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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지 이십삼세 Aug 16. 2023

타지에서 받은 동포의 도움

6월 시코쿠 여행기(6)

  다카마쓰에서 우동을 먹고, 부른 배를 몸에 얹은 채로 관광항으로 갔다. 쇼도시마로 들어가는 배를 타고 쇼도시마에 들어가 버스를 탔고, 몇 관광지를 둘러보고 다시 항으로 와서 다카마쓰행 배에 올랐다.(쇼도시마 이야기가 거의 없는 것은 내 기준으로 심각하게 볼게 없었기 때문이다. 날이 좋았다면 좀 나았겠지만,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일본어를 읽지 못하는 나에게는 곤욕이었다.)


 다카마쓰행 배에 올라, 저녁으로 뭘 먹을지 생각했다. 점심에는 우동이었고 배는 점점 고파지고, 첫날부터 지금까지 면을 먹었으니 뭔가 단백질을 먹고 싶은데 마땅한 메뉴는 없을 것 같고... 고민 끝의 결론은 돈카츠였다. 배에서 내린 후에 마쓰야마행 막차까지 2-3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있으니 천천히 밥 먹고 좀 걷다가 열차를 타면 될 것처럼 보였다. 다카마쓰 상점가의 카츠집들을 찾아보고 적당한 곳으로 선정 후 배에서 내렸다.


 카츠집으로 걸어가는 사이에 비가 그쳤다. 해는 살짝 얼굴을 내밀고 다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상점가로 걸어가며 본 거리의 풍경은 마쓰야마와 사뭇 달랐다. 우선 노면전차가 없었고 건물들도 조금씩 다른 느낌이었다. 마쓰야마는 어느정도 여유가 섞인 모습이라면, 다카마쓰는 온전히 바쁜 직장인들의 모습이었다. 그들 사이를 하나 둘 지나쳐 상점가에 다다랐다.


 카츠집에 들어가서 메뉴를 보다가, 이번에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번역기를 사용했다. 번역기도 메뉴판의 신기한 필기체를 읽지 못했고, 우왕좌왕하던 찰나에 사장님이 눈치껏 영어메뉴판을 챙겨주었다. 그걸로 읽다가 등심카츠와 하이볼을 주문했다. 카츠를 조리하기도 전에 하이볼이 나왔는데, 생각한 맛과는 사뭇 달랐다. 내가 이제까지 먹은 것들은 대부분 토닉 워터를 넣어서 단 맛이 강했는데, 이 본토 하이볼은 그냥 탄산수를 넣었다. 그 말인 즉슨 단 맛은 없고 진정한 술의 향만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시켰으니 어떡하겠는가, 시원하게 마시고 이내 나온 카츠도 함께 곁들였다.

저녁으로 먹었던 카츠.

 카츠는 비계가 적당히 섞인 등심이었다. 우리나라의 일식 카츠들과 큰 다름없이 나왔으며 맛도 제법 비슷했다.(이 경우에는 우리나라가 현지음식의 맛을 잘 가져온건지 고기튀김에 소스가 다 거기서 거기인건지 고민의 여지가 있다.) 일본의 카츠라고 해서 확연하게 다른 맛을 기대했지만 결국 내수용 카츠와 같은 맛을 보며 배를 채웠다.


 밥을 다 먹고 시계를 보니 아직 2시간 정도가 남아서 술기운도 뺄 겸 상점가를 걸었다. 마쓰야마의 상점가보다 확연히 조용했으며, 사람들도 얼마 없었다. 걷다가 문득 든 생각,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 에 길에 있던 서점에 들어갔다. 모든 책들의 제목은 읽을 수 없었다. 그나마 많이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 촌상춘수(村上春樹)는 알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내용도 알지 못하는 책들을 뒤적거리다 아까 생각이 난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을 샀다. 이 경우에는 나쓰메 소세키의 한자를 모르기도 하고, <도련님>의 일본 발음인 <봇쨩>을 읽지 못해 무작정 점원을 붙잡고 “아노...스미마셍... 나쓰메 소세키노 봇쨩와 도코데스까?” 해서 찾았다. 점원은 우리네 미니북 같은 책을 가져다 주었고, 그 책을 챙겼다.

일본어를 몰라, 책장에 꽂아만 두고 있다.

