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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영강 Nov 22. 2024

인간에게 있어 권한이란

생쥐의 극심한 만류에도 남현은 헬기를 저택 근처에 세우라 지시했다. 그리고 남현은 헬기의 문이 열리자마자, 저택을 향해 내달렸다. 그 와중에도 남현의 손에는 장우산이 쥐여 있었다. 팔과 다리가 덜렁이듯 뒤엉켰고, 가는 내도록 남현은 몇 번이나 땅과 부딪혔다. 공덕과 생쥐는 뒤따르지 않았다. 남현, 그는 철저히 혼자였다. 공덕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생쥐는 스스로 판단한 듯했다. 남현이 멀어지자, 공덕은 생쥐를 보며 말했다.


“너는 왜 따라가지 않는 거야?”


“글쎄요. 전직 소방공무원의 직감으로는 이미 늦었다고 보여서일지도요.”


“그건 일반인인 내가 봐도 알아. 나는 왜 남 회장을 잡으러 가지 않는가를 물은 거야.”


“으음…, 그것 역시 직감인 것 같은데요. 어차피 지금 따라가기엔 늦었잖아요? 타이밍이.”


생쥐의 말을 들은 공덕은 머리를 짚으며 대답했다.


“그래, 이젠 늦었지. 돌이킬 수도 없고.”


그리고 생쥐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아까의 이야기. 무엇인지 여쭤봐도 됩니까.”


“아니. 지금은 말해 줄 수 없어.”


공덕은 단호히 거절했다.


“섭섭하게 생각지는 마. 나도 내일이 어디로 흘러갈지 장담하지 못해 그러는 거니까. 끝맺음이 계획대로 나면 그때는 나도 말해 줄 수 있을 거야. 물론 네가 그때까지 궁금해한다면 말이지만.”


공덕의 말에 생쥐는 간소히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그게 다였다. 대답도, 질척댐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경우가 있어도, 무슨 상황에 처해도, 절대 금 위로 자신의 발을 올리지 않는 생쥐였다. 그리고 생쥐는 눈을 자연스레 불길 쪽으로 넘겼다. 이제 둘의 시야에서도 남현의 모습은 어렴풋했다. 아주 깊숙이 들어간 듯했다. 저택을 뒤덮은 시뻘건 불길도 그랬다. 세 사람의 도착에 맞춰 시작된 불이 아니었다. 진즉에 번진 불이었다. 백색의 외관마다 검게 그을리지 않은 곳이 없었다. 모두가 검었다. 저택의 창문 모두가 깨지거나, 뜨거움에 흘러내리고 있었고, 층층으로 나뉘어 시작했을 것들이 이제는 하나가 되어 저택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 주변 어딘가에서 남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 돼!! …안 돼!!!”


또렷한 말소리보다는 절규에 가까웠다.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에 저택이 말을 토해내는 것 같기도 했다.


“이제는 가야 하지 않을까요?”


생쥐의 말에 공덕은 대답 대신 살짝만 발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바짓단 아랫자락에 누가 걷어찬 듯한 희뿌연 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저택에서 떨어져 나온 가루인 듯했다.


“이대로 죽으면 방임죄가 성립될까?”


공덕은 물었다.


“그렇겠죠.”


생쥐가 대답했다.


“그건 곤란하겠지?”


“그럼요.”


말을 마친 공덕이 소리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그 뒤로 생쥐의 발소리가 뒤따랐다. 앞서 달리던 공덕은 불길이 가까워지자, 생쥐를 향해 손짓했다. 생쥐는 고개를 끄덕인 뒤, 앞으로 달려 나갔다. 둘은 동강 나 있는 조각상을 기준으로 양 갈래로 나뉘어 저택 입구로 접근했다. 생쥐가 선창했다.


“회장님!!!”


“회장님 어디 계십니까!!!”


반대쪽으로 진입한 공덕은 소리를 지르는 대신, 시각에 집중했다. 남현의 목소리는 어느 순간부터 들리지 않았다. 생쥐의 목소리만이 멀리에서 간간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때, 정원의 땅이 크게 흔들렸다. 묵직한 무언가가 폭삭 주저앉으며 생긴 진동 같았다.


‘어디야…’


공덕은 눈이 닿는 장소마다 똑같은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그리고 불씨가 탁 튀어 오르는 어느 한 지점에서 공덕의 시선이 멈춰 섰다.


