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에서 나온 마지막 숨의 색깔조차 붉은빛을 띠는 것처럼 등대에 굳어 있는 연희의 핏자국은 사방으로 흩날려 있었다. 쨍한 온기가 아닌 애매한 따스함, 그와 합쳐진 냄새는 가히 최악이었다. 연희는 차가웠다. 왼쪽 눈 아래에는 안구와 함께 날아간 자리로 손톱만 한 총알구멍이 나 있었다. 연희의 손에 달린 진짜 손톱 역시 마찬가지였다. 온전한 것 한두 개를 제외코는 대부분이 깨졌거나, 혹은 뜯어져 나갔거나 둘 중 하나였다. 생전의 연희를 어떤 사람이라고 표현한다면, 글쎄. 연희는 좋은 사람이었을까. 가현에게 한없이 잘해 주었지만, 뒷면에 부인이라는 존재를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어머니 행세를 하며, 그 사람의 누워 있는 친모를 매일같이 만나 먹이고, 씻기고, 또 대화한 사람이니까.
“으, 벌써 냄새가 배 버렸군.”
등대 문을 열고 들어온 남현이 코를 막으며 말했다. 남현은 곧장 문 옆의 레버를 올렸다. 등대에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밝아짐과 동시에 죽어 있는 연희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남현은 눈의 흰자로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남현은 너른 보폭으로 연희를 지나쳤다. 밀코바가 말한 도구함은 그곳 바로 옆에 있었다. 도구함은 얇은 합금으로 된 문으로 닫혀 있었다. 잠금장치는 없었다. 남현은 발을 뒤로 움직여 연희가 걸리지 않음을 확인하고서 문에 손을 뻗었다. 남현의 오른발 앞으로 나사 하나가 데굴데굴 굴러왔다. 도구함 속에는 언뜻 보기에도 무언가 많았다. 그리고, 밖에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안은 깊이가 있었다. 개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커다란 몸체의 잔디깎이와 그 옆에 기대어 있는 네모 삽 한 자루였다. 나머지는 잡다했다. 사포질이 되어 있지 않은 나무판 위에 주렁주렁 매달린 물건들. 심지어 어떤 것들은 안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봉지 속에 담겨 있기도 했다.
“많다더니, 그래. 많긴 하군.”
남현은 그들 중 하나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남현의 손가락 전부가 그대로 안으로 움푹 들어갔다.
“뭐야, 이건?”
인상을 쓰며 말한 남현은 봉지를 열어 안을 확인했다. 얼핏 보면 동물의 배설물을 모아 놓은 거름 같기도 했다. 그리고 뒤이어 향이 넓게 퍼져 올라왔다. 싱그러운 냄새였다.
“제기랄. 괜한 걸 만진 줄 알았네.”
남현은 물건을 주섬주섬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리고 도구함으로 들어선 남현은 헤맸다. 천장에 여자 주먹 크기 정도의 알전구 하나가 달려 있었지만, 남현은 발견하지 못했다. 전선 가닥이 밖으로 빠져나와 있지 않았고, 안으로 매립되어 있었다. 긴 층고 꼭대기에 등대 전체를 내리쬐는 조명은 강하면 강했지, 약하지 않았다. 하지만, 1층에서 직각으로 꺾여 들어가 있는 장소까지 미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광택 처리가 되어 있는 문에 핏자국이 반사되었다. 남현의 주위로 진한 붉은빛이 감돌았다. 갈피를 잡겠다고 했던 남현은 결국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밀코바는 10분이 지나서야 등대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온 밀코바는 말없이 주변을 둘러봤다. 화가 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공덕에게 먼젓번 보였던 얼굴과 비슷했다.
“다시 한번 미안하네. 처음부터 이럴 계획은 정말로 아니었어.”
밀코바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에 밀코바는 죽은 연희를 똑바로 내려다봤다. 그리고 밀코바는 예의를 지켜 연희의 발아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것은 연기처럼 보였다.
“저도 한번씩 찾지 못하곤 합니다.”
밀코바가 손을 뻗어 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스위치가 보였다. 그리고 밀코바가 들고 온 자루와 끈을 어깨에 얹으며 말을 이었다.
“마홈이는 잘 있습니까.”
“자꾸 그런 식으로 말하면 정말 섭섭하네. 그 아이는 바깥 구경을 하러 나간 것뿐이야.”
“내일 무사히 섬으로 돌아오겠지요?”
“물론. 내 모든 걸 걸고 장담하지.”
대답을 들은 밀코바는 남현에게 손짓했다. 지시에 가까웠다. 남현은 밀코바의 손을 따라 물건을 집어 들었다.
“끼고 계신 장갑이 있으시니, 이건 제가 착용하겠습니다. 위에도 봐야겠지만, 우선은 아래부터 치우시죠.”
밀코바가 남현의 손에 들린 목장갑을 낚아채며 말했다.
“그러지.”
