··· 하고 부르니, 남자가 발을 멈추고 나를 보았다. 그날 우리 두 사람은 학동역 사거리에 있는 창고라는 한우 전문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두 번째로 밥 먹는 거였다.
자전거 타고 한강을 달렸다.
반포대교에서 분수가 밤하늘로 뿜어지는 물줄기를 보았다. 사진을 찍어서 남자에게 보냈다. 자전거 타고 왔다가 쉬는 중, 문자도 함께 보냈다. 남자에게 문자를 보낼 생각을 왜 했는지 나의 마음을 모르겠다.
반포대교, 한강, 물, 연인들, 분수, 야경, 쓸쓸함, 등이 주는 이미지에 감정이 흔들렸을 거라, 생각한다. 딱히 연락할 사람도 없어 여기저기 전화번호 뒤지다가 언니 동생들에게 문자 한 것은 기억한다.
남자에게 문자를 한 것은 기억이 없었다.
남자가, 좋네요, 라고 회신한 문자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어 당황하였다. 그렇게 밤 10시에 주고받은 문자가 시작이었다.
남자와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렸다. 한강공원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면서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남자는 이혼한 남자였다.
사모님이 운동권 출신인 것을 몰랐다고 한다. 사모님은 서울교통공사에 근무하였다고 한다. 중매해서 결혼했는데, 어느 날 노조 집회하느라 집에 안 들어오는 날이 많아졌다고 한다. 데모하는 곳을 찾아가니, 삭발하고 띠 두른 마누라를 보고 기겁하였다고 한다.
한밤중에 찾아온 남편에게, 자기는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 터이니, 당신도, 당신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라. 자기가 사는 방식을 방해하지 말라고 말하였다는 것이다.
중매 결혼이었지만,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믿었는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날로 부부라는 책임과 의무를 버리고 살다가, 무의미한 부부가 되어 이혼했다는 것이다.
슬픈 표정의 그늘이 남자 얼굴에 있다.
내 옆에 앉아 반포대교 분수 쇼를 보고 있다.
딸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딸은 아빠를 잊을 거라고, 나에게 아빠를 버리라고 하였다.
죽은 남자는 나에게 모든 것을 주고 간 남자였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남자는 날 사랑한 것이고, 난 그 사랑에 대한 반응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반응을 나는 사랑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남자가 날 사랑하지 않았다면, 난 반응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난 머리로 하는 조건부 사랑이었다.
언니들도 조건부 사랑이었다.
부부라는 것이 비극으로 끝나는 것은, 조건부 사랑이기 때문이었다.
결혼이 계약관계라는 것이다.
이것을 모른 척하고 사는 것이 부부이다. 사랑에 눈먼 연애가 좋은 것은 조건이 없기 때문이었다.
애 아빠와 부부로 둘만이 온전한 사랑으로 살았다는 내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그 남자에게는 온전한 사랑이었지만, 난 아니었다. 나는 이기적인 사랑이었다.
남자가 등산하냐고 물었다.
등산화가 없다고 하니, 등산화를 사 들고, 일요일에 산에 가자면서 왔다. 한강이 보이는 검단산을 올라갔다. 네 번 정도 자전거 탔고, 오늘 검단산까지 왔으니, 이제 조금 친해진 것 같다.
정산 근처 진달래가 둘러싼 곳에 둘이 앉을 만한 곳이 있었다. 따사한 햇살이 진달래 꽃잎 사이로 들어왔다.
대화 나누면서 많이 웃었다. 말을 재미있게 했다. 대화하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았고, 주저함 없이 남자는 대답하였다. 꽤 많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웃긴 남자였는데, 진지한 사람이었다. 세 시간이 한 시간처럼 지났다. 산에서 내려와 저녁 먹고 헤어졌다.
잠자려고···, 누웠는데 남자에게서 문자가 왔다.
연애합시다. 라는 문자였다.
사귀자는 것이 아니라 연애하자는 문자라니···, 해석이 애매했다. 같은 말인가 아닌가 생각하면서 몸을 뒤척이는데, 남자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나는 사랑이 필요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여자였다. 이것도 죽은 남자가 나에게 주고 간 거라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남자가 나를 만나러 오전에 찾아왔다.
남자가 운전하는 차 타고 소양댐에 놀러 갔다. 가까이서 보니, 어마어마한 물이 산들에 둘러싸여 있다. 산들산들 부는 바람이 물 위에 있다. 빙 둘러싼 산자락이 다채로운 풍경을 보여주고, 건너편에 있는 산이 깨끗하게 보였다. 유람선을 타고 청평사에 갔다 왔다. 청평사는 처음이었다. 은밀한 사랑, 허락받지 않은 사랑, 상사(想思)뱀에 대한 전설이 흥미로 왔다.
춘천호 인근에 닭갈비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 들어갔다. 메뉴에 닭 내장 볶음이 있었다. 남자가 메뉴를 보더니,
이런 것이 있냐고 혼잣말을 하듯이 한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가 술안주로 먹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닭갈비 2인분에 닭 내장 1인분 추가해서 주문했다. 남자가 처음이라는 말을 몇 번씩 한다. 젓가락으로 들었다 놓았다 한다. 먹을까 말까 망설이는 것을 본다. 웃음이 나왔다.
처음이라는 단어가 귓가에 강하게 들렸다.
밥 먹고 나서 호수를 산책했다. 그늘이 많지 않아 양산을 꺼내 걸었다. 잔디와 꽃들이 심어있는 길을 걸었다.
