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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지 이십삼세 Aug 12. 2023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한가 보다!

6월 시코쿠 여행기(2)

 여행의 시발점은 공항이었다. 근 6년 만에 떠나는 해외에다가, 혼자 떠나는 길이라 국제미아가 되지 않도록 긴장을 하고 있었다. 공항에도 3시간 전에 미리 도착하고, 셀프 체크인도 성공적으로 마친 후 환전해 놓은 엔화를 찾아서 출국심사장으로 향했다.     


 영화같은 데에서 보면, 출국심사하다가 의심을 받고 안경이나 옷을 벗게 시키고, 그 안에서 마약이 나오고 하는 장면이 대부분이다. 혹시라도 그런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내로 가져가는 힙색에서 뭔가 걸릴까도 걱정했지만 무사 통과였다.    

 

 일본은 거리가 가까워,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 마쓰야마까지는 약 1시간 20분 정도가 걸린 것 같다. 기내에서 이륙하고, 기내면세 안내문을 좀 읽다가 승무원들이 나눠주는 입국신고서와 세관신고서를 쓰고 나니 착륙이었다. 나는 늘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리고 주기장을 지나 탑승구로 향하는 모습을 볼 때, 작은 창문 밖으로 여행지의 이름이 보일 때, 처음 보는 항공사들의 로고가 보이면 설레고, 웃음이 절로 나온다. “드디어 도착이구나”하는 느낌말이다.      

다행히 날이 좋았던 마쓰야마 공항.

 탑승구 게이트를 지나, 입국심사를 위해 길게 줄을 섰다. 내 왼손에는 보딩패스, 입국신고서, 세관신고서가 여권에 얌전히 꽂혀있었고, 오른손은 e-sim을 설정하느라 분주했다. 줄을 서 있는데, 줄 가운데에 나이가 좀 있으신 여성분이 서계셨다. 평소였으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웃는 인상을 가지시고 줄 중간에서 사람들을 유도하는 모습에 헷갈리고 말았다. 난 그때 그 분이 공항 직원이고, 질서 유지를 위해 입국자들을 유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기분도 신나겠다, 그래 기분이다! 하며 “곤니찌와~”를 그 분께 건넸다. 그 분이 조금은 당황하시더니, 이내 받아주셨다. 그게 내 첫 일본어 회화구나 했는데, 잠시 뒤에 그 분이 유창한 한국어로 일행을 안내하는걸 보고, 굉장히 얼굴을 붉혔다.     

나를 반겨주던 에히메현

 입국심사는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그 분은 영어를 잘 하지 못했지만, 영어로 질문해주었고(외국인에 대한 배려일 것이다) 입국심사대 위에 있는 스크린에서는 한국어가 지원이 되어 질문을 대략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서 문제는, 내가 일본어를 굉장히 하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 대화는 이렇게 흘러갔다.


(심사원) 입국한 목적이 뭐니?(영어로)

(나) 캉-코 데스(일본어로)

(심사원) 얘가 일어를 좀 하는 것 같으니, 일어로 물어봐야겠다, (유창한 일본어)

(나) 저는 일본어를 아예 모르는데요...(일본어로)


 이런 총체적 난국과 같은 상황이 흘러갔고, 내 모습이 순박해보였는지, 아니면 내 개발세발 일본어가 통한건지 여권에 입국도장을 받고 밑의 세관심사처로 넘어갔다. 세관심사는 조금 더 난항이었다. 심사원은 나이가 지긋한 백발의 노인이었고, 한국어를 보여주는 스크린도 없어 보였다. 일단 안거치면 통과를 못하니까 줄을 섰고, 내 차례였다.    

 

 “곤니찌와~”로 시작되었다. 내가 먼저 했고, 심사원이 반갑게 받아주었다. 인사를 하는 포스가 일어를 좀 하게 보였나보다. 일본어 폭격이 날아왔다. 그걸 내가 알아들을리 없지. 그냥 끄덕끄덕하며 있다 보니 내 일본어 실력을 짐작하고는 코팅된 종이를 보여줬다. 금품이나 마약을 운반한 사실이 있냐는 거였는데, 내가 운반한 것은 프레즐 밖에 없었으므로, 이-에 하고 답했다. 그 뒤에 추가 꼬리질문이 몇 가지 따라왔다. 그 꼬리 질문들은 모두 일어였는데 알아들을 수 있을리 전무했다.     


(심사원) ~~~~~~~~~(일어로)

(나)......??

(심사원) ~~~~~~~~(일어로)     


 이렇게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머릿속에 떠오른 한 가지가 있었다. ‘맥락’, ‘context’. 모든 대화에는 맥락이 있다는 사실. 이 사실을 대입하면, 그는 아마 나에게 국적이나 방문 목적을 더블체크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무작정 그 대사를 외쳤다.   

  

(나) 저는 한국인이고, 관광하러 왔습니다(일어로)

(심사원) 아 관광이요?(일어로)

(나) 맞습니다!(일어로)     


대화에 실마리가 얼추 풀려가고, 그가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심사원) 호텔은 어디에 잡았습니까?(일어로)

(나) 도르미인입니다.(일어로)

(심사원) 도르미인....? 아 도미인!(일어로)

(나) 맞습니다!!!     


 물론 저 질문도 완전히 이해는 못했고, 대략 호텔이라는 단어가 들리는 것 같아서 찍었고, 그 결과는 적중이었다. 도르미인은 나름 일본인을 배려한다고 ‘도미인’을 굴려서 발음한 것인데, 그 효과는 거의 없었다. 저 질문을 끝으로 출국장 밖으로 나가도 된다는 사인이 떨어졌고, 짐을 챙겨서 나가려고 하는 찰나에 그 심사원이 나에게 한마디를 해줬다.  

    

(심사원) “니혼고가 다이죠부”(일어로)     

 일본어가 제법 괜찮다는 뜻. 제법 잘한다는 뜻. 그런 뜻의 ‘다이죠부’. 그 한마디가 나에게 큰 여행의 성취감을 주었다. 아! 이정도만 해도 맥락만 파악하고, 적당히 들이대면 되는구나. 이정도면 먹고 살 수는 있겠구나! 혼자서 여행 충분하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마쓰야마에 발을 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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