대화를 마친 뒤의 둘의 동작은 숙달된 사람들처럼 능숙했다. 남현이 연희의 다리를 잡았고, 밀코바가 자루와 함께 머리를 들었다. 목장갑의 하얀 부분으로 피가 번져 갔다. 하나, 둘. 밀코바의 말소리에 맞추어 남현은 연희의 발을 들어 그녀를 자루에 밀어 넣었다. 자루의 마무리는 밀코바가 맡았다. 버리는 동작 없이 일목요연했다. 밀코바는 말 그대로 매듭을 지었고, 연희의 몸은 순식간에 자루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바다에 빠뜨리는 게 원래의 계획이었는데 말이야.”
남현이 넌지시 말했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오늘은 안 됩니다. 너무 늦었어요.”
밀코바는 딱 잘라 거절했다. 그리고 그를 들은 남현이 늘어뜨린 말을 밀코바에게 내밀었다. 늘어뜨린 데 이유가 있어 보였다.
“오늘 해야만 하는데…”
“위험합니다. 저희가 위험해요. 계획을 바꾸시지요.”
“어떻게?”
물음이 음흉했다. 밀코바도 그를 알아챈 듯했다. 그와 비슷한 말투로 밀코바가 대답했다.
“낚시꾼들이 불 땔 목적으로 사용하던 드럼통이 하나 있습니다. 건초들이야, 겨울이니 주변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것이고요.”
“…태우자?”
남현이 고개를 우측으로 15도 정도 기울이며 말했다. 고민하는 모양새였지만, 누가 봐도 이미 결정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를 본 밀코바는 얼굴의 근질거림을 참지 않았다. 밀코바는 남현을 밀치듯 길을 열고서 도구함 안으로 들어갔다. 신경질적으로 헤집는 소리가 바깥으로 삐져나왔다. 비닐이 구겨지는 소리, 작대기 머리에 달린 쇳덩어리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 통들이 바닥을 구르는 소리. 그리고 밀코바가 모습을 보였다. 양손에 가스통과 토치가 들려 있었다. 금방이라도 불을 피울 것 같은 방화범, 또는 그 직전까지 다가간 사람. 가는 길에 조금이라도 언질을 놓았다가는 주먹이 돌아올 것 같은 표정이었다. 갈라짐은 그것 하나로 사람에게 두 가지 면모를 가지게 해 준다는 말처럼, 밀코바는 공덕이 사라진 지금, 남현을 관객으로 구분 지어 놓은 게 분명했다.
“드럼통은 등대 뒤에 있습니다. 바람을 완전히 등질 수는 없으나, 조금은 피할 수 있는 곳이죠.”
밀코바가 가는 팔을 펄럭이며 말했다. 연약해 보이는 그의 몸이 말의 무게를 더는 감이 있었지만, 작금의 위협은 쥐여 있는 물건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지.”
남현은 간결히 답했다.
“같이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저 혼자 불을 지피고 돌아올까요.”
“여기서 뭐 한다고 혼자 서 있겠나. 따라가겠네.”
“네, 그럼.”
대답한 밀코바는 남현을 지나쳐 먼저 등대를 빠져나갔다. 밀코바의 뒤통수로 남현의 눈이 움직였다. 딱히 무서운 눈초리는 아니었다. 단지 눈꼬리가 조금 내려가 있었다. 다음 남현이 내릴 발걸음은 필히 전과는 무게가 다르겠구나, 그따위를 알 수 있을 정도. 남현은 밀코바의 그림자 길이만큼 떨어져 그 뒤를 밟았다. 등대 안의 조명이 바깥 유리로 연하게 번져 나왔다. 하얀 등이 꼭 빽빽한 구름 뒤의 달빛 같았다.
‘캉, 캉.’
밀코바가 드럼통을 두드렸다. 드럼통은 바위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뚜껑 위에 놓인 작은 바위 하나, 그리고 아래에서 몸을 지탱하고 있는 커다란 바위 셋. 통 옆에는 여분으로 보이는 장작들이 질서 없이 내던져져 있었다. 중간중간 풀뿌리와 함께 타고 남은 나무들이 끼인 것이 보였다. 앞질러 간 밀코바는 토치와 가스통을 땅에 내려놓았다. 남현은 멀찍이 떨어져서 그를 응시했다. 밀코바는 남현이 있는 곳을 한 번 넌지시 쳐다본 뒤, 일을 시작했다. 밀코바는 뚜껑을 치워, 안에 담긴 것이 없는지 다시금 확인했다. 그리고 장작을 하나씩 집어넣었다. 키가 작지 않은 남현의 가슴에도 닿을 만큼 길이가 긴 통이었지만, 밀코바는 무릎을 굽히지 않고도 장작을 채우는 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등대 뒷자락으로 부는 절묘한 바람에 불꽃은 순식간에 장작 위로 옮겨붙었다. 밀코바가 부채질하던 손을 거둬들이며 남현에게 말했다.
“바람이 좋군요.”
“불을 자주 피우나?”
남현이 통 위로 솟구치는 불꽃에서 밀코바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가끔 낚시꾼들이 하는 걸 유심히 바라봤을 뿐입니다.”
그리고 남현은 밀코바에게 말했다.
“이제 시체를 주우러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