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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영강 Nov 25. 2024

마지막 장

불길은 동이 트기 직전까지 휘날리다 걷히었다. 하늘의 먹구름과 함께 기름 냄새가 자욱했다. 그을린 잿가루만 남아 버린 드넓은 저택의 근처에서만큼은 조금의 습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실로 공허했다. 밝지 않은 곳에서 새의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간밤의 열기를 피해 숲속으로 달아난 듯, 울음이 시작되는 거리가 저택에서 멀었다. 생기를 지닌 채 남아 있는 것은 어느 것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타고, 또 죽어 있었다. 흙, 풀, 나무, 쇠, 사람들까지 전부.


“콜록, 콜록.”


정원 중앙에 코를 박고 널브러져 있던 생쥐가 기침과 함께 눈을 떴다. 외관이 엉망이었다. 옷들이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겉에 걸쳐 있는 흰색의 외투가 특히 심했다. 마치 손으로 잡고 뜯은 것처럼 겉면들이 거칠게 뜯겨 나가 있었고, 충전재로 가득 차 있어야 할 공간 역시 텅 비어 있었다. 생쥐는 자신의 꼬락서니를 잘 알고 있다는 것처럼 불만 가득한 움직임으로 몸을 일으켰다. 팔다리 할 것 없이 움직이는 족족 생쥐는 얼굴을 찌푸렸다.


“…”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두 눈 가득 들어오는 경관에 대해서는 생쥐는 일절 말을 만들어 내지 않았다. 생쥐의 시선이 좌우로 움직였다. 조각상 옆에 있는 기다란 기둥에 두 남자가 기대 있었다. 왼쪽은 공덕, 오른쪽은 남현. 두 사람 모두 축 늘어져 있었다. 생쥐는 남현을 한 번 바라본 후, 공덕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공덕의 상태도 생쥐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생쥐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공덕의 어깨를 눌렀다.


“실장님.”


공덕은 뒤로 젖혀 있던 고개를 앞으로 떨어뜨리며 그에 반응했다. 그리고 말했다.


“너, 궁금하댔지.”


“예?”


“헬기에서 들은 거 말이야.”


“아, 예.”


생쥐의 대답과 동시에 공덕은 눈을 번쩍 떴다. 살기 가득한 눈, 그 눈으로 공덕은 생쥐를 바라봤다. 생쥐는 자신을 향한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는 얼굴로 눈을 회피하지 않았다. 생쥐는 공덕이 내미는 눈길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그 말인즉, 지금 이게 끝맺음이 잘된 상태라는 말씀입니까? 저택이 남김없이 다 타 버렸는데도요?”


생쥐가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그래. 정말 잘된 거야.”


공덕이 붙잡은 생쥐의 목에서 손을 떼어 내며 답했다. 한쪽 무릎에 손을 짚으며 일어서려 하자, 생쥐가 잽싸게 공덕의 어깨 아래로 들어가 그를 받쳤다. 그리고 생쥐가 말을 이었다.


“두렵습니다, 실장님. 제가 모르는 상황들이 너무도 많은 것 같아서요. 그리고 왜 아무도 오지 않은 걸까요? 경찰, 소방관, 하다못해 기자조차도. 또, 저희가 올 때부터 저택은 이미 텅 비어 있었죠. 정말이지 기분이 이상합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공덕에게 긴 말을 건네는 내내 생쥐는 불안감을 내비쳤다. 공덕은 별달리 반응하여 주지 않았다. 단지, 묵직한 한마디를 건넸다.


“이런 게 복수라는 거야.”


이후로 공덕은 생쥐에 몸을 지탱한 채로 발을 옮기며 약속했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공덕의 언변은 가감 없었고, 조금의 숨김도 없었다. 말을 듣던 생쥐는 중간중간 큰 이야기가 지나갈 때마다 잡고 있던 공덕을 내칠 만큼 놀란 기색을 보였다. 생쥐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공덕은 개의치 않고서 말문이 다하는 데까지 입을 움직였다. 이야기를 나누고 듣는 사이에 둘은 저택의 입구와 점점 가까워졌다. 공덕과 마찬가지로 기둥에 기대어 있던 한 사람. 남현은 여전히 의식을 되찾지 못한 듯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때, 공덕이 가현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끝마치려 하는 그 순간, 또한 그것을 들은 생쥐가 결국은 공덕을 바닥에 자빠뜨린 그 무렵, 입구의 흰색 쇠창살 사이, 저 멀리에서 차량 두 대가 빠른 속도로 그들을 향해 전진해 왔다. 고급스러운 검은색 세단과 평범한 외관의 중형 승합차였다. 옆으로 나자빠진 공덕을 대신해 생쥐가 소리 냈다.


