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 위에서 날아오르는 초파리 떼를 보고 나는 아내와의 재결합을 잠시 후회했다. 외로움에 밀려 우리가 결별했던 원인을 잊고 있었다. 아내는 원래 그런 여자였다.
내가 아내와의 결혼한 건 다분히 충동적이었다. 게임 기획 일을 하며 만화책과 피규어 수집으로 충만한 삶을 즐기던 나였지만 언제부터인가 외로움과 허전함이 조수처럼 밀려들었다가 물러나길 반복했고, 그 조수가 만조에 이르렀던 어느 순간 마침 곁에 있던 여자가 아내였다. 아내는 그 무렵 작은 수입상품 가게 같은 데서 일하고 있었고 나는 그 가게에 진열된 물건을 보고 들어갔다가 아내와 마주쳤던 거였다. 아내는 제법 날씬한 체격에 무난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 후로도 몇 번 가게에 들러 아내와 노닥거리다가, 인생이 허무해 미칠 것 같던 어느 날 청혼을 했다.
처음 며칠을 제외하곤 나의 결혼생활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라면과 매식으로 연명해야 했고 집은 총각 시절보다 더 지저분해졌다. 심지어 만화를 보거나 프라모델을 조립하려면 아내의 눈치까지 봐야 했다. 결혼생활의 장점을 도무지 찾을 수 없었고, 우리는 매일 치열하게 싸웠다. 외로움과 고독이 오히려 그리워질 무렵 아내가 전에 일하던 가게의 사장과 함께 있는 장면을 보게 되었고, 천지는 아니라도 아파트 아래위층이 온통 뒤집히는 큰 싸움 끝에 아내는 시퍼렇게 멍든 얼굴로 짐을 싸 들고 나가버렸다.
집은 다시 덩그러니 외로워졌다. 아내는 내 취미 생활을 어린애 만화 나부랭이와 장난감 쪼가리라고 경멸했지만, 사실 내 취미는 젊음에 대한 마지막 발악이었다. 나는 늙어 감각을 잃어버린 퇴물 게임기획자였고, 시도 때도 없이 밀려오는 허무함에 지쳐 다시 아내를 찾아갔다. 오랜만에 보는 아내는 내 기억 속의 아내보다도 훨씬 더 아름다워 보였다. 나는 아내에게 사과하고 재결합을 호소했고 아내는 수락했다.
그러나 한 가지.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엉뚱하게도 쓰던 냉장고를 가지고 왔다. 가출해서 혼자 사는 넉 달 동안 다른 살림 도구는 아무것도 없이 지냈지만 냉장고는 하나 장만했고, 그 냉장고를 부득불 우리의 집에 가져오겠다고 우겼다. 그까짓 냉장고가 무슨 대수랴. 나는 쓰던 냉장고를 버리고 아내의 냉장고를 부엌으로 들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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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위의 토마토는 혐오스럽게 뭉크러져 붉은 물이 흥건했다. 접시를 비우려다 보니 토마토 안에 하얗고 조그만 구더기들이 바글거렸다. 나는 나도 모르게 괴성을 지르며 악을 쓰고 있었다.
“으아아, 수현아! 이리 좀 와 봐아아!”
아내의 어깨에는 매끄러운 실크 잠옷 끈이 흘러내리고 연갈색 머리카락이 가닥가닥 흐트러지며 아름다운 문양을 그리고 있었다. 아내는 하얀 손가락으로 어깨끈을 추스르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접시를 집어 들었다. 접시가 흔들리자 물러터진 토마토가 주저앉았고, 그 아래에선 구더기로도 부족해 바퀴벌레가 기어 나왔다. 붕괴하는 토마토에 압사당할까 놀란 바퀴벌레가 아내의 하얀 손가락을 타고 기어올랐다. 내가 눈을 껌뻑이며 보는 가운데 아내는 냉장고를 열고 접시를 슥 집어넣더니 냉장고를 닫았다. 바퀴벌레는 손가락을 지나 손목까지 도망치고 있었다. 아내는 우아한 손놀림으로 그놈을 눌러 죽이더니 그 찌꺼기를 내 옷에 닦을 기세로 손을 내미는 것이다. 으아아아, 나는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수현앗!”
“왜애?”
아내는 잠옷을 벗으며 물었다. 실크 자락이 출렁이며 그리는 곡선에 나는 하려던 말을 바꾸었다.
‘야 이 미친년아! 미쳐도 좀 곱게 미치지 어떻게 이따위로 더럽고 징그럽고 지저분하게 미쳤냐!’
하려던 말은 이것이었지만 재결합 하루 만에 그랬다가는 아내가 화를 내며 벗던 잠옷을 도로 입겠지.
