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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Oct 14. 2023

현대 의학의 한계:유방암 수술후 겪는 의문의 두통(4)


병원의 현대 의학은 피검사, 소변검사 등을 통한 수치화나, MRI  CT  X-Ray와 같은 기계를 이용해 찍은 우리의 몸 사진으로 병에 대한 심각성을 판단한다. 그러나 실제로 병원에서 만나는 환자들을 보면, 발전된 현대 의술로 설명하지 못하는 병들이 무수히 많다.    

  



유방암 수술 후, 첫 밤이 지나자, 몸은 서서히 회복되어 움직일 수 있었다. 어지러움이 가지지 않아, 무통 주사를 잠궜다. 아침 일찍 병원을 소개해 주신 분이 출근 전에 오셨다.

나를 보고, “유방암 수술하고 무통 주사 맞는 환자 처음 봐요.”라며 웃으면서, “그렇게 아파한 사람이 거의 없는데 의료진들이 다 놀랐다고 하던데 괜찮은 거지요?”라며 걱정스러우면서도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괜찮아요. 어지러운 거 빼고는. 감사했어요!”라고 나도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분은 내가 정말 특이한 경우라고 했다.     




어지러움이 시간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았다. 아침 회진 시간이 되자, 의료진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교수님은 나를 보자마자,

괜찮아? 수술은 아주 잘됐어. 생각보다 작았어. 결과 나올 때까지 푹 쉬어.”라고 말씀하셨고, 옆의 새끼 의사 선생님들은 무언가 적기에 바빴다.


요즈음은 유방암 수술을 한다고 하면 전날 입원해서 수술 후 다음 날 퇴원시킨다오직 2박 3일 입원만 가능하다.  처음 유방암에 걸렸던 10년 전에는 의사의 재량에 따라 입원 일수의 제한이 없었다대부분 조직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1주일에서 열흘 정도 입원시켜 주었다.   

형부가 오셨다. 형부는 수술을 기다리면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셨다. 처음 수술에 들어가기 전에, 수술 시간이 2시간 이상 걸릴 거라고 말씀하셨다. 보호자는 식사나 다른 볼일 보고 오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수술은 30분도 지나지 않아 끝났으며교수님께서 먼저 나오셨다고 했다. 교수님은 내 암 덩이를 가지고 나와서 형부에게 보여주면서 수술이 생각보다 쉬었다고 했단다.     

가슴을 볼 수 없는 나는 궁금했다. 어느 정도 어떻게 절제가 되었는지? 현재의 내 가슴 모양이 어떤지 궁금했지만, 수술 브라를 절대 열지 말라고 했다. 하루 이틀 지나자, 가슴을 보여주었다. 깜짝 놀랐다. 원래 가슴도 작았지만생각한 만큼 절제하지 않았다가슴 모양이 그대로 있었다수술 자국만 5센티 정도 있었다내가 생각한 전절제가 아니었다     
담당 주치의가 오후에 회진왔을 때, 물어보았다. 주치의 말로는 초음파에 있었던 잔 암들이 다 사라지고 암도 발견 당시보다 작아졌으며림프에도 전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자신들도 좀 놀랬다고 했다. 나는 감사했다. 
마음이 편해졌다. 그때부터 나의 본 성격이 나왔다. 친화력이 좋은 나는 병실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유경험자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었다.     

머리 아픈 정도가 점점 심해졌다. 간호사실에 가서 영양제를 부탁했다. 영양제를 맞는 도중 갑자기 쇼크가 왔다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점점 심해지는 두통과 어지러움으로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주치의에게 “어지러움이 점점 심해져서 생활이 안 되고 속도 메스껍고 죽겠네요머리가 터져버릴 거 같아요유방암이 문제가 아니네요이런 경우어떻게 해요?”라고 묻자, 주치의는 알아보겠다고만 하고 두통약만 주었다.     
다음날도 머리가 쪼개지면서 칼로 쑤시는 것 같은 두통을 호소하자, 주치의는 “제가 알아봤는데 그건 시간이 지나면 나을 수 있데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얼마나요? 이제 곧 집에 가야 하는데.,,”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알 수 없어요제가 아는 서울대 의사 선생님께서도 두통을 호소하셨지만방법을 못 찾고 낮엔 일하고 밤에는 병원에서 쉬셨어요하루 만에 나을지한 달이 될지일 년이 될지 정말 10년이 될지 사람마다 달라서 아무도 모르지만시간이 지나면 나아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황당함과 절망을 동시에 느꼈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저 퇴원해서 집에 가면 아이가 초등 1학년이에요어린아이 앞에서 엄마가 아프면 안 돼요.”라며 웃으면서 심각하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주치의가 말하기를,     
뇌를 뽀개봐야 알아요그러면 죽어요.”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었다. 거기서 어떤 대답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수치로도 기계적인 검사로도 알 수 없는 무언의 고통과 통증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어린 자식들이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아픈 몸으로 집에 가면 절대로 안 되는데? 곧 나올 검사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 아이들은 잘 있을까?’ 많은 걱정이 몰려오는 밤시간이 힘들었다.      가능한 부정적인 생각들을 하지 않기 위해 시간 나는 데로 유방암에 대한 정보들을 찾아보았다지금 생각해 보면 하루하루가 피가 마르는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20231013



