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같은 구역 동생이 전화가 왔다. “언니!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수술 잘될 거예요.”라며 위로해 주었다. “그렇겠지? 수술보다 아이들이 더 걱정이야. 남편도 키즈카페 일 도와주는 분이 갑자기 그만두었지. 연말이지. 아이들 반찬을 어떻게 할지가 지금 가장 큰 고민이야.”라고 푸념하듯이 말했다.
동생은 바로 “언니! 아이들 반찬 때문에 걱정이세요?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아침마다 아이들 먹을 반찬 해줄게요.”라는 것이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게 얼마나 힘든 건데…. 우리 가족도 아무도 해준다는 말을 안 해. 너희 아이들도 챙겨야 하고, 학원도 나가야 하잖아. 말만으로도 고마워. 효정이 마음이 너무 이쁘네.”라며 진심으로 감사함을 표현했다. “언니 정말 걱정하지 말아요. 내일 병원 간다고 하셨죠? 모래부터 해줄게요. 수술만 잘하고 오세요.”라며 가족보다 더 따뜻하게 말해주었다.
동생은 매일 아침 국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집에 가져다주면서 인증샷까지 남겨주었다. 지금은 동생이 이사 가서 거의 연락하지 못하지만, 그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다. 남편은 과일 몇 번 사다 주었다고는 했지만, 퇴원 후에, 아이들을 위한 필러비즈 재료들과 동생을 위한 작은 금팔찌를 선물해 주었다. 지금도 만나면 뭐든 해주고 싶은 동생이다.
입원하고 다음 날 수술을 위해 초음파 사진을 다시 찍었다. 나는 왜 또 검사하는지 물어보았다. 오른쪽 유방에서도 혹이 보인다고 했다. 오른쪽 유방 혹도 조직검사에 들어갔다. 검사 결과 오른쪽은 아직 암은 아니지만 가능성이 높다며, 왼쪽은 암 제거 수술, 오른쪽은 혹 제거 수술을 동시에 했다.
아이들 걱정과 갑작스러운 유방암으로 인한 충격과 수술 전 검사, 아버지의 49재 등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겪으면서 수술 전날 감기까지 왔다. 수술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교수님은 지금 못하면 몇 달 미루어야 한다며 수술을 강행하셨다.
수술하는 날도 남편은 키즈카페 때문에 수술 시간에 올 수가 없었다. 큰 형부만이 병원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수술실로 이동하는 침대에서 콧물을 훌쩍이며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로 들어갔다. 수술 침대에 누웠더니 몇몇 젊은 의사들이 팔과 다리를 묶고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다 묶고 수술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 교수님께서 들어오셨다. “마음 편하게 가져. 이쁘게 잘해줄게. 걱정하지 말고….”라며 계속 뭐라고 말씀하셨지만, 마취를 위한 마스크가 얼굴을 감싸면서 나는 깊고 깊은 수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몇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다. “환자분, 환자분. 정신 차리세요. 일어나 보세요.”라며 누가 나를 깨우고 있었다. 회복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다. 나는 무슨 소리를 듣고 눈을 뜨려는 순간 엄청난 통증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으악…. 악….”소리를 지르며 침대에서 몸부림을 쳤다. 놀란 간호사는 다시 회복실로 데리고 들어가 버렸다.
밖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딸 왜 저래요? 무통 주사 안 놔주시나요?”라며 항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계속 고통의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죽는 것이 이런 고통일까?’ 소리를 지르다 기절했던 것 같다. 무슨 희미한 소리가 들리지만, 눈을 뜨지 못했다.
잠시 후, 정신이 돌아왔다. 참을만했지만 계속 아팠다. 간호사는 “정신이 드세요? 괜찮아요?”라며 물었다. 나는 “네. 괜찮아요. 원래 수술 끝나면 이렇게 아파요?”라고 물어보았다. 간호사는 “거의 드물어요. 저희도 너무 놀랐어요. 유방암 수술하고 이렇게 아파하시는 분은 처음이라서요.”라며 한숨을 돌리는 표정이었다.
나는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담당 레지 선생님이 오셨다. 2시간 후에는 식사할 수 있다며 원하면 준다고 했다. 그때 시간이 늦은 저녁 8시쯤이었다. 나는 사양했다. 형부는 가시고 큰언니가 와서 밤을 새웠다. 나는 몸이 괜찮아져서 혼자 있겠다고 했지만, 언니는 보호자로 있어 주었다. 언니도 가게를 해서 온종일 일하고 왔는데 너무 미안했다. 몇 시간이 지나자, 머리는 아팠지만, 움직일 수는 있었다.
기나긴 수술이 끝나고 한숨 돌리며 언니와 이야기할 정도가 되었다. 회복 시간이 남들보다 길었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걱정해 주는 가족들 덕분에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이런 순간들이 다시 한번 건강과 가족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었다.
2023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