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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리양 Dec 17. 2023

내가 마인드맵에 잘하는 것을 적기 어려웠던 이유 1

인정과 평가에 대해서


나는 내가 잘하는 것과 즐거워하는 것을 마인드맵으로 그려봤다.


즐거워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적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잘하는 것은 한 글자를 쓰는 것조차 어려웠고 쉽사리 볼펜이 종이 위를 누르지 못했다.


나는 조금 멍해졌다.

내 스스로를 아끼지 않는 것 같은 기분과 더불어서 누군가 투명한 벽을 내 앞에 세워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음..내가 잘하는 것을 아주 자신 있게 쓸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내 고민 끝에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바로 내 스스로 무언가를 재능이라고 생각할 수 있던 계기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에 재능을 깨닫는 것, 즉 스스로 ‘아 내가 이 분야에 재능이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건  확실히 주변환경과 평가에 좌우되는 것 같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주위로부터 어떤 분야나 아주 사소한 것들에서 인정을 하나라도 받은 것이 있다면 그 하나의 계기로 인해 그 재능이 꽃피울 수도 있다.


물론 누군가는 그럴 것이다.

꼭 누군가의 평가만으로 자신의 재능을 알 수 있는 건 아니라고


그런데 차분히, 조금 더 생각을 해 본다면 ‘내가 이 것에 재능이 있는 거구나.’라는 것을 주변의 평가, 객관적인 순서로 나누어진 지표들로 판단할 수 없다면 어떻게 내가 재능이 있다고 인정하고 느낄 수 있을까?


사소하더라도 이런 계기가 없다면 재능이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더라도 취미로 그친다던가, 아니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딱딱하게 나온 성적표나 친구들 혹은 주변인들의 인정이라고 적기만 한다면 위와 같이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달리기가 빠른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소매치기를 당한 사람의 가방을 달리기로 물건을 다시 되찾아주어 ‘달리기를 정말 잘하시네요. 덕분에 제 물건을 다시 찾을 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감사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면 달리기가 빠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이 들까? ‘뿌듯한데? 내가 달리기가 빠르긴 빠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이것 또한 주변의 인정이 아닌가?


거창한 인정만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주변의 칭찬, 인정 혹은 객관적인 평가를 받는다면 나의 재능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아주 거대한 한 테두리 안에 사회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서로 영향을 주며 살아간다. 태어날 때엔 가족들과 영향을 주고받고 영유아기가 되면 친구와 어린이집이든 유치원이든 작은 사회적 공간으로 나아간다. 그리곤 점차 초등학교,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까지 그 후엔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사회적인 공간에 계속 놓인다.


사람은 이러한 사회적 공간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더욱 한 사람의 몫을 해내려고 하고 나를 찾으려고 하며 인정받고 나아가길 원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정과 평가는 빠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서 능력을 찾을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지 않을까?       



      




나의 삶에서 인정과 관련된 경험을 되돌아보자면


나는 먼저 3남매 중 첫째이고 성별은 여자이다. 1살 차이 둘째 동생과 3살 차이 막냇동생은 태어날 때부터 남자였고, 이런 이유로 가부장적인 우리 집에서 성별만으로 동생들은 칭찬받고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렇다고 내가 부모님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은 분명하게도 아니다. 하지만 사랑과 인정은 너무나 분명히도 다른 의미였다.


더불어서 나는 집 안을 넘어서 집 밖에서 성별로 인정받지 못했다.


 난 작은 시골마을에서 살았는데 옛날 작은 시골마을 안에서는 서로 각각의 집마다 교류를 많이 하고 그중엔 친척도 살았다. 이런 시골마을에선 부모님과만 교류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며 그 와중에 작은 시골 마을 안 사람들은 폐쇠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이들 사이에서도 나는 제일 먼저 성별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동생들을 괴롭히고 무엇이든 내가 제일 먼저 하길 떼를 썼다. 지금 되돌아보면 너무 성격이 못댔었나라고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릴 적 나는 내가 제일 먼저 사랑받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첫째가 주변 상황을 인지하기 시작할 때쯤 둘째가 태어나면 부모님이 자신을 두고 바람을 피운다고 느끼는 그런 감정적 고통을 느끼는 것과 같이 말이다.


그렇게 자라다 초등학생이 되고나서부터 둘째 동생이 공부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성적표로 아주 명확하게 판단이 되었고, 또한 호기심이 많고 활발한 둘째 동생은 과학적 상식이라던가 정말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정석처럼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성적이었고 특별할 것이 없었던 나는 1 학급씩 있었던 학교에서 나의 이름보단 둘째 동생의 누나로 불렸고 마을에서든, 집에서든 성별과 더불어 공부란 재능에서 차별받고 또한 상장을 타면 용돈을 주는 할머니와 아빠로 인해 나는 마음속 깊이 무언가 억울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공부에 노력해 보자 했지만 동생얼굴을 볼 때마다, 마을에서 둘째가 더 낫다는 마을 들을 때마다, 학교에서 둘째 동생의 누나라고 불리고 내 이름이 불리지 않을 때마다 마지막으로 집에서 동생을 볼 때마다 공부가 하기 싫었다. 집에서 공부로 순위를 매기는 것조차 싫었다.


그러자 나는 ‘나는 하면 안 될 텐데 굳이 해야 할 필요가 뭐가 있어?’라고 지레짐작을 하고 반항심에 ‘다른 것을 동생보다 잘하면 되지,, 그냥 보통만 하자.’라고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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