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산.

셋째 날. 거센 바람이 부는 흐린 날씨.

by 멋쟁이 한제

숙소에 에어컨이 있음에도 바람이 바로 침대 위로 떨어지게 되어있어 세게 틀질 못 하여 열대야 취침을 하였다. 바람은 부는데 파도소리가 강하고, 엄청 습한 바람이라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에어컨을 약하게 틀었는데 에어컨 바람에 감기 걸릴까 봐 트는 둥 마는 둥 틀었더니 아이들이 땀을 송골송골 흘리며 잔다. 그래도 감기 걸리는 것보다 낫겠다 하며 손부채질 몇 번을 해 주곤 나도 누웠다.


통 잠이 안 온다. 아마 아침에 먹은 네 샷의 에스프레소 때문이리라. 아니, 아무리 그래도 16시간도 더 전에 마신 커피인데, 그리고 워터파크에서 하얗게 불태운 몸인데 곯아떨어지지 못하다니, 내 몸의 카페인 반감기가 이렇게 길었던가. 아니면 너무 피곤해서 잠이 안 오나.


고함량 비타민과 디카페인 커피.


뒤척인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니 제법 밝다. 뉴스를 보니 전국은 비 피해로 난리라 마음이 무겁다.


숙소를 옮기는 날이다. 땀 흘린 아이들을 다시 씻겨 옷을 갈아입히고 짐을 챙겨 나왔는데 눈앞에 있는 바닷가를 그냥 못 지나가는 형제들이다. 모래놀이로 씻은 몸과 갈아입은 옷이 도루묵이 되는걸 눈으로 보노라니 마음이 아리다. 바람이 엄청나다. 나는 모래를 만지지도 않고 서 있기만 했는데도 다리에 팔에 모래가 달라붙었다. 더운 날씨에 땀도 나고 바닷바람이 습하니 감고 나온 머리가 다시 떡지는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이다.



모래 놀이에 푹 빠진 녀석들에게 엄마 간다! 진짜 간다! 를 다섯 번쯤 외치고 해동용궁사로 향했다. 바닷가에 세워진 절이라 관광명소이고 풍경이 아름답다 하여 방문해 보기로 한다.


절이 뭐냐는 아이들의 물음에 부처님께 기도하고 예불드리는 곳이라고 하니 부처님이 누구냐고 묻는다. 음.. 예수님 하고 친구라고 대답했다. 말씀과 생각과 행동이 비슷하신 분들이라 국적이 달라도 친구가 되셨을 거라고.



해동용궁사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더 많았다. 우리가 유럽의 대성당을 보는 기분이랑 비슷할까 연신 감탄을 연발하며 사진을 찍는다. 학업성취불과 득남불이 있었는데 그 의미를, 우리의 문화를 알았을까 궁금하였다. 워낙 붐비고 아이들을 봐야 해서 설명을 제대로 못 읽었는데 학업성취불과 득남불은 언제 어디부터 있었을까, 외국에도 학업과 득남을 기원하는 신앙이 있을까 궁금하다.


바티칸 대성당에도 베드로 성인 동상의 발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고 발 부분만 반질반질 닳아있는 걸 보면 신앙의 기복적 의미야 전 세계가 공유하는 정서라 이해가 쉽겠지만, 학업 성취와 득남을 기원하는 문화는 우리와 우리 아이들 세대에는 추억과 역사로만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송정 명물이라는 송정핫도그를 간식으로 먹었다. 빵이 얇고 바삭하며 소시지 육즙이 탁 터지는 맛있는 핫도그이다. 숙소 근처에서 보았는데 여기저기 체인점들이 많이 보인다.

1인 1 핫도그 하고 싶었지만 점심을 먹어야 하니 애들만 하나씩 사주고 한 입만 하고 얻어먹었다. 청양마요 소스가 너무 궁금했지만 다음을 기약한다.


점심은 차를 타고 국제시장 쪽으로 넘어가는 동네에 있는 한 밀면집에서 먹었다. 동네 맛집인지 주말 점심이라 그런지 사람이 가득하다. 밀면을 처음 먹어봤는데 냉면 쫄면보다 부드럽고 국수보다는 고급진 느낌이라 너무 맛있게 먹었다. 나는 로컬 식당의 기준을 할아버지들로 잡는 편이다. 할아버지들이 친구분들과 와서 드시고 계시다면 진짜 맛있는 집! 이 집이 그랬다. 바로 옆 테이블에서 식사하시던 할아버지 네 분이 우리 집 똑같은 옷을 입은 뽀글 머리 형제를 신기하게 보시다가 물으신다.


쌍디지요? (2 5 3 2)


그러니 옆에 친구분이 이기 동시고 쩌게 핸님이라며 딱 보면 모리나며 퉁을 주시는데 정겨운 풍경이다.


맛있는 밀면집, 다음에 기회 되면 또 오고 싶다.


국제시장도 한 바퀴 돌았는데 아이들도 지치고 어른도 지쳐 장난감가게만 몇 번 들여다보고 다음 숙소로 이동한다. 다음 숙소는 조금 저렴한 에어비앤비, 체크인하여 샤워를 하고 밀린 빨래를 돌리고 배달 음식을 시켰다. 메뉴는 그냥 돈가스.


예전엔 여행을 하면 뭔가 뽕을 뽑는 느낌으로 걷고 보고 다녔는데 지금은 여백과 쉼을 많이 주는 편이다. 아이들이 있고 나이도 있어 예전처럼 여행하는 건 불가능해졌음을 인정해야 한다. 오늘은 좀 쉬고 늘어져야겠다.


결국엔 회를 못 먹고 부산을 떠나지만 그래도 재밌었다. 먹은 것도 다 맛있었고.


그나저나 부산에도 으리으리한 아파트가 참 많아졌다. 다 누가 사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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