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과의 면담이 끝나고 레지 선생님과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끼 선생님은 “교수님은 일부러 심각하게 말씀하시지 않으신 거예요. 지금 상태가 좋지 않아요. 어쩌면 겨드랑이 림프샘까지 전이되었을지도 몰라요. 가슴 전체에 암 조직이 많아요.”라며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나는 진료를 마치고 나오면서 바로 “전절제”가 무엇인가를 찾아보았다. 결론은 절제나 전절제나 가슴을 없애는 것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유방 전절제술이란 : 유두를 포함한 유방 피부와 피부밑의 유방조직(지방조직과 유선조직)을 모두 제거하는 수술이다.
L 병원에 간 날이 12월 20일 경이었다. 현실은 항상 이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지금부터는 수술 전 빠른 검사가 중요했다.
PET, Bone 스킨, 초음파, MRI, 유방 맘모톰 등 검사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PET 검사와 Bone 스킨은 방사선을 몸에 삽입하는 것으로 최소 3일 이상은 간격을 두고 검사해야 했다. 시간이 촉박했다. 입원도 할 수 없다고 했다. 강북 S 병원은 입원할 수 있었다고 해도 L 병원은 법으로 안 된다며 거절했다.
암이란 판정을 받은 이후로,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살고 있는 기분이었다. 검사하러 매일 병원 가는 일도 힘에 부쳤다. L 병원은 초행길이라 운전도 서툴렀다.
한 번은 S 병원 검사지를 가지고 가는데 병원 주차를 위한 줄이 길었다. 약속 시간이 촉박했다. 급한 마음에 차선을 바꾸려다 앞을 차를 박고 말았다. 사정 이야기 후 돈을 주고 사고처리는 간단히 했지만, 매일 긴장의 연속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여러 검사를 하고 돌아오면 지친 몸으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바로 얼마 전에 사들인 반신욕기에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반신욕기에 앉아 있으면 온도가 올라가면서 땀이 흐른다. 흐르는 땀이 유방에 있는 암으로 가면 통증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살이 찢어지고 애이는 느낌의 아픔이랄까? 졸다가 너무 놀라서 깰 정도였다.
유방암 수술을 3번하고 많은 사례들을 보면서 이때 반신욕기의 효과가 엄청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나를 살리려고 암이 발견되기 직전에 반신욕기를 구매했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었다.
암에 걸리기 2달 전, 카페 박람회에 갔었다. 거기서 카페와 어울리지 않는 의료기기들을 팔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피곤한데 ‘잘되었다’라고 생각하고 체험했다. 판매자는 이 기회를 놓칠까? 우리에게 파격적인 금액을 제시했다. 인터넷보다는 100만 원 정도 저렴했고, 현금으로 사면 판매가의 50% 할인을 적용해 준다고 했다. 편백나무로 만들어져 있고, 신상품이라 망설임 없이 바로 결재했었다.
처음 1달 동안 사용하면서 이상하게 나만 들어가면 온도가 올라가지 않았다. 서비스를 받았다. “왜 새로 구입한 것이 온도계가 고장이냐?”며 짜증을 냈었다. 온도계를 교체했는데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아들과 딸에게 사용해 보라고 했다.
온도계의 문제가 아니었다. 암이 있는 차가운 몸이 들어가면서 온도가 쉽게 올라오질 못 한 거다. 암은 다른 혹과 달라 열로 인해 사라질 때 엄청난 통증이 온다는 것을 내 친구와 몇몇 암 환자의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컴맹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필요한 부분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신기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검사를 받으러 다니면서부터 유방암에 대한 자료들을 찾기 시작했다. 항암과 방사선, 호르몬제의 효과와 부작용, 그 외의 다른 치료 방법들을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논문과 의사들의 경험 등을 최대한 찾아보았다.
나의 철학은 항상 내가 먼저 알고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모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학원을 운영할 때도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부재 시, 언제든 내가 수업할 수 있는 체계로 운영했다. 집안에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도 내가 아는 음식과 청소 정도만 시켰다. 택시를 탈 때도 내가 아는 곳을 갈 때만 타고 모르는 길은 가능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이런 나는 수술하기 전에 알아야 할 사항들이 너무 많았다. 모든 걸 공부하고 들어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전문적으로 깊숙이 알지는 못했어도 상식적인 것은 어느 정도 숙지한 상태였다.
검사가 거의 마무리되고 수술 전 입원 날이 다가왔다. 아이들 걱정에 몇 가지 반찬을 만들어 놓고 집 안 정리를 하면서 많은 생각이 오고 갔다.‘“이게 마지막이면 어떻게 하지? 유서라도 써 놓아야 하나?” 나는 바로 유서를 내 카카오톡에 써놨다. 수술하고 눈을 뜨면 지우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말 한마디 못 하고 갈 것만 같았다.
2023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