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멋쟁이 한제 Jan 29. 2023

내 인생의 특이점-2

첫 아이를 만나던 순간-2

여성들이 임신을 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어떤 위험이 생기며 어떤 민망함이 생겨나는지, 쉬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얘기하게 된 것은 지극히 최근의 일이며, 진실을 접한 어린 여성들이 경악하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그전에는 말하기 부끄러운 것, 누구나 겪는 것, 유난 떨지 말 것, 위대한 모성을 위해 인내해야 할 것으로 우리 사회에서 기리고 누르며 아름답게 포장해 왔다.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


 사실 나는 산부인과에 정기진료를 다니며 자연출산 조산원의 조산사 선생님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큰 언니가 자연출산으로 두 아이를 모두 낳았는데 언니의 추천도 있었고 나도 이런저런 의료적 처치가 필요없는 건강한 상태라면 자연 출산이라는 것을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온전히 진통을 느낀다는 것, 그리고 충분히 아기를 기다려 주고, 산모를 배려해 주며, 무엇보다 따뜻한 조산사 선생님의 1대 1 케어를 받으며 분만 과정을 견딘다는 그 경험은 왠지 경이롭게 느껴졌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조산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위험과 고통을 줄여주려고 자기들이 공부하고 연구하고 의학을 발달시켰는데 뭐 하러 그 고생을 사서 하냐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조산원 선생님들도 산부인과의 분만 방식에 어느 정도 반대 입장을 갖고 계시다. 산모 혼자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에 뭐 하러 미리 불필요하게 과한 처치를 하느냐는 입장이다. 예를 들면 관장, 제모, 회음부절개, 그리고 무통주사. 역시 맞는 말이다. 조산원에서는 산부인과 진료를 반드시 병행하라고 했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는 것이고, 아기를 상태를 공유하는 것이다. 그 어떤 조산사 선생님도 쌩 자연을 추구하시진 않는다. 현대 의학의 필요한 부분을 취하되, 과한 부분만 자제하는 것이 자연출산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둘째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산부인과에서 낳았다. (나중에 다룰 예정) 다만 산모의 선택의 문제, 산모가 가치관을 존중하는 선택을 하려면 산부인과와 조산원의 출발선이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산부인과는 보험 수가가 적용되어 비교적 부담이 적었고, 조산원은 모두가 비보험이라 부담이 더 컸다. 아기가 태어나면 하루 이틀 내에 신생아 대사이상 검사라는 것을 하게 되는데 그것도 첫째를 낳던 2016년에는 조산원에서 가능하였지만 (아마 피를 뽑나 어쩌나 해서 검사소로 보내서 조산원에서 결과를 받아볼 수 있는 일) 둘째가 태어난 2018년엔 법이 바뀌어 조산원에서 검사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즉 조산원에서 태어난 갓난아기를 안고 산부인과에 가서 신생아 대사이상 검사를 해야 하는데, 그 말은 곧 이 아기는 어디서 낳았나요? 뭐? 조산원이요? 왜요? 도대체 왜요? 라는 물음을 두어 차례 들으며 유난하고 이상한 산모로 보이는 시선을 견뎌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보험 수가 문제에 대사이상 검사 문제까지, 산모가 산부인과와 조산원을 동등한 선상에 놓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분만 방식을 선택하기에는 조산원이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보였다. 이 말은 산모에게 주어지는 선택지의 폭이 아무래도 병원쪽으로 몰리기 쉽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첫째의 임신 20주가 지난 후부터 큰 언니의 출산을 담당해 주신 조산사 선생님께도 함께 상담을 다니고 있었고 자연 출산의 과정, 즉 아이가 나오는 적나라한 과정과 남편의 역할, 출산 후 호르몬 분비에 관한 이야기까지 병원에서는 알려주지 않는 여러 가지 들을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알고 보니 우리나라의 산부인과 임신과 분만 과정은 외국에 비해서 초음파 검사등 분만 과정에 의료적 개입이 더 큰 것은 사실이었다.


