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물 잡기 07화

물을 잡으면 7

by 호인

컴퓨터를 끄고 끊어진 씨줄과 날줄들을 다시 이어본다. 브라마가 눈을 뜨면 새로운 칼파가 시작된다, 시답잖은 광고문구가 귀속에서 자꾸 울린다. 새로 시작한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한솔이는 어제도 늦게 돌아왔다. 누구와 어디에서 무엇을 한 걸까. 실을 다 연결해 직조기에 다시 걸어 보려 했지만 씨줄이고 날줄이고 엉망이 되어있다. 머리가 아프고 눈이 튀어나올 것 같다. 나는 작업실에 웅크린 채 눈을 감는다. 명료한 정신에 가위가 눌린다. 생매장에 처해진 죄수처럼 몸을 움직일 수 없는데 잠은 들지 않는다. 죽은 고양이와 금붕어들을 빠그작 빠그작 밟으며 누군가 어두운 집안을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나는 움직일 수가 없다. 달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다시 달칵.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일까. 그러나 나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건 꿈이다. 환청이거나. 현실일 리가 없으므로 일어날 필요가 없다. 꿈인지 현실인지 다시 문이 열리고 다시 나가고, 열렸을 리 없는 문이 닫히고, 들리지 않는 발소리조차 멀리 사라지기를 되풀이 되풀이 귓속에서 이명처럼 울렸다. 꼼짝도 할 수 없던 나를 일으킨 건 6층 여자의 전화였다.


-딸애가 안 보여, 영어 학원 끝나고 데리러 갔는데 없어.


가위에 눌린 채 한밤을 다 샌 줄 알았는데 겨우 삼십 분이 지났을 뿐이다. 나는 태연한 목소리로 근처에 있겠지, 나도 나가서 찾아볼게, 6층 여자에게 말한다. 거짓말이다. 나는 한솔이의 방 앞으로 간다. 문에 가만히 귀를 대어 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문 앞에 망설이며 서 있을 뿐 무엇이 무서운 걸까. 나는 결국 문을 열지 못한다. 나는 발길을 돌려 거실로 간다. 어항 속에 금붕어들이 살아 있다. 비닐봉지에 물과 금붕어들을 담아 들고 집을 나선다. 남편이 사는 곳은 알고 있다.

문 열어! 문 열라구! 소리 지르며 문을 두드리는 동안 줄줄이 늘어선 문짝들 안 어디선가 더러운 욕설이 몇 번 들렸다. 그러나 남편의 이웃 따위에 신경 쓸 여유는 없다. 남편이 이 집 같지도 않은 방 한 칸에 틀어박혀 있는 건 분명하다. 닫힌 문을 연달아 걷어차자 문짝이 떨어질 듯 건들거렸다. 뒤늦게 손잡이를 돌려 본다. 입주자의 태반이 좀도둑일 것 같은 이 건물에서 남편은 문을 잠그지 않았다. 손잡이는 덜커덕 돌아가고 어이없게 문이 열린다.

한솔이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170센티미터, 깡마른 몸집, 잃어버린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신들과 악마들의 전쟁이 화려하게 벌어지는 모니터를 보고 있다. 티브이 광고에서 몇 초 안에 끝나버린 전쟁이 그곳에선 오래 지속되고 있다. 가구라고는 컴퓨터 테이블과 싱글 침대가 전부, 방바닥에 옷가지가 어지럽게 널려 있고 이불 가운데는 작은 무덤처럼 봉긋하게 솟아 있다. 죽은 금붕어 떼나 고양이 토막이나 납치당한 여자애나 한솔이가 숨어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내 지옥으로 통하는 그 무덤으로 한 걸음 다가간다. 문이 열리건 말건 모니터만 뚫어지게 보던 한솔이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삼십 년은 늙어 버린 한솔이가 나타난다. 아니다. 한솔이가 아니다. 한솔이가 남편을 많이 닮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남편은 묻지도 않은 대답을 한다.


-한솔이는 자고 있어.


내가 봉긋한 침대를 보자 남편이 다시 말했다.


-여기에 없지. 집에서 자고 있어.


아. 그렇지. 그 안에 금붕어나 고양이나 여자애나 한솔이가 있을 리 없잖은가. 어이없을 정도로 명료한 답을 깨달은 나는 이불 속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는다. 그제야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민다.


-금붕어가 자꾸 죽어.


남편의 눈이 금붕어와 나를 번갈아 본다. 나는 고양이 학대 사건이 시작된 이후 내가 어항을 돌보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밥을 주지 않았고, 그리고, 물도. 남편의 충혈된 눈이 나에게 정착하고 낮고 웅장한 소리가 울린다.


-물이 깨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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