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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영강 Nov 15. 2024

놀이공원에 빠진 어른2

풀린 구두의 끈을 묶고 있는 공덕에게로 한껏 고조된 목소리가 날아왔다.


“8분 뒤면 폐장이라고요! 서두르세요!”


목소리를 들은 공덕은 아직 한 바퀴의 매듭이 남은 끈을 손마디 사이에 붙든 채 고개를 들어 살려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런 목소리가 마홈의 목에서만 나오는 건 아니었다. 마지막 동선을 마친 퍼레이드의 꼬리 부분에서, 이제는 한적해진 공원의 출입구에서, 아이 둘 이상을 달고 있는 부모의 곁에서…, 눈을 씻지 않아도 어디서든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팔팔했고, 보호자들은 탈출로가 간절해 보였다. 변성기를 거치지 않은 아이들의 목소리는 옥타브가 높았다. 한마디로, 더럽게 시끄러웠다.


“마홈아, 이제는 나가야 한단다. 방송에서도 말하고 있잖니. 시간이 다 되었으니 그만 정리하여 달라고.”


공덕은 마홈의 눈높이에 맞춰 몸을 앉히며 말했다.


“자요!”


마홈이 왼쪽 손목에 채워 있는 시계를 공덕의 얼굴로 내밀며 소리쳤다. 시계를 본 공덕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아날로그시계일 리가 없지, 라고. 전자시계는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게 24시간 형식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공덕이 본 그 시점, 시계의 시간은 20:53을 오르고 있었다.


“아저씨는 충분히 놀았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시간은 사람들의 정리를 위해 마련된 시간이란다. 우리는 나가 줘야 해. 그래야 여기 사람들도 집으로 돌아가 쉴 수 있을 테니까. 네게 친절하던 형, 그리고 누나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는 않지?”


공덕은 시계가 걸린 마홈의 팔을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 마홈의 입술이 삐죽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갈등, 비슷한 걸 하는 듯 보였다. 공덕의 말이 옳다는 동의와 자신이 생각하는 어떤 관점의 충돌. 고상하기만 하던 마홈의 얼굴이 이곳저곳 실룩거렸다. 아마도 마홈은 그럴 거면 폐장 시간을 왜 좀 더 늦춰 놓지 않았냐는 말을 입에 품고 있는 것 같았다. 공덕은 그 모습을 꽤 귀엽게 바라봤다.


“알겠지?”


공덕은 마홈의 머리칼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 알겠어요.”


마홈이 홀로 수치스러워하며 대답했다. 공덕은 미소와 함께 앉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마홈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자. 부모님 곁으로.”


“끈.”


마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 뭐라고?”


“마저 묶으세요. 신발 끈.”


마홈이 구두를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 그래. 고맙다.”


그리고 허리를 숙인 공덕의 손이 끈에 닿는 순간, 마홈이 기분 나쁜 웃음과 함께 말을 뱉었다.


“그 누나랑은 언제 만나기로 했어요?”


말을 들은 공덕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끈을 단단히 옥죄며 그에 대꾸했다.


“네가 어떻게 알고?”


“아저씨가 계속 전화를 확인하는 걸 봤어요. 그 누나한테서 연락이 왔다는 얘기죠. 일 얘기였다면 짧게 볼 텐데, 아저씨는 단 한 번도 전화를 도중에 내려놓지 않았으니까요.”


공덕은 허탈하게 새어 나가려는 실웃음에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이 촌놈 꼬맹이가.”


공덕은 마홈의 손을 잡았다. 손을 잡은 공덕은 곧장 문제의 그 전화를 꺼내어 전화를 걸었다. 들리는 목소리는 생쥐였다. 전화 너머의 생쥐는 하품하며 전화를 받았다. 소리로 보아, 못해도 네다섯 시간은 그 안에서 기다린 듯 보였다. 마홈은 공덕에게 물었다. 왜 우리는 자동차가 아닌 불편한 헬리콥터를 타는 것이냐고. 그에 공덕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현재로서는 가장 빨리 장소를 오갈 수 있는 수단이기에 그러하다고. 마홈이 되물었다.     


