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의 상황을 알면서 일을 저지르는 사람, 앞으로의 상황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일을 저질러 버리고 마는 사람. 저 둘엔 명확한 차이가 존재한다. ‘죄의식’이 포함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그것이 있다면 전자일 것이고, 그것이 없다면 후자일 것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행복으로 시작한 사람은 주어진 길이 어떻든 자신을 행복이 머무는 곳으로 행보를 옮겨 나갈 것이고, 불행으로 시작한 사람은 어떻게든 불행이 머무는 곳으로 자신을 이끌고 나갈 것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아기 새의 죽음, 홀로 맞는 새벽의 찬바람, 삶의 순간마다 꾀한 환기 따위로는. 사람을 갖고 싶다는 욕심. 그것이 가현의 시작이었기 때문에. 기성에게는 가현이라는 사람, 혹은 존재가 처음이었을 테지만, 가현은 아니었다. 가현은 늘 사람을 찾아다녔다. 평생을 쉬지 않고. 수단, 방법, 성별, 가현은 상관치 않았다. 상대가 밥을 원하면 밥을 먹었고, 술을 원하면 술을 마셨고, 잠을 원하면 옷을 벗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오래지 않아 가현에게서 도망쳤다. 가현의 신분을 알게 된 그들은 가현을 두려워했다. 처음, 그리고 다음, 그리고 또 다음. 가현은 도망가는 그들의 목소리가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현은 포기하지 않았다. 가현은 웃으며 그들을 보냈다.
“그쪽으로 가는 중이야. 사람 좀 빌려줘.”
가현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구나. 이 일이 너를 늪에 빠뜨릴 수도 있어.”
노파가 말했다.
“아들을 빌려주면 더 좋고.”
“공덕은 나와 연락이 닿는다는 걸 너도 알고 있잖니. 너답지 않은 말이다, 가현아.”
“난 변할 거야. 사람을 빌려줘. 해가 떠오르기 전에 가야 해.”
“그래, 알았다.”
“언제 도착하겠니. 내가 언제쯤 사람을 그곳으로 보내면 될까.”
“해가 떨어진 무렵에 시간이 어딨어. 지금 보내. 그리고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도 함께 보내. 그 사람에게 물을 게 있으니까.”
그리고 가현은 전화를 옆좌석으로 내던졌다. 가현은 속도를 높였다. 표정이 없었다. 빨간불이 잦았다. 가현은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 가현은 계속 달렸다. 달리는 차 안, 가현은 생각했다. 자신에게로 변화를 쥐여 주는 시간들. 전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분간하지 못할 것들. 숲길에 접어든 가현은 브레이크 위로 발을 올렸다. 가현은 차에 얹힌 시계를 확인했다. 시계의 짧은 바늘이 숫자 5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갔을 때, 가현은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이 서 있는 곳, 그곳에 떠 있는 빛들을. 불빛은 두 개였다. 붉은색과 노란색. 가현은 그 중앙을 향해 차를 몰고 들어갔다. 가현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들도 가현을 향해 조명의 밝기를 높여 왔다. 가현은 그를 보고는 시동을 꺼뜨리지 않은 채로 차에서 내렸다. 스산한 분위기가 가미되어 있는 조용한 새벽길에 세 사람분의 엔진소리가 배가되어 퍼져 나갔다.
“처음 뵙겠습니다.”
조명이 모인 접점부 쪽으로 모습을 드러낸 사내 하나가 가현을 향해 인사를 건네왔다. 그리고 뒤따라 걸어온 나머지 한 명은 가현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둘 다 남자였다. 한 명은 체격이 있었고, 다른 한 명은 그렇지 않았다. 모두 장갑을 착용하고 있었는데, 바이크용 장갑이 아니었다. 두께가 몹시 두꺼웠다.
“그래서, 둘 중 어느 쪽이에요?”
가현이 사내 둘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네?”
그들 중 하나가 가현의 물음에 대답했다. 가현은 물음표로 말을 내뱉은 사내로부터 눈길을 등졌다. 그리고 물음에 답을 하지 않은 다른 한 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체구가 작은 사내였다.
“당신이군요.”
“늦은 시간에 미안해요. 사례는 후에 제가 개인적으로 보내 드리는 것으로 할게요. 그리고…”
가현은 등졌던 사내에게로 얼굴을 틀었다.
“당신은 이만 돌아가도 좋아요. 아니, 돌아가도록 해요.”
가현의 단호한 말에 사내는 말없이 바이크에 올랐다. 차에 오른 사내는 욕을 담은 듯한 눈빛을 가현에게 보냈지만, 그 외엔 딱히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숲길을 빠져나갔다. 이제 숲길에 노란색의 불빛은 존재하지 않았다. 남겨진 사내의 얼굴은 조금 무기력했다. 가현은 먼저 말을 건네지 않았다. 가현은 시동이 켜져 있는 차로 돌아가 그를 꺼뜨렸다. 누군가 저택으로 들어가다 사고가 나든 말든 가현은 관심 없었다. 길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 남은 사내가 타고 온 바이크의 붉은 조명만이 길을 비췄다.
“저…”
차에서 돌아오는 가현을 향해 사내가 입을 열었다.
“말해요.”
사내는 우물쭈물했다. 가현은 재촉하지 않았다. 가현은 사내를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얼마 뒤, 사내가 스스로 말을 뱉어내었다.
“찾으시는 분이 있으시다고 말씀 들었습니다.”
“네, 맞아요. 그래서 제가 그쪽을 보자고 한 것이고요.”
사내는 머리를 긁적였다. 가현은 사내의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가현은 그의 행동에 맞장구쳐 줬다. 폐에 찬 공기를 하나도 남김없이 밖으로 빼내는 듯한 기다란 한숨이었다. 그를 본 사내는 떨구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머리를 긁적이던 손도 아래로 내렸다.
“액자에 관하여도 이미 알고 계시는지…”
사내가 물었다.
“아니요. 자세히 알지는 못해요. 그게 제가 몰랐던 아버지의 뒷모습이라는 것 말고는.”
“…그러시군요. 이렇게 말은 하지만, 사실 저를 비롯한 저희 역시도 그 물건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혹시 지금 자책하는 거예요?”
“그럴 수밖에요.”
“왜죠?”
“부탁을 받았거든요.”
사내가 가현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며 말했다.
“그러지 말아요. 할망구에게 어떤 부탁을 받았든, 그쪽은 조금의 책임감도 가질 필요 없어요. 오히려 자책을 가질 사람은 저예요. 못 볼 꼴을 보게 만든 건 제 사람이니까.”
“그래서, 여기 근처에서 소리를 들으셨다고요?”
“네.”
“어떤 소리였어요?”
“유리…,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사내는 망설임 없는 어조로 뒷말을 이어 붙였다.
“그것도 아주 큰 소리로요.”
그 말을 들은 가현은 입술을 깨물고서 신음하며 사내로부터 등을 돌렸다. 순식간에 가현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금방에 뺨 아래로 흘러내릴 정도의 양이었다. 가현은 눈에 힘을 주는 것만으로 눈물을 밀어 넣으려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눈물은 뺨을 타고 아래로 떨어졌다. 가현은 사내를 향해 뒤돌지 못했다. 사내는 가현의 모습을 보았음에도 달리 변화를 주지 않았다. 그는 처음처럼 서 있었다. 어떠한 내색도, 어떠한 위로도, 어떠한 시늉도 그는 내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