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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아라 Mar 23. 2024

왜 독일에 오셨습니까?

네? 제가 좋아하는 독일인이 있어서요. 그래서 그냥 왔어요. 

일본, 중국, 필리핀, 태국.  그리고 이제 독일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홈스테이와 국제교류, 어학연수를 통해 방문했던 나라들. 

여행으로 떠난 해외 보다 학생이라는 신분에서 누릴 수 있는 어학연수가 내 삶에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청소년 시기의 첫 경험이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 틀림없다. 

고등학생 시절, 담임 선생님께서 제안한 홈스테이가 무의식적으로 해외에 대한 정의를 바꾸어 버렸다. 

내게 해외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은 "여행" 보다는 "생활"에 가까웠다. 


해외에서 살아본 경험이 뭐가 좋아?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한"


멋진 여행지를 가거나 생전 보지 못한 아름다운 풍경을 보지 않아도 그곳에서 살면 사소한 것들이 참 특별해진다. 수업을 마치고 사람들과 왁자지껄하게 떠들던 바오밥 벤치, 필리핀 선생님과 함께한 바다 여행, 떠나는 마지막 날 훌쩍이던 일본인 친구의 방, 그 속을 메우던 따뜻한 온도 같은 것이다. 


장소나 풍경은 특별하지 않지만 사람이 사소한 순간을 특별하게 만든다. 


그래서 종종 이런 걸 여행이라고 해야 할지 국제교류라고 해야 할지 해외경험이라고 해야 할지. 

어떻게 정의를 내려 설명하면 좋을까 라는 고민에 종종 빠진다. 


해외를 나가면 그 순간을 풍경이 아닌 함께 있는 사람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그곳에 존재하는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는 것만큼 소중한 경험이 없다. 


그러다 보니 종종 여행으로 방문한 나라에서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에 무료해지는 순간이 빈번했다. 

맛있는 음식, 예쁜 카페, 신나는 액티비티, 멋진 풍경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종종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관광객이라는 정체성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나를 자세히 돌이켜 보면, 

그 나라 일상생활에 존재하는 내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욕구가 채워지길 원했다. 


그래서 4학년 2학기를 독일 교환학생으로 보내자고 결심하게 되었다. 


왜 4학년 2학기에 가셨나요?


사실 교환학생을 생각해 본 건 3학년쯤이었다. 미국을 생각했던지라 토플을 공부했다. 

이것도 참. 나는 토플이 토익과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난이도가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책을 시켰고 토플이 꽤나 어려운 시험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했다. 듀오링고와 같이 단기간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선택지도 있었으나 가오가 살지 않는다는 남고딩 마인드로 토플을 놓지 않았다. 

영어를 잘하지도, 끈기가 대단하지도 않은 내가 토플을 완성시켰을 즈음, 시간이 꽤 지난 상태였다. 

마지막 지원 시기라는 생각이 나를 열심히 움직이고 실행하게 만들었다.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내가 교환학생을 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며 의기소침했던 순간이 있었다. 

나는 당시 한국에서 만난 미국인 남자친구가 있었고 그와 보내는 시간들이 길어질수록 사랑보다는 내가 영어를 못한다는 자괴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서 대충 웃거나 끄덕이는 순간이 많아졌고 

토플은 버거웠다. 그 당시에는 꿈속에서 영어에 관한 악몽을 꾸는 것도 빈번했다. 

학교에서 듣는 영국인 교수님의 영어 강의 수업도 버겁게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상태로 교환학생을 가면 괜히 시간 낭비, 돈 낭비 하고 오는 게 아닐까 라는 불안감이 들었다. 


앞서 말한 "해외에서 살며 사람에 대한 추억과 경험을 쌓는다"라는 말이 어쩌면 유럽권에서는 영어를 완벽하게 하지 못하는 나로 인해 환상이 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니 시험과 영어 성적에 몰입해 있던 

그 순간이 나를 불안에 휩싸이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이 시간이 지나고 교환학생을 합격하고 서류를 준비하고 짐을 싸는 과정에 이르렀다. 

물론 많은 서류와 짐 싸는 단계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작은 설렘이 있었다. 


왜 독일이었나요? 

힘겹게 토플을 만든 나는 지원 시기에 갑자기 독일로 희망 국가를 변경했다. (독일은 토익으로도 갈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지원 시기, 비정상 회담 다시 보기에 푹 빠져있었는데 결국 출연자 닉 클라분데에 다시 한번 매료되었다. 

방영 당시에도 나는 비정상회담 애청자였는데 독일 출연자인 다니엘 린데만, 닉 클라분데를 좋아했다. 

고등학생 때는 다니엘 린데만이 진행하는 통일 강연에서 가서 다니엘에게 질문을 했을 정도다. 

잊고 있던 그들에 대한 애정이 샘솟았다. 


두 번째 이유는 

당시 미국 치안 문제에 대한 걱정과 연애 당시 미국 문화를 찍먹한 경험 때문이다. 

내가 지원할 미국 학교는 차 없이 이동하기엔 제약이 커 보였다. 

밤에 마음껏 돌아다니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또한 내 남자친구 덕분에 크리스마스 날, 미국 가정에서 칠면조를 먹기도 하고 그와 함께 보내는 일상생활에서 미국 느낌은 이렇구나를 어깨너머로 배우게 되었다. 

무엇보다. 당시  현지인의 "너가 지원할 학교가 있는 지역은 심심해 죽을지도 모르는 농촌이다."라는 말

이 아주 크게 들렸다. 현지인이 비추천하는 지역이라니... 


그렇다면 나는 미국은 잠시 아껴두기로 하고 독일에서 멋진 유럽을 경험하고 오겠다는 다짐으로 독일에 오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독일어도 "ㄷ" 도 모르는 채 영어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입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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