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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례자 May 13. 2024

09  T시에서의 첫 날, S 선생

 

09  중국 T 시에서 처음 만난 S 선생

  공항은 이륙하는 항공기들이 뿜어 내는 터빈의 굉음과 육중한 동체가 착륙할 때 타이어가 노면에 마찰되면서 만들어 낸 부서지듯 요란하고 날카로운 소음이 뒤섞여, 마치 엄청난 군중이 모여 북적대며 환호와 박수소리로 떠들썩한 투우장을 떠오르게 했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비행장의 유도로를 느릿느릿 크게 두 바퀴 돌다가, 활주로에 딱 멈춰 서서 거친 소음과 함께 터빈의 회전수를 서서히 높이고 있었다. 마치  눈앞에서 어지럽게 흔들리는 붉은 깃발의 춤에 극도로 흥분해서 폭발적으로 질주하려는 황소의 긴장된 심장과 발굽 소리  전을 두드리는 듯했다.

   나는 비행기가 이륙할 때면 이런 긴장감에 사로 잡힌다. 그 야릇한 기분은 공포라기보다는 축 늘어진 의식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면서 외줄 타기를 하는 것 같은 고도의 집중 같은 것이어서, 나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는다. 온 신경이 일어서서 머리가 찌릿찌릿하고 피부와 심장이 달라붙는 묘한 두근거림이 싫지 않았다. 폭발적인 소음으로 활주로를 질주하던 비행기가 땅을 움켜쥔 채  차고 뛰어올라  앞바퀴를 들어 올린 후, 15도 각도로 허공을 향해 연줄처럼 팽팽하게 뻗어 나가다가, 수평 비행을 시작하며 숨 고르기를 할 즈음이면 의자에 몸을 깊숙이 기댔다.


   “ 잠시 후에 T 시 국제공항에 도착합니다. 현지 시간은 오전 11시이고, 기온은 영하 5도입니다.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기장의 차분하고 사무적인 멘트에 안정감을 느끼며 창 밖을 봤다. 회색 빛 하늘에 나지막한 건물들이 듬성듬성 보였고 끝없이 펼쳐진 무채색 들판 위로 짙은 회색 빛의 먼지층이 먹장구름처럼 도시를 덮고 있었다. T 시의 첫인상은 나무 한 그루 자랄 것 같지 않은  잿빛 벌판 같았다.

  국제공항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공항은 한산했고 초라했다. 입국 심사대 창구 앞에서 나는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단정히 서 있었다. 경찰이라고 한자로 크게 쓴 형광색  조끼를 입고 있는 남자가 내 여권을 이리저리 들척거리나를 힐끔 보더니 도장을 힘주어 찍어 준다.

   입국장을 나와서 제일 처음 만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KFC 매장이었다. 붉은 바탕에 머리와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가 환하게 웃고 있는 상반신이 선명하게 새겨진 광고판이 환하게 입국장 출구 정면에 자리 잡았다.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KFC 매장에서 치킨과 햄버거를 먹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다소 긴장이 풀렸다.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겠구나. 입국장을 나오니 살 집 있고 사람 좋아 보이는 남자가 출국장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 채 ‘T 국제학교, 환영합니다 ’라는 종이 팻말을 들고 섰다.


   “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K 선생입니다.”
    “아이고, 오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습니까?”


   그는 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저는 교무부장 S 선생입니다. 이 귀여운 친구가 아들 이군요. 사모님도 어서 오세요. 아무 걱정 마세요. 사람 사는 곳 다 똑같습니다. 하하하!”


     마중 나온 S 선생은 호탕하고 웃음이 많은 사람으로 크게 웃을 때면, 늘 ‘아이고~”를 말머리에 붙여서 주변을 떠들썩하게 했다.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낸 사람을 만난 듯한 그의 호들갑스럽고 들뜬 행동이 다소 과장돼 보였지만 낯 선 환경에 던져진 우리 가족은 잠시나마 긴장을 풀고 웃을 수 있었다.


     ‘T 韓國國際學校”라고 가로로 길게 스티커를 붙인 봉고에 우릴 태웠다. S 선생은  목적지를 알려 주는 듯, 중국어로 운전사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린 약 40분 뒤에 한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호텔 방으로  안내받았다. 호텔은 10층 정도의 아담한 건물에 단정하고 깨끗했으며 간단한 편의 시설도 있었고, 무엇보다 중간층에 한인교회도 있어서 안심이 놓였다. S 선생은


    “ 이 호텔에서 열흘 정도 머물면서 집을 구하고, 필요한 서류도 하나씩 준비해 나갈 겁니다. 맛있는 것 드시고 편하게 쉬세요. 당장 핸드폰 개통이 제일 급한데 저랑 식사하고 함께 나가 봅시다.”

“선생님, 너무 감사합니다.”

“아이고~. 그런 말씀 마세요. 여기 살면 서로 이렇게 도와줘야 합니다. 당연한 것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T 시에 도착한 첫날 우리 가족은 S 선생과 핸드폰을 개통하고 제일 먼저 그의 번호를 입력했다. 아들은 낯선 땅에서 난감해하는 아버지의 표정을 단 번에 읽어내고,  S 선생의 말과 행동에 시선을 떼지 않눈을 반짝였다. 이런 아이의 모습을 S 선생도 즐거워하며 더 크고 과장된 말로 우리를 기쁘게 했다.

    그는 아이의 취향을 여러 차례 묻고는 호텔 근처의 식당으로 갔다. 한국의 중식과 비슷한 음식들크고 둥근 식탁에 하나 씩 올라왔다.  우리의 자장면, 탕수육과 비슷한 요리부터 시작해서  파채를 얹고 그 위에  새콤한 소스를 부은 큼직한 생선이며, 각종 튀기고 볶은 야채와 요리들이 달착지근한 냄새를 풍기며 식탁을 가득 채웠다. 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T시에서의 첫 식사 인상적이었다. 식사 중간중간에 마시는  따뜻한  말리화 차 향기가 코 끝에서 시작해서 입안 가득 퍼지, 중국 음식 특유의 느끼함은 사라지고 다시 다른 음식 손이 가게 했다. 식탁 위는 한바탕 전쟁을 치른 듯 비어진 그릇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음식은 맛있었고 아내와 아들 모두 잘 먹었다. 음식이 주는 기쁨에 인색했던 내 생각을 바꿔 놓는 계기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린  차를 타고 호텔로 다시 돌아왔다.


   “내일집 보러 갑시다.”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덕분에 아주 잘 먹었습니다. 첫날부터 아주  즐거웠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내와 아들도 미소 지으며 인사한다.


   “아이고~. 또 그런 말 하신다. 맛있게 드셨다니 제가 더 좋습니다. 어쨌거나 여기 선 무조건  즐겁게 살아야 해요.”


   내일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S 선생을 태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 가족만 덩그러니  남았고 사방은 어둠 속에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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