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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지 이십삼세 Aug 21. 2023

헤메다 도착한 곳에 그게 있었다.

6월 시코쿠 여행기(11)

 일본으로 출국하기 일주일 전이었나, 가족들이 거실에 모여 티비를 보고 있었다. 티비에서는 <생활의 달인>이 방송 중이었는데 나는 그 프로그램에 큰 관심이 없어 소파에 기대 핸드폰이나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때 부모님이 티비에 마쓰야마가 나온다고 하셨다. 마쓰야마가 왜 나올까 싶어 화면을 보니 진짜 시코쿠, 마쓰야마였다. 실제 방문한 지역은 마쓰야마 근교의 야와타하마 시였는데, 그 곳이 소금빵의 원조라고 소개하고있었다. 그때 부모님이 장난삼아 마쓰야마 가는 김에 저기도 가봐라~ 하셨던 것 같은데, 나는 그 말에 진심이었다. 저기는 가봐야겠다 싶었다. 마침 지도로 봐도 우치코, 오즈를 가는 날에 붙이면 될 듯 싶었다. 소금빵에 대한 일념을 가지고 야와타하마에 가기로 했다.     


 오즈 성에서 동행을 마치고, 다시 특급열차에 올라 야와타하마로 향했다. 야와타하마로 향하는 열차에서 잠시 검표를 받고 미리 지도를 켜 빵집까지 가는 길을 구글 맵으로 찾아봤다. 이제까지는 대부분 여유롭게 내려서 길을 보고 걸어갔으나 지금은 빵집 마감시간에 타이트하게 도착할 것 같아 미리 길을 예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 속에서는 미리 그 길을 걸으며, 좌회전/우회전 포인트를 기억하고, 별점이 증명하는 그 집의 맛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내 야와타하마라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열차가 플랫폼에 멈췄다. 그리고 첫 발을 내딛었다.     


 구글 맵에서 본 길을 실제로 마주하며 약간은 빠른 걸음으로 향했다. 그때 주변은 생각보다 공허했다. 역이라기에는 근처에 상가도 많이 없었고, 조용한 거리에 버스 정류장과 택시 정류장만이 존재했다. 거리를 조금씩 걷다보면 파칭코가 보이고, 큰 마트가 보이고, 편의점이 보였다. 그 외에는 모두 그들만의 가게, 로컬들만 출입할 듯 한, 였다. 주택가를 가로지르고, 조용한 상점가를 지나쳤다. 그렇게 좌회전 우회전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팡 메종이었다.     

소금빵의 원조. 팡 메종

 팡 메종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교외에 위치한 베이커리 카페와 외관이 비슷하다. 2층의 양옥집(세모난 지붕을 가지고 있다)인데, 1층만 빵집으로 사용하고 있다. 마감까지 30분 정도 남아있어 빠르게 가게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잔뜩 쌓여있는 소금빵을 먼저 구경하고, 한국보다 저렴한 가격에 감탄하며 트레이에 몇 개 담았다. 단순히 소금빵만 사 가기는 시간과 돈이 아쉬워서 괜히 메론빵을 몇 개 더 담았다.(이때 담은 메론빵은 나중에 정말 잘 한 선택으로 남는다.) 줄을 서 계산을 마무리한 뒤, 뿌듯한 표정으로 가게를 나왔다.     


 할 일을 다 했으니 이제 남은건 밥을 먹는 것이다. 특히나 나는 신경 쓰고 있던 것들을 다 해치우면 배가 극렬하게 고파진다. 이제 식당을 찾아야 하는데, 이 곳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거의 오지 않는 동네였다. 영어 간판이 보이지도 않고, 인터넷을 찾아봐도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페리를 이용하며 잠시 들르거나, 나처럼 빵을 사로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쩔 수 없이 이번에는 구글 맵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구글 맵을 보고 적당한 일정식 집을 찾았다. 거리도 걸어서 한 10분 정도면 도착하기에, 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걷고 있었다. 간판이 가타카나와 한자로 되어있어 정확하게 읽지는 못했지만, 현재 내 위치와 내부를 보고 적당히 지레짐작해서 도착했다. 딱 저녁시간에 사람이 아무도 없길래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노크하고 “아노, 스미마셍” 하며 들어갔다. 안에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 뭐라뭐라 하시며 손으로 엑스자를 그려 보이셨다. 자세히 뭐라고 이야기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 밥을 못 먹는다는 것 하나는 확실했다. 뭐 안된다는데 거기서 먹게 해달라고 할 수는 없고, 그대로 돌아서 나왔다. 바로 앞 블록에도 비슷한 식당이 하나 있어 들어가 물어보니 이 곳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나는 밥을 먹어야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에 다다랐다.     

 다시 구글맵을 찬찬히 찾아보니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의 오코노미야키집이 있었다. 별점은 적당히 낮았지만, 지금 그런걸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결국 내려왔던 길을 그대로 거꾸로 걸어 올라가 그 곳으로 걸었다. 걷다가 대형 쇼핑몰이 하나 보였고, 그 안에 있는 푸드코트를 갈까, 잠시 생각하다가 그래도 여행인데 푸드코트는 스스로에게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냥 걸어서 기존의 목적지로 향했다. 사람 한 명 없는 조용한 거리를 걸으며 여러 생각을 하는 것이 응당 혼자 여행자의 의무라고 생각하는데, 저때는 오히려 배가 너무 고팠고, 다리도 아파서 그냥 지도만 보면서 계속 걸었다. 걸었다기 보다는 다리를 끌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조금 더 맞을 것 같다.     


