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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지 이십삼세 Aug 22. 2023

이것이 감귤입니까?

6월 시코쿠 여행기(12)

 예전 글에서도 적은 바 있지만, 마쓰야마시가 속해 있는 에히메현은 일본 내에서 손꼽히는 감귤 산지다. 우리나라로 치면 제주도 같은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다. 처음 여행을 기획하며 ‘감귤’에 대한 생각이 계속 있었다. 비록 여름이지만 감귤산지면 감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작년 여름에 제주도에는 있었기에) 그 맛이 제법 뛰어날 것으로 생각했다(작년 여름 제주도가 그러했기에) 막상 마쓰야마를 돌아다니며 과일가게를 찾지도 못했고, 간간히 들어간 큰 마트에도 귤은 없었다. 대부분이 사과나 파인애플같은 것들이고 귤은 없었다. 이틀 뒤에 출국하는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귤에 대한 더욱 심한 갈망이 생겼다.


 야와타하마시에서 회를 잔뜩 먹고 웃으며 거리를 나와 걷던 나는 이제 여유롭게 주변 풍경을 보며 걸을 수 있었다. 마쓰야마행 열차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아있어 어딘가에 쫓기는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길을 걸으며 오래된 목조 주택들을 보고, 도시락 집을 보고, 편의점을 보고, 파칭코를 보고, 큰 마트를 보았다. 잠시, 마트? 이번 마트에는 귤이 있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바로 마트로 들어갔다.


 마트는 우리나라로 치면 이마트나 홈플러스 정도의 사이즈는 아니고, 지방을 다니다보면 있는 하나로마트의 크기와 제법 유사했다. 바로 과일칸으로 직행해 과일들을 하나씩 찾아보았다. 사과, 포도, 배, 등등... 수 많은 과일이 있었지만 이번에도 귤은 보이지 않았다. 역시나 실패일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다시 한 번 돌아보는데, 과일코너 옆 냉장고가 눈에 들어왔다. 평소였으면 눈길도 주지 않을 고급 코너, 겨울 수박이나 과일 선물세트처럼 고급진 과일에게만 쿼터가 주어지는 그 코너에 드디어 미컁이 있었다.


 미컁은 우리가 흔히 먹는 귤보다 크기가 컸다.(우리 귤 안에도 여러 품종이 있고, 미컁도 그저 귤을 통칭하는 명사기에, 그 미컁의 품종이 큰 품종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격이 살인적이었다. 2알에 5천원 정도를 받고있었다. 한국이었다면 “우와 이.....이걸 돈주고 사먹어?”하며 눈길을 바로 거뒀겠지만, 여행이니까, 관광이니까 하는 생각이 나를 설득했다. “그래 뭐 지금 안먹으면 언제 또 마쓰야마를 와서 귤을 먹어보겠냐.. 철이 아니니까 그럴 수 있지” 하는 생각을 하며 바로 결제해서 빵들 위에 살포시 얹어 놓았다.


 열차를 타고 호텔에 들어와서, 바로 미컁 먹을 준비를 했다. 준비래봐야 물티슈로 손을 씻고, 2알에 5천원이나 하는 고급진 미컁에 맞는 마음가짐을 챙기는 것 뿐이다. 성스러운 마음으로, 한 알에 2,500원이나 하는 미컁을 손에 들고, 껍질을 한 줄, 한 줄 벗겨나갔다. 생각보다 두터운 껍질은 내 손톱에 점점 들어오고 때로는 거부했지만, 결국 그것은 하늘이 되었다.

호텔 방에서 들었던 그 미컁. 개당 2500원 정도의 가격이다.

 이런 과정을 거쳤으면 솔직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여행을 와서 그렇게 먹고 싶던 과일을 힘들게 구해 먹었으니 과연 얼마나 달았을까 하고 다들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았다. 그저 귤. 일본판 귤. 이 정도였다. 그것은 나의 생각과 확연하게 다른 결과를 도출한 것이다. 이 다른 결과는 나에게 좌절보다는, 다음에 한번 더, 제철에 찾아오겠노라는 의지를 심어주었다. 그게 몇 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제철의 미컁은 나의 부풀려진 환상에 부합하는 이미지였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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