 여하튼, 아기가 작다는 이유로 대학병원 전원서를 받아 들고 보니 머리가 하얘졌다. 먹는다고 먹었는데, 임신 막달이 갈수록 포만감이 일찍 몰려와  더 먹을 수가 없었고 이런저런 소화 잘되고 칼로리 높은 아이스크림 같은 것도 먹어 보았지만 아기는 영 살이 붙지 않았다. 나도 그랬다. 막달에 50킬로였으니. 이런 산모도 드물 것이다. 일단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조산사 선생님께 전화를 드리니 조산원으로 한번 와 보라 하셨다. 조산원에서 초음파를 다시 보았다. 병원만큼 좋진 않지만 조산원에도 초음파가 있다.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아기는 초음파 상으로 문제가 없었다. 다만 작을 뿐. 참고로 조산원에서 초음파 보는 방식은 이렇다. 나를 눕히고 배를 만지며 나와 이야기를 나누신다. 그리고 배를 깐 후, 아기와 인사를 하신다. 안녕 소리야? (소리=첫째의 태명) 잘 있었어? 지금 기분이 어때? 초음파로 너 좀 보려고 하는데 괜찮아? 미안해, 노는데 방해해서. 이렇게 아기에게 양해를 구하고 초음파 젤을 따뜻하게 데운 후 따뜻한 손으로 문질러 바르고 이리저리 초음파를 본다. 산부인과 초음파에서는 잔뜩 움츠려 있던 아기가 조산원 초음파에서는 발차기를 하며 놀았다. 아무리 봐도 아기에게 이상은 없었다. 다만 임신 막달에 2킬로라면 너무 작으니 일단 대학병원 진료를 보라고 하셨고, 조산사 선생님과 협동분만, (내가 알기로 하늘 보고 있던 아기였나 부적절한 자세를 취한 아기를 의사의 관찰 아래에 병원에서 산모의 동의와 조산사 주도로 자연출산으로 진행한 협진) 경험이 있으신 교수님을 소개해 주셨다. 자연 출산에 호의적인 분이시니 그분의 의견도 한 번 들어보자고.


그렇게 나는 응급 고위험 산모로 분류가 되었는지 어렵다는 대학병원 예약도 금방 잡혔다. 키를 재고 몸무게를 재고 초음파 전문 간호사가 초음파를 봐주었다. 아기는 정상이라고. 다만 작다고, 같은 얘기를 계속 들었다.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임신 37주가 넘었는데 아기가 이렇게 작으면 엄마 뱃속보다 그냥 빼서(?) 밖에서 키우는 게 더 나을 수 있다고 하셨다. 오늘 입원해서 유도분만을 하자는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집에 가서 준비 좀 하고 짐 좀 싸고 오겠다 했다. 그럼 날짜를 잡아주며 이번주 안에 오라고 하셨다. 자기도 자연분만을 할 수 있다면 산모의 뜻을 존중하는 편인데 이번 건은 아기가 너무 작다고.


