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과 육아는 여성을 큰 딜레마에 빠지게 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남성에게도 물론 인생을 뒤바꿀 큰 사건이 되겠지만, 임신과 출산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여성에게는 특히나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일 vs 아이
아이가 생기게 되면 일과 아이 사이에서의 밸런스 게임이 시작된다. 남성에게 이 밸런스게임은 출산 후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겠지만, 여성에게는 밸런스게임이 임신 한 직후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남성보다는 약 10개월 정도는 갈등의 시기가 빠르게 찾아온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프렌즈에서 레이첼은 패션 회사에서 팀장급으로 일을 하고 있던 중 아이가 생겨 출산휴가를 냈다. 출산 후 복귀를 2주 앞두고새로 태어난 아이도 소개해줄 겸 회사에 방문하였는데, 자신의 사무실에 다른 남자가 떡하니 앉아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 남자는 자신에 대한 소개를 다음과 같이 했다.
저는 당신이 "출산 휴가"를 쓴 동안 빈자리를 채우러 온 사람입니다.
또한 남자가 임시직으로 온 게 아니라 아예 전근을 와버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는데,그는 이미 레이첼이 자리를 비운 사이 어려움이 있던 회사를 구원해 준 구세주로 칭송받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아부 능력까지 엄청난 그 남자는 상사의 총애를 받고 있었기에 불안해진 레이첼은 원래 복귀까지 2주가 남았지만, 오늘 당장 복귀할 것이라고 질러버린다.
사실 레이첼은 아이를 봐줄 유모도 구하지 못한 상태여서 당장 복귀는불가능한 시점이었지만 다행히 로스가 유모를 구할 때까지 대신 아이를 봐주기로 하여서 회사에 출근한다. 오래간만에 출근한 레이첼은다음날 중요한 발표 자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밤을 새워가며 자신이 자리를 비운 기간 동안의 일들을 모두인수인계받아 발표준비를 마치고 완벽하게 복귀에 성공하게 된다.
드라마이다 보니 과장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내 마음 한 켠에는 레이첼과 비슷한 불안감이 있다. 임신 기간 동안 나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어떡할지, 고과 경쟁에서 밀려 만년 대리로 남게 되면 어떡할지, 출산 후에 아이를 키움에 있어서 커리어에 장애물이 생기면 어떡할지 등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그래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한 번의 출산으로 인한 일 년 정도의 공백기를 메꾸는 것은 큰 어려움이 아닐 수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두 명 이상의 자녀부터는 커리어를 지속하기 점점 더 어려워진다. 남들이 일할 때 어쨌든 일을 쉬었으니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고, 남아있던 사람들의 발전과 공로는 반드시 인정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출산을 큰 공으로 인정을 해주고 싶어도 회사에서 그것을 인정해 준다는 것 자체가 한편으로는 역차별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물론 지독한 노력을 통해서라면 어떠한 공백기라 하더라도 따라잡기 불가능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확신하지만, 출산을 한 뒤 육아를 하면서 충분한 정신적 에너지와 절대적 시간을 쏟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반드시 전폭적인 지원, 그리고 자신의 강력한 의지가 함께 있어야만이 먼저 앞서간 동료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프렌즈에서 성공적으로 업무에 복귀한 레이첼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다.
첫 번째로 레이첼은 주변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프렌즈를 보면로스가 적극적으로 자신이 육아의 주체가 되어 함께 아이를 돌본다. 자신이 육아를 서포트한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시대가 왔으며 이 부분은 실제 많은 부부들이 잘 실천하고 있는 것 같다. 로스의 경우 레이첼의 상황을 잘 이해하여 전혀 화내지 않고 자신이 2주간 아이를 전담마크한 장면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는자연스럽게 유모를 고용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프렌즈에서는유모나 파출부를 고용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유모 문화가 대중화되지 않아 반드시 부모가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면이 있으며, 일단 모르는 사람을 집에 들이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그렇지만 정신이나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부모가 자식을 키운다면 그 아이는 절대로 건강하게 자랄 수 없을 것이다. 아이의 건강과 행복이 부모의 행복과 같은 선상에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에는 늘 프렌즈를 보면서 긍정을 배우고 이해와 공감을 배워왔지만, 오늘의 에피소드에서만큼은 어쩔 수 없는 신체적, 유전적 차이로 인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진심으로 찾고 싶은 마음이 든다.주변인뿐만 아니라, 여성들 또한 주체적으로 일과 육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며, 정부 차원에서도 일과 출산 및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