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사랑

<여자의 마음>

by 경국현

강혜영은 동인건설 명함을 건넸고, 미희는 ㈜선우 명함을 내밀었다. "건설사와 부동산은 한솥밥 먹는 사이지, 언니."

직장인 야간대학 경영학과에서 만난 두 여자는 신입생 환영회에서 인사를 나눈 뒤, 자매처럼 가까워졌다.

"여자는 몸이 경쟁력이거든, 언니. 몸 관리 좀 해. 나이 들수록 더 중요해."

"나도 해볼까? 가슴 키우고 얼굴도 손대고··, 그런데 무서워."


혜영의 고향은 인천. 전문대를 졸업하고 백화점에서 판매사원으로 일하다, 이천의 골프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숙소가 제공되는 캐디 생활. 그곳에서 그녀는 처음 ‘몸이 재산’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돈 있는 남자들이 골프장으로 몰려들었다. 혜영은 말하는 법, 옷 입는 법, 화장 기술, 심지어 골프까지 익혔다.

청순하고 수줍은 향기를 섬세한 몸짓에 담아내자, 남자들은 발정 난 개처럼 구애했다. 스스로 목줄을 걸고, 그 끝을 그녀의 손에 맡겼다. 공깃돌을 굴리듯, 그녀는 남자를 알았고, 세상을 배웠다.


둘이 자주 가는 단골 BAR에서 칵테일을 앞에 두고 혜영이 묻는다.

"언니, 남자친구 얘긴 한 번도 안 한 것 같은데? 연애는 어때?"

"뭐가 궁금한데?"

미희가 장난스레 웃었다.

"나, 전에 말했잖아. 골프장에서 일할 때 마흔 넘은 아저씨가 첫 남자였다고. 일부러 안 만난 것도 아닌데, 나도 그땐 순진했어. 내 첫 남자니까, 그에게 사랑을 바랐지. 선물처럼··, 그런데 그런 남자 없더라."

"기억나, 들었어."

"아저씨가 엄청 쫓아다녔지. 그 노력에 진심이 보였고. 처음 관계를 맺었을 땐 아팠어. 부끄럽고 창피했지. 침대에 묻은 피를 보고, 그 아저씨가 울먹이더라. 남자로서 처음 본다고. 그러더니 캐디 그만두라고 했어. 천호동 오피스텔을 내 이름으로 사주고, 한 달에 400만 원씩 생활비 주고, 차도 사주고. 그렇게 골프 치고 피부 관리하고, 영어 학원도 다녔지. 그러다··, 임신됐어."

미희의 눈이 커졌다.

"진짜?"

"그래. 그런데 임신 얘기를 꺼내자, 아저씨 얼굴이 사색이 되더라. 말도 더듬고. 바람나서 집 나간 우리 엄마 생각이 나더라고. 웃기지? 결국 우린 끝났어. 그 사람 성남의 어느 교회 장로였어. 헤어지자고 했더니 위자료로 1억을 통장에 넣어줬어.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아. 첩 하나 두고 싶었겠지. 아니면 진짜 사랑이었을까? 난 아직도 모르겠어."

혜영은 오피스텔을 팔고 청담동 스포츠센터에 등록했다. 무지개처럼 다양한 사랑을 경험했고, 그 끝에서 지금의 사장을 만났다.

"사별하신 분이라며?"

"응. 너무 내 얘기만 했나? 난 여자는 몸을 가꿔야 한다고 믿어. 남자들이 원하는 사랑은 결국 몸이니까."

"술 안 취했지? 넌 사랑을 한다기보다는, 남자들을 가지고 노는 것 같아."

"나도 사랑해. 울고불고 매달리는 사랑은 안 해. 사랑을 핑계로 누가 내 인생을 독점하려 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감옥이야. 난 그게 싫어. 사랑은 즐거운 거야. 고통받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

"노는 게 사랑이라고?"

"그래. 나 좋아해 주는 남자, 나도 좋아해. 싫다며 떠나는 남자, 붙잡지 않아. 나비는 한 꽃에 머물지 않고, 꽃도 한 나비만 기다리지 않잖아. 언니는? 형부 이야기 좀 해줘."

미희는 조용히 말했다. 혜영은 놀람과 아련함이 뒤섞인 눈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 사람이 날 사랑해서, 혹은 내 사랑 때문에 고통받는다면, 그런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는 사랑을 증명할 필요 없어."

"아니야, 언니. 여자는 확인받고 싶어해."

"사랑하고 있다면, 왜 증명이 필요할까? 말로도, 돈으로도 증명되는 게 아니야. 큰 돈이면 큰 사랑인가? 우습잖아."

"언니, 내 얘기 듣고 실망했지?"

"아니, 너는 너만의 사랑을 해.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고. 그 차이일 뿐이야."

미희는 혜영의 손을 살짝 잡았다 놓는다.

"같은 공간은 아니지만 같은 시간에 있는 거야. 몸은 떨어져도 마음은 함께 있는 거지."

"언니, 너무 슬퍼."

"슬프지 않아. 난 지금 행복해. 그 사람에겐 과거가 있었고, 지금도 그 잔향이 있어. 난 그를 독점할 수 없어. 욕심이니까. 애초에 사랑하지 말았어야 했던 거야."

"언니랑 난 달라. 근데 또 비슷해."

"사랑이든 뭐든, 시작이 다르단 걸 인정하지 않으면 그건 집착일 뿐이야. 너랑 나의 차이, 하나뿐이야."

칵테일 잔이 다시 흔들린다.

"언니, 가슴이 아려. 너무 슬퍼."

"사랑을 자꾸 의식하면, 그건 사랑이 아니게 돼. 사랑한다는 걸 잊을 때, 진짜 사랑이 시작되는 거야."


사랑은, 영혼의 깊은 곳에 숨은 조용한 흔들림이다.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그 깊이만큼 진실하다.

그날 밤, 두 여자는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편견 없이 사랑을 말하지만, 사랑의 무게는 서로 달랐다. 서로에게 충격이었고, 동시에 위로였다.

미희가 신청한 노래가 흘렀다. Melanie Safka의 'The Saddest Thing.' 혜영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미희는 그 눈물을 조용히 보았다. 둘의 눈에는 그늘이 내려앉았고, 끝내 함께 웃었다.

사랑이 있다면, 사랑은 단 하나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사랑. 그 사랑은 언제나 아름답고, 언제나 잔인하다.



<작가 소개>

부동산학 박사

삶의 나락과 상승, 그리고 인간관계의 규명속에서 피어나는 부동산 장편 소설을 국내 최초로 쓰고 있습니다.

브런치에 요약본을 올려 드리고 있습니다.


<다음회 예고>

부동산 분양에 있는 교묘한 마케팅 전략을 이야기 합니다. 분양 사기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실제 모습을 소설로 보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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