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를 타고 여수로 오는 내내 굵은 비가 내려 걱정했는데 다행히 숙소에 도착하며 비가 잦아들었다. 마산에서 차를 타며 깜빡 잠든 둘째는 여수 오는 내내 꿀잠을 자고, 제가 순간이동 한 것 마냥 신기하고 신나 한다.
여수는 아이들과 3년째 매년 찾는 도시이다. 나도 그냥 여수가 좋은데 아이들도 그냥 좋은 모양이다. 맛있게 먹은 기억, 예쁜 풍경을 본 기억에 지난해에는 시부모님과 편의점 음식으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컵라면 식사를 처음으로 해 봤으니 아이들의 인상에 여수는 아주 재밌고 맛있는 도시로 남아있다.
남도여행의 마지막 도시를 어디를 갈까 하다가 여수로 온 것도 그 이유이다. 그냥 좋아서. 그냥 좋다는 이유로 경주, 거제, 통영등 쟁쟁한 후보지들을 가볍게 제쳤다.
아이들과 짐을 풀고는 경도 들어가는 배를 타러 간다. 경도라는 작은 섬을 들락날락하는 마을버스 개념의 작은 배가 상시 운행하는데 5분 정도 타고 들어가 입구에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고 섬구경을 하는 것이 우리 가족 3년째 여수여행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
오늘은 선선한 바람에 걷기가 좋아서 섬 더 안쪽까지 들어가 보았다. 골프장이 생기면서 풍경도 조금씩 변하고 있지만 작은 집들, 골목길, 텃밭의 풍경은 거의 변화가 없다. 텃밭에 옥수수, 호박, 포도를 보고, 감나무를 구경한다. 사람 소리가 들리니 집안에서 개가 짖는다. 왜 그러냐는 주인할머니의 목소리도 들린다.
마을의 보건소를 지나 조금 더 가니 커다란 등나무에 할머니들 여럿이 모여 놀고 계시다가 뽀글 머리에 똑같은 옷을 입은 우리 형제를 보시고는 일제히 관심 집중이다.
쌍딩이오?로 시작하는 질문,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두런두런 말씀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 경상도와는 또 다른 전라도의 느낌일까.
쌍딩이요?
동싱이 형아 맨치로 크구마이.
와따메 용인서 왔어부러.
아그들 여기 여수가 우짜 생깄능가
머릿속에 학실하게 여어라잉
비가 대차게 와도 바다로 다 빠져분게
여기는 산태고 그런거 생전 없어 시상서 질루 살기 존디가 여수여 여수.
차 타고 가로로 두 시간 왔다고 말씨가 완전히 달라진 게 너무 신기하다. 이 작은 섬에서 나고 자라 늙었다는 할머니들, 당연히 우리가 어느 할메이 집에 다니러 온 거라 생각하셨는데 여행으로만 벌써 세 번째라는 아그들이 기특하신지 기어이 천 원짜리 한 장씩을 쥐어주신다. 극구사양하다가 크게 인사하고 받게 하였다.
섬에 들어가니 아스팔트에 작은 꽃게들이 마구 돌아다닌다. 난데없는 게잡이 체험도 해보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여수에 왔으니! 저녁은 경양식집. 아이들이 먹고 싶은 스파게티와 돈가스를 먹으러 들어간 곳인데 내부가 깔끔하고 테이블도 큼직하며 오픈주방에 양도 푸짐, 맛도 좋은 곳이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파스타도 맛있지만 이런 경양식집의 스파게티도 맛있다. 경양식집은 새로 생긴데보다는 지역 노포여야 제맛일 것 같은 느낌도 있는데 이곳이 그런 곳인 모양이다. 할아버지 한 분이 소주안주로 돈가스를 혼밥혼술 하시고 아기엄마가 아기 데리고 오기도 하는 곳. 신랑은 계란 후라이가 올라간 김치볶음밥을 뚝딱 비웠고 아이들도 스파게티와 치즈돈가스를 맛있게 다 먹었다.
여수맛집으로는 큰 한정식집이나 매체에 소개된 백반집, 아니면 낭만 포차거리의 삼합요리가 많이 소개되지만 여수에 온다면 정말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도 종류에 상관없이 다 맛있다. 이것이 여수의 클래스인가.
오는 길엔 낭만포차 거리에 들려봤다. 여수밤바다를 산책하는 건 세 번의 여수여행 중 처음이다. 아이들이 어려서, 날씨가 추워서 못 나가던걸 이번에 잠깐이라도 들려본다.
포차들은 많이 닫았지만 반짝이는 케이블카와 지나가는 요트들이 분위기를 돋는다. 여수는 낭만의 도시. 어느새 이만큼 아이들과 손을 잡고 걸어보니 기분이 남다르다.
여행의 마지막 밤이다. 얼굴에 뾰루지가 나는 걸 보니 집에 갈 때가 된 모양, 오는 길에 막걸리 한 병을 사 왔는데 먹고 잘 수 있을까. 피곤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