“냉장고 말이야, 냉장고에 벌레 끓는 음식을 넣어도 돼?”
“걱정 안 해도 돼. 그 냉장고는 특수 냉각장치가 있거든.”
“무슨 장치?”
“난 과학적인 건 잘 모르지만 하여튼 써 보니까 그렇더라.”
실크 잠옷이 하얀 다리를 타고 흘러내려 바닥에 스르르 무너지고, 잠옷에서 빠져나온 아내는 식탁 위에 등을 대고 무너졌다. 단단히 추궁하리라 다잡았던 내 마음도 흐지부지 무너졌다.
식탁 위에서 일어난 아내가 냉장고를 열더니 토마토 접시를 꺼내왔다. 구더기 끓던 접시가 내 앞에 놓이자 나는 기겁을 했다. 그러나, 접시 위에는 썩은 토마토는 간 데 없고, 신선한 주황색 토마토가 육 등분 되어 꽃잎처럼 벌어져 있었다. 연두색에서 노란색까지 고상하게 그라데이션 된 씨들이 풀 먹인 한복의 자수 문양처럼 예뻤다.
정말 대단한 냉장고였다.
아내는 아무렇게나 굴려 상해버린 음식들을 냉장고에 넣었고, 냉장고는 그것들을 신선하고 먹음직스럽게 바꿔버렸다. 모양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맛도 기가 막혔다.
“이 냉장고 대체 어디 물건이야?”
아내는 냉장고에서 파우치에 든 음료를 꺼내 유리컵에 따르며 말했다.
“전에 일하던 가게 사장님이 특별히 준 건데, 네덜란드에서 수입한 거래.”
우리 집 소파에 나란히 앉아있던 그 사장과 아내의 오묘하고도 알흠답던 자세가 떠올라 불쾌해졌으나 재결합 이틀 만에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현명하지 않은 모험이다. 나는 딴청을 했다.
“브랜드는?”
“그런 거 몰라.”
유리컵에 반쯤 담긴 붉은색 걸쭉한 음료를 내게 내밀며 건성으로 대답한다.
“헝가리 제 건강 음료야. 내가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
아내가 잘록한 허리에 손을 짚고 몸매를 과시했다. 빵빵한 가슴이 도드라지며 골반 곡선이 관능적으로 드러났다.
“이거 여성용 음료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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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아침 배가 고파 냉장고를 열었다. 텅텅 빈 냉장고에 헝가리제 음료라는 것만 가득했다. 내용물을 알아보려고 파우치의 라벨을 읽어보던 나는 실소했다.
MADE IN HUNGARY 가 아닌 MADE IN HUNGRY 메이드 인 헝그리.
혹시나 싶어 네덜란드제라는 냉장고 뒤의 태그를 확인하니, 아이구야, 한술 더 뜬다.
MADE IN NETHERLANDS가 아니라 MEDE IA NEVERLAND 메데 이아 네버랜드?
Netherlands가 아니라 Neverland인 건 둘째치고 MADE IN이 MEDE IA로 오타까지 났다.
“수현아! 이 냉장고 네덜란드 게 아니라 네버랜드 거잖아! 니가 피터팬이냐, 마이클 잭슨이냐! 그리고 너 마시는 주스, 그거 마시다간 굶어 죽겠다. 헝가리가 아니라 헝그리잖아! 너 아무리 지잡대 출신이지만 그 정도 영어도 모르냐?”
소리를 지르자 늦잠 자던 아내가 기어 나왔다. 퉁퉁 부은 얼굴에 베개 자국이 가관이었다. 재결합을 제의하러 찾아갔을 때의 아름다운 모습은 내 착각이었나? 얼굴도 몸매도 두루뭉수리 퍼져 보이는 아내가 부스스한 머리를 긁으며 빈정댔다.
“잘난 척하는 건 참 여전하군, 그래서, 스펠링이 틀려서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거야?”
아내는 냉장고의 물건을 모두 꺼내고 선반까지 뽑아내 버렸다. 잠옷을 벗더니 레이스 가득한 팬티까지 벗어버렸다. 벌거벗은 아내가 텅 빈 냉장고 안으로 한쪽 발을 집어넣는 걸 나는 얼이 빠져 보고 있었다. 아내는 한쪽 다리를 냉장고 안에 넣고 무릎을 굽히더니 마법사의 미녀 조수처럼 몸을 접어 정말 마법처럼 냉장고 안으로 쏙 들어갔다.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방긋 웃더니 마지막 남은 왼쪽 팔을 뻗어 냉장고 문을 닫아버렸다.
얼마나 그 앞에 넋을 잃고 서 있었을까.
