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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체인 Oct 20. 2023

남자 키 173: 내 키가 부끄럽다



다들 내 키를 보고 비웃는 것 같아..


한국 남자의 딱 평균, 173cm의 키를 가지고 있는 J가 푸념하는 소리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키가 작다며 흉을 볼 거 같. 특히 키가 더 큰 여자랑 서있는 경우에는 견디기 힘들 만큼 창피해진다. 그런데 J의 키는 객관적으로 작지 않다. 그의 자격지심이 합리적이라면, 대한민국 절반의 남성들은 J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고통받아야 한다.



B의 고통의 원인은 '나쁜 수치심'이었다.



나쁜 수치심은 자기 존재가 막연하게 부족한 거 같고 못마땅하여 느껴지는 부끄러움을 말한다. 그래서 나쁜 수치심은 특정한 상황에서만 느껴지는 건강한 수치심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옷을 다 벗으면 수치심이 느껴진다. 그러나 옷을 다시 입으면 수치심은 사라진다. 옷을 벗은 상황에서만 느껴지는 부끄러움, 이건 건강한 수치심이다.



반면, 나쁜 수치심은 밖이 아닌 내면으로부터 오는 감정이다. 따라서 상황과 관계 없이 지속적으로 느껴진다. 나쁜 수치심을 가진 사람은 보통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는 엉뚱한 이유에 매달린다. J는 불만족스러운 키가 수치심의 이유라고 생각했다. 키가 작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 낸 거였다.



그렇기에 키가 183cm가 된다 해도 J의 수치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수치심의 새로운 이유를 찾아 나설 거다. 없어지지 않는 부끄러움을 설명해 줄 또 다른 상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쁜 수치심이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부족하거나 못마땅한 곳이 있는지를 끊임없이 살핀다. 그렇게 늘 스스로를 못살게 굴며 지쳐간다.



지금 내가 부끄러운 건 키 때문이 아니야.
스스로가 그냥 부끄럽게 느껴지는 거야.


나쁜 수치심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J는 수치심의 근원을 제대로 바라보기로 했다. 키에 대한 부끄러움느껴질 때마다, 그것이 스스로 대한 막연한 감정이라는 걸 인식하는 거다. 수치심이 옅어질 때까지, 이런 의식적인 과정은 오랜 기간 지속되어야 할 수도 있다. 언젠가 J는 키가 더 큰 여자 옆에서도 잘 서있을 수 있다. 별생각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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