시원한 바람이 쾌적한 느낌이었다.
사귀자, 연애하자, 내가 문자 보고 갸우뚱했다고 말했다.
보통 사귀자고 하지, 연애하자고는 안 한다고 말했다.
사귀는 것은 그냥 친구 관계에서 쓸 수 있는 말이라고 남자가 말한다.
자기는 나하고 친구로 사귀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한다. 여자 친구는 많다 한다. 나에게 문자 보낸 것은, 남녀 관계로··· 남자와 여자로 만나자고 한 거라 한다. 50살이 넘었으니 시간이 없다는 거다.
살아온 인생보다 죽을 날이 가까우니, 그 시간을 사랑으로 채워갈 여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자 친구 많으니 그중에서 사랑할 여자 찾으면 되겠네요, 라고 내가 말했다.
여자 친구가 100명이 있어도 사랑할 여자는 없다고 말한다. 몸이 가고 마음이 안 가면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 마음이 가고 몸이 안가도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
마음과 몸이 온전히 한 사람에게 갈 때 사랑이라고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꾸불꾸불 복잡하게 연결된 인생에는 엄청난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고 한다. 과거 속의 숨겨진 이야기들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나에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 뭐냐고, 묻는다.
사랑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거라고···, 내가 대답하였다.
남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거는 사랑이 아니라 희생이라고 한다.
사랑과 희생이 다른 말인가 생각해 보니, 같은 것 같기도 하고,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려가 깊은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의 사랑이 뭐냐고 내가 물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당신을 내가 그리워하는 것만이 사랑이라고, 남자가 말한다.
과거의 사랑은 끝난 것이니, 지난 것에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다 한다.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마찬가지로 사랑이 아니라 한다.
지금뿐이란다.
지금 내가 당신을 그리워한다고,
자기 여자로 만들고 싶다고, 그게 사랑이란다.
내 남자가 되고 싶다고···,
그 마음이 나중에 변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미래라서 모르는 거라 말한다.
모르는 것을 가지고 고민할 필요 없다 한다.
한 사람이 죽으면 사랑은, 부부관계는 끝난 거란다.
나중에 잘해줄게, 라는 말은 거짓말이라 한다.
그런 말 하면, 믿지도 않지만, 해줄 거면 당장 하라고 말한다.
말하는데 망설임이 없다.
모르는 것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남자의 말이 뇌리에 남는다. 모르기 때문에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데, 이 사람은 반대로 이야기한다.
영원히 사랑해, 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한다.
늘 지금···,
그 사랑만 할 거라고 한다.
남자가 28년 사랑합시다, 하고 웃는다.
28년이면 자기가 80살이라고 한다. 자기가 80살 되기 전에 죽을 수도 있으므로 책임 못 진다고 말한다.
애인처럼 부부처럼 친구처럼 그렇게 남은 인생 사랑하자고 말한다.
남자의 얼굴을 조수석에 앉아서 쳐다본다. 백화점 커뮤니티 센터에서 내가 이 사람 처음 보았을 때 나도 모르는 끌림이 있었다.
끌림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필연이라고 하는 운명일 것이다.
남자의 동선 따라 움직였고, 자연스럽게 밥을 먹었다.
유혹했다면 내가 먼저 한 것이다.
왼손은 운전대, 오른손은 기어에 올려놓고 있다. 남자의 손을 내가 잡았다. 남자가 나를 쳐다보고 웃는다. 손을 빼더니, 자기가 내 손 잡는다.
나더러 생각이 많다고 말한다.
사랑은 아낌없이 주는 거라 말한 사람이 생각이 많으면···, 말하고 행동이 다른 거라고 말한다.
고속도로 달리는데 해가 지기 시작한다.
남자가 운전을 급하게 한다. 해지는 것을 휴게소 가서 보자고 말한다. 휴게소에 차가 들어가자, 휴게소 옆에 공원으로 둘이 뛰다시피 갔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이 붉게 변해가는 서쪽 하늘 속에 점이 되어 사라진다. 남자가 내 뒤에서 나의 어깨에 두 손을 올려놓고 있다. 붉은 노을이 가슴 뭉클하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해가 사라지자, 공원 나무들에 어스레한 그림자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남자가 내 몸을 돌리더니 아주 짧은 시간 나의 몸을 끌어당겨 포근히 안았다가 놓는다.
눈이 마주치고, 둘 다 빙긋이 웃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저녁 공기는 부드러웠다.
남자가 고개 숙이고 내가 눈을 감았다.
남자의 입술이 나의 입술로 다가왔다.
부끄럽지도 않았고, 당황하지도 않았고, 미안하지도 않았고, 멋쩍음도 없었다. 입술에 닿는 감각이 좋았다. 몸에 퍼지는 아련한 느낌이 좋았다.
나에게 두 번째 삶을 주는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남자에게 나의 모든 것, 하나도 남김없이 주면서 사랑하리라 생각한다. 이 남자가 말하는 사랑과 내가 하는 사랑이 다를 수 있다.
이 남자의 사랑은 이 남자의 것이다. 그 사랑은 이 남자가 생각할 사랑이다.
나는 나의 사랑을 할 것이다. 이 남자는 받는 사랑이 될 것이고, 나는 주는 사랑이 될 것이다.
부부라는 관계에 흐르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았다. 나는 이 남자를 사랑한다. 나는 나의 영혼을 이 남자에게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