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을 지나가는 차는 없었다. 소리는 컸고, 우악스러웠다. 투명하고 반짝이는 가루들이 넓게 흩뿌려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회색빛 바닥 위로 눈 같은 솜털이 먼지처럼 휘날렸다. 그리고 갈기갈기 찢긴 기성의 몸과 그의 몸 사이사이로 파고든 유리 파편들이 바닥의 한 부분을 중심으로 짓눌려 있었다. 액자의 틀 또한 조각나 있긴 마찬가지였다. 은평, 노인, 짝눈. 여섯의 눈동자가 그곳을 향했다. 환호, 절규, 그런 경박한 소리는 그들에게서 나오지 않았다. 그들에게 그것은 일감에 불과한 것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그들 셋은 아무렇지 않아 했고, 또 아무렇지 않아야 했다. 기성의 마지막 목소리는 짧았다. 액자에 담길 때, 줄이 끊어졌을 때, 아래로 떨어질 때, 그때를 제외하곤 그에게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아, 사진을 깜빡했군요.”
노인이 은평을 향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이 자는 저택서 일하던 사람이 아니니까. 예외죠.”
“회장님께서 그리 말씀하셨습니까?”
“그럼요. 아니면 뭐, 제가 다 같이 죽자고 그걸 빠뜨렸겠습니까.”
그리고 그 둘은 절벽에서 몸을 돌렸다. 그러나 짝눈 사내는 아니었다.
“볼일 남았습니까? 그만 돌아가시죠.”
은평이 말에도 사내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리고 눈치 빠른 노인이 나섰다. 노인이 은평의 등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지금은 넘어가 주시죠. 부하직원을 잃지 않았습니까. 아무래도 혼자 생각할 것이 있는 듯하니…”
노인은 고개를 까딱였다. 피가 흥건한 은평의 손을 가리킨 것이었지만, 은평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숨어서 떠드는 것처럼 대화를 이어나갔다.
“흠. 강한 캐릭터인 줄 알았는데. 그럼, 우리 먼저 돌아갈까요?”
“네. 오신 김에 식사나 같이하시겠습니까? 씨알 좋은 겨울 호박이 여럿 있습니다. 청소부도 오려면 시간이 걸리니까요.”
“오, 그래요? 좋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영양식이 되겠군요.”
그리고 노인이 팔을 앞으로 내밀며 트럭 쪽으로 은평을 인도했다. 두 사람은 버섯으로 돌아갔다. 짝눈 사내는 아직 절벽 아래 기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보이는 그대로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무념무상의 모습이었지만, 주위를 감싸고 있는 분위기가 완전히 반대였다. 사내는 발 앞축을 굴려 절벽 아래로 돌멩이들을 떨어뜨렸다. 여러 번의 실수가 겹치고, 그 속에서 허적거리며 정신을 가누지 못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키다리가 기성의 다리를 분지를 때 다른 곳에 있었던 것, 덩치가 은평의 말을 끊을 때 한자리에 있었던 것. 짝눈 사내의 눈은 후회로 가득했다. 짝눈 사내는 품속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리고 불을 붙이려던 그는 이내 동작을 멈추고는 손으로 담배를 으깨어 앞으로 흩뿌리며 말했다.
“예의가 아닌 것 같군.”
그리고 본인도 놀랐는지 말을 곱씹어 되뇌었다.
“……예의? 늦었어.”
짝눈 사내는 다시 담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불을 붙였다.
“미안합니다. 지난번에도 이런 적이 있었죠.”
차에서 내린 은평이 노인을 향해 말했다. 덩치의 시체는 그대로였다. 누워 있는 모습도, 눈을 감지 못한 모습도, 피는 조금 굳어 있었다. 목 옆으로 뚫려 있는 자상이 입구를 향해 있었다. 노인이 뒤이어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노인은 덩치를 발견했다. 은평이 발견하지 못할 만큼의 찰나였지만, 노인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사람의 죽음에 분개한 것이 아닌, 더럽혀진 마당 때문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청소부가 오는 날 일을 치러 주셨네요. 저 혼자 따로 부르는 건 비용도 그렇고 여러모로…”
덩치를 보며 말하던 노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은평의 얼굴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노인은 은평과 눈이 마주쳤다. 은평은 웃고 있었다. 노인은 그 웃음의 의미를 잘 알았다. 노인은 혀를 차며 말을 돌렸다.
“쯧. 아무튼 뭐, 오늘은 일이 잘 풀렸으니 되었습니다. 좋은 날이죠! 그놈들도 우리 덕에 먹고 사는 거니까. 안 그렇습니까?”