그럼저기 다른 사람들은 왜 헬기를 이용하지 않죠?     


“실장님, 목 보이세요? 목?”


헬리포트로 들어온 공덕을 발견한 생쥐가 창을 열고 소리쳤다. 그리고 생쥐는 마홈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안녕! 얼굴이 좋아 보이네. 재밌었나 보다.”


“그만하고 준비해.”


“뭐야?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공덕은 말을 무시하고서 마홈을 들어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자신도 몸을 실었다.


“왜? 무슨 일인데요?”


생쥐가 궁금함을 참지 않고, 고개를 돌려 말을 걸어왔다. 공덕은 뒤를 보는 생쥐의 머리를 밀었다.


“출발이나 해. 시간이 더 늦기 전에.”


“아이, 거참. 사람 되게 나쁘시네. 궁금한 걸 갖다가…”


그 상태를 가만히 놔두면 계속할 사람일 것을 알았기에, 공덕은 생쥐의 말을 잘랐다. 질문 한 문장이었다.


“회장님은?”


“아, 실장님. 진짜로.”


“대답해.”


거기서 마홈이 보탰다.


“이 느낌 정말 싫어요. 마치 하늘로 딸려 가는 것만 같아서.”


그 말에 생쥐는 입꼬리를 올리며 고도를 높였다. 공덕은 만족의 미소와 함께 목받이에 얼굴을 기댔다. 마홈의 손이 좌석에 꽉 붙들려 있었다. 마홈 앞에 앉은 공덕은 눈으로 다시금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가슴이 조이니?”


공덕은 물었다.


“아니요. 그냥 지금 순간이 힘들어요.”


마홈이 가느다란 목을 어깨 속으로 더욱 집어넣으며 말했다.


“실장님, 그래도 쟤는 대단한 거예요. 멀미를 안 하잖아요.”


어느 정도 고도가 올라가자, 생쥐가 다시 닫고 있던 입을 열어왔다. 공덕은 갑자기 들리는 그의 가냘픈 목소리에 염증이 느껴져 얼굴을 찌푸렸다.


“너는 말이 많아서 여자가 안 꼬이는 거야.”


공덕은 운전대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그러는 실장님은 말이 없어서 여자가 안 꼬이는 거고요?”


그리고 생쥐의 비웃음 사이로 마홈이 말을 끼워 넣었다.


“아니에요. 우리 아저씨 여자한테 인기 많아요. 제가 봤어요. 오늘 내도록 전화만 붙들고 있었는걸요?”


“야.”


공덕의 호통에 생쥐가 치즈를 발견한 것처럼 빠르게 입을 움직였다.


“헐, 실장님. 아까 입 다물게 만든 사건이 그거였어요? 아니, 그런 일이면 더욱더 저와 상의를 하셔야죠. 누굽니까? 어떤 년이 우리 실장님의 마음을…”


“너는 제발 조용히 좀 가자. 그리고 아까 물었던 거는 왜 대답을 안 해. 회장님 일은 어떻게 됐냐니까.”

“아직 섬에 계세요.”


생쥐는 백미러로 마홈을 흘깃 바라봤다. 그러고는 전보단 느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끝내 놓으셨겠죠, 뭐. 복잡한 일도 아니고. 아마, 아이가 도착하는 걸 보시려고 기다리고 있는 걸 겁니다.”


“그래? 아직 섬에 계신다는 말이지…”


생쥐는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 공덕은 우측, 좌측 창을 향해 고개를 돌리다가 흘깃 마홈의 얼굴을 봤다. 얼굴은 맞닿았지만,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마홈의 눈은 감겨 있었다. 한바탕 치른 흥분의 피곤이 지금에야 몰려온 모양이었다. 공덕은 한동안 그런 마홈을 지긋이 쳐다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연 집사가 이런 기분을 느꼈나?’


