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장기 그래프의 환상

<안하는게 바보야>

by 경국현

요즘은 방송에서조차 부동산을 판다.
‘부동산 정보 프로그램’이라는 포장 속에, 실상은 완전히 광고다.

자막은 쉬지 않고 흐른다.
무료 강의, 무료 세미나, 무료 상담.
방송을 믿는 시청자는 투자자가 되고, 그 방송을 만든 사람들은 부동산 업자다.

방송국은 프로그램을 통째로 외주 주고, 손 하나 까딱 안 한 채 돈을 번다.
사업자는 출연자 섭외부터 시나리오까지 전부 짠다.
그러니, 정보라기보다 연극에 가깝다.


남자도 한 번, 경제 전문 채널 토론 패널로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 방송을 보고 금천구에 있는 중개업자가 연락해왔다.
“빌라 여덟 채 분양 중입니다. 분양가 2억1천, 전세 1억8천 맞췄고요.
팔아주시면, 채당 수수료 1천만 원 드리겠습니다.”

말은 달콤했지만, 여자가 먼저 선을 그었다.
“이건 중개야. 컨설팅이 아니라고.
이런 거 하면 스스로 양아치 되는 거야.”

남자는 한참을 말없이 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이렇게 말했다.

“우리 어릴 적 생각나니?
엄마가 미아리 시장에서 350만 원 주고 가게 딸린 집을 샀지.
그 집이 지금은 8억이야.

근데 그때 압구정 땅을 샀으면?
평당 5천 원이었으니, 1천 평은 샀겠지.
지금이면… 1천억 원이야.”

J와 여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바꾸는 거야.
그리고 지금, 우리도 그런 선택의 시기에 서 있는 거고.”

남자의 목소리는 점점 설득을 넘어 신념처럼 들렸다.

“IMF, 금융위기, 코로나?
그거 다 단기 곡선 그래프야.


장기 곡선 그래프를 보면, 부동산은 한 번도 꺾인 적이 없어.”

“장기 곡선이요?” J가 물었다.

“눈앞에 보이는 건 단기 그래프고,
보이지 않는 곡선을 읽는 게 장기 그래프지.”

그 말에 J는 무언가 깨달은 듯 눈을 깜빡였다.


남자는 말을 이어갔다.

“사람들은 책 한 권 읽고 전문가인 척해.
그런 사람이 재테크 책 쓰고, 방송 나가서 공포 마케팅하지.

폭락한다고 외치지만, 실제로 집 파는 사람 봤어?”

여자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한 명도 못 봤죠.”

“그게 다 말장난이야.
우린 사업하는 사람들이잖아. 길게 봐야지.”

“그래서, 빌라 8채, 우리가 직접 사자”

남자가 조심스레 꺼낸 말에, 여자가 눈을 부릅떴다.
“우리가요? 팔아주는 게 아니라, 사겠다고요?”

“맞아. 채당 수수료 1천만 원.
우리는 실질적으로 2억에 사는 거고, 전세가 1억8천이면
2천만 원만 투자하는 셈이다.

8채 해봤자 1억6천.
전세가 조금만 오르면, 원금 회수돼고.”

여자가 망설이듯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확신이 찬 목소리였다.

“법인 하나 만들어. 대표는 J.
우린 조용히, 역세권 신축 빌라만 사들이는 거야.”

“100채까지 사들이자.”
남자의 말은 거침없었다.

“무슨 일이 생겨도, 일시적이야.
부동산은 결국 우상향이야.”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요?”
여자가 작게 말했다.

“빌라 전세가 매매가의 90%까지 맞춰진다던데…”

남자는 웃었다.
“그래서 더 좋은 거야. 사업자는 이미 전세로 돈을 뽑아냈어.
우린 그 물건을 사들이는 거고.

하나 팔아 두 개 사고, 두 개 팔아 네 개 사고…
결국 100채가 되면 게임이 끝나는 거지.”


J는 속으로 생각했다.

‘무서운 사람이다. 이 사람은 이미 끝을 보고 있구나.’

그 순간, 남자의 말투, 손짓, 눈빛까지
J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작가소개

부동산학 박사

삶의 나락과 상승, 그리고 인간관계의 균열속에서 피어나는 소설을 국내 최초로 쓰고 있습니다.

브런치에는 요약본을 올려 드리고 있습니다.


다음회 예고

이제 1부가 끝나고, 2부가 시작됩니다. 배경은 2010년~2015년 입니다. 주인공인 남자와 그는 검사와 조폭출신의 친구들과 일을 도모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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