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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전자레인지 3분, 그런부부

단편소설

by 경국현





밤 11시 3분. 현관문이 열린다. 나는 그 소리를 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동작. 구두 벗는 소리, 외투를 벗는 소리, 그리고 전자레인지 문이 ‘탁’ 하고 닫히는 소리.

그는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온다. 말없이 비닐을 벗기고, 말없이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넣는다.

삑삑, 3분.

기계음이 돌아가는 동안, 그는 셔츠를 풀고 손을 씻는다.

나는 안방에서 이불을 덮은 채, 웅— 하고 돌아가는 그 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그건 어느새, 우리 집의 유일한 대화가 되었다.

우리는 말을 잃은 지 오래다. 식탁을 사이에 두고 앉아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내가 무슨 표정을 짓든, 그는 알지 못한다.

그가 늦게 들어오든, 말없이 잠들든, 나는 그저 조용히 등을 돌릴 뿐이다. 부부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서로의 그림자처럼 산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거실을 지나칠 때마다 나는 느낀다.

이 집에는 사람이 아니라, 두 마리의 유령이 살고 있다.

어느 날, 냉장고를 비워뒀다.

사소한 도발이었다.

매번 도시락을 채워두는 내 루틴을 일부러 끊어봤다. 텅 빈 냉장고 안에,

그날 밤 그는 전자레인지를 열고,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다. 그 뒤 방으로 들어가, 아무 말 없이 불을 끄고 누웠다.

나는 거실에 나와 조용히 물을 마셨다.

그가 느꼈을까.

내가 그날, 얼마나 울고 있었는지를.

다음 날, 식탁 위에 삼각김밥 하나와 종이컵 커피가 놓여 있었다. 유통기한이 오늘까지인 것. 그건 말 없는 제스처였다.

무엇을 말하고자 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표현이었는지도 모른다.

며칠 후, 나는 다른 남자와 모텔에 있었다. 그는 말이 많았고, 나를 웃게 했다. 그의 손길은 뜨거웠고, 표정은 생기가 있었다.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그 순간만큼은.

며칠 뒤, 전자레인지 안에 도시락이 들어 있었다. 돌리지 않은 채, 그대로. 그 위에 노란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이젠 이유도 없네.”

그는 그날 이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화도, 메시지도 없었다.

나는 그를 찾지 않았다.

의외로, 생각보다 허탈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 이후, 나는 하루에 한 번 전자레인지 문을 연다. 텅 빈 그 안에서 식지 않은 공허함이 다시 돌아온다.

3분이라는 시간,

그 짧고 긴 온기를 나는 끝내 붙잡지 못했다.

밤 10시 45분.

나는 늘 같은 골목을 지난다. 회사에서 집까지는 50분. 하지만 집으로 바로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 나는 항상 그 골목 끝에 있는 편의점 앞에 선다. 막상 무엇을 사야 할지 모르면서, 습관처럼 발이 거기 멈춘다. 편의점 안의 형광등 불빛은 지나치게 밝다.

나는 도시락 코너 앞에서 망설인다. 불고기 도시락은 간이 세고, 치킨마요는 느끼하다. 나는 대충 손에 잡히는 걸 고르고, 얼음 컵 하나를 더 챙긴다. 오늘은 말을 건네는 점원이 없다. 그래서 더 좋다.

집에 도착하면 11시 3분.

그녀는 안방에 불을 켜두지 않는다. 거실도 어둡다. 마치 나를 기다리지 않았다는 듯한 침묵. 나는 익숙한 동작으로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넣는다.

삑삑, 3분.

그 시간 동안 나는 신발을 정리하고, 셔츠 단추를 푼다. 돌아가는 기계음이,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들린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말을 잃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그냥 안 한다. 그녀는 나를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도 알고 있다. 나 혼자만 잘못한 건 아니라는 걸. 우린 둘 다 지쳤고, 동시에 물러섰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의 뒷모습만 바라보며 버텼다.

어느 날, 냉장고에 아무것도 없었다.

도시락도, 반찬도, 물조차도. 무언가 끝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떠날 용기가 없었다. 그날 밤, 말없이 누웠다. 등을 돌리고, 불을 끄고, 숨을 죽였다. 그녀가 뭘 말하든,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식탁에 삼각김밥을 놓았다.

말 대신, 무언가라도 남겨두고 싶었다.

그건 나의 방식이었다.

“나도 아직 여기 있어.”

그런 말이었을 것이다.

며칠 후, 나는 작은 소문을 들었다. 그녀가 누군가와 카페에 있었다는 이야기. 처음엔 화도 나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텅 비었다. 그녀를 붙잡고 싶은 감정보다, 떠날 이유가 더 또렷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마지막 도시락을 샀다. 그것을 전자레인지에 넣지 않고, 그냥 두었다. 그 옆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그 말은 미움이 아니라, 사랑의 마지막 언어였다.

돌아보지 않고 문을 닫았다.

집 안은 조용했고, 내 발소리만 희미하게 따라왔다.

나는 지금 편의점 앞에 앉아 있다. 맥주 캔이 식어간다. 그녀는 지금 냉장고 문을 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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