노인의 목소리는 옷에 불씨가 옮겨붙은 듯 매끄럽지 않았다. 그럼에도 은평은 웃는 얼굴을 거두지 않았다.
“가시죠.”
노인이 은평을 집으로 이끌었다. 은평은 노인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천천히 바닥에 붙은 발을 움직였다. 두 사람은 테이프가 씹힌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왈츠를 추는 듯했다. 그 후로 집에 도착할 때까지 노인은 은평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노인은 황급히 문을 열었고, 잽싸게 안으로 들어가, 창문에 쳐 놓은 커튼을 걷었다. 그러고는 노인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 편하실 대로 계십시오. 금방 요리하겠습니다.”
“집에 책이 많군요. 이전에 왔을 때는 없었던 것 같은데.”
은평이 서재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책이요? 아, 책 말입니까? 구색입니다. 조용한 데 사는 게 여간 적적한 일이 아니라서요. 무엇을 할지 생각하다가, 어느 잡지 표지에 나온 커다란 서재가 눈에 들어오지 뭡니까.”
그때였다. 노인이 은평의 모습에서 시안의 그림자를 떠올린 것은.
“혹시 소식 들으셨습니까?”
은평이 서재 앞에서 노인을 등진 채로 되물었다.
“무슨 소식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조만간에 궁의 집사가 바뀔 겁니다.”
은평은 대답 대신 책장을 넘겨 보였다. 그리고 은평은 이내 강하게 책을 덮었다. 그 소리가 집을 울렸다.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노인의 말에 은평은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입을 열었다.
“글쎄요…, 무슨 잘못일까요. 지금 당장에 보이는 잘못은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게 잘못 같습니다만.”
“죄송합니다. 정말, 정말 모르겠습니다.”
대답한 노인은 곧장 허리를 굽혔다.
“느끼셨다시피 저는 그 말을 듣기 이전에 벌써 화가 나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아셔야 좋은데.”
“청소!…”
“아니요.”
은평이 예상했다는 듯이 말을 잘랐다. 노인은 허리를 굽혀 놓은 그 상태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도무지 알지 못하겠다며 애걸복걸하는 얼굴이었다. 은평의 발걸음이 노인에 이르렀다. 노인은 올렸던 고개를 다시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노인의 머리 위로 은평의 손이 올라탔다. 은평이 머리 위에 얹은 손을 점잖게 움직이며 말했다.
“왜 제게 먼저 보고하지 않은 겁니까? 왜 제가 그 이야기를 지금서야 들어야 하죠?”
노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아.”
짧은소리를 내뱉은 노인은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은평은 계속해서 노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칼을 붙잡고 뜯는 행위는 취하지 않았지만, 그 동작은 어쩌다 한번 강하게 머리를 밀쳐 낼 것처럼 보였다.
“지금 가만히 계신 것은 저의 화를 이해해서인가요, 아니면 당장의 두려움 때문에 그러는 건가요?”
그에 노인은 조금의 뜸 들이기도 없이 대답했다.
“물론 화가 나신 이유를 이해하였기 때문입니다.”
은평은 노인에게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노인은 고민하는 듯했다. 고개를 들어 올려도 되는 것일까. 지금 고개를 들어 올렸다간 마당에 널브러져 있는 덩치처럼 목에 구멍이 뚫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노인은 은평의 뒷걸음질에 고개를 들어 보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노인은 허리, 머리, 그리고 눈을 순서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저는 당신을 죽이고 싶지 않았거든요.”
은평이 말했다.
“오늘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더라면, 당신이 그 말을 꺼내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제가…”
“제가 궁의 집사 자리에 관심이 있었더라면.”
노인은 화들짝 놀라 하며 말했다.
“제가 큰 결례를 범하였습니다.”
“그런 겁니다.”
그리고 은평은 뒤돌아 문을 열고 노인의 집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애초에 노인의 식사 제의에 응한 것은 그 같은 대화를 하기 위함이었던 것처럼. 은평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도 노인은 한동안 아무 말을 하지 못하였다. 노인은 터벅터벅 걸음을 옮겨, 다시 커튼을 치고 현관문의 걸쇠를 차례대로 잠갔다. 그렇게 멍한 기운인 채로 노인은 전화가 있는 쪽으로 갔다. 그리고 노인은 전화를 들었다. 신호음이 울렸다. 목소리가 좋은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오늘은 재떨이 두 개를 들고 와 주어야겠어. 공기가 무척 탁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