“…회장!”


공덕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남현은 정원의 각진 구석 모퉁이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풍만하던 뒷모습이 한없이 말라 보였다. 복수심, 거짓됨조차도 음식으로 건네고 싶을 만큼. 공덕은 남현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불에 타고 남은 소리 외엔 아무것도 그의 곁에 존재하지 않았다. 남현의 뒤로 다가간 공덕은 고민했다. 어깨 위로 손을 올릴 것인지, 아니면 이름을 부를 것인지. 고민하던 공덕은 이름을 부르기로 했다.


“회장님.”


남현은 대꾸하지 않았다. 공덕은 성을 붙여 다시 한번 남현을 불렀다.


“남 회장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마치 죽은 사람 같았다. 공덕은 이제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공덕은 한 팔을 길게 뻗었다. 그리고 손을 덴 그 상태에서 부드럽게 허리를 기울여 남현의 옆에 나란히 붙어 앉았다. 정면에서 움직이지 않는 남현의 고개처럼 공덕 또한 남현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다.


“슬프십니까.”


공덕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말씀이 나오지 않을 만큼 슬프십니까. 사모님을 잃으신 것이.”


남현은 여전히 조용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회장님. 그런데 오늘은 그 감정을 나눠 가질 사람이 둘씩이나 늘어난 듯 보여, 기분이 썩 나쁘다고만은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보일진 모르겠지만, 속으론 아주 격하게 반기고 있거든요. 혼자서 느끼기엔 너무도 아까운 감정이었던지라.”


그리고 공덕은 말을 마쳤다. 공덕의 시야 안으로 남현의 그림자가 들어와 있었다. 이를 너무도 세게 물고 있는 탓에 그림자가 떨렸다. 공덕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앉은 채로 가만히 기다렸다. 정적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나는!!!!!!”


남현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소리쳤다.


“나는 너희 연놈들과 달라. 다르지, 다르고말고. 너희는 오늘 내게 무슨 짓을 했는가를 분명히 인지할 필요가 있어.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될 거야. 쓸모없어진 이 몸뚱어리를 끝내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 하나만큼은 알려 주고 갈 요량이니까.”


남현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서 저주하듯 말을 퍼부었다. 그의 말이 끝나자, 공덕은 느지막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아주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남현을 향해 말을 건넸다.


“누워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요?”


진실이 드러났음에도 표정에 변화를 보이지 않는 것을 태연함이라고 칭한다면, 남현은 그랬다. 그리고 나아가, 그를 알면서도 고민 없이 대꾸하는 행위를 뻔뻔함이라고 칭한다면, 남현은 그랬다.


“그녀는 단순히 누워 있는 사람이 아닐세.”


남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두 사람의 얼굴 사이로 불씨 하나가 탁 지나갔다.


“그래요? 그럼 구질구질한 사람이라는 표현은 어떻습니까?”


“뭐?”


“확실히 죽은 것도 아니고, 확실히 산 것도 아니니, 구질구질하다는 얘기입니다. 적어도 제가 볼 때는 그리 깔끔한 것 같지 않아서요. 생에 미련이 남은 듯한 사모님이나, 그런 사모님을 놓아주지 못하는 회장님이나. 더럽게 구차하잖습니까.”


“…이런 썩을 놈이.”


남현은 그대로 공덕의 턱을 주먹으로 올려 쳤다. 공덕은 휘청대며 풀밭 위로 쓰러졌다.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충분히 일어나 반격할 수 있는 강도였다. 그러나 공덕은 그쪽을 택하지 않았다.


“감히 내 안사람을 욕보여? 네가? 무슨 권한으로.”


남현은 공덕의 배를 걷어찼다. 남현은 깊게 집어넣은 발을 뜨겁게 달군 인두로 지지듯이 문질렀다. 다음의 발길질도, 그다음의 발길질도 그러했다. 공덕은 그런 그를 내버려두었다. 남현은 이후 3분여를 쉬지 않고 공덕의 몸을 지르밟았다. 공덕은 입에 고인 피를 머금다가 한 번에 뱉어냈고, 그것을 본 남현은 그제야 발길질을 거둬들였다.


“…권한이요.”


공덕은 이와 잇몸에 달라붙은 피를 혀로 긁어내어 잔여물을 한 번 더 잔디 위로 뱉어낸 뒤, 다음 말을 이었다.


“그런 권한은 회장님에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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