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도착하니 사장이 시끄럽게 통화하고 있었다. 뭔가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는 듯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나는 고개를 꾸벅였다. 사장은 휴대전화를 잡은 손을 나를 향해 흔들었다. 그리고 내게 손짓했다. 아침부터 피곤한 일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네, 사장님.”
“때맞춰 잘 왔어요. 받아 봐요.”
“전화인가요?”
“그래, 어서.”
나는 두 손으로 사장의 휴대전화를 붙잡았다.
“전화 바꿨습니다.”
“미생 씨! 저예요! 서연!”
서연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서연 씨께서 사장님과 통화하고 계실 줄은 몰랐네요.”
순간 아차, 싶었다.
“그게 무슨 섭섭한 소리예요? 기껏 좋은 소식 들려주려고 그랬구먼.”
아침 핑계를 대야겠지.
“미안해요. 아침이라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원고 잘 읽었어요. 내부 평가도 나름 긍정적이고요.”
나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재차 확인했다.
“600쪽이 넘는 글을 하루 만에 다 읽었다는 말인가요?”
“당연히 다 읽진 못했죠. 도입부부터 200쪽, 그리고 힘이 빠질 중후반 무렵부터 100쪽. 일단 그렇게만 읽어 둔 상태예요. 나머지 부분은 편집장님이 맡으신다고 하셨는데, 아직은 말씀이 없으시네요.”
“대단한데요? 원래 출판사들이 다 이래요?”
서연의 솔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글쎄요. 나쁘게 보면 조급한 걸지도요. 아, 맞다. 편집장님께서 궁금한 게 있다고 하셨는데, 내일 혹시 시간 될까요? 직접 묻고 답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저는 읽지 않아서 어느 단락인지는 모르겠는데,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있나 봐요. 액자 뭐라고 중얼거리시는 걸 듣긴 했어요.”
액자는 대강 예감이 갔지만, 내일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였다. 게다가 하필이면 스피커폰이었다. 사장은 무조건 알겠다는 뜻을 내비치라는 듯이 이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생 씨?”
전화 너머의 서연이 나를 재촉해 왔다. 그리고 사장의 닦달 섞인 눈빛이 크게 한 번 더 반짝거렸다. 나는 어쩔 수 없었다.
“네, 그렇게 하죠. 내일 뵙겠습니다.”
사장은 좋다고 손뼉 쳤다. 서연의 불끈 쥔 주먹도 왠지 모르게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이 자리에서 슬픈 건 나 혼자뿐이었다. 그리고, 전화를 끊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설화와 성민이 사무실로 나란히 들어왔다. 성민이 웬일로 입을 열어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그 뒤로 설화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사장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나는 거기서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싶었다.
“다들 축하해 주라고.”
설화가 어디서 바꿔 왔는지 모를 붉은 가죽가방을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왜요? 무슨 좋은 일 있어요?”
성민도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는 사장과 나를 향해 눈길을 던졌다.
“여기, 미생 씨. 곧 작가로 데뷔할 거야.”
“어머.”
감탄사와 함께 설화는 나를 힐끔 바라봤다.
“작가요?”
성민이 나를 보며 물었다. 성민의 물음에 나는 다급히 발뺌했다.
“아뇨, 아뇨. 그냥 어떻게 회사 일 하다 보니 연이 닿은 거지, 실제로 책이 나오거나 할 일은 없을 겁니다. 하하하.”
그리고 이어지는 사장의 말 한마디가 나를 완전히 부서뜨렸다.
“아니야. 내가 이야기 다 끝내 놨는데, 뭘.”
“네?”
“제목이 [식물인간]이라며. 벌써 다 들었어.”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목소리도 마찬가지.
“아니, 그걸 진짜로 낸답니까?”
“나야 모르지. 어쨌든 축하해.”
원치 않은 북적임이 끝나고, 나는 속이 울렁거려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어서 빨리 점심시간이 되어, 설화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그녀라면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으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오늘따라 성민의 타자 소리가 유독 투박하게 들렸다. 부러움을 느끼는 걸까, 아니면 시기를 느끼는 걸까. 또다시 기나긴 한숨이 새어 나온다. 가슴은 진즉에 답답했다. 나는 담배와 라이터를 챙겨 사무실을 나왔다. 보통 때 같으면 이마저도 사장의 눈치를 보며 했을 테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니, 달아올라 있던 몸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한 개비, 두 개비…, 담배가 좀체 놓이지 않았다. 다섯 개비를 피우자, 두통이 올라왔다. 그리고 문득 눈물이 핑 돌았다.
그날, 백화점에서 그 노파를 보지 않았더라면.
그날, 백화점에서 눈먼 자를 모욕하지 않았더라면.
그때쯤 등 뒤에서 설화의 라이터 소리가 들렸다.
“왜 이렇게 안 내려와. 걱정되게.”
몸이 저절로 그녀를 향해 돌아갔다.