 서점에서 나와 슬슬 역으로 돌아가서 기다리다가 열차를 타면 되겠다는 생각에 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혹시 조금 더 빠르게 출발하는 열차가 있을까 싶어, 구글 지도로 역의 시간표를 찾아보았다. 이때 본 시간표에는 아까 배에서 본 것과 다른 표시가 되어있었다. 누가봐도 경고를 알리는 빨간색 배너에 ‘!’ 표시, 게다가 아까 타고 온 열차의 이름까지 적혀있었다. 이 경고문구는 열차 운행중단안내였다.

보고 심장이 철렁했다.

 다카마쓰로 오는 길이 제법 바다를 옆에 끼고 달려왔는데, 바다에 바로 맞닿아 있으니 강풍으로 인해 열차가 운행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내가 오늘 기차를 타고 마쓰야마에 돌아갈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없다는 것과 같았다. 잠시 멍 해졌다가, 호텔에는 어떻게든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다행히 구글 지도에서는 마쓰야마행 고속버스 노선을 소개해주고 있었다. 딱 출발장소도 다카마쓰역이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은 내 현금 상황이었다.


 교통패스로 왕복하고 할 생각이었어서 현금을 많이 안 챙겼고, 카드도 안들었다. 그리고 신나게 카츠에 밥을 먹고 책까지 사느라 돈은 더 없다. 고속버스 티켓이 4400엔인가 했는데, 내가 가진 돈은 1000엔 정도였다. 카드가 있으면 근처 atm에서 수수료를 내고라도 인출하겠는데 카드도 안들고 왔으니 답이 없었다. 인터넷으로 카드없이 출금하는 법을 알아보며 일단 역전으로 걷던 중 거리에서 익숙한 한국어가 들렸다.


 한국어를 듣고 도움을 요청할지, 아니면 혼자 해결해볼지 고민했었다. 처음에는 혼자 해결해보자는 생각으로 우선 지나쳤는데, 머리 한 켠에서는 계속 도움을 요청하라는 누군가의 소리가 들렸다. 한 다섯 걸음인가 떼고, 바로 뒤돌아서 그 분들을 붙잡았다. 그리고 길게 내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쓰야마에서 왔고, 패스를 믿고 돈을 많이 안들었고, 기차가 운행중지됐고, 돌아가야하는데 버스비가 부족하다.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하고 엔화의 10배로 즉석에서 조금만 환전해주시면 안되겠느냐고 여쭤보았다. 정말 감사하게도 흔쾌히 환전해주셨고, 버스 출발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아서 환전한 돈을 들고 역까지 뛰다시피 갔다.


 역에 도착해서 한 가지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외국어를 그나마 할 줄 알거나, 바디랭귀지라도 하려면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퇴근시간이라고 사람들이 모두 퇴근하고 키오스크만 둔 것이다. 관광안내소에도 사람은 없고, 버스 출발시간은 10분 정도 남은 시간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버스를 못 타면 환전은 왜 했으며 왜 뛰었을까 싶었다. 결국 대합실에서 기다리던 일본 직장인에게 말을 걸었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그때 말을 걸고 번역기에 ‘도와주실 수 있나요?’를 쳐놓고 그것만 보여줬다. 다행히 그 직장인 분이 바로 눈치를 채시고 키오스크에서 도움을 주셨다. 난 그 분께 ‘마쓰야마’, ‘오카이도’ 이 두 단어만 반복했고, 정상적으로 발권이 되었다. 그 분께 깊은 감사인사를 전하고 버스 앞에서 다섯 번 정도 확인한 후 버스에 올랐다.


 버스로 한 두어시간 달리니 마쓰야마였다. 익숙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국에서의 방랑을 다행히 멈추고 내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그 두 시간 정도도 마음을 못놓고 계속 지도를 보고 도로를 보고 했으니 그 곳에 혼자 남겨지는게 굉장히 무서웠던 것이다. 그 날은 들어와서 그냥 그대로 뻗었던 것 같다. 그 일련의 과정들이 지금 생각하면 스릴넘치지만, 그 순간에는 굉장히 무서웠다.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그때 즉석에서 이야기를 들어준 한국인 가족들과 키오스크에서 표를 발권해 준 일본인은 멋진 사람들이었다. 물론 스스로도 그 당시를 리마인드 해보면 그냥 그렇게 된거 다카마쓰에서 하루 방잡고 잘 걸 그랬나 싶다. 카드정보는 다 있었으니... 그게 버스보다 저렴하지 않았을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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