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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Oct 05. 2023

유방암 수술 : 회복과 감사, 희망의 불빛(3)


발전된 현대사회를 살면서 건강하게 장수하며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오염된 공기, 부적절한 식습관, 과다한 스트레스, 디지털 중독, 수면 부족 등으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건강을 염려하는 일상이 되었다.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하루에도 많은 수술이 이루어지고 있다.우리는 종종 “암 수술하면 죽음의 수술”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의 경험상 암 수술로 사망과 직결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첫 번째 암 수술을 위해 수술 전날 입원했다. 내 병실은 5인실로 기억한다. 다행히 창가 쪽이라 기분도 좋았다. 짐을 풀고 누워서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초등학교 4학년 딸과 1학년 아들은 처음으로 둘이 집에 있게 되었다. 학원 할 때,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늦게까지 맡겨도 둘만 집에 있게 한 적은 없었다. 입원 전에 아이들 식사가 가장 문제였었다.    

  

도우미 아주머니를 구하려고 했었다. 딸은 둘이 있겠다며 모르는 어른이 집이 있는 건 싫다고 했다. 어렸을 때, 학원에서 집에 오면 항상 도우미 아주머니가 계셨다. 


아주머니는 몇 가지 반찬과 청소를 해주셨다. 시간제로 오셨던 도우미 아주머니들은 여러 번 바뀌었다. 내성적인 아이들은 바뀌는 환경 변화에 의사 표현도 못 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동네 식당들을 돌아다녔다. 방학이라 점심 저녁을 집밥처럼 해주는 곳을 찾기 위해서였다몇 군데를 가보았지만아이들에게 맞는 곳이 없었다. 특히나 어린 아이들 2명이 점심 저녁 식당에 간다는 것도 자연스럽지 못했다. 수술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주위에 도와줄 친인척이 없다는 것에 눈물이 나왔다.     




교회 같은 구역 동생이 전화가 왔다. “언니!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수술 잘될 거예요.”라며 위로해 주었다. “그렇겠지? 수술보다 아이들이 더 걱정이야남편도 키즈카페 일 도와주는 분이 갑자기 그만두었지연말이지아이들 반찬을 어떻게 할지가 지금 가장 큰 고민이야.”라고 푸념하듯이 말했다.      


동생은 바로 “언니! 아이들 반찬 때문에 걱정이세요?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아침마다 아이들 먹을 반찬 해줄게요.”라는 것이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게 얼마나 힘든 건데우리 가족도 아무도 해준다는 말을 안 해너희 아이들도 챙겨야 하고학원도 나가야 하잖아말만으로도 고마워효정이 마음이 너무 이쁘네.”라며 진심으로 감사함을 표현했다. “언니 정말 걱정하지 말아요내일 병원 간다고 하셨죠모래부터 해줄게요수술만 잘하고 오세요.”라며 가족보다 더 따뜻하게 말해주었다.      


동생은 매일 아침 국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집에 가져다주면서 인증샷까지 남겨주었다지금은 동생이 이사 가서 거의 연락하지 못하지만그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다. 남편은 과일 몇 번 사다 주었다고는 했지만, 퇴원 후에, 아이들을 위한 필러비즈 재료들과 동생을 위한 작은 금팔찌를 선물해 주었다. 지금도 만나면 뭐든 해주고 싶은 동생이다.




입원하고 다음 날 수술을 위해 초음파 사진을 다시 찍었다나는 왜 또 검사하는지 물어보았다. 오른쪽 유방에서도 혹이 보인다고 했다오른쪽 유방 혹도 조직검사에 들어갔다검사 결과 오른쪽은 아직 암은 아니지만 가능성이 높다며왼쪽은 암 제거 수술오른쪽은 혹 제거 수술을 동시에 했다.      


아이들 걱정과 갑작스러운 유방암으로 인한 충격과 수술 전 검사, 아버지의 49재 등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겪으면서 수술 전날 감기까지 왔다. 수술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교수님은 지금 못하면 몇 달 미루어야 한다며 수술을 강행하셨다.     


수술하는 날도 남편은 키즈카페 때문에 수술 시간에 올 수가 없었다. 큰 형부만이 병원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수술실로 이동하는 침대에서 콧물을 훌쩍이며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로 들어갔다수술 침대에 누웠더니 몇몇 젊은 의사들이 팔과 다리를 묶고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다 묶고 수술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 교수님께서 들어오셨다. 마음 편하게 가져이쁘게 잘해줄게걱정하지 말고.”라며 계속 뭐라고 말씀하셨지만마취를 위한 마스크가 얼굴을 감싸면서 나는 깊고 깊은 수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몇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다. “환자분환자분정신 차리세요일어나 보세요.”라며 누가 나를 깨우고 있었다. 회복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다. 나는 무슨 소리를 듣고 눈을 뜨려는 순간 엄청난 통증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으악.”소리를 지르며 침대에서 몸부림을 쳤다. 놀란 간호사는 다시 회복실로 데리고 들어가 버렸다.      


밖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딸 왜 저래요무통 주사 안 놔주시나요?”라며 항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계속 고통의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죽는 것이 이런 고통일까?’ 소리를 지르다 기절했던 것 같다. 무슨 희미한 소리가 들리지만, 눈을 뜨지 못했다.   

   

잠시 후, 정신이 돌아왔다. 참을만했지만 계속 아팠다. 간호사는 “정신이 드세요? 괜찮아요?”라며 물었다. 나는 “네. 괜찮아요. 원래 수술 끝나면 이렇게 아파요?”라고 물어보았다간호사는 거의 드물어요저희도 너무 놀랐어요유방암 수술하고 이렇게 아파하시는 분은 처음이라서요.”라며 한숨을 돌리는 표정이었다.      


나는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담당 레지 선생님이 오셨다. 2시간 후에는 식사할 수 있다며 원하면 준다고 했다그때 시간이 늦은 저녁 8시쯤이었다. 나는 사양했다. 형부는 가시고 큰언니가 와서 밤을 새웠다. 나는 몸이 괜찮아져서 혼자 있겠다고 했지만언니는 보호자로 있어 주었다언니도 가게를 해서 온종일 일하고 왔는데 너무 미안했다. 몇 시간이 지나자머리는 아팠지만움직일 수는 있었다   

  



기나긴 수술이 끝나고 한숨 돌리며 언니와 이야기할 정도가 되었다. 회복 시간이 남들보다 길었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걱정해 주는 가족들 덕분에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다이런 순간들이 다시 한번 건강과 가족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었다.     


20231005



https://inkyung10.upaper.kr/content/1166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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