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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지 이십삼세 Aug 20. 2023

뜻밖의 동행자

6월 시코쿠 여행기(10)

 우치코 마을에서 사시미 정식을 먹고 다음 행선지는 이요-오즈(대부분이 그냥 오즈시라고 부르지만 역 이름은 이요-오즈 이므로 이렇게 표기함)역이었다. 전 글에서도 말했듯이 오즈시는 마쓰야마 관광객들이 간단히 들리는 근교의 관광지고 그 중 오즈 성과 가류산장이 유명하다. 마음 같아서는 두 곳 다 가보려고 했으나 뒤 이어 갈 곳이 있었고 우치코에서 걸으며 기운이 기운대로 빠졌기 때문에, 오즈성만 가볍게 둘러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우치코역에서 이요-오즈 역까지는 20분 정도면 이동한다. 잠시 열차에 앉아 피로를 풀고 음악을 들었다. 한 객차에 있는 사람들도 5명 남짓. 부담 없이 다리를 펴고 휴식을 즐겼다. 차내 안내방송이 이요-오즈 역 도착을 알렸고 이내 플랫폼에 내렸다.     


 우치코역보다는 약간 큰 사이즈의 역. 그게 첫 인상이었다. 아니, 사이즈는 비슷했고 그냥 ~~시 역이라 더 그렇게 보였던 것 같기도 하다. 하여튼 개찰구를 나와 바로 옆에 있는 관광안내소로 향했다. 미리 찾아본 정보에 의하면 이 곳에서는 자전거를 빌릴 수도 있고 한국어 팜플렛(이게 중요하다)이 비치되어있다고 했다. 안내소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이가 약간 있으신 직원분이 반겨주셨다. 그 분께 한국어 팜플렛을 요청드렸다. “캉코쿠노 팜프렛 구다사이” 그 분이 웃으며 팜플렛을 챙겨주셨고, 내 일본어가 다시 통했다는 생각에 나는 신나있었다. 팜플렛을 손에 들고 안내소 주변을 돌아보는 찰나, 뒤에서 새롭게 사람이 들어왔다. 머리가 금발인 남자였고, 나와 비슷한 목적인 듯 했다. 나와 비슷한 목적으로 보인다고 해서 막 말을 걸지는 못하는 성격이라, 그냥 그렇구나, 나랑 비슷한 목적으로 왔구나, 하고 말았다. 안내소 문을 열고 나오는데, 그 남자 손에 들린 팜플렛이 살짝 보였다. 나와 똑같이 한글로 쓰여진 그 팜플렛이 눈에 들어왔다. “아 한국인이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목적이 비슷한 그 금발의 한국인, 어쩌다 보니 걷는 길도 같았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렇게 어색한 상황도 없다. 분명히 나랑 같은 곳을 가고, 같은 성질을 공유하는데 아무 말 없이 남인 척 걸어가는 상황. 굉장히 머리아프다고 해야하나, 그렇다. 원래 같았으면 이럴 때 먼저 오지랖을 피워보겠지만, 이번 여행에서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혼자서 조용히 걷는걸 원했다. 그 어색함을 어깨에 이고 걸음을 하나 둘 옮겼다. 한 열 걸음 걸었을까, 그 분이 먼저 말을 걸었다. “한국분이세요?” “아 네 한국인입니다.” 이렇게 시작한 스몰 토킹에서 어디를 가고 있는지, 혼자왔는지, 마쓰야마라는 동네에서 어디를 가봤는지, 일본어는 잘 하는지 등의 이야기로 점점 퍼져나갔다. 이야기를 하다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 수 있었는데, 나와 같은 호텔에 숙박 중이었고, 어제 밤에는 같이 대욕장에서 탕욕을 즐겼다는 사실이었다. 머리 한 켠에 있던 익숙한 이미지가 어디서 나온건지 알 수 있었다.


 걷다보니 그 이야기가 오즈 성까지 이어졌다. 처음에 생각했던 ‘혼자서 조용히 걷기’는 실패했고, 오즈성도 같이 올라갔다. 올라가며 있던 말을 보고, 안에 전시된 칼을 들어보고, 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마치 학과 답사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다니는 기분이었다. 뭔가 불편하지만 애매하게 편안한 기분.     


 오즈성을 나와 이후 행선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가류산장으로 가는데, 할인티켓을 분실했다고 해서 내 것을 주었다. 어차피 다른 곳을 갈 생각이었기에, 가류산장은 크게 끌리는 곳이 아니었다. 그 분께 감사인사를 듣고 내 행선지를 물어보길래, 야와타하마라는 동네에 소금빵을 사러 간다고 했다. 그때 그 분의 반응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소금빵을 사겠다고 여행을 간다니, 많이 신기한 사람이네’ 하는 반응. 뭐 냉면 먹으러 진주도 가는데, 소금빵 먹겠다고 그 거리를 못갈까. 행선지 이야기를 하고, 저녁에 숙소에서 볼 수 있으면 보자고 인사를 한 후 서로의 길로 향했다.     


 그와는 결국 밤에 숙소에서 만났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나, 간단하게 인사를 했다. 소금빵은 어떤지, 산장은 어땠는지 같은. 난 아직 소금빵을 못 먹어본 상태였고, 그도 산장이 문을 닫아서 가보지 못했다고 했다. 결국 둘 다 뭔가 2% 부족한 하루 마무리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다시 한 번 안녕을 하고, 서로 갈라섰다.     


 여행 과정에 생긴 뜻 밖의 동행자. 그는 과연 내 여행의 불청객이었을까? 그가 나에게 말을 걸게 됨으로서 내가 뭔가 방해를 받았을까?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을 했다. 나의 조용한 시간을 뺏어간 사람이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똑같은 패턴으로만 이어질 뻔 했던 내 여행에 색다른 이벤트를 제공한 존재였다. 예전에는 나만의 여행은 나만의 것. 아무도 개입하지 마!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면, 이제는 간간히 그런 개입이 이뤄져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길을 걸으며 들었던 개인적인 생각들을 모두 글로 기억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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