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남자(3) 여배우 매니저, 31세
::선우정아 - 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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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울다가 겨우 회사에 가서는 사무실에서도 내내 울었다. 동료들은 그를 욕하면서 헤어지길 잘했다고 말했다.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퇴근하고 회사를 나서는데, 매번 그가 주차해 두던 자리에 그의 차가 보였다.
내가 미쳤구나. 헛것을 봤겠지.
그러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달려갔다.
차 안에는 정말 그가 있었다. 저 익숙한 Y-3 볼캡 모자에 스톤 아일랜드 맨투맨. 그가 분명하다. 나는 감격스러움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헷갈렸다. 아마 이상한 표정을 짓고 멍하니 서있었을 것이다.
“뭐 해? 빨리 타.”
그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평소와 똑같이 날 대했다. 그러곤 또 그가 아는 식당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우린 2년 정도 연애를 하면서 크게 싸우지도 않았다. 그는 다툴 일이 생길 때마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업무 연락이 왔다며 전화를 끊거나 담배를 피운다며 나가 버렸다.
그러곤 몇 시간이고 나타나지 않았다. 그럼 나는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문자만 보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엉엉 우는 것, 문자를 보내는 것뿐이었다.
그를 애타게 기다리다 보면 언젠간 회사 앞에 나타나 있었다. 빠르면 몇 시간 뒤, 보통은 다음 날, 늦게는 며칠 걸렸다.
내 마음이 간절할수록 왠지 그가 더 빨리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매번 더욱더 열심히 간절해했다.
어쨌든 그는 결국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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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는 ‘기다리다 보면 오겠지. “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형식적으로 문자를 보내곤 마음 편히 다른 남자를 만나러 간 적도 있다.
그가 또 사라진 어느 날, 이번에는 꼭 이별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왠지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날따라 그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돌아와야 헤어지든 말든 하지. 왜 그는 결국 날 기다리게 만드는 걸까.
왜 기다려도 오지 않는 걸까?
내가 예전처럼 간절하지 않은 탓일까?
이번에는 정말 끝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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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틈만 나면 내 곁을 떠났다. 어차피 평생 함께 하지 못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왜 넌 자꾸 도망치는 걸까?
왜 혼자가 되고 싶어 하는 걸까?
나쁜 새끼.
안아주려고 해도 도망치던 새끼.
외롭고 강인한 호랑이 새끼.
보고 싶다. 아니다. 어차피 헤어질 사이다. 아니다. 보고 싶다. 아니다. 헤어진 것과 다름없다. 아니다. 보고 싶다.
난 차라리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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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뻔한 사람이다. 그는 지겹도록 다시 돌아왔다. 죽지도 않았는데 죽었다고 그렇게 울어놓고 지금은 또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고 웃는다. 울다가 웃다가 주체할 수 없는 마음에 얼마나 많은 글을 썼는지 모르겠다.
제목 : 처음엔 몰랐지
처음에는 우연인 줄 알았어
계속 같은 것이 반복됐으니까
어쩌면 비슷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생각을 했어
나한테 또다시 기회가 생길 리가 없으니까
그런데 네가 죽고
너 같은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나고
그 사람이 너라고 하고
아
너는 죽어도 살아서 돌아오는구나
그런데 넌 또 죽고
네가 돌아올 걸 알면서도 항상 불안했어
또 안 오면 어떡하지
이번에는 정말 끝인가 보다
그런데 넌 또 나타나
아
마지막이 아니었구나
다행이다 네가 또 왔구나
생각은 했지만
이제는 네가 불쌍해
나를 살려주려고 오는 것 같아서
나 때문에 사는 것 같아서
나를 위해 사는 것 같아서
내가 죽을까 봐
네가 죽지 못하는 걸까
이런 말도 안 되는 글들을 하루 종일 배설했다. 일기도 아니고 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생각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 맞다. 너는 혼자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