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어른의 역할이란.
한순간, 소소한 나만의 생각의 세상.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는 나는
평범한 장면 속에서 작은 주제를 가지고,
나도 모르게 ‘생각의 세상’으로 잠시 빠져든다.
때론 장난스럽게, 어쩌면 매우 무겁게.
때는 22년도 여름이었다.
작은 식당을 운영하던 나의, 변함없이 더운 어느 날.
우리 식당은 새하얀 벽지와 바닥으로 깔끔함과 허전함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그런 분위기의 가게였다.
벽을 채우려고 이런저런 포스터를 알아보다가도 금세 마음이 바뀌어서는, 내가 관리했던 2년 내내 여백으로 남긴 공간이다.
그럼에도 유일하게 벽을 지키고 있던 것이 있다. 바로 큰 달력.
썰렁한 식당과 어울리는 달력은 온전히 기능에 충실한 것이었다.
하얀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 토요일은 파란색으로, 일요일을 포함한 공휴일은 빨강으로.
전형적인 캘린더, 달력이다.
식당을 운영하다 보면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것은 꽤나 큰일이다.
월 매출을 정리하고, 재고 파악과 더불어 전체적인 손실률을 따지는 시간들을 갖게 된다.
그와 동시에 나를 포함한 우리 직원들의 큰 숙제이기도 한 것이 또 하나 있으니, 다름 아닌 달력을 찢는 것.
새로운 달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이자.
또 새롭게 한 달을 버텨나가야 하는 스스로에게 전하는 응원이 담긴 행동.
사실 말은 거창하지만, 이 달력을 찢는 일을 잊을 때가 정말 많다.
손님들이 앉는 안쪽 자리에서 정면을 바라볼 때 곧장 보이는 이 달력은
직원들 시선에서는 쉽게 잊히기 쉬운 녀석이다. 그렇게나 커다란 녀석인데도 말이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바쁜 날이었다.
아니 여느 때 보다 더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었다.
가게를 운영하던 시기의 나는 매일매일이 예민함의 연속이었다.
작은 가게에 걸맞지 않은 큰 책임감과 의욕이 원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에게 진상손님의 방문은 꽤나 치명적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애써 웃어 보이며 나의 책임을 다하려 하지만,
정작 마음속으로는 누군가를 상대할 여유조차 없었던 것 같다.
그날 또한 그렇게 지쳐가던 중이었다.
이미 앞서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들이 내 마음을 어지럽히고 난 뒤에 일이다.
이후에 주방과 가장 가까운 테이블, 우리가 5번이라고 정해둔 곳에서 직원을 찾는 소리가 들린다.
좁지만 생각보다 넓은 홀은 아르바이트생이 혼자서 일처리를 해나가기에는 버거운 곳이다.
그렇게 바쁜 직원을 대신해서 내가 주방 밖을 나서게 되었다.
누군가를 찾는 소리에 언뜻 본 그 테이블은 나이가 지긋한 노부부가 앉아 계셨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나는 그 테이블을 진심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부끄럽게도.
분명 상식밖의 컴플레인이라고 확신했다, 듣고 싶지 않은 농담일 거라 단정 지었다.
나는 금세 다른 사람이 테이블을 봐줬으면 하는 속마음으로 가득 차버렸다.
그럼에도 책임자라는 다소 버거운 감투를 짊어지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버거운 발걸음을 내딛으며 테이블로 향했다.
주방을 나와 테이블로 향하는 시간은 고작 10초 남짓, 그 순간에 나는 겁을 먹었다.
스트레스를 받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런 마음은 나도 모르게 말투에서부터 방어기제가 올라왔다.
“뭔가 잘못됐나요?”
이유를 채 듣기도 전에, 그들이 불만을 쏟아 낼 것이라 확신했다.
‘뭐 필요하세요? 도와드릴까요?’라는 친절한 서비스 용어가 있음에도 나는 이미 당신들을 알고 있다는 듯한 말투로 위와 같이 되물었다.
이런 나의 어리석은 질문의 답으로 전혀 예상밖의 말을 듣게 된다.