요즈음은 유방암 수술을 한다고 하면 전날 입원해서 수술 후 다음 날 퇴원시킨다오직 2박 3일 입원만 가능하다.  처음 유방암에 걸렸던 10년 전에는 의사의 재량에 따라 입원 일수의 제한이 없었다대부분 조직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1주일에서 열흘 정도 입원시켜 주었다.   




형부가 오셨다. 형부는 수술을 기다리면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셨다. 처음 수술에 들어가기 전에, 수술 시간이 2시간 이상 걸릴 거라고 말씀하셨다. 보호자는 식사나 다른 볼일 보고 오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수술은 30분도 지나지 않아 끝났으며교수님께서 먼저 나오셨다고 했다. 교수님은 내 암 덩이를 가지고 나와서 형부에게 보여주면서 수술이 생각보다 쉬었다고 했단다.     




가슴을 볼 수 없는 나는 궁금했다. 어느 정도 어떻게 절제가 되었는지? 현재의 내 가슴 모양이 어떤지 궁금했지만, 수술 브라를 절대 열지 말라고 했다. 하루 이틀 지나자, 가슴을 보여주었다. 깜짝 놀랐다. 원래 가슴도 작았지만생각한 만큼 절제하지 않았다가슴 모양이 그대로 있었다수술 자국만 5센티 정도 있었다내가 생각한 전절제가 아니었다     


담당 주치의가 오후에 회진왔을 때, 물어보았다. 주치의 말로는 초음파에 있었던 잔 암들이 다 사라지고 암도 발견 당시보다 작아졌으며림프에도 전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자신들도 좀 놀랬다고 했다. 나는 감사했다. 


마음이 편해졌다. 그때부터 나의 본 성격이 나왔다. 친화력이 좋은 나는 병실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유경험자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었다.     




머리 아픈 정도가 점점 심해졌다. 간호사실에 가서 영양제를 부탁했다. 영양제를 맞는 도중 갑자기 쇼크가 왔다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점점 심해지는 두통과 어지러움으로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주치의에게 “어지러움이 점점 심해져서 생활이 안 되고 속도 메스껍고 죽겠네요머리가 터져버릴 거 같아요유방암이 문제가 아니네요이런 경우어떻게 해요?”라고 묻자, 주치의는 알아보겠다고만 하고 두통약만 주었다.     


다음날도 머리가 쪼개지면서 칼로 쑤시는 것 같은 두통을 호소하자, 주치의는 “제가 알아봤는데 그건 시간이 지나면 나을 수 있데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얼마나요? 이제 곧 집에 가야 하는데.,,”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알 수 없어요제가 아는 서울대 의사 선생님께서도 두통을 호소하셨지만방법을 못 찾고 낮엔 일하고 밤에는 병원에서 쉬셨어요하루 만에 나을지한 달이 될지일 년이 될지 정말 10년이 될지 사람마다 달라서 아무도 모르지만시간이 지나면 나아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황당함과 절망을 동시에 느꼈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저 퇴원해서 집에 가면 아이가 초등 1학년이에요어린아이 앞에서 엄마가 아프면 안 돼요.”라며 웃으면서 심각하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주치의가 말하기를,     


뇌를 뽀개봐야 알아요그러면 죽어요.”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었다. 거기서 어떤 대답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수치로도 기계적인 검사로도 알 수 없는 무언의 고통과 통증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어린 자식들이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아픈 몸으로 집에 가면 절대로 안 되는데? 곧 나올 검사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 아이들은 잘 있을까?’ 많은 걱정이 몰려오는 밤시간이 힘들었다. 

     

가능한 부정적인 생각들을 하지 않기 위해 시간 나는 데로 유방암에 대한 정보들을 찾아보았다지금 생각해 보면 하루하루가 피가 마르는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20231013





https://inkyung10.upaper.kr/content/1166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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