 걷다가 이제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식당이었다. 구글 지도가 그렇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이때 나는 하나의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배가 고팠기에 그냥 길을 건너서 가게 이름도 안보고 들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곳이 잘못 들어간 곳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들어가서 안내를 받고 자리에 앉아 물을 마신 뒤, 주문을 했다. 사장님이 가져다주신 메뉴판을 보는데, 번역기도 그렇고 제대로 해석을 못하고 있었다. 뭔가 맥락상 재료들 중에 몇 개를 고르면 그걸로 오코노미야키를 해준다는 것인 줄 알았다. 이럴 때 써먹으려고 외워온 단어가 있다. “오스스메” 추천메뉴라는 뜻인데, 사장님이 이 단어를 못 알아 들으시기에, “오마카세, 오마카세 구다사이” 해서 주문을 마쳤다.      

노란색이 원래 가려고 했던 곳이고, 내가 간 곳은 파란색이다. 지금 보니 좀 멀기는 하구나...

 주문을 마치고 생각해보니, 오코노미야키집 치고는 철판이 없었다. 분위기도 많이 밝았다. 주위 사람들도 다들 오코노미야키가 아니라 다른걸 먹고 있었다. 대부분이 맥주를 테이블에 얹어놓았고, 해물이 대부분이었다. 회랑 구이 같은 그런 것들,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의심이 들었고, 이내 내 앞에서 횟감을 꺼내 써는 사장님의 모습을 보며 이 곳이 오코노미야키집이 아니라, 이자카야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내 내 앞에 놓인 것은 사시미 정식이었다. 약 다섯 종류의 생선 회가 내 앞에 나왔고, 밥을 먹어야 했던 나는 밥 한 공기도 주문했다. 옆 자리에 있는 사람은 밥 없이 회를 먹고, 술을 마시는데 나는 신기하게 회에다가 밥을 하나 시켜 같이 먹고 있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뭐랄까... 청국장 보리밥집에 가서 나물과 밥을 안비비고 다 떠먹고 있는 정도의 어색함이려나?      

정말 예술적인 비주얼의 정식

 그래도 밥은 맛이 좋았다. 회들 중에 고등어가 있었는데 예전에 제주도에서 한번 먹고는 너무 비려서 그 맛에 대한 환상이 사라졌었다. 이번에 비로소 제대로 된 고등어 맛을 느꼈다. 그것 외에도 참치, 광어(생선은 잘 몰라서, 한국에서 먹던 것들과 모습을 비교했다.)는 훌륭한 맛이었다. 일본어를 잘 못하니 사장님이나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는 못하고, 티비에 나오는 뉴스 화면이나 보면서 그렇구나, 그렇구나 하며 밥을 먹고 있을 때 옆에 있던 한 손님이 말을 걸어주었다.     


 그 대화에서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건 없었다. 이게 확실했다. 공항이나 역에서야 대충 맥락이라는게 있지만, 현지 술집은 확실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게 없었다. 그렇다고 신나서 말을 걸어오는데, 거기에 번역기를 들이밀자니 그의 발언을 괜히 잘라먹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아 번역기도 꺼두었다. 근데 또 가만히 생각해보니 뭐 맥락이라는게 당연히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흔히 새로운 사람에게 말을 걸 때, 그 사람이 외국인이고 여행을 온 것 같다면 어디서 왔는지, 어떤지 등을 물어보지 않을까? 싶었고, 그대로 대입했다.    

 

 그가 뭐라고 물어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와타시 캉코쿠진 데스, 니혼...캉코!”(저는 한국인이고 일본은 관광하러 왔어요)를 말하고 상대의 반응을 살피니, 제대로 적중했다. 그리고 다음 질문에서는 어렴풋이 “~~~야와타하마?”가 들리길래 방문 목적을 묻는 것 같았다. 그러면 또 답변을 안할 수 없다. “시오 팡 토 메론 팡”(소금빵이랑 메론빵 때문에 야와타하마에 왔어요). 이 문장이 현지인들에게는 제법 웃음 포인트였는지, 그 말 이후로 가게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긴, 나라도 한 서양인이 동네 빵집에 단팥 빵 사러 왔다고 하면 얼마나 귀엽게 생각하겠는가. 뭐 그 후로 약하게 알아들은건, 한국에는 소금빵과 메론빵이 없냐는 질문이었는데, 길게 설명을 못하겠어서, “데....니혼 노 팡 와 이치방데스”(그건 아닌데...일본이 빵은 최고잖아?)해서 나름 그들의 기분을 띄워주었다. 그렇게 하하호호 웃으며 내 접시 위의 회는 점점 줄어갔고, 배는 점점 불러왔다.      


 “고치소데-”(고치소사마데시타의 준말로, 내가 만들어서 사용한 어휘인데 나름 잘 통한걸로 봐서 문맥상 문제가 없었던 것 같다)하고 계산을 한 뒤, 아리가토 고자이마스 하며 가게를 나왔다. 나와서 슬슬 해가 지고 있는 야와타하마 항을 보고, 역 방향으로 고개를 끄덕인 후 역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아름다웠던 야와타하마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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