“저 달력이 아직도 이전 달로 되어있네요?”
정말 시답지 않은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서 테이블에 도착한 나에게 먼저 건넨 말이 나를 이미 지독하리만큼 창피하게 만들었다.
“바쁘신데, 너무 미안합니다. 뭐 하나 궁금해서요”
이 말 한마디에 나의 모난 마음은 너무나도 쉽게 무너졌다.
”아! 너무 정신없이 지내서 달력 찢을 생각도 못했네요 “
확고했던 모난 마음에 창피해진 나는, 그리고 미안해진 나는 괜히 머쓱한 웃음을 짓고, 한껏 톤을 높인 목소리로 나의 결핍을 숨겨 답했다.
이 얼마나 한심한 생각과 상황인가.
그럴싸하지 못한 변명과 나의 날 선 감정을 그분들은 다시금 감싸 안았다.
“이 식당은 지나간 시간을 간직하는 곳이군요”
할아버님께서 따뜻한 웃음을 짓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누군가의 말에 이토록, 진심으로 감동받았던 적이 있었던가?
그와 동시에 스스로가 너무 창피하고 미웠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이분들은 나에게 형체 없는 칼날을 던지는 사람들이었는데,
지금은 지칠 대로 지친 내 마음을 위로하는 분들이 되어 있다.
혼자만의 어리석은 생각 속에서 순식간에 바뀐 마음이라니 얼마나 못나 보이는가.
이날, 어르신이 해주신 말씀과 보듬어주신 따뜻함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날 가게를 마감하는 동안 어르신의 말이 잊히지가 않았다.
그와 동시에 시간을 간직한다는 여운에 벗어나지 못한 나는 나만의 생각 세상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번에는 맥락 없이.
마감을 하는 동안에도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 씻고 눕기까지 그 어르신들의 기품에 기대어 위로를 받았다.
지나간 시간을 간직한다는 식당의 뜻을 곱씹으며 나 또한 누군가에게 저런 말을 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예전부터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다. 오히려 하루빨리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학창 시절의 나는 그랬었다.
20대로 접어들고 사회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른바 ‘나이’가 든 어른들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정확히는 나이‘만‘든 어른들을 만나게 된다.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어른을 만나 뵙지 못했다. 그 틈에 어느새 20대 중반을 넘긴 시점이 되었다. 내가 사는 세상은 ‘노인혐오‘와 더불어 ‘그 세대’라는 특정 세대의 우리 부모님 나이대를 비하하는 단어까지 자리 잡게 된 곳이 되었다. 그렇게 그 누구도 공경할만한 어른이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 시점에 어렴풋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가치관이 생겨났던 것 같다.
다름 아닌 ‘좋은 어른이 되는 것’
그냥 시간이 흘러 겉모습만 어른이 아닌, 세월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쓰고, 아파하고, 사랑하고, 기뻐하는 시간을 보낸 뒤의 진정한 인간으로서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나 스스로를 온전히 바라보고, 나라는 사람을, 남들을 사랑할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부끄러웠던 과거를 마주하고, 창피함에 소리를 쳤던 나의 과오들을 인정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어른이 되고 싶어 졌다.
남들이 나를 그렇게 돌아봐주기를 소원했다. 하지만 20대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당연한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20대라는 나이는 어른이 되기에 너무나 이르고 세상의 모든 것들이 버거울 나이다.
이제 겨우 20대를 넘긴 시점에 위치한 내가 과거의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위로의 말일지도 모르겠다.
30대의 시작점에 놓인 나는 여전히 어른이 되고 싶다.
나의 길었던 고민의 시간들이 행동에서, 말투에서, 인상에서 나타났으면 한다.
그날의 나처럼 형체 없는 무언가로부터 지쳐있는 친구들에게 작은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나는 이런 목표를 갖고 여전히 살아간다.
30대의 내가 과거의 나를 위로한다면,
40대의 나는 과거의 나에게 애썼다며, 덕분에 잘 지낸다며 감사함을 가질 시간들을 보내고자 한다.
이번의 각오는 나만의 세상에서 끝나지 않기를.