냉장고 안의 아내가 문을 두드렸다. 정신이 번쩍 들어 문을 열어주자 아내가 다시 마법처럼 몸을 풀어 빠져나왔다. 아내는 냉장고 앞에 눈부신 나신을 과시하며 마법사의 조수처럼 포즈를 잡고 키스를 날렸다.
오오......
나는 입을 벌렸다. 아내의 말은 사실이었다. 푸석푸석하던 아내가 생기발랄 젊고 아름다워져 있었다. 얼굴의 베개 자국이 사라지고 턱선이 살아난 것은 물론 재결합 사흘 만에 은근히 불어났던 허리통까지 날렵해졌다. 부스스하던 머리칼이 부드럽게 찰랑이며 향기가 풍겨왔다.
아내가 내 사타구니를 간질이며 말했다.
“그 녀석도 한 번 집어넣어 볼까?”
“왜 이래. 전혀 필요 없는 거 잘 알면서.”
“흥, 하여간 자뻑하고는. 하긴 그 녀석보다 이 녀석이 더 문제지.”
아내의 손가락이 내 머리를 두드린다. 탈모가 심해져 맨살이 드러난 정수리가 냉장고에서 나온 차가운 손가락에 움찔 놀란다. 내가 두 손으로 얼마 안 남은 주변머리를 감싸 쥐자 아내가 웃었다.
“머리털보다 알맹이가 더 문제잖아. 게임 일하기에는 너무 늙어버렸지?”
아내가 약점을 정곡으로 찌르자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갔다. 그러나 참았다. 벌써 예전 손버릇이 나오면 어쩌겠다는 건가. 아내는 당장 다시 가버릴 것이다.
나는 잠시 갈등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아내의 말은 맞는 말이았다. 나는 더 이상 업계에서 버틸 수가 없다. 이대로라면 내 앞길에는 몰락만이 남아있다. 이리저리 눈치꾸러기 천덕꾸러기로 조금 더 버티다가 끝내는 퇴직을 하고, 집을 줄여가면서 생계를 잇고, 희귀 만화 소장본과 고가의 피규어들을 처분하라는 아내의 잔소리에 시달려야겠지. 이후의 앞날에는 아무런 가능성도 그 어떤 비전도 남아있지 않다.
냉장고의 기능은 방금 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나.
날씨도 더운데 뭐 어때. 밑져야 본전이다. 어차피 전기세 내며 켜놓은 냉장고.
나는 옷을 벗었다.
짧고 굵은 다리를 냉장고에 접어 넣기는 쉽지 않았다. 아내가 그처럼 쉽고 우아하게 냉장고 안으로 들어간 것은 유연성의 차이도 있겠지만 절대적인 부피의 차이였다. 두 다리를 겨우 꺾어 넣었지만, 만삭 저리 가라 불룩한 배가 비어져 나와 요지부동이다. 아내는 대륙의 지하철 푸시맨처럼 내 뱃살을 밀어 넣었다.
“아우, 아파! 좀 살살 해!”
“좀 참아! 처먹기만 하고 만화나 보고 장난감이나 갖고 놀며 빈둥대더니!”
아내에게도 욕을 해주려 했으나, 냉장고가 꽉 차게 구겨 넣어진 몸뚱이는 더 이상 숨을 쉬기도 힘들다. 아내에게 고함칠 기운이 있으면 어떻게든 배에 힘을 주고 몸을 줄여야 했다. 뱃살을 꾸역꾸역 다 밀어 넣고 나자 아내가 내 토실한 팔뚝을 잡았다.
“뱃살 푹신하니까 그 사이에 좀 쑤셔 넣어봐.”
냉장고 안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여 뱃살에 푹 파묻은 채 두 손이 뱃살 사이에 접혀 들어가니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지만, 어쨌든 냉장고 안으로 완전히 들어왔다. 인상을 쓴 채 꼼짝 못 하는 나를 보고 아내가 깔깔 웃더니 냉장고 문을 잡았다.
“잘 가! 이 한심한 바보야!”
아내의 낭랑한 목소리에 이어 냉장고 문이 탕 닫혔다. 세상은 비좁고, 캄캄하고, 그리고 무한하게 차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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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데이아(Medeia) : 그리스 신화의 마녀. 이아손이 황금양 가죽을 찾게 도와주었다. 황금양 가죽을 가져오면 왕위를 넘겨주겠다던 펠리아스가 약속을 어기자, 메데이아는 펠리아스의 딸들 앞에서 늙은 양을 솥에 삶아 새끼 양으로 바꾸는 마법을 보여 주었다. 그 마술을 본 펠리아스의 딸들은 아버지의 회춘을 기대하며 늙은 아버지를 끓는 솥에 삶아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