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카페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다른 곳은 신고가 행진인데 우리 동네는 거래도 안되고 가격이 안올라 상급지와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하급지 신축에도 밀리게 되니 우울하다는 내용이었다. 역시 사람 생각은 다 똑같은가보다. 나 역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던 터였다.
얼마 전 신문기사를 통해 올 봄 내가 임장다니며 목격한 것들이, 다 사실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올해 상반기(1~6월)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한 서울 부동산 거래 중 61.93%가 대출로 매수 자금을 마련했다. 이 중 대출액이 5억원 이상인 거래가 37.87%에 달했다. 집값이 비싼 지역일수록 초고액 대출로 집을 사는 비중이 컸다. 대출을 끼고 집을 산 거래 중 10억원 이상 대출을 받은 비중은 강남구가 23.81%로 가장 많았고, 서초구(21.1%)와 용산구(11.96%)가 뒤를 이었다. 서초구(35.31%)와 강남구(38.49%)에선 7억원 이상 대출을 받은 거래의 비중이 40%에 육박할 정도로 많았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7729
왜 '초영끌'을 했을까? 위 기사 중 해답이 나온다.
“기존에 집이 오르는 것을 체감하면서 서울과 상급지 집값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LTV 규제 완화로 대출 가능금액이 늘면서 갈아타기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진짜 똑똑하다...벌써 감 잡고, 오를 만한 부동산 대출끼고 사놓았네.
같이 임장 보러 다녔는데 난 뭐한거지?
얼마 전 주담대를 다 갚았다. 대출 없이 온전한 '내집'이 생겼다. 실로 결혼 20년 만에 이룬 성과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아이들' 키운 것) 그렇지만, 내집 마련의 기쁨을 느낄 겨를도 없이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렸다.
아, 그 때 여기 말고 다른 데 집을 샀었더라면...
부동산 사이트를 모니터링하며 기회를 노려본다지만, 우리 집과는 달리 가파르게 오른 '남의' 집값을 보며 괴로울 따름이었다.
집이 있어도 우울하면 어쩌라고!
나와 비슷하게, 1주택자에 아이가 둘 있는 언니에게 물어보았다.
(나) 언니는 초영끌 갈아타기 어떻게 생각해?
(언니) 그건 너무 위험해. 나는 3억 빚도 너무 힘들어서 남편이랑 맨날 싸웠어. 갈아타기 목적이 뭔데? 미래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행복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나) 갈아타기 목적?...우리집보다 더 오를 것 같아서
사실 우리집이 살기 나쁘거나 싫은 건 아니었다. 집값이 지지부진하니 떠나고 싶었을 뿐.
(언니) 노후에 돈 나올 데를 만드어 놓는게 중요해. 영끌 갈아타기보다 돈을 좀 모아서 어디 유망한 데 조그만 아파트라도 갭투자 해놓는건 어때? 개인연금도 좀 붓고, 미국 고배당주 모으고..
그리고 돈도 돈이지만, 건강 챙겨. 그게 남는거야. 이런 말 해줘도 들리는 사람한테만 들려. 나는 이미 아픈 사람한테는 아예 말을 안해.
아직 늦지 않았을 때 serious하게 건강 챙겨라. PT 제대로 배워서 근력 운동하고, 몸에 좋은 식단 챙기고...에너지가 생기면 인생이 달라져. 뭐가 진짜 중요한지 깨닫고 나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가 보일거야"
갈아타기에 대한 조언은 어느새 건강 챙기라는 잔소리로 바뀌고 있었다. (참고로, 언니는 40대 후반에 헬스트레이너 자격증을 땄다.)
그런데, 언니의 잔소리가 의외로 먹힌 것이다.
그동안 뚜렷한 목적도 없이 그저 시류에 편승해 '초영끌 갭투 갈아타기'를 알아보고 있었던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몸은 여기저기 골병들어가고 있는 주제에, 부동산 투자로 돈 못번다고 우울해하고 있었구나.
대출이자, 세금만 내고 들어가 살지도 못하는 집을 소유한다고 해서 더 행복해질 것도 아닌데 말이다.
중요한 게 뭔지, 해야할 일이 뭔지 깨닫게 되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수십억짜리 집이 아닌, '평생 함께할 아프지 않고 건강한 몸'이다. 그 몸을 위해 투자할 때였다.
혹시 치솟는 집값으로 나처럼 우울한 분들이 있다면, 이 점을 기억하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