“어?”


공덕 역시 눈을 돌렸지만, 그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흙 위에 올려놓은 엉덩이 그대로, 공덕은 고요하게 정면을 응시했다. 그런 공덕을 향해 생쥐가 자세를 낮추며 지저귀었다.


“실장님. …저들은, 저들도 다 계획에 포함되어 있던 거죠? 그게 아니면, 늦게라도 경찰이 도착한 것일까요?”


“아니. 공직자 딱지를 단 것들은 오늘 이곳에 단 한 사람도 접근하지 않아. 그리고 만에 하나 그들이 들어오더라도 우리가 겁먹을 필요는 없어. 냄새 자체가 다르거든. 몸에서 나는 냄새가 말이야.”


그를 들은 생쥐는 더더욱 안절부절못했다.


“그럼, 저 철문을 저희가 열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저기를 지키던 사람들도 당연히 자리에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은데.”


“아주 좋은 생각이야.”


공덕은 생쥐의 허벅다리를 소리 나게 때리며 동의했다. 공덕과 생쥐는 철문으로 내달렸다. 차량 두 대는 철문이 닫혀 있음에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둘의 발꿈치 뒤를 스치듯 지나쳐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공덕은 차가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철문에서 손을 떼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공덕이 다가가자, 검은색 세단의 뒷좌석 문이 벌컥 열렸다.


“어머니!”


공덕이 힘껏 끌어안으며 말했다. 공덕의 서슴없는 모습에도 노파는 모두가 괜찮다는 듯 조금의 당황도, 조금의 주저도 없이 등을 문지르며 가만히 토닥거렸다.


“많이 야위었구나.”


우람한 공덕의 몸에 파묻혀, 들리지도 않는 노파의 목소리. 공덕은 그 말을 들은 직후, 노파의 품속에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목이 메인 목소리로 말했다.


“전부 못난 제 탓입니다.”


“그럴 리가. 네가 잘못한 게 뭐가 있니. 나의 과오인걸.”


그리고 노파는 공덕의 등을 부드러이 쓸어내렸다.


“좋은 날이네요.”


차에서 내린 가현이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말했다. 그리고 가현은 조용히 하늘 위로 시선을 올렸다. 구태여 야속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그는 가현에게 있어, 일종의 회피책이었다. 옳은 상황임이 분명하고, 그릇된 행동이라고도 느껴지지 않으나, ‘나 자신은 눈앞의 것을 절대 가질 수 없어, 나 자신은 그저 바라보는 수밖에 없어.’와 같은 현실적 처지에 얽힌 감정. 가현은 먹구름 가득한 하늘에서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았다. 거기 있는 이들의 관심도 그랬다. 승합차 안의 사람들, 생쥐, 온통 부둥켜 있는 모자에게만 치중되어 있었다. 가현은 그 모습을 보지 않아도 그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가현은 더욱이 눈을 아래로 내리기가 힘들었다. 한참을 가만히 있던 가현은 무심히 크게 한 번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리고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은 주변 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와중에도 난 남들에게 무언갈 바라고 있구나. 병신처럼.’


가현은 그들로부터 점점 몸을 떨어뜨렸다. 남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차에 타고 있을 때 진즉 확인한 터였다. 목을 쳐들어 하늘의 눈치를 보던 가현은 말없이 보폭을 늘렸다. 사람들과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며 그녀의 시선도 서서히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 가현은 마주하기 싫은 일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가현의 발아래로 사박사박 가루 밟히는 소리가 났다.


“이제 이곳은 주차장으로 쓰이려나.”


정원 안으로 첫발을 내디딘 가현은 말했다.


“아니지, 화장터? 그래, 그게 어울리겠다.”


가현은 발이 닿는 곳마다 지난 시간을 회상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가현의 심장은 느리게 뛰었다. 하녀들에게 쥐여 준 미련을 떨쳐 낼 짧은 시간, 가현은 그들의 몫까지 모두 느끼고 있었다. 가현은 계속해 걸음을 내밟았다. 어디로 걷는다,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가현은 검게 변한 저택을 향해 막연히 걸었다. 그리고 가현의 걸음은 남현이 있는 조각상 옆, 기둥이 보이는 자리에서 멈춰 섰다. 잔해들이 배경인 곳에서 가현은 단번에 남현을 찾아냈다. 가현은 밖으로 나와 있는 양손을 코트 주머니 깊숙이 꽂고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남현의 낯빛은 시체처럼 창백했다.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돼.”