“슬퍼서.”
“내일 출판사 미팅 잡혔다며? 당장 그거부터 취소해.”
나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다음에는?”
설화가 나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울지 마. 네가 생각하는 일, 일어나지 않을 거니까.”
“신에게 버림받은 것 같아.”
“아니야. 신이 이제 너를 용서하려고 그러는 거야.”
“용서? 이게 어떻게 용서야.”
“네 젊은 날의 꿈이 이뤄지려는 순간이잖아. 오늘은 피곤하다고 일찍 집에 간다고 해. 두 사람한테는 내가 어떻게든 말해 볼게.”
그 뒤로 나는 설화의 가슴에 파묻혀 아이처럼 울었다. 펑펑 눈물을 쏟아 냄과 동시에 나는 생각했다. 설화에게 나란 존재는 무엇일까. 왜 이다지도 따스한 손길로 나란 사람의 등을 두드려 주는 걸까. 그리고 나는 사무실로 돌아가 사장에게 양해를 구했다. 피차 아는 이유와 변명이었다. 내일 있을 일을 위해 원고 수정을 좀 하고 싶다는 것과 인터뷰 대답 정리, 마음 추스름. 사장은 흔쾌히 허락했다. 짐을 싸는 내내 성민의 타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3일에 한 번 병가를 쓰는 것도 눈엣가시였을 텐데, 이제는 작가 나부랭이가 된답시고 조기퇴근까지 해 버린다라…, 나였더라도 상대를 죽이고 싶었을 것 같다.
“성민 씨.”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 돌아가는 건 쓰레기 짓 같았다.
“네?”
성민이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잠시 시간 될까요?”
성민은 사장을 힐긋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복도에서 때맞춰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설화가 눈치채 주길 바라며 문을 열었다.
“못 보던 투 샷이네요?”
나는 가방을 슬쩍 들어 보였다.
“미생 씨는 일찍 들어가나 봐요?”
“내일 일 때문에요.”
“누구는 좋겠네- 데뷔도 하고, 퇴근도 하고.”
그리고 설화는 성민 몰래 내게 윙크한 뒤, 사무실로 들어갔다.
“…어, 성민 씨.”
막상 성민을 불러냈는데,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물질적으로라는 설화의 말만 믿고, 냅다 봉투를 준비해 온 게 문제인 것 같았다. 성민은 말없이 나를 바라봤고, 나 또한 가방 속 봉투를 주물럭거리며 시간을 지체했다. 성민과는 말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성민이 어떤 성격을 지닌 사람인지, 감정을 드러낼 때는 어떻게 하는지, 가면 쓴 얼굴로 짐작한 것만이 전부였다. 첫말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선은 굉장히 미안합니다.”
나는 쇠뿔을 단김에 뽑자는 주의로 말을 건넸다.
“…네?”
성민이 말뜻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굴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매번 병가를 쓰는 탓에 피해를 보신다는 점, 잘 알고 있습니다.”
대답보다 손사래가 먼저 보였다.
“아뇨,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피해 본 게 없어요. 매번 정시에 퇴근했고요.”
“그래도 같은 직급의 동료로서 예의가 아닌 건 맞죠.”
그리고 나는 연신 주물럭거리던 봉투를 가방에서 꺼내어 손에 쥐었다.
“이거.”
성민이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눈빛과 제스처를 봐서는 도저히 받을 사람의 태도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성민이 내게 물었다.
“…이게 무슨?”
나는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3개월 월급의 절반을 담았습니다.”
다시금 전과 같은 표정이 성민의 얼굴 위로 떠올랐다.
“예?”
이런 반응은 예상에 없었다. 정말 몰랐다. 웬만한 장편소설 두께를 훌쩍 뛰어넘는 현금 봉투를 눈앞에 두고 뒷걸음치리라고는. 나는 봉투를 성민의 가슴팍에 냅다 밀었다.
“받으세요. 그래야 제 마음이 편해질 것 같습니다.”
성민은 봉투의 두께를 보지도 않고서 말했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오해라도 괜찮습니다. 받으세요.”
“그게 아닙니다. 사례하실 분을 잘못 찾으셨다고 말씀드려야 할까요.”
성민은 손에 쥔 봉투를 나의 가방에 단숨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가 하는 말의 주는 설화였다. 내가 병가를 쓰는 날이면, 늘 사무실에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은 설화였다는 것. 또한, 사장이 내게 불만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설화가 항상 나의 방패를 자처했다는 것.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녀가 내 사정을 알게 된 건 이제 겨우…
“그러니까, 그 모든 걸 팀장님께서 해 주신 거라고요?”
나는 한 번 더 확인했다.
“네네.”
정말 설화라고? 그럼, 방금까지의 토닥임과 말소리는 뭐였던 것이지. 그리고 왜 자신의 호의를 타인에게 넘긴 것이지. 어차피 밝혀질 일인데.
“좋은 사람이죠?”
성민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