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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지 Aug 27. 2023

월 120만원 불로소득을 만들기로 했다

결혼 20년 동안 총 4억, 연 평균 2천만원씩 모았다고는 하지만, 결혼 초반 10년 정도는 돈을 전혀 모으지 못했다. 짧은 신혼 때에는 매일 퇴근 후 남편과 스시를 사먹으며 욜로 생활을 즐겼고, 아이들 어릴 때에는 육아 휴직에다가, 이모님 비용으로 늘 플러스마이너스 제로 또는 마이너스 생활이었던 것이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지만, 해외에 나가기 전 통장 잔액은 마이너스 5백만원에 달했다. 매달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으니, 사는 게 재미가 없었다.


그러던 중 남편 따라 해외에 나가서 처음으로 돈 모으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후진국이어서 쇼핑, 문화생활 등으로 돈 쓸 일이 좀처럼 없었고, 아이들 사교육비도 전혀 들지 않았다. 월급은 고스란히 통장에 쌓였다. 대출금이 팍팍 줄어드는 게 눈에 보이니, 해외생활을 하며 힘든 점도 없진 않았지만 꾹 참고 견뎌낼 수 있었다.




해외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며 학군지 35평 아파트 월세 계약을 했다. 해외에서 살던 집이 넓은 아파트였기에, 이제 우리 가족은 적어도 30평대에는 살아야한다, 인식이 생겼던 것이다. 월세가 비싼 학군지이지만 재건축 아파트였던만큼 강북의 우리집과 월세 시세가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매월 200만원 가량의 월세를 내면서 때로는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짜피 우리집 월세를 받아 그대로 내는 것이니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돈을 모으기로 마음먹고, 어디 돈 나올 데 없나~ 살펴보니 아무리봐도 돈 나올 곳은 내가 가진 유일한 자산, 집밖에 없는 것이다.  


문득 2층 양옥집을 첫 집으로 장만한 때부터, 오남매에게 각자의 방을 마련해주시고, 또 노후대책으로 다가구주택을 짓기까지, 유일한 자산이었던 집 한채를 이리저리 잘 활용한 마 여사가 떠올랐다.


< 마 여사의 집 한채 활용법 (이전 글 참조) >

첫집 장만시 : 방 3개 중 2개를 세놓았다.

자녀 각방 마련시 : 지하실을 파서 2가구를 만들어 전세금을 받아, 공사비 내고 2층 전세를 내보냈다.

노후대비 : 2층집을 부수고 4층 다가구주택로 지어 1-3층을 세주고 공사비와 노후수입원을 만들었다.

https://brunch.co.kr/@allthatmoney/3



그래, 1주택자이지만 나도 집에서 나오는 월소득을 만들어보자!


아직 35평 아파트의 월세 계약기간은 1년 이상 남아있었다. 그렇지만 복비를 물어주고라도 20평 아파트로 줄여 이사를 간다면 월 120만원의 월세 소득을 만들 수 있다. 왜 120만원인가 하니, 강북 30평대 우리집 월세가 200만원이고 학군지 20평 아파트 월세가 80만원 정도였던 것이다. 1년만 미리 이사를 가도 최소 1400만원 정도 아낄 수 있다 생각을 하니, 하루라도 빨리 20평 아파트로 가고 싶었다.


문제는 재테크보다는 현재의 쾌적한 삶을 중시하는 남편이 20평으로 줄여 가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남편) 30평대 살다가 어떻게 20평으로 가? 남자 아이가 2명인데.

(나) 쓸데없는 짐 다 버리고 미니멀 라이프 하면 되지. 큰애는 기숙사에 있다가 주말에만 오니까 문제없고.


(남편) 복비 물어주고 이사비 내고 나면 남는 돈도 별로 없을 껄?

(나) 어짜피 월세가 많이 올라서 이 집도 계약 끝나면 나가야 할거야. 언젠가 쓸 돈을 지금 쓰는거지.


(남편) 붙박이장, 에어컨, 가스레인지, 건조기도 다 새로 사야하는데.

(나) 내년에 이사를 가더라도 어짜피 사야해. 운좋으면 붙박이, 에어컨 등 있는 집 구할 수도 있어.


35평 아파트에는 붙박이장, 에어컨, 가스레인지가 부착되어 있었고, 20평 아파트에는 지금 쓰는 가스건조기를 설치할 수 없었기에 이사를 가게 되면 새로 사야할 것이 이것저것 많았다. 순간 마음이 조금 흔들렸지만, 어짜피 1년 후 이사가는 것이 기정사실이라면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방 4개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방만해진 생활을 조금 다잡고 싶었다. 해외에 살 때에는 현지 수당을 체크카드에 넣어두고 그 돈으로 어떻게든 한달을 버텼는데, 한국에 와서 신용카드를 쓰다보니 씀씀이도 커지고 다시 예전의 마이너스 생활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20평에 가서 살면 아무래도 '헝그리 정신'이 생길 것 같았다.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몇 군데에 전화를 했다. 수리 잘된 20평 월세 아파트 있으면 꼭 연락해달라고 당부한 뒤, 부동산에서 연락이 올 때마다 퇴근 후 혼자 집을 보러다녔다. 그렇게 5월부터 집을 보기 시작하여, 단지안의 20평 집을 타입 별로 여러군데 보았다. 마음에 들면 가격이 비싸고, 가격이 싸면 집 상태가 안좋았다. 어떤 집은 월세가 이렇게 싼데, 좀 참고 살면 어떨까? 생각도 들었지만, 쾌적한 공간을 요구하는 남편의 최소한의 요구사항은지켜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는 동안 계속 시간은 지나갔고, 지속된 금리 인상으로 전세가는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11월의 어느 날,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시세보다 비싼 올수리집인데, 집주인이 오늘부로 월세를 120만원에서 80만원으로 내렸어요. 집 보러 오실래요?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퇴근후 곧바로 부동산으로 오라고 말했다. 20평 월세집을 알아본지 6개월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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