집에 돌아와 짐을 싸긴 싸는데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기가 작은데 아무리 내가 비루해도 엄마 뱃속보다 밖에 나오는 게 나을 수가 있다는 말이 납득이 안갔다. 작을수록, 약할수록, 하루라도 더 내가 품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유도분만이 실패하면 곧바로 수술 일 텐데 난 수술한 몸을 이끌고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 들어가 이런저런 줄을 달고 색색 거리고 있는 작은 생명체를 볼 자신이 없었다. 내 몸속에 조금이라도 더 있으면 아기가 조금이라도 더 클 것 아닌가. 그런 생각 끝에 입원과 유도분만을 포기했다. 병원에서는 기함을 할 일이지만 나는 조산원을 선택했고, 응급 상황이 생기면 조산원 근처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달려갈 준비까지 마쳐놓았다. 그리고 아기가 스스로 나오는 날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무식하고 용감한 결정이었다. 초보 엄마지만, 그래도 엄마라고 엄마의 본능이 내린 결정이기도 했다. 모두가 염려하였지만 조산사 선생님은 나의 결정을 존중해 주셨고 그렇게 예정일을 사흘 앞두고 진통이 시작 되더니 예정일 하루 전 날 아기가 나왔다. 2.3킬로였다. 자가 호흡, 체온 조절, 울음소리 모두 정상이라 병원에 갈 필요가 없었다. 조금 큰 고구마처럼 시뻘건 색깔로 세상을 만난 내 첫아기는 나의 뼈밖에 없는 가슴에 안겨 안정을 찾았고 나는 꼬리꼬리한 냄새가 나는 커다란 고구마를 끌어안고 울었다. 세상에 무사히 나와줘서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초산이 다 그렇듯 순산은 아니었다. 진통이 길었다. 나는 온몸을 바쳐 힘을 주느라 아기가 나오는 느낌도 느끼지 못했고 나왔다니 나온 줄 알았다. 탈진해서 미역국도 먹을 수가 없었다. 수액 한 대를 맞았다. 그리고 기운을 조금 차렸고, 밥을 조금 먹었나 말았나 기억도 안 나는 채로 아기를 안고 집으로 왔다. 따로 산후조리원을 예약하지 않았다. 그냥 집에 있고 싶었다. 단체생활에 익숙하지 않았고, 산후 조리원의 팔 할이 많이 먹고 자는 것인데 나는 그렇게 많은 양의 식사를 감당해 낼 자신도 없었다. 남기면 혼나기도 한다던데? 나삼시세끼 주는대로 한 사발씩 미역국을 들이 수 있는 위인이 못 되었다. 조리원 천국이라고 하지만 나는 왠지 집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집순이도 이런 집순이가 있을까. 다음 날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오셨는데 이렇게 작은 산모와 아기에 당황하신 기색이 역력했다. 보통 조리원에서 2주 이상 큰 아기들을 보셨다고 하셨는데, 진짜 갓난 아기에다가 저체중 아기였으니 당황하실 법도.


아기를 낳고도 내 위장은 작았다. 잘 먹질 못했다. 아니 먹을 수 있는 만큼 많이 먹었는데 다른 산모들에 비해서는 택도 없는 양을 먹고도 배가 불러 헉헉 대니 젖이 잘 돌 리가 없었다. 참고로 아기를 낳고 그 다음날 내 몸무게는 48킬로가 되었다. 몸은 체력장을 열 번은 한 것처럼 피곤했지만 겉보기엔 멀쩡했다.


 집에서 휴식 후 유축기라는 이상한 물건에 의지해 초유를 겨우 짜서 아기에게 먹였다. 그랬더니 유선염이 왔다. 모유가 나오는 유관 그쪽에 염증이 생기는 것이고 산후에 보통 많이들 생긴다. 흔한 일이다. 그런데 나는 유선염이 심하게 왔다. 열이 40도까지 올랐고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운 상태로 주일이 흘렀다. 산부인과에서 처방받은 항생제가 있어 어차피 아기에게 젖을 먹일 수 없었고 유축을 한다고 했지만 젖이 많지 않았으며 젖을 돌리려 미역국을 사발로 들이키지도, 열에 시달리느라 그마저도 더 먹질 못하니 젖이 안 나왔다. 모두들 모유수유를 반대했다. 니 몸에서 더 나올게 뭐가 있냐고, 아기에게 해 줄 것은 젖 말고도 앞으로 새털같이 수두룩 빽빽이니 그냥 젖을 끊으라고. 그래서 단유를 했다. 단유라고 할 것도 없이 그냥 젖이 끊겼고 그렇게 완분, (완전 분유수유)으로 아기는 자라기 시작했다.



자연 출산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입니다.

이전 01화 내 인생의 특이점-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