작은 소리였다.


“…면 돼, …구하면 돼.”


가현은 땅에 쌓인 잿가루를 구두 머리에 얹어, 남현의 얼굴 위로 뿌렸다. 검게 덮인 얼굴 뒤에서도 남현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다 끝났어요, 이제.”


가현은 남현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그래?”


남현은 곧장 대답했다. 그에 가현은 다시 한번 구두로 재를 퍼, 남현에게 흩뿌렸다. 하려는 말이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것이 절반, 듣고 싶지 않다는 것이 절반이었다.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아버지의 거짓된 꺼풀을 한 겹씩 벗겨 낼수록, 더 이상의 삶이 의미가 없다고 느껴질수록!”


가현은 오른손을 주머니에서 빼,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때마다 제가 느낀 감정이 어땠을지 짐작이라도 가세요?”


“부정하고 싶었겠지.”


남현이 머리를 양쪽으로 흔들어 가루를 흩쳐 내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것조차 힘에 부친 듯 눈꺼풀과 입가가 드러나자, 흔들기를 그쳤다.


“나와 네 어미, 자기 자신의 존재까지도 부정하고 싶었겠지.”


가현은 소리쳤다.


“그걸 알면!!!”


“하지 말았어야죠! 있는 그대로 사셨어야죠! 그렇게나 자신이 없으셨어요? 홀로서기가?”


“너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니?”


남현이 물었다.


“뭐라고요?”


“지금 그런 말을 하는 너 역시 나와 다르지 않단다, 딸아. 너 역시 네 사람을 찾기 위해 어떠한 발버둥도 받아들이지 않았니. 하루가 멀도록 말이야.”


남현은 올렸던 고개를 다시 떨궜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너도 결국은 이 아비와 같은 게야. 가족을 두고 왜 남을 찾는 건지, 주변에 있는 사람을 두고 왜 다른 사람을 찾는 건지, 남들은 이해 못 하지만 너는 이미 알고 있는 거야. 그 이유를. 내 새끼니 틀림없지.”


“아뇨. 저를 같은 취급하지 마세요. 저는 아버지와 같지 않아요. 아버지는 저의 어머니를, 자신의 아내를 희롱한 거잖아요. 최소한 저는 그렇지 않았어요. 순전히 남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온기를 갈망했을 뿐이라고요. 조금도 같지 않아요.”


그에 남현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분명 저택의 지하에 제 어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터, 너는 왜 주저하지 않았을까. 이 아비는 궁금하더구나. 그리고 나는 지금도 그 해답을 찾지 못했단다. 네가 어찌 그리할 수 있었는지를 말이야.”


그를 들은 가현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보이려 애썼다. 그리고 가현은 실로 그렇게 생각했다. 현재에 자신이 느껴야 할 추락은 이미 노인의 집에서 겪었고, 미래에 느낄 죄책감은 외톨이의 삶을 살아오면서 그에 합당한 값을 모두 치렀다고.


“원래 없던 인생이어서요. 제 인생의 그릇엔 어머니가 담겨 있지 않아요. 아버지에겐 식물인간일지언정 아내로 존재했을지 몰라도, 저에겐 없던 사람, 없던 존재예요. 그리 생각하면 미련도, 집착도, 아무것도 느낄 필요가 없죠. 그뿐이에요.”


헛웃음은 비웃음이 되었다. 재로 얼룩진 남현의 얼굴이 들썩거렸다. 한데 뭉쳐 있던 잿가루들도 얇게 썬 종이처럼 촘촘히 갈라져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남현은 지금과 같은 상황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몸은 그가 바라는 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가현아, 상대에게 연민을 호의로 내밀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니.”


남현이 오른손바닥으로 이마부터 턱까지, 얼굴 전체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가현은 입술을 강하게 베어 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음에 대한 대꾸이기도 했고, 상황에 대한 부정이기도 했다.


“무지란다.”


“모르는 척을 하는 거야. 상대가 거짓을 보이면 거짓이 보이는 대로, 진실을 보이면 진실이 보이는 대로. 내가 그 사람에게 하려는 일은 결국 연민이니까.”


말을 이은 남현은 가현의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크게 휘청이며 넘어질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남현은 멈추지 않았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가현은 말했다. 그리고 남현의 마지막 말이 이어졌다.


“다시 말해, 나는 네게 ‘지하에 있던 여인이 과연 네 어미가 맞았을까.’라는 질문을 건네고 있는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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