그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공덕의 속에서 소리가 났다. 무언가가 끓을 때 나는 소리였다. 공덕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생각을 이어나갔다. 매번 생각 없이 일을 덥석 베어 무는 자신, 공덕은 그부터 시작했다. 숨죽여 있던 응어리가 터진 것이다. 진즉에 느끼고 있던 반기와 매너리즘은 말할 것도 없었다. 둘은 동시에 엉겨 붙었다.


‘회장은 아이를 기다리는 게 아니야. 그럴 위인이 절대 아니지. 밀코바, 그라면 가능해. 그의 연기에는 나도 넘어갔으니까. 서러운 부모의 모습이라도 보였나? 아니면 그 반대라도?’


놀이공원의 헬리포트에서 떠오른 지 15분가량. 바닷길이 나타났다. 마홈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고, 생쥐도 말이 없었다. 생각에 전념키에 더할 나위 없는 시간이었지만, 공덕은 집중이 되지 않았다. 단순히 환경이 조용치가 않아 그런 것은 아니었다. 생각이 그저 어디선가 계속해서 끊어졌다.


“네가 언제부터 일했지?”


공덕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생쥐에게 말을 건넸다.


“우리 실장님이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하실까. 글쎄요. 저도 꽤 오래됐죠. 소방공무원에서 잘리고 회장님 하늘 기사로 일한 지가.”


“잘렸다고? 그건 몰랐는데.”


“와이프 생일날이었어요. 뜨겁게 올라가는 호텔 엘리베이터 안에서 출동 명령을 받았었거든요. 제가 그걸 씹었죠.”


“대타라도 요청해 보지 그랬어.”


공덕의 말에 생쥐가 웃으며 대답했다.


“허허. 저만한 조종수 찾기가 쉬운 게 아닙니다, 실장님. 그래도 그 후로 신경이 쓰여서 현장에 나갔던 친구한테 물어봤어요. 경황없었지만, 다행히 신고자는 무사히 구출했다고 하더라고요. 야밤에 산에서 실족이라니…, 아무튼 뭐, 그때로 다시 돌아간대도 저는 제 와이프와 함께 호텔 방으로 들어갔을 겁니다.”


“근데 그건 갑자기 왜 궁금하신 거예요? 아이랑 하루 있다 보니 마음이 싱숭생숭하기라도 하셨어요? 우리 실장님, 그런 계열의 사람은 아닌 걸로 제가 아는데.”


“그래, 그런 것 같다.”


“에이- 그렇게 딱 수긍해 버리시면 말이 끊기죠. 그런 실장님은 언제부터 회장님 곁에서 보좌를 시작하셨는데요? 그러고 보니, 여태 저한테 한 번도 그런 얘기를 하신 적이 없으시네요.”


“그냥 먹고살려고 들어왔지. 별다를 건 없어.”


“그래도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 거 아녜요. 어디 뭐, 운동이라도 하다가 인생이 잘 안 풀려서 이쪽을 지망하게 됐다든가. 보통 몸 아니시잖아요? 실장님의 체구는 진짜 우리나라에서 꼽힐걸요.”


말을 건넨 생쥐는 거울로 공덕의 몸을 훑어봤다. 그리고 공덕의 침묵이 이어졌다. 공덕은 어렴풋하지 않았다. 공덕의 기억은 뚜렷하다 못해 뚝뚝 끊기는 꿈자리에서도 하나로 보일 만큼 선명했다. 노파 옆에서 시장바구니를 들고 있던 일. 서민적인 길목에 어울리지 않는 고급 차량. 그리고 자신의 옆에 선 차의 창문이 서서히 내려가던 장면. 납치범처럼이나 빠르게 입을 움직이던 차량의 수행비서, 그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남현에 이르기까지. 공덕은 속으로 읊조렸다.


‘…그래, 별다를 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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